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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예상 못했던 ‘퇴직 물결’

 최근 연방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이 발표하는 숫자에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는 이들의 수가 4월부터 역대 기록을 잇달아 갱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부터 시작된 퇴직 물결은 6월까지 석 달 동안 1150만 명을 기록했다. 이 흐름은 7월 402만 명, 8월 430만 명, 9월 440만 명으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퇴직 물결이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금융위기(Great Recession)에 빗대 ‘대규모 퇴직(Great Resignation)’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중대한 문제로 인식되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 번역어가 대퇴직, 대퇴사, 대은퇴, 거대한 퇴직 등으로 어색하게 난무하는 이 현상은 예상 못한 뜻밖의 일이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사회적 혼란을 겪은 것이 얼마 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실업수당과 경기부양 자금으로 거대한 실업의 시대를 버티고자 했다. 그리고 백신만 나오면 경제와 사회는 이전의 일자리와 출근으로 복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백신이 나와도 일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오히려 퇴직이 거대한 경제적,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실업수당을 끊으면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보기 좋게 깨졌다.
 
코로나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퇴직 물결에는 더욱 뚜렷한 함의가 있다. 지금은 아득한 일처럼 됐지만, 코로나 이전, 노동은 백척간두에 선 듯 위태로웠다. 제러미 리프킨 같은 이는 미래 사회는 소수의 첨단 기술자와  다수의 영구 실업자로 구성된다며 ‘노동의 종말’을 선언하기도 했다. 꼭 리프킨이 아니더라도 인공지능과 로봇에 밀려 일자리가 없는 세상이 온다는 경고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고비를 넘긴 지금 노동의 풍경은 예상과 사뭇 다르다. 일자리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9월 말 현재 사람을 찾지 못한 일자리는 1040만 개에 이른다.
 
일자리는 의구하되 일할 사람이 없는 대반전에 전문가들도 당황한 듯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추정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 이를테면 코로나 공포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자녀의 접종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코로나 기간 일과 삶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으며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거나 자기 사업을 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고 은퇴를 앞당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과연 그럴까. 센서스에 따르면 2019년 중간 가구소득은 6만5712달러다. 미국 같은 고비용 사회에서 경기부양 자금과 실업수당을 아무리 많이, 오래 받아도 은퇴를 앞당긴 이들이 몇 달 만에 2000만 명을 넘는다니 믿기 어렵다. 지금 60대가 역사상 가장 오래 일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코로나 이전의 예상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코로나의 충격은 이해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니즘’에서 돌아와 이제는 자아 앞에 섰다고 믿기 어렵다. 남들 모르게 어딘가에 시대의 겨울을 넘길 만큼 넉넉히 도토리를 쟁여놓은 이들이 이렇게 많다고도 믿기지 않는다. 코로나로 일도 끊기고 왕래가 끊기더니 이제 마스크와 백신과 접종과 접종 증명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 풍진 세상에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깊은 정신세계의 심연에 다다른 이들이 이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지금 퇴직률이 높은 곳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 퇴직한 이들을 모두 조기 은퇴자로 볼 근거가 없다는 반론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의 퇴직 물결을 보면 노동과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그만둬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번에 다른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행동으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코로나는 모든 것을 재촉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퇴직하는 행동이다. 집단적 퇴직이라고 부를만한 행동은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안유회 / 사회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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