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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코로나의 가치 싸움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11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혹은 선택권)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처음엔 마스크 착용 의무화였고 다음엔 백신 접종이었다. 이제는 백신 접종 증명이다. 애벗 주지사의 행정명령은 이런 충돌의 극적인 장면으로 보인다.  
 
현재의 문명은 대체로 개인을 존중한다는 개념 위에 세워졌다. 근세 이후를 지배한 서구 문명의 토대는 개인의 자유였고 이제는 보편적이라고 할 만큼 확산해 일상에서는 관념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전체와 개인의 가치 충돌은 현실이 됐다. 애벗 주지사가 내건 접종 의무화 금지 명령의 근거는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텍사스주에서는 어느 조직도 양심과 종교적 신념, 의료적 이유 등으로 백신을 반대하는 직원과 손님 등 개인에게 접종을 강요할 수 없다.”  
 
텍사스의 사례를 극단적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높은 편인 가주에서도 전체와 개인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일상에서 폭력적으로 충돌한다. 마스크 착용을 놓고도 출입금지와 욕설, 몸싸움, 때로는 총격이 오간다. 여기에는 대화나 타협, 효율이 끼어들 틈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당파적 입장이나 인종적 편견이 끼어들면서 격화되기도 한다. 백신 증명 의무화가 시행되면 마스크 착용 의무화처럼 출입금지를 둘러싼 갈등이 폭력으로 비화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전체와 개인을 놓고 이렇게 큰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는지 몰랐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은 대화와 설득, 타협이라는, 그동안 익숙했던 민주주의 절차를 밟을 시간을 앗아갔고 그만큼 갈등 흡수에 필요한 시간과 공간이 사라졌다.
 
코로나 검사-추적-격리를 아직 계속하고 있는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백신은 코로나에 맞설 유일한 무기였다. 감염 통제에는 실패했고 치료 약은 너무 멀리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체의 이익을 지지하는 이들은 코로나가 빠른 만큼 더 빠르게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질 만하다. 그 유례 없는 접종 속도 만큼 선택의 여지는 사라졌고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은 압박감에 반발했을 것이다. 전체의 이익을 강조하는 이들은 로또 같은 당근으로도 속도를 내지 못하자 결국 의무화라는 채찍을 들었고 이를 개인의 자유를 내려놓으라는 강요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반발도 커졌다. 애벗 주지사의 의무화 금지 정책은 백신 접종 총력전에 대한 반발의 정치적 반영으로 보인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앨러지전염병연구소장은 대면접촉이 많아지는 연말을 앞두고 한 번 더 경고음을 울렸다. “백신 접종 자격이 되는데 맞지 않은 이들이 약 6800만 명이다. 미접종자의 압도적 다수가 백신을 맞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재확산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경제가 멈추고 일자리를 잃는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밀고 나갈 수 있는 6800만 명 만큼의 여유가 있다. 개인의 자유를 뒷받침할 역량과 체력이 된다는 이야기다. 조금 과장을 섞으면 미국이니까 가능하다. 유럽도 처음엔 개인의 자유를 강하게 주장했지만,미국 만큼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만약 코로나를 계기로 전체의 이익은 어느 정도까지 중요하고 개인의 자유는 어느 선까지 존중받아야 하는지를 사후에라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전체 대 개인의 가치 충돌은 금세 멈출 것 같지 않다. 국내의 접종 증명 의무화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고 국가 간 접종 증명서는 아직 논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9일 접종 증명서인 그린패스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막혀 일정을 취소한 것은 복선처럼 보인다.

안유회 / 사회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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