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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실종’ 물건을 찾아서

 눈을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는 말은 옛말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사기를 당하고 나니 황당했다. 에어프라이어(Air Fryer)로 혹독한 훈련을 했다.  
 
10년 전쯤 한국 방문 시 동창들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에어프라이어에 대해 들었다. 닭튀김도 기름 한 방울이면 깊은 기름에 튀긴 맛이 난다고 친구는 자랑했다. 그 친구는 동기 중에서도 부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좋다는 걸 알지만 비싸서 못산다고 말하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에어프라이어를 쓰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이 생겼다.
 
둘째 딸은 애용자다. 특히 먹다 남은 음식도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면 다시 바삭바삭해져서 새로 튀긴 맛이 난다며 집안에 있어야 하는 필수 물건이란다. 칠순이 넘고 보니 있는 전자제품도 다 버리거나 기부할 때인데 무슨 새 제품을 사느냐고 나의 욕망을 가라 앉혔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앤배스 상점에서 쿠폰이 왔다. 에어프라이어를 50%세일한다고 한다. 쿠폰을 잘라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서 새 제품 사는 것을 꺼려하는 남편 설득하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설득이 싶지 않아 쿠폰 유효 기간이 지났다. 혹시나 하고 계속 인터넷으로 찾던 중 구글 광고에서 내가 찾던 똑같은 제품을 83.99달러에 판다고 한다. 회사에서 2주 만에 배달이 된다고 하기에 이번엔 놓치지 말자며 바로 페이팔로 계산을 했다.
 
그런데 2주가 지나도 배달이 되지 않았다. 궁금하고 의심이 생겨 페이팔에 연락하니 자기네 회사 웹사이트의 고객센터에 들어가 언제 배달이 될 수 있는지 묻어보라고 한다. 컴맹이나 다름없는 나보고 이런 어려운 일을 해결하란 말인가.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할 처지가 아니다. 첫째는 멀리 살고 두 번째는 너무 바쁘다. 말만 꺼내도 신경질을 낼 테고 잔소리를 할 게 불보듯 뻔하다. 일단은 컴퓨터에 들어가 눈이 빠지도록 원하는 사이트를 찾고 또 찾아 왜 배달이 안 되고 있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올렸다. 그 쪽에서 온 대답은 의외였다. “무슨 소리냐. 우리는 벌써 7월1일 오후4시에 배달했다”는 답과 우체국 위치추적 번호가 따라왔다.
 
다음 날 아침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우체국으로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보는 업무가 아니라고 멀리 떨어져 있는 중앙 우체국으로 가라고 했다. 첫 번부터 헛수고, 자칭 경찰 노릇을 자처하고 이 사건을 수사하려는데 만만치 않을 성싶다. 중앙 우체국에 갔다. 유리창 앞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편지를 보이니 창구직원은 힘이 빠졌는지 말도 안 하고 고개로만 저쪽으로 가란다. 사무실 뒤에 숨어있는 듯 작은 방에서 피곤해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본다.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자기 컴퓨터에 내가 내민 종이 속의 배달 트래킹 번호를 넣는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 보다. 그가 하는 말은 물건이 배달이 되긴 했는데 배달 주소가 우리 집 주소가 아니란다.
 
트래킹 번호와 배달된 시간은 페이팔이 진술한 시간과 똑같다. 배달되었다는 그 집을 찾아갔다. 이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추적’이다. 이 나이에 무슨 생뚱맞게 탐정 놀이람. GPS에 그 집 주소를 넣으니 우체국에서 배달된 집이 5분 거리다. 가서 주인이 없으면 어쩌나, 게이트가 있어 들어가 보지도 못하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으로 마음이 착잡했지만 일단 가까우니 닥쳐 보자 생각하고 찾아갔다. 좋은 동네에 잘 정리된 정원이며 예쁜 모양의 꽃들이 만발한 집 앞에 차는 멈추었다.
 
그 집 초인종을 눌렀더니 비단같이 윤기 나는 머리에 보라색 염색을 한 백인 할머니가 나왔다. 일단 인상이 좋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내 말을 다 듣고 나더니 7월1일에 우편물을 받았고 위치추적번호도 맞다. 그러나 우편물은 에어프라이어가 아닌 자기 약이었단다. 백인 할머니는 친절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던 종이 뒤에 자기 이름과 전화와 사인까지 해주면서 잘 찾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 종이를 들고 우체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조금 전 그 백인 할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아무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들어갔다. 예기치 않은 손님의 두 번째 방문에 놀란 듯했으나 나의 집요함에 포기를 했는지 내 우편물 찾는데 협조를 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사는 지역을 담당하는 우체국 수퍼바이저를 불렀다. 수퍼바이저가 하는 말이 우편 사기에 걸려든 것 같다고 했다. 요즘 그런 사기 사건이 빈번하다고 덧붙인다. 힘들게 경찰 노릇까지 하며 찾아낸 게 사기라니.
 
팔자에 없는 닭고기를 바삭하게 해 먹긴 틀렸다며 포기하고 집에 왔다. 상황 판단이 끝났으니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작 페이팔 웹사이트에 다시 들어가서 상황 설명을 해야 하는데 앞이 깜깜했다. 영어로 장편의 편지를 쓰는 일은 만만치 않다. 마침,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변호사를 하는 조카가 방문했다. 설명을 들은 그녀가 작성한 완벽한 편지를 페이팔에 보냈다. 조카는 파리에서 선교사 겸 변호사를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두 번 미국에 들어오는데 완전히 천사표 미스 다. 나를 위해 때맞춰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세주였다.
 
2주가 지난 어느 날 페이팔에서 이메일이 왔다. 사기였으니 돈 낼 필요가 없다고 환불해 주었다. 아! 이게 미국이지.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은 공정을 알고 지키는 나라이다. 사실, 돈을 잃어버린 것보다 공정이 무너진 듯해서 더 화가 났었는데 이제 편안히 잠잘 수 있을 것 같다. 올바른 사회에 살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니 든든하다. 나 때문에 이리저리 운전하고 위로해 주던 남편한테도 체면이 서는 밤이다. 이래서 세상은 살만 한가 보다. 그러나 다시는 이름 모르는 인터넷에다 주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규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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