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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원주민 인디오들과 춤추다

미국에 있는 ‘이해의 사원(TOU)’ 국제업무 담당자 루이스 돌란 신부님의 초청을 받고 1992년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한 종교인 순례모임에 참가했다. 낯선 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은 항상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앞서게 마련이지만 남미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원주민을 위한 순례라는 점이 속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었고, 알 수 없는 엄숙한 생각까지 하며 여행길을 떠났다. 아마 이번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를 방문하여 원주민 인디오를 처음 만난 곳은 페루의 쿠스코, 그 옛날 잉카제국의 수도에서였다. 남미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정복자 스페인 사람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예 혼혈아 메스티조였다. 그들은 생김새도 서양사람 같았고 체구도 컸으며 모두 당당하고 활달해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2만년 전 원시 몽고인종과 헤어져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자손, 인디오는 유난히 머리카락이 검고 체구도 왜소했다. 몽골리안이어서 생김새도 어딘가 모르게 우리와 비슷했다.  
 


인디오들은 우리 일행을 환영했다. 남자는 그들 고유의 악기를 불고 북을 쳤고 여자는 가면을 쓰고 나와 장단에 맞춰 춤을 췄다. 처량해 보이던 인디오들이 가면을 쓰고 우리를 위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쓰럽다고 여겼던 나는 어느 결엔가 나도 모르게 스며들 듯이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 춤사위를 흉내 내며 함께 춤추었다. 춤판이 끝나 자리로 돌아오려 하자 악단의 악사들이 내 곁으로 모여들어 눈웃음으로 반겨주기도 하고, 그중 어떤 사람은 내 뺨에 키스했다. 함께 춤을 춘 것이 자기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여겨져 고맙다는 표시였을 것이다.
 
환영 공연이 끝나고 저녁식사 시간이 됐을 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조금 전 내가 춤추는 것을 보았던 인디오 어린이들이 나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어떤 어린이는 구슬을 내게 주고, 또 다른 어린이는 무슨 열매인가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곁에 모여든 많은 어린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코리아’ ‘서울’ ‘올림픽’이라는 세 마디를 가르쳐주면서 반복적으로 따라 하라고 했다. 나와 함께하는 것이 매우 신이 나는 듯 목청껏 “코리아, 서울, 올림픽”이라고 외쳤다. 그들이 자라서 언젠가 코리아라는 나라를 알게 되고, 코리아의 수도가 서울인 것을, 그리고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인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길을 걸을 때, 조금 전 단상에서 엄숙한 모습으로 의식을 집전했던 노신부님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나의 손을 잡고 걸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고, 신부님은 영어로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신부님과 맞잡은 손은 그 사회의 약자, 인디오에 대한 염려와 연민의 정이 관심으로 흐르고 있다고 느껴졌다.
 
잉카문명에 대해 따로 아는 바는 없지만, 잉카제국의 마지막 도시 마추픽추를 둘러보면서 실로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스페인 침략자에게 쫓고 쫓기어 높고 높은 산봉우리를 깎아 만든 도시는 천혜의 요새였다. 그 옛날 아무 기계도 없던 때 이 산중에다 어떻게 그 무거운 돌을 옮겨다 그렇게 정교하게 석축을 쌓아 집을 짓고 계단식 밭을 일구며 살았을까? 규모 면에서도 방대하고 기하학적 느낌마저 들도록 구획과 선이 뚜렷했다.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고 공중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하여 마추픽추를 공중도시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높은 공중도시마저도 스페인 군대에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고 하니, 자신의 땅에 살던 그들이 끝까지 쫓기고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수난의 역사는 참으로 비참했다. 오늘날 그 후예들이 대통을 엮어서 만든 것 같아 보이는 삼뽀냐 악기를 불면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가락만 듣고 있어도 공연히 저절로 슬퍼진다.
 
수난과 고통을 겪었던 호주 원주민 작가 반조 클라크가 쓴 글을 읽다 보면 원주민들은 대지를 어머니라고 여기고 세상 만물을 신성하게 여긴다. 그들의 따스한 가슴과 인간적인 모습, 순리와 원칙에 순응하는 그들의 삶에서 깊은 영감을 얻게 된다.

박청수 /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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