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다르다는 말씀
멀구슬나무 꽃 지고 낮은 길어져
피고 지는 일은 다 제때 겪는 일
기쁨과 낙담에 반걸음 떼었으면
해가 이처럼 좋으니 숲도 들도 짙푸르게 무성하다. 마당의 끝과 둘레에 심은 수국이 피고 낮달맞이꽃도 노란 꽃이 피었다. 수국이 핀 것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신비한 천체 같은 느낌이 든다. 달맞이꽃이 해가 지는 밤에 달을 따라 핀다면, 낮달맞이꽃은 낮에 피는 야생화다. 보들보들한 꽃잎에 윤기가 돌고 낮달맞이꽃이 핀 마당가는 아주 근사하게 맑고 밝다. 해바라기도 제법 커져 여물고 있다. 머잖아 원반 같은 그 노란 꽃이 피어 태양을 사모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멀구슬나무는 이미 꽃이 지나갔다. 연보라빛 꽃이 피는데 이 멀구슬나무 꽃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 ‘전가만춘(田家晩春)’에 이런 시구가 있다.
‘비 그쳐 방죽에 서늘한 기운이 깔리고/ 멀구슬 꽃 바람 잦아들자 해가 점점 길어진다./ 하룻밤 새 보리 이삭이 모두 뽑혀/ 평원의 푸른빛이 줄었구나.’
익은 보리를 거둬들이는 늦봄의 농가 풍경을 노래하면서 정약용도 이 멀구슬나무를 언급했다.
제주에서는 완두콩이 보리 익을 때 익는다고 해서 보리콩이라고도 부르는데, 나도 얼마 전 보리콩 콩깍지를 까서 몇 바가지의 보리콩을 얻었다. 좀 늦게 거둬들인 탓에 빈 콩깍지가 많았지만 그래도 요즘 보리콩을 얹어 밥을 지어 먹는 재미가 남다르다.
농사랄 것도 없지만 텃밭에 이것저것을 심어 내 손으로 키운 것을 내가 먹는 일도 시골 사람이 된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상추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받아먹기 어렵고, 오이도 남아돌아 사람들에게 나눠줄 정도다. 특히 오이는 아침에 보았을 때는 좀 작은가 싶더니 낮 동안에 굵어져 저녁에는 딸 정도로 성숙이 빠르다. 텃밭에서 얻은 것을 씻어와 툇마루에 밥상을 차려 간소하게 먹으니 이로써 한가한 마음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각각의 꽃 피는 것을 보게 되지만 각각의 꽃 지는 것 또한 보게 된다. 하지만 대개는 개화만을 보려고 하고 낙화에는 마음을 덜 두게 된다. 마치 오는 이를 마중 가는 일은 모두 반기지만 정이 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배웅은 매번 어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낙화와 배웅을 피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는 일의 절반은 각각의 낙화를 보는 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한 스님을 뵈었더니 “벚꽃과 감꽃은 지는 때가 달라요”라는 말씀을 내게 하셨다. 스님과 인연이 있는 어떤 분이 슬픈 일을 당하여 크게 상심을 해 힘들어하기에 이 말을 들려줬다고 하셨다. 고통의 일과 이별의 일과 죽음의 일을 꽃 지는 때에 빗대어서 하신 말씀일 텐데, 이 말씀이 내내 마음에 맴돌았다. 벚꽃은 이른 봄에 피어 있다가 지고, 감꽃은 좀 더 늦은 때에 피어 있다가 지는데, 감꽃이 벚꽃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듯이 저마다 때를 각각 맞아 겪는 일에 큰 낙담을 하지 마시라는 조언이 담겨 있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누군가가 찾아 왔다 떠나가는 일에 꽤 마음이 쓰였던 내게도 마음의 처방전처럼 여겨졌다. 오면 가게 되고, 가면 또다시 오게 될 것이다. 이른 때에 오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오는 사람도 있으나 이른 때에 오는 사람은 먼저 가게 될 것이요, 뒤늦게 온 사람은 그 떠나감이 보다 지난 후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 제때에 하는 일이라고 여길 뿐인 것이다.
‘풀을 뽑으러 와서/ 풀을 뽑지는 않고// 보고 듣는/ 풀의 춤/ 풀의 말// 이러하나 저러하나/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수줍어하며/ 그러하다는/ 풀의 춤/ 풀의 말// 기쁜 햇살에게도/ 반걸음/ 바람에도/ 반걸음// 풀을 뽑으러 와서/ 차마 풀을 뽑지는 못하고.’
이 시는 최근에 쓴 내 졸시 ‘풀’의 전문이다. 풀을 뽑으려고 나섰다가 풀을 가만히 보았더니 그 움직임이 햇빛 쪽으로 기울었다가 또 어느새 바람에 눕듯이 기울었다 하는 것이었다. 마치 반걸음을 떼는 것처럼 흔들렸는데 어느 쪽으로든 완전히 기울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러하거나 저러하거나 어느 한쪽에 근심이 다 쏟아지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낙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세가 사는 일에도 지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꽃들은 피고 꽃들은 지고, 물 가듯 흐르는 자연의 일에서 또 배운다.
문태준 / 시인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