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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커피 한 잔의 여유

“커피의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커피의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지만 천사처럼 순수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18세기 프랑스의 정치가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의 말이다. 탈레랑은 가톨릭의 주교로 봉직할 때나 외무장관으로 있을 때나 어떤 일을 해도 커피는 그의 동반자였다고 한다. 탈레랑의 커피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나폴레옹은 “내게 정신을 맑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주 진한 커피다. 커피는 내게 따뜻한 기운을 주고 때때로 긴장을 풀어주고 여유를 누리게 해 준다”라고 술회했다. 악성(樂聖) 베토벤도 “아침식사에서 내 친구인 커피를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커피가 없으면 어떤 영감도 느낄 수 없으며,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60개의 원두는 60가지의 영감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별히 커피를 사랑하며 즐겨 마시는 커피 마니아들이다. 마니아(mania)는 특정한 요소에 광적, 또는 병증으로 집착하거나 즐기는 행위를 말한다. 필자도 커피 마니아에 속한다.
 
커피의 기원과 원산지는 아라비아로 알려져 있다. 17세기경 커피가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지자 마을마다 ‘커피하우스’가 생겨났고, 커피 소비량이 급증해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당시 커피는 아라비아에서만 재배됐고 이슬람권인 아라비아는 커피 종자와 묘목 유출을 강력히 금지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왕은 커피 묘목을 몰래 수입해 경작을 시도했으나 커피나무가 서리를 견디지 못해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1890년경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서 러시안이 대접한 커피를 처음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1930년대 서울의 명동에 처음 다방이 생겼고, 다방은 당시 장안의 명물이 됐다. 60대 이상은 다방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 옛날 목 좋은 거리에는 다방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았고 만남의 장소로 이용됐다. 그곳엔 유행가와 팝송이 흘렀다.  
 
다방은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사업가들의 계약장소로, 동네 건달들의 집합장소로, 또는 지나다 쉬어가는 장소로, 그 시절 낭만이 흐르던 곳이었다. 가끔씩 권투 세계 챔피언십 또는 프로 레슬링, 국제 축구경기를 TV중계하는 날이면 다방은 온통 손님들로 초만원을 이뤘으니 그야말로 다방면으로 사용됐던 장소였다.
 
커피 탁자 위엔 둥그런 재떨이, 육면체형 성냥갑, 동전을 넣으면 운세 쪽지가 나오던 놋그릇이 놓여 있었다.    
 
다방에서 처음 마셔 본 커피는 엄청 쓰고 뜨거웠다.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어 억지로 마시면서도 혹시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 꽁초로 끓인 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워 보통 커피값에 3배를 받았던 바가지 커피도 기억난다. 요즘처럼 에너지 드링크가 없던 시절이라 에너지 보충을 위한 커피였을까?      
 
우리는 늘 바쁘게 앞만 보며 살아 왔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각박해 삶을 바쁘게, 빨리빨리로 내몰았다.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바쁘게’와 ‘빨리빨리’ 문화 속에 중독되어 살아 온 셈이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괜한 두려움,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제 커피 한 잔을 들며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생활의 여유, 살아 온 인생을 반추해 보면 어떨까? 좀 더 천천히, 여유롭게, 옆도 뒤도 돌아보며 한 템포 늦게 가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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