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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로 세상 읽기] '아나크리노'<'조사하다'는 뜻의 헬라어>가 필요한 시대

데이터와 지식의 과잉은 정보화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정보의 양은 폭증하고 업데이트의 속도는 가속화한다. 정보 과잉은 정보 피로 증후군이나 정보 강박 욕구를 가져온다.     정보 홍수와 과부하는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적 정보 접속으로 이어져 지적 지평은 외려 축소되고 사회적 소통은 갈수록 메말라진다. 수많은 정보에 노출된 결과, 결정 장애에 시달린다. 거대담론은 사라지고 미시적 소담론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사회 관계망은 계속해서 확대되지만 그 깊이는 얕아진다. 정보 과잉 시대에 무수한 청맹과니, 무지렁이, 어정잡이(겉모양만 꾸미고 실속이 없는 사람)가 양산된다.     17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수학자 라이프니츠는 “책이 쏟아져 나오는 양이 끔찍할 정도로 늘어나면 결국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그가 되살아나 현시대를 바라보게 된다면 무슨 말을 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사회에 유포되는 다양한 형태의 허위정보는 정보전염병(infodemic)이 되어 혼란과 위기를 증폭하고 갈등과 반목을 조장한다.  정보전염병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짝하여 우리의 의식과 영성을 지배하고 나아가 타인과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수용하나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증거는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성을 이름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인 셈이다. 영국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이 1960년대 처음 정립한 심리 현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정치인, 관료, 기업인, 그리고 군중들이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과오를 저질러 왔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선택적 사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확증 편향이 조장되거나 확산할 경우, 사회적 증오를 넘어 집단 광기의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독일인들도 히틀러와 괴벨스의 선전선동에 넘어가 집단 광기에 빠져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하였고 2차 세계대전의 광풍을 일으켰다.     “분노와 증오가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독일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히틀러의 입을 자처한 희대의 프로파간다 괴벨스의 섬뜩한 말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이 이미 지닌 확신을 보장해주고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사실만을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제한다. 나아가 자기 확신을 합리화시켜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거나 왜곡하여 받아들인다.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한방에 모여 떠드는 과정에서 그러한 공유 신념은 한층 공고해지고 확실해져 불변의 진리로 등극한다. 그 방에서 나와 다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어떤 사람은 불편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분노한다.     각자가 속한 방은 하나의 작은 세계다. 그러나 극복되어야 할 세계다. “이념은 저항에 굴복하지 않는 광신자, 저항을 염두에 두지 않는 광신자를 필요로 한다”는 말로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지나친 자기 확신의 위험을 경고했다.   참된 신앙은 자기 확신의 부재, 자기를 의심하고 자기를 믿지 못하는 자의 믿음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신학자 폴 틸리히는 “신앙은 의심을 제거함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 있는 하나의 요소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정복하는 용기다”라고 주장한다.  균형 잡힌 신앙은 반성적 사고와 통전적 영성에 기대어 자란다. 자신이 잘못 가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는 사람이 반성한다. 잘못 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람에게만 반성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반추 대신 자기와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증오한다.   사도행전에는 베뢰아 사람들의 신앙에 대해 칭찬하는 내용이 나온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여기서 ‘상고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아나크리노’인데, 그 뜻은 ‘조사하다’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로부터 들은 복음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조사했다는 뜻이다.     자신이 서 있는 믿음의 토대를 스스로 ‘상고’하는 태도, 즉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칭찬한 것이다. 성경을 상고하는 과정에서 오해와 곡해를 걸러내어 정해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맹신이나 확증 편향은 쉽게 자기도취와 자기해체로 이어지고 맹목적, 광신적 신앙으로 흐르기 쉽다. 확증 편향을 선동하기 위해 종교적 명분을 앞세우거나 종교로 위장된 우리 시대의 허위 정보와 사특한 이념을 경계해야 한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성서로 세상 읽기 헬라어 조사 정보화 사회 확증 편향 정보 과잉

2025-01-07

[행동금융학과 자산관리] 투자 시 심리적 편향과 잘못된 경험주의 피해야

행동금융학(behavioral finance)은 투자자들의 재무적 결정의 원인을 투자자의 특성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투자이론이 시장의 등락과 이상 흐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행동금융학이 제시하는 투자자들 안에 내재한 편향과 경험주의에 근거한 잘못된 선택들이 결과적인 투자실패로 귀결되는 예는 많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하락장과 올 상반기 유지된 반등장은 새삼 이런 부분에 주목하게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투자자가 가진 편향과 경험주의의 오류를 살펴보는 것은 요즘과 같은 투자환경에서 특히 유익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적 결과   실험적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은 성공이 주는 기쁨보다 실패가 주는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투자에서 수익을 얻었다는 기쁨보다 손실이 주는 고통이 더 크다. 고통이 기쁨보다 대략 두 배가 크다. 결국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적으로 더 크고, 이를 피하기 위한 욕망이 그 반대보다 크다는 뜻이다. 어쩌면 투자할 때 나타나는 대부분의 편향이나 경험론적 실수는 여기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경험과 어긋난 정보 수용   기본적으로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게 된다. 기존의 생각이나 경험과 어긋나는 정보 중 하나는 투자한 주식이 떨어질 때 나타난다. 새로운 정보는 해당 주식을 팔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는 경우다.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줄 고통을 피하고 싶은 심리가 깔린 선택이다.     떨어진 주식을 사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이미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 떨어질 때 같은 주식을 더 사는 것도 이런 심리적 경향성과 맞닿아 있을 수 있다. 해당 종목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내가 이미 갖고 있던 것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선택하게 될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나중에는 해당 주식을 샀던 처음의 선택을 부정하는 정보가 너무 많이 쌓이게 되고 결국 거기에 밀려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급발진하게 된다. 더 내려간 후 손절매하는 경우는 이렇게 생긴다.   ▶투자결과에 대한 영향력   많은 이들이 투자결과에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도 있다. 직접 투자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편향이다. 시장의 향배를 결정할 수 있는 투자자는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향력이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이런 경우 너무 잦은 거래를 하게 되거나 분산투자의 원칙을 망각하기 쉽다. 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에 지나치게 집중된 투자를 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미래에 대해 자신이 어느 정도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도 연결된 데 자기 비즈니스나 직업에서 성공한 이들이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자기 분야에서 기대하고 예상했던 결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라는 것을 모르거나 잊고 있는 것이다.   ▶그럴줄 알았다   또 하나 많이 경험하는 심리적 편향은 지나간 결과에 대한 관점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해당 결과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리스크(risk)를 쉽게 생각하게 된다. 왜냐면 이번에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쉽다. 지나간 결과에 대한 편향은 잘못된 ‘전망’에 대한 경험은 지워버린다는 쪽으로도 나타난다. 실패한 경험을 반추하고 배우기보다 이를 부정하고 묻어버리는 것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본능적 심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펀드나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에 대한 불만도 이런 심리적 편향에서 나올 수 있다. 지나온 시장을 보면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머니 매니저라면 왜 몰랐느냐고 묻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수익률 측면에서 상위권에 있는 매니저들도 모든 시장 사이클(cycle)마다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90년대의 스몰캡 가치주 펀드 매니저들이 여기 해당될 것이다. 그들이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스몰캡 가치주가 외면받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반대 경우도 적용된다. 특정 매니저에 대한 과한 칭찬이다. 90년대 말까지 한참 잘나가던 공격적 성장 하이테크 펀드 매니저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나고 나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유리한 환경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못 보게 되는 것이다.   ▶심적회계   투자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편향과 잘못된 경험적 판단은 상호 연결돼 있다. 심적회계도 마찬가지다. 심적회계는 자금출처와 경로, 상황, 시점 등에 따라 특정 자금에 대한 판단과 기준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회계처럼 수입과 지출, 재산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은퇴자금, 학자금 등 명목을 붙여 따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다양한 편향들과 만나면서 투자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용도에 따라 자금을 분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은퇴자금이나 학자금만을 생각해도 그렇다. 용도를 달리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투자로 생각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똑같이 투자하는 것인데도 각각의 계좌에서 투자되는 종목이나 자산 유형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고 배치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전체적 결과물은 기대 이하가 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소득과 자본이득을 같은 수익으로 보지 않고 분리해 생각한다. 원금은 두고 이자만 받아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하기도 한다. 소득이 많이 나는 투자를 원해서 배당이 좋은 우선주에 투자했다고 하자. 상황에 따라 좋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배당 우선주는 금리환경에 따라 등락이 심할 수 있다. 소득을 좇다 원금을 손해 볼 가능성도 있다. 심적회계는 배당 우선주를 선택하게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닌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심적회계는 ‘시장 타이밍’과도 연결된다. 시장이 올라가면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손실’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실은 번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는 상황인데도 그렇다. 손실로 인식되면 ‘고통’도 배가된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면 단기 상승장에서 충동적으로 급하게 들어간다. 그러다 시장이 반대로 가면 다시 단기 저점에서 손절매한다. 감정투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결국 계좌 잔액은 사라진다.  투자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심리적 편향들은 성공투자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편향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방법은 내게 맞는 정확한 투자전략에 기반을 둔 포트폴리오 구성과 운용이다.     켄 최 아메리츠 에셋 대표 [email protected])행동금융학과 자산관리 경험주의 투자 편향과 경험주의 심리적 편향 본능적 심리

2023-06-13

[문화산책] 종교와 예술의 온전한 화합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뉴스를 접하고 기가 탁 막히고 혈압이 확 올랐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공연이 무산되는 사건이 한국의 문화도시(?) 대구에서 벌어졌는데, 그 이유는 종교 편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의 기사를 옮겨보면 이렇다.   ‘대구 시립예술단의 베토벤 교향곡 공연이 종교 편향을 이유로 무산됐다. 시 조례로 설치 운영되는 종교화합자문위원회가 가사 중 ‘신’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대구의 시립예술단은 공연 전 조례 규정에 따라 자문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단 한 명의 반대에도 공연은 부결된다. 자문위원 9명 중 1명이 이번 공연에 대해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神)’이라는 낱말이 특정 종교를 찬양한다는 주장이라는데, 참 어처구니가 없다. 문제의 ‘신’이라는 단어는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합창에 나오는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이여, 낙원의 딸이여’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건 독일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유명한 시 ‘환희의 송가’의 한 구절이다.   이런 결정에 대한 문화계의 반응은 “황당을 넘어 망신”이라는 것이다. 특히, ‘합창’의 가사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당연하다. 참으로 서글픈 코미디다.   “예술을 종교로 접근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국악 연주라든지 오페라 연주라든지…. 오페라도 종교적으로 관련된 것이 거의 대부분이거든요.” 대구음악협회장의 말이다.   대구시의회 관계자는 ‘만장일치가 아니면 부결이 된다’는 조항이 문제라고 판단하고, 관련 조례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구에서 예술공연을 놓고 논란이 제기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대구예술제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공연되자 개신교 측이 반발했고, 이보다 앞서 시립합창단 40주년 공연에 찬송가가 포함되자 불교계가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이전에도 대구에서는 종교화합 심의위 일부 위원의 반대로 헨델의 대표곡인 ‘메시아’ 공연이 무산된 바 있다고 한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에서 종교를 빼고 나면 뭐가 남는지 묻고 싶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종교 편향이라고 보는 편협한 시각으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정말 답답하다.   물론 종교와 예술, 그리고 사회 사이의 갈등은 인류 역사상 항상 있어온 일이고, 지금도 완강하게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는 언제나 그런 갈등을 사랑과 화합으로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아름다운 분들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다. 두 어른은 생전 종교의 벽을 허물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큰 감동을 안긴 것으로 유명하다. 김수환 추기경은 법정 스님이 창건한 길상사 개원법회에 방문해 축사를 했다.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했다. 법정 스님은 천주교 수녀원과 수도원에서도 자주 강연했고,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 제작을 독실한 천주교 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서울대 교수에게 맡기기도 했다.   “인간의 추구는 영적인 온전함에 있다. 우리가 늘 기도하고 참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깨어지고 부서진 영혼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김 추기경이 선종하자 법정 스님이 쓴 추모사의 한 구절이다. 참 종교란 이런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종교 예술 종교화합 심의위 대구 시립예술단 종교 편향

2023-04-20

[중앙 칼럼] 교통체증도 편향 보도하는 시대

28년 만이다. 개최국 미국이 미주 대륙의 각국 정상을 천사의 도시로 초청했다. 제9차 미주정상회의가 지난주 LA에서 열렸다. 보안 등을 이유로 도로 곳곳을 막아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차가 막힌 건 지엽적인 문제다.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의 약해진 위상이 드러난 게 더 문제다. 바이든 행정부는 행사에 앞서 초청 대상을 놓고 출발부터 삐걱댔다. 반미 등의 구실로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정상을 초청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러자 멕시코 대통령이 불만을 드러내며 불참을 선언했다.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볼리비아 등은 하급 대표단만 보냈다. 과테말라 대통령은 미국이 자국의 검찰총장을 제재하자 불참을 결정했다.   지지율 대신 물가와 개스값이 치솟는다. 국내 인기가 바닥인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적으로도 체면을 구겼다. 미주정상회의는 반쪽 행사라는 오명 속에 그렇게 막을 올렸다.   반면, 언론들은 헤매는 바이든보다 도로 상황에 더 집중했다. 한 예로 LA타임스는 행사가 열리기 전 날 ‘미주정상회의 개최로 LA의 교통체증과 도로 폐쇄 예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정보와 사실에만 입각해 LA 인근 폐쇄 도로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4년 전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LA를 방문(2018년 3월13일)했다. LA에서 24시간도 채 안 되게 머물렀는데 언론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일례로 당시 LA타임스는 ‘트럼프는 출근 시간대에 LA다운타운을 떠날 것(Trump will be leaving downtown Los Angeles in the middle of your commute)’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트래픽의 악몽’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해 일정을 비난했다. 심지어 트럼프가 다저스타디움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LA공항으로 떠나는데도 ‘헬리콥터를 타더라도 길은 계속 막힐 것이라고 가정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다른 기사에서는 ‘통근자들에게 비참한 아침(miserable morning)’이라고 묘사했다. 이 밖에도 ‘점심을 먹는 간단한 행위가 일부 LA시민들에게는 긴 여정이 됐다’ ‘바리케이드는 도심의 일상을 방해했다’ ‘일부 주민들은 트럼프와 백악관 관계자들을 태우고 다저스타디움을 떠나는 헬리콥터 소리에 잠을 깨야 했다’ 등 온갖 비난을 가했다.   ‘캘리포니아에서 22시간을 보낸 트럼프, 무슨 일이 있었나(Trump spent 22 hours in California. Here’s what happened)'라는 기사에서는 트럼프가 머물렀던 LA다운타운의 인터콘티넨털호텔을 '호화로운 호텔(swanky hotel)'로 표현했다. 보안 문제로 투숙객이 겪은 소소한 불편까지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기자는 한 투숙객의 코멘트를 통해 “그는 LA에서 가장 크고 높은 최신 호텔에 머물고 있다. 그는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 빈정댔다.     공교롭게도 미주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일행과 각국 정부 수반들이 머물렀던 곳 역시 이 호텔인데 언론들은 조용했다.   셰릴 앳킨슨 기자는 에미상 탐사보도 부문에서 수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저명한 기자다. 팬데믹 때 ‘편파적(Slanted)’이라는 책을 냈는데 부제는 이렇다. ‘뉴스 미디어는 어떻게 우리에게 검열을 사랑하고, 저널리즘을 증오하도록 가르쳤는가(How the news media taught us to love censorship and hate journalism)’.   그는 "선동가들은 뉴스를 깊이 파 볼 열정이 없고, 대충 훑어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며 "사실 여부를 떠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진실은 가라앉는다"고 지적했다   교통 체증조차도 편향적으로 보도하는 시대다. 인지편향의 피해는 누가 입는가. 독자들이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 칼럼 교통체증 편향 미주정상회의 개최 과테말라 대통령 멕시코 대통령

20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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