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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

독일 유학 시절 우리는 남부 국경 지역 당시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에서 생활하며 지냈다. 동양인이 많지 않던 이 도시에 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눈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엄마, 왜 나는 머리카락이랑 눈이 까만 거야?” 이 느닷없는 질문은 나를 순간 당황하게 하였다. 답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하긴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함께 입원해 있던 많은 산모와 그 가족들이 까만 눈과 까만 머리카락의 아이를 보려고 신생아실 앞에 모여 있던 기억이 있다.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를 택하는 독일은 독일 땅에서라도 한국인 국적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묻고 따질 것도 없이 ‘한국인’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현상이 이제 거울 앞에선 아이의 눈에 다름으로 비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오랜만에 사회언어학의 한 분야를 강의하다가 결손가설과 차이가설이라는 이론을 다루는 계기가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할애한 분량이었지만, 그 내용이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결손가설은 한마디로 사회계층이나 신분·지역 등의 차이에 대하여 작위적으로 설정된 표준을 기준 삼아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결손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지방 사투리도 여기에 속하는데, 표준어 사용을 기준으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에게 결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부산으로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어느 양품점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옆에 서 있던 우리 나이 또래 점원이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왜 그러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서울 말씨가 너무 예뻐서 자꾸 듣고 싶어서 그런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시간에도 종종 학생들에게서 감추려고 애를 써도 무의식간에 묻어나는 고향의 어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방 사투리는 표준 말씨에 대한 결손의 증거일까. 실제로 이런 결손가설이 힘을 가졌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사투리를 몰아내고 표준어를 가르치도록 강제되어, 이를 위한 커리큘럼이 구성되기도 했었다. 1960~70년대 영국에서의 이야기다.
 
반대로 차이가설은 결손가설의 입장을 부정한다. 사투리를 쓰는 현상은 표준에 못 미치는 결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차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결단코 우성과 열성의 잣대가 아닌 다양성의 한 면모로 평가되어야 하며, 따라서 동등한 가치가 주어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라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서 본 것이 결코 결손이 아니었을 것이다. 차이에 불과할 뿐.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우리 가족은 차이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가 우리와 다른 모습의 외국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는 차별을 품은 결손, 아니면 차별을 버린 차이의 관점이었을까.
 
차이로는 보일 수 있어도 하등 결손의 이유가 없는데도, 우리는 곧잘 차이보다 결손이라는 잣대로 차별을 만들려 한다.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보다 밝은 피부색을 가진 이들에 대해 우리 자신을 폄하하려는 사대주의 풍조를 보이고, 우리보다 어두운 피부색에는 근거 없는 우월주의를 내세워 상대방을 업신여기려 한다. 어두운 피부색은 밝은 피부색의 결손인가.
 
우리 삶의 곳곳에서 이처럼 차별적 시각을 가진 결손가설들이 작동하고 있다. 특히나 별난 결손가설은 바로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차별적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여성은 남성의 결손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에게 주어진 생물학적인 차이는 사회가 함께 보듬어야 할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차별은 아니어야 한다.  
 
편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결손의 잣대로 빚은 차별적 시각을 버리고, 다양성의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한다면, 한편으론 겸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해질 수 있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은 결손이라 말했고, 한 사람은 차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판단은 어떤 가설을 따르고 있을까. 

최명원 /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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