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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스 캔디’의 교훈

캔디 회사의 신화 ‘시스 캔디(See’s Candies)’의 첫 점포는 1921년 코리아타운 웨스턴가에 문을 열었다. 업소 뒤에는 일반 가정의 부엌과 같은 주방시설이 준비돼 있었다. 1925년에는 LA의 점포가 12개로 늘었다.  
 
1911년 7월 11일, 캐나다의 온타리오의 금광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곳에서 두 개의 약국을 운영하던 찰스 시(Charles  See)는  간신히 생명을 건졌으나 집과 모든 재산을 잃었다. 할 수 없이 찰스는 토론토에  있는 미국 초콜릿 공장에 취직해 캐나다 판매 대리인의 업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캐나다보다는 LA에 관심이 많아 192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메리 시와 아내, 두 자녀를 데리고 LA에 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제과 산업은 워낙 경쟁이 치열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품과 구별되는 시스 캔디를 생각하게 됐다. 좋은 원료를 사용해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초콜릿을 만들었다. 1921년 회사를 창업하면서 정직과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 그에 합당한 제품을 출시했다.  
 
찰스는 그의 어머니의 레시피를 끝까지 지키다가 1949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장남이 가업을 이어 경영에 참여했고 1936년 이후에는 북가주에도 진출했다. 1954~1964년 사이에는 쇼핑물이 세워질 때마다 시스 캔디 업소를 개업했다. 1957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공장을 세웠다. 주요 제조 공장 중 첫번째다.  
 
1970년 시스 캔디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시스 캔디를 인수한다. 버핏은 시스 캔디를 인수한 후 회사에서 오래 일한 찰스 히긴스를 CEO로 임명했다.  
 
버핏은 이윤을 높이기 위해 품질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며 시스 캔디의 명성을 이어 갈 것을 당부했다.  
 
오늘날 시스 캔디는 미국 내 200개가 넘는 점포를 운영 중이며 100개 이상의 점포가 해외에 있다. 6000명 이상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고 연간 45만 명의 우편 주문을 받아 처리하고 있다. 또한  웹사이트 통해 세계적으로 200만 명 이상의 고객이 주문해 오고 있다.  
 
시스 캔디의 성공은 제품의 우수성과 정직에 기초를 둔 경영 철학 때문이다. 여기에 미래를 보고 이 회사에 투자한 워런 버핏의 혜안도 있었다.  
 
현재 시스 캔디는 기부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1991년 노스리지 지진 때에는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4만 파운드의 캔디를 무상 제공했고 매년 비영리단체 병원, 의료기관, 교육기관, 예술기구, 자선단체 등에 상당한 기부를 하고 있다.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인 4명 중 1명이 소매상과 자영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타인종과 비교할 때 높은 비율이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나서지만 운영상의 미숙이나 불황 등으로 도중 하차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시스 캔디의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사업을 선정하고 일단 분야가 결정되면 업계에서 앞서 갈 수 있도록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정직을 최우선으로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기천 / LA카운티 중소기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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