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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 유엽의 충고

촉한(蜀漢)의 건흥 4년(서기 230년), 전란에 피로해지고 건강마저 잃은 제갈량이 허술한 틈을 보이자 위나라 대장군 조진(曺眞)이 황제 조예(曺叡)에게 촉을 공략할 것을 아뢰었다. 이에 조예가 장사(長史) 유엽(劉曄)에게 의견을 물으니 좋은 계책이라고 대답했다. 조예가 기뻐하며 그러리라고 결심했다. 그런데 유엽이 대궐을 나오자마자 동료 신하들이 황제가 촉을 치기로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난감한 유엽은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자 대신들이 황제를 찾아가 “황제는 촉을 공략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고 유엽은 그런 일이 없다 하니 군신 사이에 어찌 이렇게 말이 다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당황한 황제는 유엽을 불러 “방금 촉을 치기로 나와 약조해 놓고 이제 신하들에게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하니 어찌 된 일이오”라고 책망했다. 그러자 유엽이 대답하기를 “지금은 촉을 칠 때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조예는 그 뜻을 알고 신하를 물리친 다음 다시 촉을 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제야 유엽이 대답하기를 “한 나라를 침공하는 일은 국가의 대사인데 알아야 할 사람이 있고, 몰라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그 중차대한 사실을 저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흘리셨습니까. 무릇 병법은 속임수입니다(夫兵者 詭道也). 그러하오니 주군은 마땅히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크게 후회하며 언행을 조심했다. (『삼국지』 99회)   지금 한국 정치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대통령과 야당 당수가 만나 할 말 못할 말을 나눴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 나타나 “우리가 그 자리를 주선했다”고 기자 회견을 했다. 인간의 공명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남자는 모름지기 입이 무거워야 하는데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별짓을 다 보겠다. 이후락의 말처럼 밀사는 입이 없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유엽 충고 황제 조예 위나라 대장군 부병자 궤도

2024-05-19

[신 영웅전] 신의 편작의 충고

의사에도 등급이 있다. 첫눈에 병을 알아보는(看) 의사를 신의(神醫)라 하고, 목소리만 듣고(聞) 병을 아는 의사를 명의(名醫)라 한다. 증세를 물어보고(問) 병을 아는 의사를 평의(平醫)라 하고, 진맥해보고(診) 병을 아는 의사를 의원(醫員)이라 한다.   중국에는 춘추전국시대 편작(扁鵲)과 후한시대 화타(華?)라는 신의 두 명이 있었다. 화타는 조조(曹操)에게 타살되면서 아내가 의서를 모두 태웠지만, 편작의 의술은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자세히 남겼다(『사기 열전』 편작 편). 그는 기원전 500년에 발해에서 태어나 괵(?)나라의 숨이 멎은 태자를 침술로 회생시켜 신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편작이 어느 날 이런 말을 남겼다.   “나도 병을 못 고치는 환자가 여섯 명(六不治)이 있다. 첫째는 교만한 사람이고, 둘째는 인색한 사람이고, 셋째는 과식·폭음하는 사람이다. 넷째는 음양이 화목하지 못한 사람이고, 다섯째는 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고, 여섯째는 아프면 무당부터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병명을 대지 않고, 병자의 습성을 지적한 것이 특이하다. 특히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편하게 갖지 않고 근심이 쌓이는 것을 경계했다. 그가 못 고치는 병 가운데 음양이 조화롭지 못해 생긴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지적이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한 말이니 더욱 놀랍다. 그 시절에도 부부 갈등이 많았나 보다.   어느 시대인들 역사에 편한 날이 있었을까마는 요즘 세상은 살기가 참 어렵다. 특히 청소년 비행을 보면 영락없이 그 가정(부부)에 문제가 있다. 그 가정이 얼마나 사람 냄새나며 따스하게 사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화목한 목소리가 들리는 가정에는 도둑이 들었다가도 그냥 돌아간다고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살수록 따뜻함이 그리운 것은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편작 충고 춘추전국시대 편작 후한시대 화타 시대인들 역사

2023-07-16

[중앙시론]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타이르는 말을 기꺼이 듣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는 자이나, 책망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 고대 지혜문학 중 하나인 ‘솔로몬의 잠언’ 중 한 구절(12:1)이다. 영문을 찾아보니 타이르는 말(라틴어 disciplina)은 규율(discipline)이나 훈육(instruction)으로, 책망(라틴어 Increpatio)은 질책(reproof) 또는 교정(correction)으로 씌어 있다. 우리말과 영문 번역본을 여럿 비교한 끝에 ‘타이르는 말을 귀담아듣고 그것이 옳다면 싫더라도 따르라’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에게 장량이 공자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말했던 것처럼.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耳利於行),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습니다(毒藥苦口利於病).”     꽤 오래전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길 가던 여고생에게 던진 질문과 대답.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잔소리는 듣기 싫은 말이고, 충고는 기분 나쁜 말이에요.” 몇 해 전 같은 질문에 두 초등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뒤이어 이런 자막이 등장했다. ‘노터치, 난 나야, 넌 너고….’   으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듣는 이 입장에서 타이름은 잔소리이고 충고는 참견이고 조언은 오지랖이다. 좋은 얘기도, 재미있는 얘기도, 무엇보다도 별 도움 되는 얘기도 아니면서 내 의지에 반하는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듣고 기분 좋을 리 없다. 가치관을 달리하는 사람의 시선은 불편하고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조언은 거북하고 우월한 지위나 우월감에 근거한 충고는 자존감에 생채기를 낸다. 무엇보다도, 결정에 대한 궁극적 책임의 주체는 ‘나’이니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게 듣는 이의 솔직한 심정이다.   잔소리와 충고를 기분 나쁘다고 했던 그 초등학생들이 사춘기 소녀가 되어 다시 등장했다. “젊은 세대와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당찬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덧붙여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된다”라며 일침을 가한다. 그야말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모든 간섭을 거부한다는 선전포고다.   경험이 곧 삶의 지혜였던 시절, 세태의 변화가 한가한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던 시절, 어른의 말씀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고 마을이나 집안의 뜻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던 시절과 달리, 오늘의 어른은 온갖 자동화기기 앞에서 절절매고 말 한마디 하기에 앞서 그것이 ‘라떼’(나 때)나 ‘꼰대’ 소리 들을 이야기는 아닌지 눈치를 살핀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이 경험과 연륜에 의한 지식과 생각을 경직된 가치관과 아집으로 격하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아! 세월이여, 아! 세태여’(O, tempora! O, mores!)라는 키케로(BC 106~BC 43)의 탄식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늘 있었던 말이지만, 이 세상은 늘 더 나은 곳으로 변해 왔으니 그 말은 언제나 구세대의 푸념이었을 뿐이라며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른으로서, 아니 이 사회 구성원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니다. 보기에 불편한 것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고, 염려하는 것은 세상사의 흐름을 미처 좇지 못하기 때문이고, 언짢은 것은 내 뜻과 저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해야 마땅하다.   성공한 30대 여성 사업가 줄스와 퇴직 후 회사를 다시 찾은 70대 시니어 인턴 벤의 이야기 ‘인턴’(2015). 모든 사람이 무시하고 아무런 일도 주지 않으니 벤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친근함과 배려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고 경험과 연륜으로 그들의 온갖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하며 어느새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오토라는 남자’(2022)의 오토는 퇴직 후 아내를 따라 세상을 뜨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이웃을 돕느라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운전이 서툰 이를 대신해 주차하느라고, 이웃의 난방시설을 수리하느라고, 이웃의 아이를 대신 보고 얼어 죽을 위험에 처한 길고양이를 돌보느라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려다 말고 철로에 추락한 사람을 구하느라고…. 이렇게 급한 일(?)부터 처리하느라 죽음을 하루하루 미루다가 어느새 그는 가장 소중한 이웃이 되어버렸다. “이게 사는 거지….”라는 그의 독백이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심장이 너무 크다”라는 의사의 말이 그의 사인(死因)이 아니라 그의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행실에 대한 은유로 들린다. 전상직 / 서울대 음대 교수중앙시론 잔소리 충고 고대 지혜문학 시니어 인턴 시절 어른

2023-07-09

[삶의 뜨락에서] 충고(忠告)

충고란 말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알림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승이 제자에게 꼭 주고 싶은 말이나 친한 친구나 선배가 아끼는 친구나 후배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말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우리가 아는 진실한 충고는 공자가 안유에게, 석가가 아난다에게 준 충고가 옳은 충고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충고를 듣습니다. 조폭 두목은 부하에게 충고하고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에게 충고합니다. 그러나 많은 충고는 자기의 잇속을 위하여 하는 말이거나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한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충고한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충고를 따라 행동한 사람이 책임을 지게 마련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에 나오는 헨리라는 친구의 충고입니다. 도리언은 매우 준수하게 생긴 미남 청년입니다. 그는 순수하고 세상의 물이 들지 않은 청년입니다. 그의 친구 바질은 도리언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그는 이 초상화를 필생의 작업으로 온 정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초상화가 완성됩니다. 도리언은 만족하여 집에 걸고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초상화야 너는 늙더라도 나는 늙지 않을 거야.” 그런데 헨리라는 친구가 옵니다. 그리고는 “너는 아주 잘생기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인생은 한 번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속삭입니다.     도리언은 시빌이라는 여배우와 사귀게 되고 깊은 관계에 빠집니다. 그런데 시빌은 도리언에 빠져서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연기를 잘 못 하는 시빌을 보고 도리언은 결별을 고하고 떠납니다. 시빌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그런데 헨리는 도리언에게 “그건 아무것도 아니고 너의 책임은 없어.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말고 다른 여자를 사귀면 돼”라고 속삭입니다. 도리언은 집에 돌아와 초상화를 바라봅니다. 초상화의 도리언은 얼굴이 좀 흉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도리언은 그림을 창고에 처박아 두고는 다시 나와 방탕한 삶을 삽니다. 물론 그때마다 헨리가 나타나서 도리언이 망가지도록 충고를 합니다. 그리고 방탕한 삶을 살 때마다 도리언의 초상화는 점점 더 늙고 흉측하게 변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다 도리언은 어느덧 30대 후반이 됩니다. 어느 날 도리언이 집에 돌아와 초상화를 보니 초상화는 아주 흉측한 모양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도리언은 그 초상화의 가슴을 칼로 찌릅니다. 그러나 그 칼은 초상화가 아니라 도리언의 가슴에 깊이 박혀 도리언이 죽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리언이 죽는 때에는 충고하던 헨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충고하는 헨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새 유튜브에는 과거 화려하게 살던 유명한 배우나 가수들이 옆의 사람 충고를 듣고 투자했다가 망하여 전 재산을 빼앗기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았지만, 그 재산을 지키는 방법을 몰랐던 그들에게 충고하는 아첨자들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여기 투자를 해라 저기 투자를 하라 하고 마치 요새 신문에 떠드는 옵티머스 사건, 대장동 사건 같은 도적들이 수천억씩을 챙기고 투자자들을 망하게 하는 사건에 휩쓸려 들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배우들이나 가수들에게 충고하던 사람들은 아무런 책임 없이 도리언이 죽음을 맞이할 때 그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은 헨리처럼 무책임합니다.     지금도 정치를 해본 일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많은 사람이 충고합니다. 그들의 충고는 정말 마음에서 나온 충고일까요, 아니면 도리언을 망치려는 헨리의 충고일까요.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충고 사람 충고 친구 바질 저기 투자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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