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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십 리도 못 가서 화병 난다

5월은 한국인에게는 가정의 달이지만, 미국에서는 6월이 가정의 달이고, 5월은 정신건강의 달이다. 지지난 주말, 버지니아의 한 교회에 가서 청소년들과 부모님들을 만나 정신건강, 특히 크리스천 가정과 교회에서의 정신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고 왔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모든 가족 구성원의 정신적 건강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울하고 불안하면서, 소화가 안 되고 식욕 저하와 불면증, 근육통, 무력감을 느낀다면, ‘화병’인 경우가 많다. DSM이라는 정신건강 진단 매뉴얼에 문화적 질병으로 정식 기재되었던 화병(Hwa-byung)은, 2013년 개정판 DSM 5에서는 사라졌다. 화병이 한국 문화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나 발생 가능한, 우울증이나 신체화 증상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참으면 안 되는 감정 중 하나가 ‘화’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많이 참게 되는 감정 또한 ‘화’이다. 관계가 끊어질까 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봐, 내 자존심이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이유는 끝도 없다. 하지만 화는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정말 십 리도 못 가 발병이 아니라 화병이 난다. 성장 과정에서표현 못 한 분노로 힘들어지는 것은 중장년, 노년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깊이 들어가 보면 억눌린 분노인 경우가 많다.  
 
상황과 문제를 직면하려면 반드시 감수하게 되는, 고통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억압(repression)인 것이 분명하다. 무의식에 꾹꾹 눌려 저장된 감정들은, 세월이 지나며 희석될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뿐 아니라, 감정 보존의 법칙도 있다고 난 굳게 믿는다. 이 보존된 불변의 감정들이 의식, 무의식 세계를 넘나들며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의지적으로 기억을 잊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억제와 달리, 억압은 무의식이 한 것이라 자신이 무엇을 눌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사실 기억 안 나는 게 너무 많다. 그것도 생각 안 나? 그 머리로 공부는 어찌 했누? 이런 말을 들으며, 나 기억상실임? 하고 웃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들이 의식세계로 떠오르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으며, 무의식과 조금씩 친해져 가면서 깨닫게 된 일이다.  
 
요즘 유독 육십 대, 심지어 칠팔십 대 ‘언니’들의 상담이 늘어난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되지 하고, 괜찮은 척 연기하며, 심지어 배우자에게 가스라이팅까지 당하며, 평생 ‘억압’을 방어기제로 살아온 이분들, 그들의 ‘삭아 비틀어진’ 힘든 감정들이 이 나이에 그들을 힘들게 한다. 그 스트레스가 세로토닌 같은 행복감 담당 신경전달 물질 분비를 저하하면서, 어떤 의학적 테스트로도 진단되지 않는 신체 증상들을유발한다.  
 
우리 정신세계의 대부분인, 95%라는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무의식, 거기에 나도 몰래 눌러놓고 살아온 감정들이, 오 리쯤 갔을 때, 아니면 거의 십 리를 가고 있을 때 나를 힘들게 한다면, 이제라도 감정을 표현해볼 일이다. 그 누구보다 나를 돌볼 일이다. 화병 나신 우리 ‘언니’들, 그대들을 응원합니다! 길벗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홧팅!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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