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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최악의 비행기 여행

애틀랜타 문학회 김수린

애틀랜타 문학회 김수린

 
애틀랜타에서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친정 식구는 시애틀에 살고 있고 시댁 식구들과 딸 아이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어 일년에 두어번 정도 동부에서 서부로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된다 좁은 공간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비행기 여행은 불편하고 고단하다. 특별히 이번에는 혼자 가는 여행이기에 나름 신경을 써서 준비를 하였다. 목베게와 안대도 챙기고 아들에게 부탁해 아이패드에 영화도 한편 저장해 놓았다.

 
싸우스워스트 비행기를 주로 이용하는데 싸우스 워스트 비행기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다. 출발 24 시간전에 체크인 하는 순사 대로 탑승할 기회를 준다 그러나 소액의 금액을 지불하면 미리 탑승 순서를 받을 수 있는데 이번엔 그것도 구매하였기에 일찌감치 들어가 비행기 앞측 창문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갖난아이나 체구가 큰 사람이 앉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 고 있었다. 그런데 20대쯤으로 보이는 두 여자 아이둘이 내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둘 다 내 체구의 두배 정도는 될 거구들이다.둘이 앉으니 팔걸이 밑으로 엉덩이 일부가 내 쪽으로 빠져나오고 팔걸이 위아래가 완전히 덮히고도 내쪽 좌석의 일부를 장악한다. 내 좌석의 일부를 그 아이에게 헌납한 셈치고 나는 창문쪽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마치 창틀에 끼인 생쥐같은 기분이다. 눈이 마주 치자 살짝 미소짓는 얼굴을 보니 금발에 보조개도 살짝 들어가는 귀여운 인상의 아가씨이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여 활주로에 진입하더니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창문 쪽을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출발점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단거리 마라톤 선수가 빵! 하는 출발신호에 맞추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비행기도 일직선으로 쭉 뻗은 활주로 위에 대기하고 있다가 돌연히 속도를 내며 점점 빠르게 전속력으로 달린다. 비행기의 요란한 소음과 질주하는 속도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늘 슬로우모션으로 보았던 질주하는 마라톤 선수의 모습을 연상한다. 바람에 머리칼을 흩날리며 볼과 입술까지 실룩거리며 사력을 다해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비행기도 바람을 가르며 전력을 다해 달린다 그리고는 활주로 끝지점 쯤에서 앞동체의 선미부분부터 서서히 사선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간다. 지상의 건물들이 서서히 작아져 성냥갑 처럼 보이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도 점점 작아져 점선 같아 보인다. 푸른 숲이며 검은 구덩이 처럼 보이는 호수가 점점 멀어져 가다가 어느 순간 솜처럼 풍성하고 하얀 구름이 밑으로 보이며 비행기는 이제 전혀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고 구름위에 가만히 떠 있는것 같다. 구름 사이로 이따끔 푸른 산도 보이고 검푸른 바다도 보인다. 햇살이 여과없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하얗게 반사되며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찬란하다.
 


창문 가리개를 내리고 이제는 준비한 영화를 보려고 아이 패드를 꺼내 보니 아뿔싸, 이어폰이 없다. 열심히 챙겼는데 정작 중요한 물건은 잊은 것이다. 영화 감상은 물 건너 갔고 준비해 온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내 좌석 두 서너칸 뒤쪽인 것 같다. 한살 정도로 짐작되는 여자 아이의 목소리이다. 아이는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목청을 다해 울부짖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어떻게 저렇게 계속해서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 의아해 할만큼 울음 소리는 계속되있다.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책을 보는것도 집즁을 할 수없고 너무 장시간 우는 아이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디가 아픈가. 아이의 엄마는어떻게 아이를 달래 볼 수 는 없는것인가, 걱정 반 짜증 반의 마음이 된다. 다른 승객들도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뒤를 돌아보거나 투덜대는 사람이 없다. 역시 예의 바르고 인내심 많은 미국 시민들이다. 아이는 그처럼 요란하게 거의 삼십여분을 울더니 잠잠해졌다.
 
비행기 승무원이 다니며 스낵을 주면서 무얼 마시겠느냐고 물어봐서 물 한잔을 부탁했다. 눈도 침침하고 피로감이 몰려와 읽고있던 책을 덮고 잠이나 자야겠다 싶어 준비한 목 배게와 안대를 꺼내 잠을 청해보려 하는데 옆 좌석의 아이들이 부시럭거리며 무엇을 꺼내 먹기 시작한다. 곁눈으로 보니 내 손바닥만한 초코랫칩 쿠키이다. 승무원들이 나누어 준 스낵과 함께 그 큰 초콜렛칩 쿠키를 순식간에 맛있게 먹어치운다. 나는 물 한잔을 마시고 안대로 눈을 덮고 잠을 청해 보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 저리 자세를 바꾸며 비몽 사몽,깜박 깜박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꾸리꾸리 하고 역한 냄새가 난다. 아마도 아까먹은 초콜렛 칩 쿠키가 소화가 되어 이제 메탄 가스로 방출되는것 같다. 밀폐된 공간에서 어디로 도망 갈 수도 없이 주위를 맴도는 지독한  냄새로 한동안 곤욕을 치루었다.  
 
잠도 달아나고 다시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까 이륙할때 울었던 그 아이다. 역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목청을 다해 울어댄다 . 정말 어디가 아픈지, 누가 꼬집는지, 어찌 저리 자지러지게 울을 수가 있을까 싶게 요란하다. 그 소란함 속에 책 보는것도 포기하고 그동안 참고 있었던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섰다. 두 아가씨가 일어나 비켜서고 나는 뒷쪽 화장실을 향해가면서 아직도 자지러지게 울고있는 그 아이를 보았다. 발버둥치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땀에 젖어 빨갛게 상기되어 있고 곧 울음이 터질것 같은 힘겹고 피곤한 얼굴이다. 그제사 아이를 달래려 애쓰는 엄마의 고충이 느껴지며 속으로 짜증을 내었던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유아가 상공에서 기압 차이 때문에 귀가 아푼것일까, 아이를 데리고 장시간 비행기 여행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과제일것이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 착륙 시간이 되어간다. 그사이 창빆에는 저녁노을이 가득하다. 서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석양은 거의 한시간 남짖 계속된다. 붉은 저녁노을 속으로 비행기가 빨려 들어 가는것 같다. 황금빛의 저녁노을이 주황색으로 짙어가더니 붉은빛으로 변하며 서서히 담청색을 띠며 어둠이 짙어진다. 황홀한 빛의 향연을 경이롭게 바라 보면서 비행시간 동안 쌓인 피로와 짜증이 개이고 오랜만에 가족을 만날 기대감으로 들뜬 마음이 된다.
 
최악의 비행기 여행기는 아마도 이렇게 끝맺어야 할것같다.
 
하늘위에서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한시간이나 감상한 멋진 여행이었다고
 
김수린
- 치과 의사
- 현재 둘루스 소재 개인치과병원 운영
- 제2회 애틀랜타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
 
 
 

김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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