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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데이터] 10년 만에 만난 ‘어른’들

학창시절, 지루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진도와 무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 졸랐지만, 선생님 본인이 가장 즐거워하며 해주신 이야기는 졸업한 선배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막상 우리는 만나본 적도 없는 선배들을, 선생님은 그윽한 그리움의 눈빛으로 소환했습니다. 사회의 중진으로 성공한 그들이 어릴 적 얼마나 똑똑했는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을 딛고 성취를 이뤄냈는지 이야기하시며 선생님은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한참이나 미성숙한 우리를 가르치시느라 지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선생님은 성공한 제자의 어릴 적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르긴 몰라도 성공했다는 그들 역시 아이 때는 우리처럼 부산스러웠을 터이니, 어쩌면 우리 중에서도 멋진 제자가 나올지 모른다고 선생님은 믿고 싶으신게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지난달 강연하러 간 국내 수위권 유통회사에서는 10년도 넘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면서 겸임의 직책으로 수업했던 학교의 학생이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강연에 참여한 것입니다. 강연이 끝나고 수줍게 다가오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열정 가득한 눈으로 몇 개의 디지털 기기를 들고 와서 기록하고 질문하며 수업에 몰두했던 그는, 졸업 후에 유수의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합니다. 이제 어엿한 전문가가 되어 큰 기업에서 멋진 일을 하는 것을 보며 저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 작가가 된 저를 축하한다며 세심하게 고른 선물까지 준비해 온 그의 정성에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물이 없었어도 저의 보람은 지난 몇 년 치의 행복과 같았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가르치는 일에 서툴렀기에 더욱 열심히 수업에 임했던 저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스승이 되기엔 한참 모자람을 자각했기에, 그 시절 수업을 넘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 보려 애썼습니다. 그때의 학생들은 지금 사회 곳곳에서 가르친 이보다 훨씬 훌륭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성장은 저에게 큰 감동과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예전 선생님의 대견한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오래전 함께 일했던 동료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모두가 좌충우돌하던 시기, 동고동락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연이 닿은 대가의 문하생으로 수련을 쌓은 그는, 이제 어엿한 작가가 되어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으며 살고 있다 전해왔습니다. 그 분야의 가장 큰 기관의 전속작가가 되어 전 세계를 상대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한 그는, 한적한 지역의 멋진 집에서 8마리 고양이와 함께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각자의 경력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전화통화는 서로에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저도, 그도 아직은 설익은 시기에 무엇이든 시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시도하던 치기 어린 시절이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지난 세월의 그의 축적을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시도와 좌절이 그를 단단히 만들어왔음을 충분히 알만큼, 이제 저의 몸속에도 나이테가 늘어갑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인연이 멈추지 않고 지속하려면 추수에 기뻐하기보다 다시 씨를 뿌려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주 중학교 학생들과 그들의 학습을 지도하는 대학생의 캠프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유수의 기업이 후원하는 재단에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중학생을 돕기 위해 후배들을 돌보고자 하는 선한 대학생들을 연계해 주는 프로그램이 운영된 지도 10년이 훌쩍 넘어갑니다. 방학을 맞은 그들을 위해 인공지능과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캠프가 열린 것입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기대와 흥분으로 바라보는 선후배들을 보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었습니다. 선한 의지와 높은 뜻으로 모인 이들의 만남은 구만리 같은 그들의 미래에 관심과 용기로 자리 잡을 것이라 믿습니다.   신진의 패기가 성취의 원숙함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성취의 과정에 저의 작은 경험이 밑거름되기를 희망합니다. 10년 후 그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날 때, 저도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송길영 / Mind Miner빅 데이터 어른 밑거름 첫사랑 이야기 예전 선생님 선생님 본인

2024-08-11

50년 전 첫사랑 찾아 길을 떠나다

‘콘트라밴드’(2012년), ‘투 건스’(2013년)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아이슬란드의 발타사르 코르마퀴르 감독은 옥탄가 높은 액션물로 알려진 필름메이커이다. 그는 50년 만에 청년기의 첫사랑을 찾아 나서는 로맨틱 로드 무비 ‘터치’로 자신의 전작들로부터 180도 전환한다.     아내를 잃은 노년의 크리스토퍼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건강에 자신도 곧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할 것을 어렴풋이 감지한다. 그에게 죽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50년 전의 첫사랑 미코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풋풋했던 첫사랑, 그러나 이루지 못했던 그 사랑을 그는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크리스토퍼의 꿈결 같은 회상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남아 있는 50년 전의 그 여인 미코는 런던에 사는 일본계 이민자의 딸로, 대학을 중퇴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일본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경제학도인 아이슬란드 유학생 크리스토퍼는 런던의 일본 음식점에 취직을 하고 그곳에서 미코를 처음 만난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리며 순진하고 수줍은 사랑을 나눈다.       크리스토퍼는 과연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애초에 무엇이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았을까. 두 사람은 그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두 연인이 끝내 만나게 되리라는 걸 은근히 암시한다.     서양 남성과 동양 여성의 사랑이 흔하지 않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요즘의 멜로와 전혀 그 감성을 달리한다. 근래 보기 드문 감동을 전하는 아트하우스 로맨스 드라마 ‘터치’는 두 연인의 낭만적 사랑과 헤어짐의 아픔, 그리고 운명적 재회를 매우 고전적인 방법으로 그려나간다. 마치 포근한 봄날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처럼 그들의 꾸밈없는 사랑이 예쁘기만 하다.     크리스토퍼와 미코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두 배우 팔미 코마르커와 고우키의 눈길을 주고받는 조용한 연기에 첫사랑의 설렘이 살아 있다. 톱스타 부모와 빼어난 미모로 ‘금수저 셀럽’이라는 평판에 갇혀 있던 고우키가 의외의 흡인력을 발산한다.     ‘터치’는 음식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걸 다시 한번 입증해 주는 영화다. 크리스토퍼가 미코의 아버지로부터 배워 만든 일본 음식들이 두 연인의 식탁에 오르고 둘은 음식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그들의 사랑을 키워간다.   영화에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 없는 원폭 피해 여성들의 서글픈 사연과 세대를 잇는 일본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그로 인한 오해가 불러온 관계의 깨어짐, 그럼에도 사랑은 50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서로를 포옹하게 한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첫사랑 로드무비 낭만적 사랑 아이슬란드 유학생 아트하우스 로맨스

2024-07-24

[독자 마당] 나의 첫사랑

나의 첫사랑을 만난 것은 내 나이 쉰이었다. 나의 첫사랑이 내 품에 안겨졌을 때 나는 너무 황홀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다. 나의 첫사랑은 큰딸이 낳아 내 품에 안겨준 첫 손자다. 직장에 다니는 딸이 종일 둘이서 연애하라고 보내온 첫 손자는 종일 들여다보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안고, 어르고, 노래 부르며 그렇게 사랑을 속삭였다. 저녁에 딸이 데려갈 때까지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나의 사랑을 돌보는 일에 하루가 다 지나갔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가고 나면 너무 허전해 허둥댔다. 엉금엉금 기다가 일어서서 이것저것 저지레를 치고 빨래통에 들어가 자동차처럼 끌어달라고 조르고. 말을 시작할 때는  ‘함미,함미’ 부르는 소리가 그리도 듣기 좋았다.   지금도 앨범 사진을 보면 빨래통 자동차 놀이 모습. 피아노 친다고 뒤뚱거리던 모습이 새롭다.   찬바람이 불면 감기가 찾아와 모르는 사이 콧물이 흘러내리면 “함미! 코, 코” 소리에 휴지를 들고 뛰어가면 “에이, 입에 들어갔잖아” 하던 목소리 지금도 생생하다.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함미! 오줌,오줌” 하는 소리에 어느 주택가 골목에 차를 세우고 종이컵으로 오름을 누이는데 얼마나 참았었는지, 아니면 종이컵이 크지 않아서인지 줄줄 넘쳐 내 손으로 흘러내렸다. 이것도 추억 속 한 장면이다.   며칠 전 큰딸이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지금 홍콩에 있는 나의 첫사랑이 13분짜리 연설을 한 멋진 동영상이다. 중국어도 잘하지만 이번엔 영어로 한 것인데 너무 의젓하다. 열심히 보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뭘 그리 듣고 있느냐”는 말에 “얼굴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난 행복해요” 라고 하니 “저리 좋을까?”라는 표정이다.   그렇다. 난 지금도 그 녀석의 전화 음성만 들어도 행복하다. 나의 첫 손자 31살의 나의 첫사랑이다.   정현숙·LA독자 마당 첫사랑 목소리 지금 빨래통 자동차 주택가 골목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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