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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다르다는 말씀

멀구슬나무 꽃 지고 낮은 길어져
피고 지는 일은 다 제때 겪는 일
기쁨과 낙담에 반걸음 떼었으면

하지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해가 높이 뜨고 낮이 길어졌다. 날씨도 무더워졌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의 얘기로는 벌써 바위가 뜨거워 암벽을 오르기가 어려워졌다고도 한다. 장마를 앞두고 있지만, 장마가 지나면 더위가 본격화할 것이다.
 
해가 이처럼 좋으니 숲도 들도 짙푸르게 무성하다. 마당의 끝과 둘레에 심은 수국이 피고 낮달맞이꽃도 노란 꽃이 피었다. 수국이 핀 것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신비한 천체 같은 느낌이 든다. 달맞이꽃이 해가 지는 밤에 달을 따라 핀다면, 낮달맞이꽃은 낮에 피는 야생화다. 보들보들한 꽃잎에 윤기가 돌고 낮달맞이꽃이 핀 마당가는 아주 근사하게 맑고 밝다. 해바라기도 제법 커져 여물고 있다. 머잖아 원반 같은 그 노란 꽃이 피어 태양을 사모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멀구슬나무는 이미 꽃이 지나갔다. 연보라빛 꽃이 피는데 이 멀구슬나무 꽃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 ‘전가만춘(田家晩春)’에 이런 시구가 있다.
 
‘비 그쳐 방죽에 서늘한 기운이 깔리고/ 멀구슬 꽃 바람 잦아들자 해가 점점 길어진다./ 하룻밤 새 보리 이삭이 모두 뽑혀/ 평원의 푸른빛이 줄었구나.’
 
익은 보리를 거둬들이는 늦봄의 농가 풍경을 노래하면서 정약용도 이 멀구슬나무를 언급했다.
 
제주에서는 완두콩이 보리 익을 때 익는다고 해서 보리콩이라고도 부르는데, 나도 얼마 전 보리콩 콩깍지를 까서 몇 바가지의 보리콩을 얻었다. 좀 늦게 거둬들인 탓에 빈 콩깍지가 많았지만 그래도 요즘 보리콩을 얹어 밥을 지어 먹는 재미가 남다르다.
 
농사랄 것도 없지만 텃밭에 이것저것을 심어 내 손으로 키운 것을 내가 먹는 일도 시골 사람이 된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상추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받아먹기 어렵고, 오이도 남아돌아 사람들에게 나눠줄 정도다. 특히 오이는 아침에 보았을 때는 좀 작은가 싶더니 낮 동안에 굵어져 저녁에는 딸 정도로 성숙이 빠르다. 텃밭에서 얻은 것을 씻어와 툇마루에 밥상을 차려 간소하게 먹으니 이로써 한가한 마음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각각의 꽃 피는 것을 보게 되지만 각각의 꽃 지는 것 또한 보게 된다. 하지만 대개는 개화만을 보려고 하고 낙화에는 마음을 덜 두게 된다. 마치 오는 이를 마중 가는 일은 모두 반기지만 정이 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배웅은 매번 어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낙화와 배웅을 피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는 일의 절반은 각각의 낙화를 보는 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한 스님을 뵈었더니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달라요”라는 말씀을 내게 하셨다. 스님과 인연이 있는 어떤 분이 슬픈 일을 당하여 크게 상심을 해 힘들어하기에 이 말을 들려줬다고 하셨다. 고통의 일과 이별의 일과 죽음의 일을 꽃 지는 때에 빗대어서 하신 말씀일 텐데, 이 말씀이 내내 마음에 맴돌았다. 벚꽃은 이른 봄에 피어 있다가 지고, 감꽃은 좀 더 늦은 때에 피어 있다가 지는데, 감꽃이 벚꽃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듯이 저마다 때를 각각 맞아 겪는 일에 큰 낙담을 하지 마시라는 조언이 담겨 있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누군가가 찾아 왔다 떠나가는 일에 꽤 마음이 쓰였던 내게도 마음의 처방전처럼 여겨졌다. 오면 가게 되고, 가면 또다시 오게 될 것이다. 이른 때에 오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오는 사람도 있으나 이른 때에 오는 사람은 먼저 가게 될 것이요, 뒤늦게 온 사람은 그 떠나감이 보다 지난 후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 제때에 하는 일이라고 여길 뿐인 것이다.
 
‘풀을 뽑으러 와서/ 풀을 뽑지는 않고// 보고 듣는/ 풀의 춤/ 풀의 말// 이러하나 저러하나/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수줍어하며/ 그러하다는/ 풀의 춤/ 풀의 말// 기쁜 햇살에게도/ 반걸음/ 바람에도/ 반걸음// 풀을 뽑으러 와서/ 차마 풀을 뽑지는 못하고.’
 
이 시는 최근에 쓴 내 졸시 ‘풀’의 전문이다. 풀을 뽑으려고 나섰다가 풀을 가만히 보았더니 그 움직임이 햇빛 쪽으로 기울었다가 또 어느새 바람에 눕듯이 기울었다 하는 것이었다. 마치 반걸음을 떼는 것처럼 흔들렸는데 어느 쪽으로든 완전히 기울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러하거나 저러하거나 어느 한쪽에 근심이 다 쏟아지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낙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세가 사는 일에도 지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꽃들은 피고 꽃들은 지고, 물 가듯 흐르는 자연의 일에서 또 배운다.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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