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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행복의 기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를 웃게 하고
어느 슬픈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고,  
한순간이라도  
용기를 줄 수 있는
무슨 재주는 없을까?”  


 
나는 무엇에 적합한 사람일까? 생각해 보고, 따져 보고, 어떤 틀에 끼워 넣어 맞추려, 애쓴 기억이 없다. 인생을 헛 살았다는 애잔한 마음이 된다.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기나 했을까. 무엇에 적합한 사람이란 판단이 전혀 서지 않는 인생 어느 지점에 선 나를 풀어 보자.
 
글쓰기가 머쓱해졌다. 뭘 써야 할지 아무 생각도 없이 멍 때리며 지낸 시간이 몇 달이 됐다. 내가 쓰는 글 어느 한 부분, 한 문장, 혹은 한 단어에서 누군가 크게 고개 끄덕여 준다면 글쓰기를 멈추진 않겠다. 읽는 이들 가슴에 따스한 기운 잠깐 느끼게 해 줄 수 있었다면 글쓰기가 멈추진 않았을 텐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웃게 하고, 어느 슬픈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고, 한순간이라도 용기를 줄 수 있는, 무슨 재주는 없을까? 그렇지 못해서 내 가슴은 답답하다.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다가도 갑자기 움츠려드는 나를 만난다. 그러다 어느새 난,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방구석 탈출을 잊고 집콕 마녀가 된다.
 
고등학교 동기 단체 카톡방에 계절성 취미 생활 사진 몇 컷 올렸다. 너 혼자라도 건강한 모습 보여주니 대리만족할 수 있어 고맙단다. 넌 우리의 롤 모델이니 절대 아프지 말고 우리가 못하는 그런 운동 계속하면서 훨훨 날아다니란다.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란 느낌이 살짝 머리칼을 건드린다. 순간 행복해졌다.
 
한참 눈이 쌓였어야 할 스키장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매일 기계로 눈을 만들어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상태에서 스키어들을 부른다. 진짜 스키마니아들은 이런 스키 조건에 절대 속을 리 없다. 한산한 스키장이다. 적당히 따스한 날씨에 활동이 편하다. 바람 사라진 곳에서 나는 즐겁다. 겹겹이 껴입지 않은 차림으로 가뿐하게 리프트에 오른다.
 
소금에 절인 배추 꼴이던 내 기분이 급작스레 상승곡선이다. 한가해서 안전하고, 바람 없어 따스하고, 숙박할 곳 예약하고, 아무도 내 생활을 간섭하지 못하는 곳으로 혼자 떠난다. 300마일이 뭐 대수랴. 미국 전역 대륙횡단이라도 운전해서 다닐 수 있다.  
 
그래. 이것이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능력도 없으면서, 이제 나이 들어 에너지도 고갈되면서 뭘 주제넘게 자꾸 주고자 안달인가. 동기들에게서 받는 한 마디의 칭찬이 내게 용기를 준다. 기운이 솟는다. 이런 것이 작은 사랑이다. 나도 사랑 받으며 살고 싶어진다. 받아보니 기운이 나지 않는가. 역부족 상태에서, 주려고 애만 쓰다 시들어 버린 내 전성기. 모두 내려놓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슴에 쌓인 것 털어놓자. 읽어주는 이 없으면 어떤가. 감동스러운 글이 아니어도 상관하지 말자. 누가 어떤 반응을 해 주려나 눈치 보지 말자. 안 쓰고 감추고 묻어두면 내 가슴이 터진다. 내 호흡이 막혀버린다. 혈관이 터져버린다.  
 
살자. 글을 쓰자. 내 가슴 창고가 넓지 않아 밀어 넣어둘 곳이 없다. 높아지는 체온이 옷을 벗긴다. 부실한 몸매가 부끄러워도 토해내고 비워내면 신선한 공기로 호흡이 수월하다. 내 글이, 내 이름 석자가 졸지에 사라져도 어느 한 사람 눈치채는 이 없다. 묻지 않는다. 그대로 잊고 만다. 흔적이 남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한다. 나는 애정한다. 지금의 나를 빚어낸 시간들을. 내게 소중한 것들이, 다른 사람 누구에게도 소중할 수 없음을 인지하자. 스치는 바람을 손으로 움켜쥐어 주머니에 간직하는 사람은 없다. 나 자신도 그리하지 않고 무심하게 살고 있음을 왜 간과하려는가.
 
나? 역시 남의 인생사에 관심 없다. 그들의 특기에 전혀 고개 돌리지 않는다. 하물며 립서비스 정도의 칭찬이라도 날린 적 없다. 오직 내가 느끼고, 인정하고, 동의했던 경우에만 아낌없이 애정 표현을 주었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준 것이 없음에 아무것도 받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인생살이가 무리 없이 잘 돌아갈 것이다.  
 
이제 좀 편해지자. 내가 확실하게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아도 된다고 나에게 허락하자. 나는 딱, 고만한 크기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능력이 탑재되지 못한 인간이다. 선한 영향력을 퍼트릴 자원이 없는 상태라 여겨진다. 내게 허락된 것들로서만 꼴 지워짐에 순응하자. 이제야 나를 똑바로 보게 되니 부족한 내가 사랑스럽다. 행복은 슬그머니 내 꽁무니를 따라온다.

노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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