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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에서 의지적 사랑으로!

 사랑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 교수는 6대륙 37개 문화권에 속한 1만여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짝짓기 심리를 연구했습니다. 사랑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화학작용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배우자를 고르는 기회가 단 9%미만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100명의 상대 가운데 처음 만난 9명 중에서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상형의 배우자를 고를 가능성은 없다는 결론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파인스(Ayala Pines)는 사랑을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흥분하도록 하는 신체적 각성(Arousal)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신체적 반응에 의미를 부여하는 꼬리표(Lable)라고 요약했습니다. 첫 번째 요인은 콩깍지 사랑입니다. 콩깍지를 심리학 용어로는 ‘핑크 렌즈 효과(Pink Lens Effect)’ 라고 합니다. 콩깍지 사랑에 빠지면 영원히 함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상태가 됩니다. 두 번째 요인이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장윤정’이 부른 콩깍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의 콩깍지 씌여 버렸어 / 나는 나는 어쩌면 좋아 / 세상을 살다 보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 또 내가 원하는 사람도 있지 /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이지만 / 누가 뭐래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최고야 /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지마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 저러쿵 이러쿵 시비 걸지마 / 내 눈엔 그 사람만 보여 / 사랑의 콩깍지 씌여 버렸어 / 나는 나는 어쩌면 좋아 / 사랑의 콩깍지에 콩! / 그 사람의 콩깍지에 콩! 콩! / 난 푹 빠져 버렸어 / 사랑의 콩깍지 씌여 버렸어 / 나는 나는 어쩌면 좋아. 헬렌 피셔(Helen E. Fisher) 교수는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 라는 책에서 사랑의 3단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갈망(lust)의 단계입니다. 그런데 만남이 지속되지 않으면 관계는 쉽게 끝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강한 끌림(attraction)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콩깍지가 씌워지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끊임없이 생각나는 단계입니다.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대방과 있었던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주변 사람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강하게 결합합니다. 사회 심리학자 스탠턴 필(Stanton Peele)은 이런 상태를 ‘마약 중독 상태’와 같다고 합니다. 황홀하고, 즐겁다가 혼자라고 생각되면 슬픔과 공허감이 밀려와 다시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씁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애착(attachment)의 단계입니다. 갈망과 끌림을 거치면서 애착의 단계를 밟습니다.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는 데 주저함이 없게 됩니다. 사랑의 콩깍지는 현실에 부딪히면 결국은 벗겨집니다. 콩깍지가 씌었을 때 작용하는 신경 전달 물질인 ‘페닐에틸아민’은 황홀하고, 행복하게 만들지만, 내성이 생겨서 점점 분비가 감소하여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랑의 유효 기간을 최장 3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갈망과 끌림으로 시작된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갈등을 겪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이해하며 얻은 사랑입니다. 이러한 의지적인 사랑을 ‘제2의 콩깍지’ 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낭만적인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부부가 갈등을 겪으면 사랑이 식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배우자의 단점과 문제, 나 자신의 단점과 상처를 부부가 함께 풀어 가는 과정에서 부부의 사랑이 깊어집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결혼은 성숙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후에 갈등을 극복하며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성장 통이 필요합니다. 결혼에도 성장 통이 있습니다. 성장 배경, 경제관, 양육 방식, 시간관념, 청결 개념 모두가 다릅니다. 갈등은 결혼의 실패가 아니며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겪는 문제도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넘어야 할 통과 의례입니다. 성장 통을 벗어나는 핵심은 배우자에 대한 시각과 관계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부드러운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화를 내지 말고 용기를 내어 다가가는 것입니다. 미네소타 대학교 스나이더(Mark Snyder) 교수의 연구 결과는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결과라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능력은 공감능력이며 이 능력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회칼럼콩깍지 의지 콩깍지 사랑 의지적인 사랑 심리학자 파인스

2023-03-24

[마음 읽기]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다르다는 말씀

하지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해가 높이 뜨고 낮이 길어졌다. 날씨도 무더워졌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의 얘기로는 벌써 바위가 뜨거워 암벽을 오르기가 어려워졌다고도 한다. 장마를 앞두고 있지만, 장마가 지나면 더위가 본격화할 것이다.   해가 이처럼 좋으니 숲도 들도 짙푸르게 무성하다. 마당의 끝과 둘레에 심은 수국이 피고 낮달맞이꽃도 노란 꽃이 피었다. 수국이 핀 것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신비한 천체 같은 느낌이 든다. 달맞이꽃이 해가 지는 밤에 달을 따라 핀다면, 낮달맞이꽃은 낮에 피는 야생화다. 보들보들한 꽃잎에 윤기가 돌고 낮달맞이꽃이 핀 마당가는 아주 근사하게 맑고 밝다. 해바라기도 제법 커져 여물고 있다. 머잖아 원반 같은 그 노란 꽃이 피어 태양을 사모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멀구슬나무는 이미 꽃이 지나갔다. 연보라빛 꽃이 피는데 이 멀구슬나무 꽃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 ‘전가만춘(田家晩春)’에 이런 시구가 있다.   ‘비 그쳐 방죽에 서늘한 기운이 깔리고/ 멀구슬 꽃 바람 잦아들자 해가 점점 길어진다./ 하룻밤 새 보리 이삭이 모두 뽑혀/ 평원의 푸른빛이 줄었구나.’   익은 보리를 거둬들이는 늦봄의 농가 풍경을 노래하면서 정약용도 이 멀구슬나무를 언급했다.   제주에서는 완두콩이 보리 익을 때 익는다고 해서 보리콩이라고도 부르는데, 나도 얼마 전 보리콩 콩깍지를 까서 몇 바가지의 보리콩을 얻었다. 좀 늦게 거둬들인 탓에 빈 콩깍지가 많았지만 그래도 요즘 보리콩을 얹어 밥을 지어 먹는 재미가 남다르다.   농사랄 것도 없지만 텃밭에 이것저것을 심어 내 손으로 키운 것을 내가 먹는 일도 시골 사람이 된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상추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받아먹기 어렵고, 오이도 남아돌아 사람들에게 나눠줄 정도다. 특히 오이는 아침에 보았을 때는 좀 작은가 싶더니 낮 동안에 굵어져 저녁에는 딸 정도로 성숙이 빠르다. 텃밭에서 얻은 것을 씻어와 툇마루에 밥상을 차려 간소하게 먹으니 이로써 한가한 마음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각각의 꽃 피는 것을 보게 되지만 각각의 꽃 지는 것 또한 보게 된다. 하지만 대개는 개화만을 보려고 하고 낙화에는 마음을 덜 두게 된다. 마치 오는 이를 마중 가는 일은 모두 반기지만 정이 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배웅은 매번 어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낙화와 배웅을 피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는 일의 절반은 각각의 낙화를 보는 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한 스님을 뵈었더니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달라요”라는 말씀을 내게 하셨다. 스님과 인연이 있는 어떤 분이 슬픈 일을 당하여 크게 상심을 해 힘들어하기에 이 말을 들려줬다고 하셨다. 고통의 일과 이별의 일과 죽음의 일을 꽃 지는 때에 빗대어서 하신 말씀일 텐데, 이 말씀이 내내 마음에 맴돌았다. 벚꽃은 이른 봄에 피어 있다가 지고, 감꽃은 좀 더 늦은 때에 피어 있다가 지는데, 감꽃이 벚꽃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듯이 저마다 때를 각각 맞아 겪는 일에 큰 낙담을 하지 마시라는 조언이 담겨 있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누군가가 찾아 왔다 떠나가는 일에 꽤 마음이 쓰였던 내게도 마음의 처방전처럼 여겨졌다. 오면 가게 되고, 가면 또다시 오게 될 것이다. 이른 때에 오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오는 사람도 있으나 이른 때에 오는 사람은 먼저 가게 될 것이요, 뒤늦게 온 사람은 그 떠나감이 보다 지난 후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 제때에 하는 일이라고 여길 뿐인 것이다.   ‘풀을 뽑으러 와서/ 풀을 뽑지는 않고// 보고 듣는/ 풀의 춤/ 풀의 말// 이러하나 저러하나/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수줍어하며/ 그러하다는/ 풀의 춤/ 풀의 말// 기쁜 햇살에게도/ 반걸음/ 바람에도/ 반걸음// 풀을 뽑으러 와서/ 차마 풀을 뽑지는 못하고.’   이 시는 최근에 쓴 내 졸시 ‘풀’의 전문이다. 풀을 뽑으려고 나섰다가 풀을 가만히 보았더니 그 움직임이 햇빛 쪽으로 기울었다가 또 어느새 바람에 눕듯이 기울었다 하는 것이었다. 마치 반걸음을 떼는 것처럼 흔들렸는데 어느 쪽으로든 완전히 기울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러하거나 저러하거나 어느 한쪽에 근심이 다 쏟아지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낙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세가 사는 일에도 지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꽃들은 피고 꽃들은 지고, 물 가듯 흐르는 자연의 일에서 또 배운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벚꽃과 감꽃 벚꽃과 감꽃 보리콩 콩깍지 요즘 보리콩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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