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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인’과 ‘어르신’의 차이

개를 무척 좋아하는 청년이 있었다. 일과를 마치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들어 올 때면 어김없이 개는 꼬리를 치며 달려 나와 주인을 반겨주었다. 늘 총알처럼 달려 나오던 개가 어느 날 저녁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주변을 두루 살펴 보니, 개는 옆집 뒷마당에서 하얀 토끼를 물고 흔들어 대고 있지 않은가. 놀란 청년은 뛰어가서 토끼를 빼앗고 얼른 개를 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주변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토끼는 이미 죽어 있었다. 분명히 옆집 노인이 애지중지 키워오던 토끼였다. 황당한 일로 걱정이 태산이다. 일단 죽은 토끼를 욕실로 들고 들어가서 깨끗이 씻겼다. 그런 후 드라이어로 토끼 털을 말리고 곱게 빗겨서, 토끼에게 향수까지 뿌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개 주인은 고민했다. 날이 밝는 대로 옆집 노인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애도의 사과를 드리면서 토끼 값을 변상하면 어떨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오늘 밤에 옆집 뒷마당의 사육장에 토끼를 몰래 넣어두면 어떨까? 토끼가 잠 자다가 죽은 자연사로 인정될 것이다.  
 
청년은 후자를 택하고 그날 밤 자정을 넘겨 쥐도 새도 모르게 성공적으로 결행했다. 간은 콩알만 해졌고, 심장은 뛰고 양심에 걸려 도저히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기상하자마자 창문 귀퉁이를 통해 옆집의 동태를 살폈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일터로 출근했다. 개는 집안에 단단히 묶어 놓았다. 체벌을 내린 셈이다.  
 
해질 무렵, 집에 도착한 청년은 옆집 노인이 집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우물쭈물 차에서 내려 평상시처럼 인사를 건넸지만 머릿속엔 이 노인이 어찌 알고 왔을까 생각했다.  
 
노인은 반가운 얼굴로 “오늘 저녁 선약이 없으면 식사나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요?” 물었더니, 노인은 “좋은 일이 생겼네. 이웃들과 식사라도 하면서 좋은 일을 나누고 싶네”라고 대답했다.  
 
몇몇 이웃들이 초대돼 노인 집 저녁 식탁에 둘러 앉았다. 이웃들은 이 어른의 좋은 소식이 궁금했다. 노인은 값비싼 와인을 따면서 “우리 집에 경사스러운 기적이 일어났다네. 며칠 전, 내가 기르던 토끼가 죽어 뒷마당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는데 글쎄 우리 토끼가 부활해서 집으로 돌아 왔다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웃들은 “기적이네요”하며 환호를 보냈다. 기적을 축하한다며 한 이웃이 와인 잔을 높이 들자 모두들 축배를 들이켰다.
 
청년도 축배를 마셨다. 심장은 두근두근, 간담의 떨림이 와인 잔에까지 전달되었다. 어르신은 청년의 빈 잔에 와인을 다시 채워 주면서 의미심장하게 “포도주 맛이 어떤가?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산 와인인데, 두어잔 마시면 마음이 아주 평안해 질거요”라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고, 노인은 이웃들에게 고맙고 즐거웠다는 인사와 선물상자를 각각 안겨 주며 배웅했다. 청년은 집에 돌아오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추스르며 선물상자를 열었다. 상자안에는 쪽지 메모가 보였다.  
 
‘개를 벌 주거나 나무라지 않기를 바라네. 계속 좋은 이웃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네. 그리고 비닐 속에 든 것은 개들이 좋아하는 토끼고기 요리일세.’
 
청년은 정말 부끄러웠다. 이웃에 이렇게 존경스러운 어른이 계셔서 자랑스러웠다.  
 
‘집에 어른이 안 계시면, 빌려서라도 모셔라’라는 그리스 속담이 생각났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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