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윌리암 펜과 미국의 헌법
그러면 이 청교도들은 왜 영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 땅을 향해 배를 저었을까? 우리는 마틴 루터를 종교개혁가로 알고 있다. 루터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가 95개 조의 논조를 성문교회에다 부친 것은 종교개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황이 면죄부를 파는 것에 대한 잘잘못을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종교개혁으로 번진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구교의 모든 제도와 예배의식을 지켜야 된다는 입장이었다. 영국 국교인 ‘영국교회’가 구교의 예배의식을 따르는 것은 바로 루터의 영향 때문이다. 많은 영국 교인들은 예배의식에만 치중하고 성서적 바탕에 따른 예배를 드리지 않는 ‘영국교회’를 정화해야 된다고 부르짖었지만, 그들에겐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
이윽고 이들은 영국교회로부터 떨어져나와 새로운 교파를 만들었다. 이들이 바로 청교도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불법 교파로 취급된 탓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땅으로 향했고 ‘필그림’으로 불렸다. 이들은 미국의 종교, 사회 및 정치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청교도들은 미국 최대 보수교단인 침례교의 모체가 되었고 회중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육에도 관심을 쏟아 하버드나 예일 같은 명문 대학들을 설립했다. 청교도들의 미국 이주 22년 뒤에 영국에서는 청교도들과 왕정파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영국 시민전쟁’인데 이를 일명 ‘청교도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무렵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던 윌리엄 펜은 의무적으로 영국교회에 다녀야 하는 교칙에 항의하다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는 아일랜드에 갔다가 퀘이커 교도가 되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이주를 결심했다. 그리고 찰스 2세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1687년 미국 땅으로 건너왔다. 그는 지명을 ‘울창한 숲’이란 뜻의 ‘실베이니아’에 자기의 성인 ‘펜’을 붙여 펜실베이니아로 지었다. 아울러 펜은 퀘이커교의 정신인 ‘형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도시 이름을 헬라 말 ‘사랑의 도시’란 뜻의 필라델피아로 지었다.
나중에 주지사가 된 펜은 최초의 헌법(Charter of Privileges)을 만든 다음 상원 (Provincial Council)과 하원(General Assembly)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미국 정부와 의회의 효시가 되었다. 마침내 이 도시에서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고, 1787년 9월 17일에는 이 도시의 ‘펜실베이니아 스테이트 하우스’ (오늘의 디펜덴스 홀)에서 미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어제의 미국을 세운 필그림은 청교도들이다. 그리고 오늘의 미국을 여물게 한 필그림은 바로 이민자들이다. 그래서 미국은 필그림의 나라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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