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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어머님의 해리 현상

늦은 오후, 약국에 갔다. 약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 직원 분이, 어머님, 이거 드세요, 하며 쌍화탕을 하나 내미신다. 일단, 나 쌍화탕 못 먹는다. 한약 맛 나는 건 아무리 몸에 좋대도 홍삼, 쌍화탕, 활명수도 못 먹는 초딩 입맛이다. 내가 사양을 하자, 어머님, 따뜻해요, 드세요, 하며 강권을 한다. 속으로, 아니, 진짜 못 먹는다구요, 하며 거듭 사양하던 중, 앗, 이 약국 또 나보고 어머님이라? 그것도, 나와 열 살 차이도 안 나 보이는 이 분의 입에서? 아, 급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집에 돌아오신 이 어머님, 거울을 곰곰히 들여다 본다. 그래, 좀 많이 피곤해보이기는 하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던 늦은 오후였으니. 그렇다고 내가 어머님? 옷을 너무 편히 입었나? 머리스타일이 좀? 다크써클이 무리하게 내려오셨나? 하긴, 언제부턴가 거울 속의 나를 보기가 점점 고통스러워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분명 나일텐데 나라고 믿고싶지 않은,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울 엄마 비스므리한 이 여사님은 누구?     어느 멋진 대학생이, 가끔 거울 속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 같고 자신의 환경이 낯선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며 찾아온 적이 있다. 정신의학에서 해리 장애(Dissociative Disorder)가 있다. 의식, 기억, 정체감, 행동들이 정상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붕괴되어 단절되는 질환이다. 충격적 트라우마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에서 주로 발생하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해리성 기억상실(dissociative amnesia), 주체장애(depersonalization disorder), 그리고 다중인격 장애라고 불리던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로 분류되는데, 그 학생은 아마 약간의 주체 장애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살면서 갑자기 또는 점차적으로 겪는 힘든 일들은 우리에게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힘들더라도 이 감정들을 직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숙제같은 우리 삶이다. 그런데 감정 직면이라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서, 우리 무의식은 방어기제를 사용 감정들을 일단 눌러놓는다. 그러다가 때로, 무의식에 심하게 억압된 감정과 경험이 의식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서, 드물지만 해리라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나이 들어감은 힘들다. 외모의 변화도 그렇다. 짜증 지대로 난다. 어머님이라는 좋은 호칭에도 이리 예민하게 되니 말이다. 그래도, 아무나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다. 결혼 안한 사람도 요즘 많고, 결혼해도 자녀가 없는 사람도 많다. 다 어머님, 아버님은 아닌 것이다. 하긴 얼마 전, 어머님, 어머님하는 약국 직원 말에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나의 미혼 친구를 보며, 나의 과민함을 살짝 반성하기는 했다.     한국 갔을 때 필라테스를 했는데, 어린 강사님은 나를 “선주님”이라고 불렀다. 첨엔 좀 어색했다. 하지만, 어머님보다는 백 배 나은 호칭이었다. 누구누구 씨/님 이렇게 부르던지, 이름을 모르면, 손님, 환자분, 고객님이라고 하면 되는데, 누구 어머님도 아니고 그냥 어머님이라고 하면, 이 어머님, 또 거울 속 얼굴을 한없이 째려보게 만든다.     육십 대에 들어선 난, 솔직히 참 행복하다. 하고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유가 좋다. 살면서 얻게 된 삶의 지혜 또한 세상 어느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에휴, 까짓거, 어머님이라고 불러도 쿨하게 웃어주어야겠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어머님 해리 어머님 거울 어머님 아버님 누구 어머님도

2023-07-05

[역지사지(歷知思志)] 해리 왕자의 ‘스페어’

영국에서 요즘 가장 화제인 책은 해리 왕자가 쓴 『스페어(Spare)』다. 출간 첫날인 1월 10일(현지시간) 40만 부가 팔렸다. 이는 비소설 부문 역대 1위 기록이라고 한다. 이 책의 인기 비결은 상당한 수준의 폭로 덕분이다. 자신의 성생활이나 마약 경험뿐 아니라 아버지인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의 재혼이나 형 윌리엄 왕세자와의 물리적 충돌 등을 상세하게 담았다. 가족에 대한 공격적 내용이 적잖다. 이런 의도는 제목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스페어’는 ‘대체재’ ‘예비’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해리는 자신의 존재가 형 윌리엄의 비상시를 대비한 대체품 같은 대우를 받고 자랐다고 토로했다.   장자 상속제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왕족이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맏이 외에는 스스로 기회를 창출해야 했다. 사제가 되어 종교계 지도자가 되거나 신대륙 개척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근대 이전엔 스페어들에게도 기회가 적잖았다. 예를 들어 조선 27명의 왕 중에서 정상적으로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발달 등으로 변수가 적어져 장자 외에 왕위가 돌아가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또한 과거처럼 종교계나 신대륙을 도모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해리 왕자는 왕실 이야기를 팔아서 부를 창출하는 스페어의 현대적 모델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성운 / 한국 문화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스페어 해리 해리 왕자 장자가 왕위 종교계 지도자

2023-02-01

[그 영화 이 장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인상적인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꼽는다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엔딩 장면이 아닐까 싶다.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작인 이 영화는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우연히 동행하게 된 해리(빌리 크리스털)와 샐리(멕 라이언)가 12년 동안 쌓아가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이야기다.     영화에 대한 해석부터 음식 주문 방식과 남녀 관계에 대한 생각까지,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은 각자 연애와 결혼을 하며 서로에게 ‘남사친’과 ‘여사친’으로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다.   해리는 샐리에게, 샐리는 해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대답은 어느 송년 파티에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은 즐거워하지만 샐리는 파티가 왠지 마뜩잖다.     한편 집에서 외롭게 새해 전야를 보내는 해리는 문득 샐리가 생각난다. 거리로 나와 뛰기 시작하는 해리. 마침 파티에서 빠져나오는 샐리와 만난다. “많이 생각해봤는데 당신을 사랑해.” 연말이라 외롭다고 해서 이런 방식은 곤란하다는 샐리에게 해리는 다시 말한다. “당신이 누군가와 남은 인생을 같이 보낼 거라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아 여기 온 거야.” “당신은 정말, 미워할 수 없게 말을 해.”   카운트다운 끝에 드디어 찾아온 새해, 두 사람은 축하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흐르는 ‘올드 랭 사인’. 이보다 더 완벽한 송구영신 장면이 있을까.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연말이 되시길.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해피 뉴 이어!’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해리 샐리 송년 파티 송구영신 장면 엔딩 장면

2022-12-30

[시론] '인종차별’이라는 이름의 독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스탠퍼드대학을 거쳐 산호세에 이르는 지역은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비롯한 수많은 컴퓨터 회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첨단기술 지역이다. 주민 중 외국인, 외국학생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 외국계 주민들의 대부분이 아시안이며 아시안 중에서 가장 눈에 띄게 많은 사람들이 인도계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한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포함해 많은 회사의 CEO가 인도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도계는 첨단 컴퓨터 기술에서만 큰 성공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를 포함해 북가주 전체의 많은 의사들이 인도계다. 미국 내 의사의 인종분포를 찾아보니 백인 의사가 56%, 아시안이 17%이다. 인도계만의 비율을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주목할 현상이 있다. 현재 미국 내 병원에서 근무하는 레지던트 중 20%가 인도계라는 통계다. 수년 안에 미국 내 의사 5명 중 1명이 인도 출신 의사일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환자들은 백인 의사를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갑자기 인도 출신 의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수년 전부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던 의사 중 몇 명이 인도계이기 때문이다.     마침 최근에 읽었던 단편소설 중 인도계 의사 한 명이 모국인 인도에서 겪었던 심한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다. 소설의 제목은 ‘독(Poison)’이고, 저자는 영국 소설가 로얼드 다알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친구 사이인 해리와 팀버라는 두 명의 영국인들과 이웃에 사는 인도 의사 갠더베이 등 3명이다.     20세기 초 배경은 인도 한 타운에 있는 방갈로다. 어느 날 팀버가  밤늦게 귀가 하니, 친구 해리의 방에 불이 켜져 있고 문을 노크해 보니 해리가 작은 소리로 팀버를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지금 자기 배 위에 독사(크레틴)가 올라와서 잠을 자고 있어 두 시간 동안 꼼짝 못한 채 누워있었다고 속삭였다. 팀버는 즉시 이웃에 사는 인도 의사 갠더베이 를 불러왔고, 의사는 방에 들어와 상황을 보더니 가방에서 필요한 약품과 기구를 꺼내 완전 침묵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필요한 조치를 했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의사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내 보니 독사는 없었고, 있었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의사가 물었다. “해리씨, 크레틴을 진짜로 보셨어요? 혹시 꿈을 꾸신 것 아니에요?” 그러자 잠옷차림으로 침대 위에 서서 “이제 살았다” 소리치던 해리는 의사에게 욕설을 쏟아냈다. “시궁창 속 더러운 쥐새끼야, 내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냐?” 아무 대꾸를 안 하는 의사에게 해리는 계속 “이 시커먼 힌두야…”라고 소리쳤다.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옆에 있던 팀버가 얼른 의사를 따라 밖으로 나오면서 친구를 대신해 사과를 했다. 그때서야  의사는 “당신 친구, 휴가가 필요한 것 같네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가버렸다.     저자 자신도 영국인이지만 남의 나라에 와서 400년 동안 주인 노릇을 했던 자기 조상들의 오만과 편견을 담담하게 그렸다.     이야기의 제목인 ‘독’은 뱀의 독이 아니고, 인종차별의 독을 의미한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해석이다. 김순진 / 교육학 박사시론 인종차별 이름 인도계 의사 친구 해리 인도 출신

2022-05-04

[시론] ‘인종차별’이라는 이름의 독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스탠퍼드대학을 거쳐 샌호제에 이르는 지역은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비롯한 수많은 컴퓨터 회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첨단기술 지역이다. 주민 중 외국인, 외국학생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 외국계 주민들의 대부분이 아시안이며 아시안 중에서 가장 눈에 띄게 많은 사람들이 인도계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한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포함해 많은 회사의 CEO가 인도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도계는 첨단 컴퓨터 기술에서만 큰 성공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를 포함해 북가주 전체의 많은 의사들이 인도계다. 미국 내 의사의 인종분포를 찾아보니 백인 의사가 56%, 아시안이 17%이다. 인도계만의 비율을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주목할 현상이 있다. 현재 미국 내 병원에서 근무하는 레지던트 중 20%가 인도계라는 통계다. 수년 안에 미국 내 의사 5명 중 1명이 인도 출신 의사일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환자들은 백인 의사를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갑자기 인도 출신 의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수년 전부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던 의사 중 몇 명이 인도계이기 때문이다.     마침 최근에 읽었던 단편소설 중 인도계 의사 한 명이 모국인 인도에서 겪었던 심한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어 간단히 소개한다. 소설의 제목은 ‘독(Poison)’이고, 저자는 영국 소설가 로얼드 다알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친구 사이인 해리와 팀버라는 두 명의 영국인들과 이웃에 사는 인도 의사 갠더베이 등 3명이다.     20세기 초 배경은 인도 한 타운에 있는 방갈로다. 어느 날 팀버가  밤늦게 귀가 하니, 친구 해리의 방에 불이 켜져 있고 문을 노크해 보니 해리가 작은 소리로 팀버를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지금 자기 배 위에 독사(크레틴)가 올라와서 잠을 자고 있어 두 시간 동안 꼼짝 못한 채 누워있었다고 속삭였다. 크레틴은 인도 토종 독사로 길이는 짧지만 물리면 사람, 동물 모두 즉사한다. 팀버는 즉시 이웃에 사는 인도 의사 갠더베이 를 불러왔고, 의사는 방에 들어와 상황을 보더니 가방에서 필요한 약품과 기구를 꺼내 완전 침묵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필요한 조치를 했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의사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내 보니 독사는 없었고, 있었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의사 물었다. “해리씨, 크레틴을 진짜로 보셨어요? 혹시 꿈을 꾸신 것 아니에요?” 그러자 잠옷차림으로 침대 위에 서서 “이제 살았다” 소리치던 해리는 의사에게 욕설을 쏟아냈다. “시궁창 속 더러운 쥐새끼야, 내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냐?” 아무 대꾸를 안 하는 의사에게 해리는 계속 “이 시커먼 힌두야…”라고 소리쳤다.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옆에 있던 팀버가 얼른 의사를 따라 밖으로 나오면서 친구를 대신해 사과를 했다. 그때서야  의사는 “당신 친구, 휴가가 필요한 것 같네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가버렸다.     저자 자신도 영국인이지만 남의 나라에 와서 400년 동안 주인 노릇을 했던 자기 조상들의 오만과 편견을 담담하게 그렸다.     이야기의 제목인 ‘독’은 뱀의 독이 아니고, 인종차별의 독을 의미한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해석이다.   김순진 / 교육학 박사시론 인종차별 이름 인도계 의사 친구 해리 인도 출신

2022-05-01

매건 시아버지 팔짱 끼고 입장…파격의 연속

'모든 것이 바뀐 하루(A day when everything changed).' CNN방송은 지난 19일 영국 런던 근교 윈저성의 왕실 전용 예배당인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열린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을 이런 제목으로 소개했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 왕자보다 3살 연상에 한 차례 결혼한 적이 있으며 흑백 혼혈인 마클은 여권 신장을 위해 활동해왔다. 보수적인 영국 왕실에 '메건 효과'가 밀어닥치면서 전 세계에 생중계된 결혼식에서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파격이 속출했다. 결혼식은 신부 입장부터 달랐다. 마클의 아버지 토머스 마클은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판매했다는 논란에 이어 심근경색 수술로 결혼식에 불참했다. 마클은 예배당에 혼자 들어서 누구의 에스코트도 받지 않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중간 지점에서 해리 왕자의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찰스 왕세자가 해리 왕자에게 마클의 손을 잡고 건네주는 절차도 없앴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왕실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BBC는 전했다. 왕실 결혼에서 왕자에게 신부가 '복종하겠다'(obey)는 서약을 해왔는데 이런 표현도 사라졌다. CNN은 "마클이 이 절차를 통해 왕실의 규범에 도전할 준비가 돼 있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11살 때 힐러리 클린턴 장관 등에게 편지를 보내 여성을 '부엌데기'라고 표현한 광고를 바꿔놓았던 마클은 유엔의 여성 인권 성 평등 캠페인에 참여해왔다. 해리 왕자도 형 윌리엄 왕세손과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2011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윌리엄은 신부가 입장하는 내내 앞만 보고 서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마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입장하는 신부와 눈을 맞추거나 미소를 보이는 등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군복을 입을 때 면도를 말끔하게 해야 하지만 그는 결혼식에서 평소처럼 턱수염을 기른 채로 참석하겠다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BBC가 보도했다. 결혼식 주례는 영국 성공회 수장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맡았지만 혼혈인 마클을 고려해 최초의 흑인 미국 성공회 주교인 마이클 커리 신부가 설교를 했다. 지방시 드레스 5m 면사포 마클은 프랑스 럭셔리 패션 하우스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디자인한 단아하고 심플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마클의 드레스는 양어깨가 드러나는 보트 네크라인 스타일에 7부 소매 아래로 갈수록 A라인으로 퍼지는 스커트다. 두 겹으로 붙인 실크 원단으로만 만들어 우아함을 강조하는 대신 5 길이로 길게 늘어뜨린 면사포에서 화려함을 표현했다. 마클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면사포에는 영연방으로 분류되는 코먼웰스 국가들에서 자라는 식물의 수를 놓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신데렐라 같은 동화 속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마클이라는 한 여성을 당당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머리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보석 금고에 보관돼 있던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썼다. 여왕 메리 1세가 사용했던 밴드 스타일의 티아라다. 윈프리·클루니·베컴 등 초대 해리 왕자와 마클은 결혼식에 정치인을 초대하지 않았다. 대신 지인 600여 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부부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 엘튼 존 등이 참석했다. 윈저성 뜰에는 일반 시민 1200여 명이 초대돼 결혼식을 참관했다. 이날 윈저에 모인 10만명 이상의 인파는 결혼식 후 마차를 타고 거리를 돌며 감사 인사를 한 부부를 축하했다. 해리 왕자에게는 '서섹스 공작' 작위가 부여됐다. 경호 비용을 포함해 최대 4350만 달러가 것으로 추산된 결혼 비용은 신부 측 부담이 관례지만 영국 왕실이 낸다. 패션산업과 소매점 등에 영향을 미쳐 이번 결혼식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1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마켓워치는 예상했다. 김성탁 특파원·윤경희 기자

2018-05-20

엄마 반지 끼워주며, 이혼녀와 약혼한 해리 왕자

미국 배우 메건 마클과 사랑 결실 영국 여왕, 찰스 때와 달리 허락 언론 "왕실이 과거에서 벗어났다" 성공회 최고 성직자가 주례 가능성 해리 "엄마, 이 기쁜날 함께 있었으면 달보다 높이 껑충껑충 뛰었을 것" "틀림없이 달보다도 높이 껑충껑충 뛰어오르셨을 거예요. 아마 메건과도 가장 좋은 친구가 됐을 겁니다. 이렇게 기쁜 날이면 정말 어머니와 함께 있던 때가 떠오릅니다."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 것이라고 발표하는 날, 왕자는 장난기 많은 아들들이 왕실에 갇혀 있지 않기를 원했던 어머니 다이애나를 그리워했다. 영국 해리(33) 왕자가 약혼녀인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36)과 내년 봄 결혼 소식을 알리며 27일 BBC와 한 인터뷰에서다. 해리 왕자는 마클에게 청혼하면서 끼워준 반지를 소개했다.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 세 개 중 가운데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캔 원석을 가공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지인의 소개로 마클을 만난 해리 왕자는 한 달 뒤 보츠와나 캠핑 여행으로 그를 초대했다. 해리 왕자는 "별 아래에서 5일 동안 함께 머물렀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양옆의 다이아몬드 2개는 다이애나의 소장품에 있던 것이다. 황금색 링과 매치된 이 반지는 해리 왕자가 직접 디자인했다. 해리 왕자는 "우리의 여정에 어머니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어머니의 다이아몬드를 썼다"고 설명했다. 마클도 "뵐 수 없지만 해리를 통해 느끼게 되는 어머니(다이애나)가 우리 결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해리의 과거와 우리에게 중요한 보츠와나가 연결돼 있으니 완벽하다"고 말했다. 해리의 형인 윌리엄 왕세손도 약혼하면서 케이트 미들턴에게 다이애나의 반지를 선물했다. 다이애나가 1981년 찰스 왕세자와 약혼하며 받았던 블루 사파이어 반지다. 해리와 마클은 BBC 인터뷰에서 프러포즈에 이르는 16개월간의 러브 스토리를 공개했다. 해리 왕자는 이달 초 자신이 거주하는 켄싱턴궁의 노팅엄 코티지에서 청혼했다. 두 사람은 함께 닭고기구이 요리를 만들고 있었고, 해리 왕자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마클은 해리 왕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스'라고 말해도 될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마클을 만나기 전 해리 왕자는 그가 출연한 드라마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마클에게도 영국 왕실은 머나먼 존재였다. 하지만 해리 왕자는 "마클을 처음 본 순간 별들이 일렬로 빛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마클은 "해리와 세상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다양한 일들과 세상의 변화를 일으킬 열정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고 소개했다. 마클은 유엔에서 성 평등과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2주일을 만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런던 켄싱턴궁 등에서 사랑을 키워 왔다고 한다. 마클은 결혼 후 배우 활동은 접을 예정이다. 하지만 "뭔가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올바른 장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왕실 가족과 수차례 만났고 윌리엄 왕세손 부부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했다고 한다. 해리 왕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애완견들이 33년간 나만 보면 짖곤 했는데 마클에게는 꼬리를 흔들었다"는 말도 했다. 마클은 한 차례의 이혼 경력, 또 어머니가 아프리카 출신이란 이유로 해리 왕자와 교제를 시작한 이후 인신공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마클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공개 요청했던 해리 왕자는 "우리는 젊은 세대가 세상을 왜곡된 관점이 아니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들은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혼녀'와의 결혼을 허락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영국 왕실이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일찌감치 달라졌지만 유독 왕실만은 그동안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가치에 집착하느라 빚어진 스캔들과 비극도 여럿이다. 1936년 미국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즉위 11개월 만에 동생에게 왕위를 넘긴 에드워드 8세, 53년 16세 연상의 이혼남이자 아버지 조지 6세의 시종무관이었던 피터 타운샌드에게 청혼을 받은 뒤 2년여간 영국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소동 끝에 "결혼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던 마거릿 공주(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가 대표적이다. 96년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비의 이혼, 이혼녀 커밀라 파커 볼스와 찰스의 재혼 역시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찰스와 커밀라의 결혼식은 교회에서 열리지도 못했다. 영국 국교회 수장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결정 때문이었다. 윈저 시청에서 열린 결혼식에 여왕은 참석하지도 않았고, 결혼식 이후 윈저궁 내 왕실 전용 예배당에서 열린 '축복 예배'에만 참석했다. 영국 국교회가 "교회에서 재혼할 수 있다"고 공식 허용한 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그마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라는 조건을 달았다. 영국 왕실 작가인 클라우디아 조셉은 로이터통신에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 파커 볼스가 결혼할 때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라며 "찰스 왕세자가 아들인 해리를 위해 길을 터준 셈"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두 사람의 결혼식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으나 영국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주례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서울=홍주희 기자

2017-11-28

해리 왕자, 마크리와 내년 결혼

영국 해리 왕자(33)와 할리우드 여배우 매건 마크리(36)가 27일(현지 시간) 약혼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영국 왕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해리 왕자는 이달 초 런던에서 마크리와 약혼했다"며 "결혼식은 내년 봄 치를 예정이며 이후 두 사람은 런던 켄싱턴궁에 살림을 차릴 것"이라고 밝혔다. 해리 왕자와 지난해 여름부터 마크리와 교제를 시작해 이달로 16개월째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교제 초기 비밀에 부쳐졌던 이들의 관계는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두 사람은 교제 사실을 대중에 알리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언론의 관심을 감당해야 했다. 특히 한 차례 이혼한 적이 있는 데다 어머니가 아프리카계인 마크리에게 '이혼녀'라거나 '흑인 피가 섞인 혼혈'이라는 일부 대중의 인신공격이 집중됐다. 해리 왕자가 지난해 직접 나서서 영국 언론을 향해 "여성혐오적 공격과 인종차별을 중단해달라"고 호소까지 했을 정도였다. 고 다이애나비의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는 아버지 찰스 황태자, 형인 윌리엄 왕세손, 2명의 조카에 이어 왕위계승 서열 5위다. 2005년부터 10년간 군에 복무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두 차례 파병되기도 했다. 2002년 미국 TV 드라마로 데뷔한 마크리는 법정드라마 '슈츠(Suits)'로 명성을 얻은 배우다. 2011년 영화감독 트레버 엥겔슨과 결혼했다가 3년 뒤 이혼했다. 해리 왕자와 마크리는 지난해 5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상이군인 행사 '인빅터스'에서 처음 만났다. '인빅터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던 해리 왕자가 상이군인을 돕기 위해 창설한 연례 행사다. 당시 드라마 촬영차 토론토에 머물고 있던 마크리가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만남이 성사됐다. 이후 마크리는 런던을 오가며 해리 왕자와 교제해왔다. 이기준 기자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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