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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화병은 크루즈로

앤 라봇(Anne Lamott)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대학 중퇴 후, 술과 마약에 젖어 살다가 미혼으로 임신까지 하게 된 그녀는, 매주 일요일 길거리 마켓에 술을 사러 나갔다. 그때마다 길가 흑인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소리를 교회 문에 기대서서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들여놓는 순간, 따뜻한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느껴지며 한없는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 후 그녀에게 늘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집 문 앞까지 따라온 그 존재가 예수님임을 깨닫는 순간, 내 삶에 들어오라고, 역시 “F” 욕이 섞인 채로, “유 ‘F’ 캔 컴인” 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난 이런 그녀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고 비기독교적 언어로 쓰인 에세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지금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저자이고 유명 작가지만, 미혼모로 아들을 키우며 경제적,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 때 종종 사용했던 그녀만의 셀프 케어에 대해 읽었다. 산다는 게 무섭고 아무런 힘이 없어질 때, 그녀는 자신을 위한 혼자만의 ‘크루즈’를 가졌다. 향 좋은 촛불을 켜고 애견을 옆에 둔 채, 낡은 소파에 누워 좋아하는 M&M 초콜릿 한 그릇 놓고 잡지를 읽는 거, 이것이 그녀만의 크루즈였다. 참으로 소박한 이 크루즈가 그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해주는 산소마스크였다.     살다 보면 자신을 친절히 돌보는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필요를 채워줘야 할 많은 사람과 많은 일이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그 일들은 모두 크고 임박하고 중요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들 먼저 생각해 괜찮은 척 연기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다 보면, 누구나 감정적, 육체적 탈진을 경험하게 되고, 지난 칼럼에 말한 화병까지 경험하게 된다.     화병에 대한 칼럼을 쓴 후, 어떻게 해야 화병이 안 생기는 지, 생겼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계셨다. 심한 우울감이나 신체적 증상까지 왔다면, 항우울제 같은 약과 상담이 도움된다. 이 경우 상담에서는,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 외에도, 자신만의 코핑 스킬(coping skills), 즉 스트레스 대처 기술을 가지게 도와준다.     내게는 상담할 때 쓰는 행복 리스트가 있다. 기분 좋게 해주는 일들(Pleasant Activities) 리스트다. 백 가지 정도 되는데 전혀 특별한 일들이 아니다. ‘좋아하는 음악 듣기, 일찍 자기, 맛있는 음식 먹기, 아름다운 풍경 감상하기, 퍼즐 맞추기, 그림 그리기, 바닷가 가기, 걷기, 멋진 옷 입기, 악기 배우기, 게임하기, 라인 댄싱, 요리하기, 집 정리하기, 머리 스타일 바꾸기, 친구 만나기, 영화 보기, 책 읽기, 전화하기, 과자 굽기, 목욕하기, 강아지랑 놀기…’ 등등이다.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는 자신만의 리스트를 꼭 가지고 있을 일이다.   앤 라못은 말한다. “전적 셀프 케어는 기쁨과 버팀, 자유의 비결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듯, 낮잠, 건강한 음식, 깨끗한 침대보, 향기로운 커피 한 잔으로 우리 자신을 돌볼 때, 우리는 보다 풍성하게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겠고, 모든 것을 놔버리고  싶다면, 화병이 의심된다면, ‘나만의 크루즈’다! 다시 열린 찜질방으로, 책 하나 들고 나도 오늘 나만의 크루즈를 떠난다! 김선주 / NJ 케어 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크루즈 화병 비기독교적 언어 셀프 케어 약과 상담

2022-06-08

[살며 생각하며] 십 리도 못 가서 화병 난다

5월은 한국인에게는 가정의 달이지만, 미국에서는 6월이 가정의 달이고, 5월은 정신건강의 달이다. 지지난 주말, 버지니아의 한 교회에 가서 청소년들과 부모님들을 만나 정신건강, 특히 크리스천 가정과 교회에서의 정신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고 왔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모든 가족 구성원의 정신적 건강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울하고 불안하면서, 소화가 안 되고 식욕 저하와 불면증, 근육통, 무력감을 느낀다면, ‘화병’인 경우가 많다. DSM이라는 정신건강 진단 매뉴얼에 문화적 질병으로 정식 기재되었던 화병(Hwa-byung)은, 2013년 개정판 DSM 5에서는 사라졌다. 화병이 한국 문화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나 발생 가능한, 우울증이나 신체화 증상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참으면 안 되는 감정 중 하나가 ‘화’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많이 참게 되는 감정 또한 ‘화’이다. 관계가 끊어질까 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봐, 내 자존심이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이유는 끝도 없다. 하지만 화는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정말 십 리도 못 가 발병이 아니라 화병이 난다. 성장 과정에서표현 못 한 분노로 힘들어지는 것은 중장년, 노년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깊이 들어가 보면 억눌린 분노인 경우가 많다.     상황과 문제를 직면하려면 반드시 감수하게 되는, 고통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억압(repression)인 것이 분명하다. 무의식에 꾹꾹 눌려 저장된 감정들은, 세월이 지나며 희석될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뿐 아니라, 감정 보존의 법칙도 있다고 난 굳게 믿는다. 이 보존된 불변의 감정들이 의식, 무의식 세계를 넘나들며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의지적으로 기억을 잊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억제와 달리, 억압은 무의식이 한 것이라 자신이 무엇을 눌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사실 기억 안 나는 게 너무 많다. 그것도 생각 안 나? 그 머리로 공부는 어찌 했누? 이런 말을 들으며, 나 기억상실임? 하고 웃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들이 의식세계로 떠오르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으며, 무의식과 조금씩 친해져 가면서 깨닫게 된 일이다.     요즘 유독 육십 대, 심지어 칠팔십 대 ‘언니’들의 상담이 늘어난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되지 하고, 괜찮은 척 연기하며, 심지어 배우자에게 가스라이팅까지 당하며, 평생 ‘억압’을 방어기제로 살아온 이분들, 그들의 ‘삭아 비틀어진’ 힘든 감정들이 이 나이에 그들을 힘들게 한다. 그 스트레스가 세로토닌 같은 행복감 담당 신경전달 물질 분비를 저하하면서, 어떤 의학적 테스트로도 진단되지 않는 신체 증상들을유발한다.     우리 정신세계의 대부분인, 95%라는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무의식, 거기에 나도 몰래 눌러놓고 살아온 감정들이, 오 리쯤 갔을 때, 아니면 거의 십 리를 가고 있을 때 나를 힘들게 한다면, 이제라도 감정을 표현해볼 일이다. 그 누구보다 나를 돌볼 일이다. 화병 나신 우리 ‘언니’들, 그대들을 응원합니다! 길벗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홧팅!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화병 정신건강 진단 화병 나신 감정 보존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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