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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민사회의 이정표 세우자

해마다 가을이면 서너 시간을 운전해서 밤을 따오는 성도가 있다. 그분은 글을 읽지 못했다. 가까운 곳이야 익숙한 길이니 쉽게 다닐 수 있고 또, 길을 잃더라도 금세 다시 찾겠지만 도로 표지판도 읽지 못하면서 그 먼 곳까지 가서 밤을 따 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분은 자신만의 이정표를 머릿속에 넣고 다녔다. 프리웨이에 들어서서 한참을 가다가 큰 병원이 보이면 다른 프리웨이로 바꿔 타고, 산을 두 개 넘고 다리를 건너 다섯 번째 출구에 내려, 세 번째 신호등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다음에 나오는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만나는 숲에서 밤을 따고, 그 이정표를 되짚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날도 밤을 따러 간다고 하길래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이튿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달려와 “목사님 햇밤 좀 드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갓 따온 밤을 한 아름 안겨주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소식이 없었다. 궁금한 마음이 걱정으로 바뀔 때쯤 그분이 햇밤 한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늦게 나타난 영문을 묻는 나에게 그분은 밤나무 숲이 있는 마을이 개발되면서 1년 만에 건물이 들어서고 신호등이 생기고 길이 바뀌는 바람에 밤나무 숲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차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겨우 밤나무 숲을 찾아 밤을 따왔다면서 넋두리를 쏟아냈다.  
 
그분의 푸념을 떠올릴 때마다 이정표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우리도 길 위에 선 수많은 이정표를 만난다. 그 이정표는 육로에만 난 것이 아니라 하늘에도 있다. 하늘에 난 이정표를 ‘웨이포인트(Waypoint)’라고 한다. ‘웨이포인트’는 위도와 경도로 이뤄진 특정한 좌표에 고유 명칭을 붙인 것으로 이를 기준으로 조종사와 관제사가 위치 확인을 하면서 비행기의 경로를 확인한다.  
 
부르기 쉽고 겹치지 않는 로마자 알파벳 다섯 글자로 된 ‘웨이포인트’가 미국에만 3만70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그중 미국 워싱턴 DC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내리려면 ‘USAAY WEEDU SUPRT OOURR TRUPS’라는 ‘웨이포인트’를 통과해야 한다. ‘USA, we do support our troops(미국은 우리의 군대를 지지한다)’라는 뜻의 이정표가 미국의 수도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맞는다.  
 
다른 쪽에서 들어오는 비행기는 ‘WEEEE WLLLL NEVVR FORGT SEPII’라는 이정표를 지나야 한다. ‘우리는 9·11을 절대 잊지 않겠다 (We will never forget Sep. 11)’라는 뜻이다.  
 
‘웨이포인트’라는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하늘에 있는 것처럼 이민사회가 걸어온 길에도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서 있다. ‘DOSAN’ 도산 안창호 선생과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도산의 막내아들 ‘RALPH’ 랠프 안 선생도 이민사회의 이정표다. 30년 전 이민자들의 눈물과 땀이 깃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태운 ‘4·29 폭동’, 즉 ‘SAIGU’도 이민사회가 지나온 이정표다.  
 
이민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있다. ‘TODAY’ 바로 오늘이라는 이정표다. 다음 세대가 따라올 이민사회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오늘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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