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천개의 바람이 되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다. 내 개인적 느낌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크게 줄어든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말아요/ 거기에 나는 없어요/ 잠들어 있지도 않아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어/ 저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어요” 몸은 죽었지만 넋과 얼은 천개의 바람이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이 노래는 사후세계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종교적인 관점이다. “가을에는 햇살이 되어 들녘에 내려 비춰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지요/ 아침엔 새가 되어 당신을 깨워주고/ 밤에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드려요.” 일반적인 장송곡이나 추모곡은 산 자들이 죽은 이를 애통해하고 위로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노래는 그와 반대로 죽은 이가 산 자들을 위로하는 관점의 시라는 점이 신선하게 돋보인다. 그래서 설득력도 강하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일본의 소설가이자 작곡가, 그리고 가수로도 활동한 아라이 만(新井滿, 1946~2021)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이를 위한 추모곡은 많았지만, 죽은 이가 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노래는 이게 처음이지요.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이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 간 게 아니라 바람이 돼서 내 곁에 있다는 가사는 사람들에게 위로는 물론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줍니다. 그게 이 노래의 힘이죠. 나도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노래는 아라이 만이 암으로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친구를 위해 만든 노래로, 2003년에 일본에서 발표되어 사회적 신드롬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모든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전국 각지에 노래 연구모임이 생겨났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물론, 작곡가인 아라이 만의 장례식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퍼졌다. 한국에서도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이 노래를 불러 김수환 추기경 추모곡,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으로도 사용이 되었고,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조계종을 비롯한 여러 추모행사에서 이 노래가 추모곡으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노래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적신 것은 가사의 울림 때문이다. 이 가사는 작자 미상의 영문 추모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시는 마릴린 먼로 25주기 추도식(87년)과 9·11테러 희생자 1주기 추도식 등에서 낭독됐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노래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이 노래 가사의 원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전래하여 오는 시(詩)라는 설에 공감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인간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노래 가사처럼 나도 죽은 뒤에 무덤 속 관 안에 누워 있지 말고, 바람이 돼서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다. 불어오는 바람도 전과 달리 새삼스럽다. 오래전 세상 떠난 그리운 사람들이 바람이 되어 찾아온 것 같아 엄청 반갑고 고맙다. 그런데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참 안타깝다. 마종기 시인의 시 ‘바람의 말’이 떠오른다.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로잡습니다=지난 5일자 문화산책 '미국에 감사하는 마음' 내용 중 ‘6·25재단 설립자'는 구성열씨로 바로잡습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바람 노래 가사 대통령 추모곡 팝페라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