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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미국 대선에 대한 기대

미국의 건국 이념에는 개신교 일파인 청교도 정신이 담겨 있다. 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대륙인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엄격한 교리를 지키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생활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청교도 정신은 자유, 평등, 행복추구권 등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 담겨 있다.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하는 데 청교도 정신이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부존자원을 가진 것은 물론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여기에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건실하고 진취적인 국민의 노력 덕에 최근 한 세기 동안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미국은 청교도의 정착 이후 유럽 여러 곳에서 다양한 민족이 이주해 왔다. 이들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부하고 하나로 뭉쳐 대항하며, 마침내 독립을 이뤘다. 이후 광활한 국토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다민족 국가로 발전하게 됐다. 미국의 법과 제도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랑,용서,포용을 강조하고 자유,평등,정의,양심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법과 규정의 공정하고 엄격한 시행은 건실한 미국적 가치를 만들어 내며 미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미국적 가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것들을 한 용광로에 넣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멜팅팟’ 정책이 중요성을 갖는다.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한 흐름으로 모으기 위한 교육과 지도층의 노력이 필요하다.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유능한 인물이 당선돼  미국의 앞날이 더욱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미국 대선 청교도 정신 다민족 국가 자유 민주주의

2024-08-27

[발언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에 사는 사람치고 이 말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특히 조국을 뒤로하고 삶의 둥지를 미국으로 옮긴 이민자들에게 이 구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해 주는 매력적인 구호다.       이는 올해 치러지는 미국 46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의 구호다. 그는 44대 대선 때 처음으로 이 구호를 사용해 당선됐다. 이후 재선에 도전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의 임기 4년 동안 미국은 ‘다시 위대하게’ 되었나?  국내에선 분열이 조장됐고, 국제적으로는 국가 위신이 추락한 어두운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퇴임 후에도 온갖 법적 문제로 법정을 들락거리고 있다.  이런 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대선에 나섰다.     목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방법이다. 목표는 좋지만, 어떤 방법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미국은 지금도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하게 되기 위해서는 과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한 국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국토의 크기와 위치, 자원이고, 또 하나는 건국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국토의 크기나 자원보다는 국가에 뿌리를 내린 건국 정신이 그 나라의 흥망성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건국 정신은 자유를 신봉하고 타락과 부패를 멀리하는 청교도 정신, 개방과 포용, 그리고 민주적 절차로 만들어진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봉사 정신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건국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을 때 미국은 위대한 국가로서 인정받으며 세계의 리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44대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의 건국 정신 실현 노력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본인 이익을 위한 허위 주장들로 신의를 저버렸고 개방과 포용 대신 폐쇄와 배척으로 국제적 고립을 불러왔다. 국내적으로도 이해 집단 간 분열이 심화했으며, 그는 민주적이기보다는 권위적인 리더십을 행사했다. 또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함으로써 의사당 폭도 난입 사태를 불러왔다는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트럼프는 퇴임 후 여러 민형사상 문제에 휘말리며 구치소에서 머그샷까지 찍는 불명예도 경험했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구호는 말뿐이었다.   갑진년인 올해는 세계 76개국에서 전국 규모의 선거가 치러지는 소위 ‘슈퍼 정치의 해’라고 한다. 유능한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 전 세계 유권자 40억 명이 귀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해다.     훌륭한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말’ 보다 그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유권자들이 말보다는 마음이 훌륭한 정치인을 선택해 올해가 세계 평화와 번영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발언대 미국 건국 정신 대통령 선거 청교도 정신

2024-02-11

[열린광장] 윌리암 펜과 미국의 헌법

사파이어처럼 투명한 9월이다. 이런  9월을 더 밝게 해주는 날들이 있다. 9월 16일과 17일이다. 1620년 9월 16일,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영국의 플리머스를 떠났다. 그들은 54일을 항해한 끝에 그해 11월 21일 케이프코드에 첫발을 디뎠고 그곳을 플리머스라 이름 지음으로써 미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 청교도들은 왜 영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 땅을 향해 배를 저었을까?  우리는 마틴 루터를 종교개혁가로 알고 있다. 루터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가 95개 조의 논조를 성문교회에다 부친 것은 종교개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황이 면죄부를 파는 것에 대한 잘잘못을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종교개혁으로 번진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구교의 모든 제도와 예배의식을 지켜야 된다는 입장이었다. 영국 국교인 ‘영국교회’가 구교의 예배의식을 따르는 것은 바로 루터의 영향 때문이다. 많은 영국 교인들은 예배의식에만 치중하고 성서적 바탕에 따른 예배를 드리지 않는 ‘영국교회’를 정화해야 된다고 부르짖었지만, 그들에겐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     이윽고 이들은 영국교회로부터 떨어져나와 새로운 교파를 만들었다. 이들이 바로 청교도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불법 교파로 취급된 탓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땅으로 향했고 ‘필그림’으로 불렸다. 이들은 미국의 종교, 사회 및 정치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청교도들은 미국 최대 보수교단인 침례교의 모체가 되었고 회중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육에도 관심을 쏟아 하버드나 예일 같은 명문 대학들을 설립했다. 청교도들의 미국 이주 22년 뒤에 영국에서는 청교도들과 왕정파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영국 시민전쟁’인데 이를 일명 ‘청교도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무렵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던 윌리엄 펜은 의무적으로 영국교회에 다녀야 하는 교칙에 항의하다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는 아일랜드에 갔다가 퀘이커 교도가 되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이주를  결심했다. 그리고 찰스 2세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1687년 미국 땅으로 건너왔다. 그는 지명을 ‘울창한 숲’이란 뜻의 ‘실베이니아’에  자기의 성인 ‘펜’을 붙여 펜실베이니아로 지었다.  아울러 펜은 퀘이커교의 정신인 ‘형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도시 이름을 헬라 말 ‘사랑의 도시’란 뜻의 필라델피아로 지었다.     나중에 주지사가 된 펜은 최초의 헌법(Charter of  Privileges)을 만든 다음 상원 (Provincial Council)과 하원(General Assembly)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미국 정부와 의회의 효시가 되었다.  마침내 이 도시에서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고, 1787년 9월 17일에는 이 도시의 ‘펜실베이니아 스테이트 하우스’ (오늘의 디펜덴스 홀)에서 미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어제의 미국을 세운 필그림은 청교도들이다. 그리고 오늘의 미국을 여물게 한 필그림은 바로 이민자들이다.  그래서 미국은 필그림의 나라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미국 윌리암 청교도 혁명 구교의 예배의식 도시 이름

2023-09-07

[독자 마당] 우려스러운 증오범죄

미국의 기본 정신은 청교도들의 이주 이래  기독교 신앙을 중심축으로 한 자유·평등, 그리고 개척정신이다. 미국은 국토 면적과 인구수 면에서 각각 세계 3위의 국가다. 그리고 풍부한 부존자원을 바탕으로 최상의 교육 인프라에서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 학문,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청교도들의 이주가 시작된 후 40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광활한 땅을 개발하고 산업 발전을 위해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다양한 민족, 인종들의 특성을 한 용광로에 녹일 수 있는 동질화 정책이 필요했다. 이후에는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고, 각기 다름을 존중하는 샐러드볼 정책으로 변화했다. 이로부터 점차 공공선에 앞서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개인주의,이기주의적 경향이 더해가는 흐름이다.     백인들은 신대륙 아주 후 개척시대와 대내외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청교도 신앙과 행동주의로 쌓아온 성과에서 얻은 정당성과 자신감으로 주인의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일부는 이런 자신감이 지나쳐 백인 우월주의에 빠졌고 유색인종 차별이라는 역설을 낳게 되었다. 애초 인종주의의 대상은 흑인 차별이지만 다양한 인종이 몰려들면서 수적 위축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한 방어적, 배타적 심리가 깔렸는지도 모른다.     이런 분위기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믿는 일부가 아시안을 싸잡아 적대시하며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가 도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범죄든 도덕성 타락으로 인한 법질서 존중의식의 결여가 이유다.  이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윤리를 바탕으로 한 공공의식을 깨우쳐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로 공정사회를 이루어 나감이 절실히 요구된다. 윤천모 / 풀러턴독자 마당 증오범죄 정당성과 자신감 청교도 신앙 개인주의이기주의적 경향

2022-08-23

아메리카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감사 축제

추수감사절이다. 영어로는 생스기빙 데이(Thanksgiving Day)다.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추수감사절도 개신교(크리스찬) 할러데이다. 구약 성경의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이 추수감사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맥추절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wheat) 추수가 끝날 무렵 우량품들을 하나님께 먼저 바치는 추수 감사제였다.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주 목요일이지만 추수감사주일은 11월 셋째주 일요일이다. 이날은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에게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는 날이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북미 대륙으로 건너온 경건한 신앙인들이다.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영국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 이어진 종교 박해였다.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불리는 영국 청교도들은 1600년대 초기부터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했다. 이중 102명의 청교도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 대륙으로 향했다.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1620년 8월 5일 스피드웰(Speedwell)과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 대륙을 향해 항해했다. 그러나 항해 초반부터 배가 고장나 물이 새면서 귀항했다. 한 달 뒤인 9월 6일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가 승선해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지방 버지니아를 목적지로 삼고 다시 출발했다.     남자 78명과 여자 24명 전체 102명이 출발해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태어났다.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동북부 매사추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5일간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플리머스에 정착했다. 63일간 3400마일의 항해. 위험천만한 도전 끝에 닻을 내렸다.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 이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분다. 때문에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가 북쪽 매사추세츠에 도달했다. 이들의 신앙심은 대단했다. 토요일에 도착했고 길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항해하는 동안 찬송가가 울려퍼졌다. 이들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주일은 모두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했다."   청교도 개척자들은 무사히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11월 중순 도착한 이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과 싸워야 했다.     이때 이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었는지 숫자가 말해준다. 1620년~1621년 겨울 2~3개월  동안 102명 청교도 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1~2월의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명씩 사망했다. 생존자는 50명에 불과했다. 이들 대다수도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져 질병으로 신음했다.     이런 와중에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청교도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따스한 봄날은 왔다.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 그해 가을 기대 이상의 추수를 했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찬양했다.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이들의 믿음이다.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 감사드렸다.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 온 이듬해인 1661년 가을부터 하나님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과 채소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바쳤다.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 그들은 기도했다.     청교도들은 첫 추수감사절 첫날인 주일에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가를 불렀다. 둘째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었다. 셋째날에는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했다.   90명의 원주민 인디언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를 가져와 친교했다.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초다. 이것이 유래가 돼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먹는 전통이 세워졌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지었다. 이어 학교를 지은 뒤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생활을 했다.   1623년 정착지 플리머스 책임 행정관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선언했다.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국가 기념일로 선포했다.     추수감사절은 지역마다 날짜가 제각각이었으나 1863년 16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공화당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통일됐다. 원용석 기자아메리카 청교도 청교도 개척자들 북미 대륙 남해안 플리머스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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