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흔들리는 치안 시스템
지난달 24일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도 초기 보도를 보면 지금까지 벌어졌던 총기 관련 사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8세 고등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을 총기로 살해했다는 사실은 따로 떼어내면 이런 참극이 없다. 하지만 올해 들어 대량 총기 사건이 213건, 학교 내 총격만 27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정도면 일상화된 참극이다. 이 모든 일이 총기 합법의 틀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면에서 시스템화된 참극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총기 생산과 판매, 소비도 시스템이고 사건 발생 이후의 논란과 논쟁, 수용, 결말도 마치 정해진 루트를 가는 것처럼 보인다. 과정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결말은 정해진, 장르가 된 비극이랄까.
논쟁이나 해법도 사건처럼 반복적이다. 충돌하는 주장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한쪽에서 “총이 문제다”라고 시스템을 지목하면 다른 쪽에서 “사람이 문제다”라며 개인의 일탈을 지적한다. 시간이 흐르면 총기 관련 시스템 자체를 바꾸자는 주장은 잊히고 총기 판매와 구매를 조금 엄격하게 하는 법률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다시 참극이 반복된다.
이번 사건에도 등장한 군용 돌격 소총과 합법적인 구매 연령 논쟁, 범죄 예고, 총알 1657발 대량 구매, 315발 지참, 142발 발사 같은 심각성이 결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 의문이다.
오히려 롭 초등학교 총격 사건이 이전과 전혀 다른 것은 치안 시스템의 와해다. 한두 가지 정도가 아니라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터진 것처럼 보일 정도다.
우선 범인이 학교로 들어간 문은 열려 있었다. 학교 안전 프로토콜에 따르면 이 문은 닫혀 있는 것은 물론 자물쇠로 닫아 놓아야 한다. 사건 당시 학교 경찰은 현장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초기 발표 때는 경찰이 총격전을 벌였다고 얘기했다.
용의자가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28분. 그로부터 35분 뒤인 오후 12시 3분 한 여학생이 911에 전화해 범인과 같은 교실 안에 있다고 신고했다. 몇 분 뒤 유밸디교육구는 페이스북에 캠퍼스가 전면 폐쇄됐지만, 학생과 교직원은 건물 안에 안전하게 있다고 공지했다. 12시 3분에 신고했던 여학생은 911에 두 번 더 전화해 여러 명이 죽었고 학생들이 남아 있다고 알렸다. 이 사이 경찰은 학교 안으로 진입하는 대신 울부짖는 부모를 막거나 수갑을 채웠다. 이로부터 34분 뒤에야 현장에 출동한 국경순찰대가 학교 안으로 진입해 범인을 사살했다.
사건이 벌어진 78분 동안 치안 시스템은 방임 상태에 가까웠다. 코로나19 이후 치안 시스템이 느슨해졌다고 하지만 롭 초등학교 사건은 제대로 작동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총기 관련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그나마도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도 있다. 당장 치안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LA에서는 미행강도와 떼강도, 좀도둑으로 그 어느 때보다 치안 시스템이 불안하다. 최근 가주에선 라구나우즈 교회와 새크라멘토 유흥가에서 대형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그나마 치안마저 흔들리면 언제 어디서나 작게 끝날 사건도 대형 참극으로 번지는 인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론이 들끓자 교사 무장론에 이어 방탄 문과 유리를 설치하는 학교 요새화 주장까지 나왔다. 요새화는 할 수도 있겠지만 잠그기로 한 문이 열려있는 시스템 해이까지 막지는 못할 것이다.
안유회 / 사회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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