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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복이 죄로 변하는 경우

필자가 근무하는 훈련원 공사를 위해 이웃집들의 서명이 필요했다. 대부분 서명을 해 주었지만, 두 집은 거절했다. 한 집은 마음에 아무런 서운함이 없었는데, 다른 한 집은 유독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유가 뭘까. 서운했던 집에는 아이들이 있어 오가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는 와인이나 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했었다.    예비성직자 시절 아끼던 후배교무가 훈련원에 방문했다. 교도님들에게 설교를 하기 전에 필자와의 인연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너무 ‘간단히’ 했다. 역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예비성직자 시절에는 나름 열심히 생활했다고 생각했기에, 교도님들 앞에서 필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칭찬을 기대했던 탓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복을 지으면 복을 받는 이치는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복이 죄로 변하는 이치도 아는가” “복이 죄로 변할 수도 있습니까?” 제자는 반문했다. “지어 놓은 그 복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지은 그 마음이 죄를 짓는 마음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어 놓고 그 관념과 상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은혜 입은 사람이 혹 그 은혜를 몰라주거나 배은망덕(背恩忘德)을 할 때에는 그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몇 배나 더 하게 되기 때문에, 지극히 사랑하는 데에서 도리어 지극한 미움을 일어내고, 작은 은혜로 도리어 큰 원수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복 짓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이 죄로 변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평소에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했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니!’하며 가까운 사이가 원수로 변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똑같이 거절을 했지만, 가까웠던 이웃에게 원망심을 내고 후배 교무에게 서운함을 느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과거에 베풀었던 약간의 선행 때문이었던 것이다.    복을 지었다는 생각(관념과 상)을 놓으라는 말은 그 사실을 기억에서 없애라는 말이 아니고 기억은 하되 그 사실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관념과 상을 놓기 위해서는 첫째, 복을 지었다는 사실 자체를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말자. 아니,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괜찮다. 인과의 이치에 따라 지은 복은 언젠가는 받게 된다. 현실에서도 약간의 복을 짓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흔히 보지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베푼 것에 무심한 사람이 훨씬 근사해 보인다.    둘째,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푼다. 그 은혜는 베푼 것일 수도 있고, 과거에 받은 은혜를 갚은 것일 수도 있다. 최초 값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모두가 은혜이니 감사하고 보은하자’는 것이 필자가 속한 종단의 핵심 가르침이다. 내가 베푼 약간의 복을 내가 받은 무한한 은혜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은했다 생각하면 될 일이다.     복을 짓고 은혜를 베푸는 일은 귀하고 성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 생각에 집착해서 선한 동기와 실행을 오히려 죄업으로 변하게 한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듯싶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훈련원 공사 예비성직자 시절 후배 교무

2024-10-21

[필향만리] 聞一以知十 (문일이지십)

 공자가 자공에게 “너와 안회 중 누가 더 낫느냐?”고 물었다. 자공은 “제가 어찌 안회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데 저는 하나를 들으면 겨우 둘을 알 정도입니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각각 작은 재주와 큰 재주를 일컫는 ‘문일지이(聞一知二)’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자공의 답을 들은 공자는 “암 그렇지. 나도 네가 안회만 못함을 인정한다”고 했다. 언뜻 듣기에 자공을 완전히 무시한 말로 들리지만 실은 큰 애정으로 격려한 말이다. 안회보다 14살 어린 자공도 공자로부터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다가올 것까지 아는구나(告往知來, 학이편)”라는 칭찬을 들은 제자이다. 이런 자공이 스스로 안회만 못하다며 매우 겸손한 답을 하자, 공자는 대견하게 여기며 “그래, 내 눈에도 네가 아직 안회만 못한 것 같구나”라고 하면서 선배 모범생을 들어 후배 제자를 면려(勉勵)한 것이다.   공자가 만약 오늘날 한국의 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자공의 부모로부터 ‘학생인격모독’이라며 고소당했을 것이다. 속 깊은 격려는 아예 헤아리지도 못한 채, 입에 붙은 칭찬만 원하는 학부모가 고작 하는 일이라곤 그런 고소뿐이다. 빈 칭찬에 헛춤을 추는 코끼리가 가엽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문일 자공의 부모 후배 제자 하자 공자

2023-11-29

[리얼 시니어 스토리] 후배 기업가 돕기 위해 오늘도 치열한 AI공부

"항상 마음에 뒀던 AI공부 시작했는데 잘 익혀서 마음 맞는 후배에게 도움 주고 싶습니다."   UCLA석좌교수 출신 한홍택(1942년생) 박사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에 주식시장과 함께 시작된다. 투자한 주식과 시장의 변동을 주시하며 부인 백훈(1942년생) 여사와 1시간 정도 집 주위를 산책한다. 사는 곳이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로로는 제법 경관이 좋다. 오후 1시  주식시장이 끝나면 관리하는 웹사이트를 정리하고, AI를 인터넷으로 공부한다. 마당 손질 등 잡일을 하며 오후를 보낸다. 또 한 달에 4번 줌으로 진행하는 세미나 포럼, 과학기술 포럼, 기업 라운드테이블, 경험을 공유하며 배우는 해피아워(Happy Hour) 등에 참석할 준비를 한다.   한 박사는 "UCLA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도 계속 공부했는데 지금도 공부한다"면서 "예전과 달리 인터넷이 발달돼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60학번) 졸업 후 ROTC 장교로 병역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57년 전의 일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21년 후인 1992년 남가주로 오는 동안 직장을 6번이나 옮겼다. 한 박사의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이동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이후에도 2번이나 집을 떠나 임시였긴 하지만 타향살이를 했다. 소위 미국에서 말하는 7년의 근지러움(Seven Year Itch)이 민망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의 변명은 가능하면 여러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또 경력과 가족에게 더 맞는 직장과 도시에서 살려고 했던 것이다.   남가주로 이사 온 후에는 UCLA 기계항공과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2009년 그동안의 미국 경험을 살려 공헌할 기회가 생겨, 갑자기 한국에 나갔다가 4년 후에 돌아와 2013년 전문직에서 완전히 은퇴하게 됐다. 이 때문에 UCLA에서는 별 준비할 새 없이 조기 은퇴한 셈이다.   "은퇴를 하니 가장 좋은 것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남의 간섭 없이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국립연구소와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에 몰두하다가 은퇴하니 그동안 꽁꽁 묻혀 두었던 사업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직접 발휘하기에는 다소 늦었고, 그 대신 간접적으로 마음에 맞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그 회사의 경영을 엿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좋겠다고 생각해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아울러 항상 흥미는 있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했던 AI도 인터넷으로 배우기로 결정했고, 비영리 단체를 위해서 웹사이트와 줌을 이용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주식 투자는 앞으로 10년 후의 목표액을 세워 놓고, 얼마 전 시작한 모교와 동창회의 장학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며 "앞으로도 힘이 있는 한, 집에서 할 수 있다면,  좀 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AI 공부도 마음에 맞는 후배 기업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고, 웹관리는 계속할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건강해야 하니 산책을 규칙적으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세자녀(혜련, 혜진, 진이)들에게는 자기대로의 꿈을 마음껏 펼치며 남을 배려하고 남과 나누는 삶을 살기 바란다고 전한다. 세상에 대해서는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연속인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독재하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속히 인류 모두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마웠던 사람 일, 순간에 대한 질문에는 고마운 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다섯분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줘서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유학을 오게 해 준 이해 박사, 학위를 받도록 도와주신 버논 뉴버트(Vernon Neubert), 월터 존제미스(Walter Jaunzemis) 지도교수, 전문 분야에서 꿈을 펼치게 해 준 스티븐 차이(Stephen Tsai) 박사, 호암상을 추천해 준 한창대 교수를 꼽았다.     한 박사는 "평범하게 산 인생이라 별로 후회되는 일은 없다"며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되었을 때에도 그 때문에 배운 것이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지 자녀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쉽고, 관행을 너무 모르고 한국을 나갔던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홍택 박사의 약력=경기도 광주 출생, 서울대 기계공학과(1964), 펜스테이트 석박사(1971, 공업역학), 미공군항공재료연구소(1972~1978), 워싱턴대 교수(1979~1986), 펜스테이트 석좌교수(1986~1992), UCLA석좌교수(1992~2009), 삼성호암상 공학부문 수상(1999).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기업가 ai공부 후배 기업가 ucla석좌교수 출신 박사 호암상

2023-09-24

[김형석의 100년 산책] 연세대의 전설, 세 석두 교수 이야기

내가 70년 전에 연세대에 부임했을 때, 옛날 스승을 연상케 하는 세 석두(石頭) 교수 얘기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자타가 인정하는 철학과 정석해 교수였다. 다음 타자인 국어학자 김윤경 교수까지는 변함이 없었는데 세 번째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공대학장이었던 수학과 교수와 같은 대학에서 영어학을 가르친 심인곤 교수였다. 나는 심 교수가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는 편이다.   심 교수는 나와 가까이 살았고 같은 교회에서 봉사했기 때문에 유자격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걸음을 걸어도 앞 정면만 본다. 옆에서 누가 인사를 해도 눈동자만 돌려 볼 뿐 얼굴은 돌리지 않았다. 심 교수가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다. 그의 채플 시간 설교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표정과 모습은 돌비석처럼 빈틈이 없었다. 요즘 같으면 AI 강연 같았을 것이다.   대학 측에서 심 교수를 미국에 교환교수로 추천한 적이 있었다. 그를 만나 본 미국대사관 헨더슨 문정관이 “17세기 신사를 본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한번은 사모님께서 간곡하게 부탁한 적이 있다. 사연은 이렇다. 저축 관련 얘기였다. 내가 “선생님 요사이는 인플레가 극심해서 적금하는 사람이 없는데 아직도 봉급 일부를 은행에 저금하십니까”라고 했더니 심 교수가 “내가 학생들 보고 그렇게 해야 국가발전에 희망이 있다고 가르치고 딴짓을 하면 되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퇴임 후에 낙향했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심 교수를 ‘도사(道士)’로 대우했다.   김윤경 선생은 누구나 그의 성품을 잘 안다. 평생 한마디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분이다. 화를 내거나 누구를 비판이나 욕도 하지 않았다. 아호 그대로 ‘한결’같이 사셨다. 다 알려진 얘기가 있다. 한 운동선수가 김 교수의 교양국어 과락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되었다. 그 학생이 술에 취해 화풀이하러 김 교수 집을 찾아가 이름을 부르며 고함을 질렀다. 사모님이 당황해 선생에게 피신하라고 권했다. 대문을 열고 나선 김 교수가 “자네 ○○군 아닌가. 왜 그렇게 시험 답을 잘못 썼나. 내가 한 점만 더 주면 되기 때문에 여러 차례 찾아보았으나 안 되었어…”라면서 아쉬움과 나무람 섞인 걱정을 했다. 49점으로 과락한 것이다.   그 인자한 모습을 본 제자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갔다. 나는 그분의 충고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세배를 드리고 “새해부터는 대외적인 강연이나 방송은 줄이고 학교 강의와 연구에 노력을 더 많이 하겠다”라고 했더니, 대문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면서 “김 선생 내 간절한 부탁인데 학교 강의도 중요하지만 잠자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대외활동을 계속하세요. 내가 경험해 보니까 오래되지 않아 후배 교수들이 김 선생을 대신해 줄 겁니다. 아직은 우리가 후진 사회니까 필요해서 부탁해 오는 일은 계속하세요. 학생들도 중요하지만, 사회봉사는 필요한 시기와 인재가 있어야 합니다”라며 자기 일처럼 부탁했다.   잘못을 저지른 후배 교수나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한 교수는 정석해 선생이다. 그런데 오래 사귀어 보면 그와 상반되는 성격이다. 책망하면서도 후배와 제자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4·19가 지나고 4월 25일에 있었던 일이다. 정 교수가 주동이 되어 몇 대학의 원로 교수가 목숨 걸고 젊은 학생 200여 명의 희생에 보답하자는 교수 데모를 계획했다. 후배 교수들에게는 대학에서 대기하라고 연락하고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 교수회관에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이 모이기로 했다. 그날 아침 정 교수는 가족들과 마지막 가정예배를 드리고 “혹시 내가 저녁때 집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각오하라”는 부탁을 하고 집을 나섰다. 정 교수는 “우리 늙은이가 먼저 희생되었어야 젊은 학생들이 살 수 있었는데…”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때 성사된 교수 데모가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자유당 정권의 종식’을 역사에 남겼다. 그런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몇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연세대가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었다.   대학에서 다섯 교수가 예고 없이 해임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의 부당성을 지적, 항의한 주동자도 그 세 교수였다. 다섯 교수 해임을 철회하거나 교권의 보장을 확립하는 학원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었다. 나는 늦게 세 교수와 대학 정책 시정을 요구하는 학원 내 농성에 동참했다. 그 당시 사태가 언론을 통해 대학가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데모 교수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총장서리였던 원일한 선생 집까지 찾아가 항의했다. 그 학생들은 서대문 경찰서로 연행구금 되었다. 농성교수단은 항의 농성을 끝내고 대학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부부싸움에 애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도 농성 교수의 한 사람으로 시련과 아픔을 모면할 수 없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서대문 형무소에 구금되었던 학생들이 모두 석방되었다. 우리 교수들은 형무소 앞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세 교수만큼 사욕과 사심 없이 대학을 사랑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분들의 일제강점기를 통한 애국심은 역사에 남아있고 학생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교육자의 자세는 모범이 되었다. 나는 그분들의 신앙심도 높이 평가한다. 정석해 교수는 공산 치하에서도 신상 조사서 종교란에 ‘장로교 평신도’라고 명기했다. 대학에서 쫓겨나더라도 신앙인임을 자부하였다.   지금은 세 분 다 떠났다. 두 분 교수는 동상과 기념상을 학교에 남겼다. 정 교수는 우의동 4·19 묘역에 지팡이를 짚고 여러 차례 찾아가곤 하다가 아드님들이 사는 미국으로 가셨다. 내가 미국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렸을 때도 “한국에서 잠들고 싶다”라고 하셨다. 나라를 위해 제자들을 사랑하고 키웠던 스승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이야기 연세대 후배 교수들 교수 얘기 서울대 교수회관

2023-09-15

정지용 해외문학상 공모…재미시협 주관 올해 2회째

재미시인협회(이하 재미시협·회장 고광이)가 제2회 정지용 해외문학상을 공모한다.     재미시협이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충청북도 옥천문화원과 계간 ‘동행문학’이 함께 주관하는 정지용 해외문학상은 정지용 시인의 작품세계를 널리 알리고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정지용 시인은 현대 시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도 한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되는 한국 현대 시의 선구자다.   정 시인의 고향인 옥천군은 지용제를 매년 개최하고 문학상을 시상하고 창작대회를 열어 후배 시인을 양성하고 있다.   재미시협의 고광이 회장은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에 재미시협이 한 축을 담당하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조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살려 문학 활동을 하는 미주 시인들의 사기 진작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부터 옥천군의 지용제에서 직접 지용 해외문학상을 수여하는 일정에 맞춰 응모 기간을 앞당겼다”고 덧붙였다.   응모 자격은 등단 경력 7년 이상 미국 거주 시인으로 응모 기간은 오늘(1일)부터 7월 10일까지며 응모작 수는 7~10편이다.   당선작은 8월 3일에 발표되며 시상식은 한국 옥천군의 제36회 지용제에서 9월 9일에 열릴 예정이다. 당선자에게 상금 3000달러와 상패를 수여하며 당선작은 계간 ‘동행문학’ 겨울호에 게재된다.   응모 방법은 응모시와 응모양식(cafe.daum.net/usapoetry)을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보내거나 재미시인협회(KPAA 22807 Madison St. Torrance, CA 90505)로 우편접수할 수 있다.   ▶문의:(310)612-9580 이은영 기자 [email protected]해외문학상 정지용 정지용 해외문학상 정지용 시인 후배 시인

2023-05-30

"'한인 최고위직' 책임감 막중 후배 정치인에 모범 보일 것"

한인사회 역사상 최고위직에 선출된 실비아 장 루크(54·장은정·사진) 하와이 부지사 당선인이 오는 5일 공식 취임 후 업무를 시작한다.   주 하원의원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장 당선인은 의사 출신인 조시 그린 주지사 당선인(전 부지사)과 함께 하와이 주 정부를 이끌게 된다.   장 당선인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인 최고위직’이라는 무거운 책임감과 깊은 감사로 일을 시작한다”며 “나의 직무 수행이 수많은 한인과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기간 동안 주민들의 ‘주거문제 해결’과 팬데믹 이후 ‘하와이 관광 부흥’을 가장 큰 아젠다로 제시한 장 부지사는 취임과 함께 문제 해결 전담팀을 꾸려 실행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관광지이면서도 15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특히 저소득층의 주택 공급 부족은 경제발전의 지속적인 걸림돌이 됐습니다. 주택 가격이 팬데믹 동안 평균 90만 달러로 올라 전국에서도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힘겨워졌습니다. 주민들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도록 주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새 정부는 주 내 최소 1만여 개의 신규 주택을 건설할 계획이다.     장 부지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9살 때 하와이에 이민와 하와이대학을 거쳐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3년 동안 변호사 활동을 했다.   1999년 하와이 주 하원(26, 25지구)에 당선된 후 줄곧 의원직을 수행해왔다. 남편 마이클 루크와 슬하에 아들이 있다. 최인성 기자최고위직 책임감 한인 최고위직 한인과 후배들 후배 정치인

2022-12-01

한인 여성 첫 스카우트 이글 진급…트룹 278대 클레어 강 양

한인 최초의 여자 트룹을 창설한 25년 역사의 보이스카우트 트룹 278대(남자부대 대장 한학수, 여자부대 대장 최진)의 클레어 강(트로이 고등학교 11학년)양이 지난 3일 엘카미노 리얼 디스트릭 뿐만 아니라 한인 여성 최초로 이글 스카우트로 진급했다.     강 양은 지난 3년 반 동안 남자 스카우트들과 동일하게 어드밴스 캠퍼 익스피어런스(ACE) 프로그램과 10마일 및 20마일 산악 행군, 50마일 사이클 링, 1만 피트 이상 고산 등반, 비박, 각종 해양 활동, 지역 봉사 활동 등 다양한 야외 활동 수행과 각종 메리트 배지를 획득했다.     또 치노힐 시내에 정원을 조성하는 이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트룹 시니어 패트롤 리더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이글의 영광을 맞았다.     강 양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인터뷰 동안 뛰어난 리더십과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며 디스트릭 내 최초 여성 이글로서 후배 여성 스카우트들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될 것이라는 총평을 들었다.     9명의 대장단과 1명의 야외 전문가들 지도 아래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278부대는 매년 5~6명의 이글 스카우트들을 배출해 오고 있으며,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장들의 원격 지도 아래 개별 활동 및 카운슬 지침에 따른 소규모 야외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문의: 여자부대(714-589-5395), 남자부대(651-210-1034)북한 스카우트 한인 여성 후배 여성 최초 여성

2022-06-08

‘진짜 사나이 모임’ 개최…30일, 6·25참전용사 송년행사

한미 6·25 및 월남 참전 유공자를 위한 연말 행사인 ‘진짜 사나이 모임’이 오는 30일 오전11시30분 용수산에서 열린다.   남가주 육군동지회를 비롯해 6·25기념사업회(회장 박홍기), 6·25참전유공자회(회장 김복윤), 월남전 참전유공자회 등의 재향군인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송년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성대하게 치르려고 준비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무산됐던 6·25 참전 70주년 행사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참전용사들이 모임을 가지려고 했다는 소식을 들은 영관장교회 등 후배 참전용사들이 힘을 모아 기억에 남을 송년행사로 마련한 것이다.   최만규 육군동지회장은 “LA만의 행사나 참전용사들만의 행사가 아닌 남가주 한미 참전용사들의 행사가 된다”면서 “특히 한국전 참전 40사단에서는 참모와 현역 군인들도 참석해 참전용사들을 위로하게 된다”고 밝혔다.특히 지난해 타계한 6·25 미군56지구참전 용사회장의 가족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진짜 사나이’인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로 진행될 이번 송년행사 참가비는 없지만 군단체회원은 유니폼을, 일반 단체회원들은 간편복을 입고 오기를 요청하고 있다. ▶문의:(310)938-8785, [email protected] 장병희 기자참전용사 송년행사 25참전용사 송년행사 후배 참전용사들 이번 송년행사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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