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할 때를 안다는 것
멈춰야 할 때를 안다는 것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주어진 시공 속에서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 가운데 얼마나 주체적으로 자기 인생을 그려갈 수 있을까. 중국사에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며 인생 자체를 즐기고, 이웃과 후손들에게도 성공 인생의 모델로 꼽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춘추시대의 범려이고, 또 한 사람은 초한쟁패기의 장량(張良)이다. 장량이 남긴 말 가운데 유명한 것은 '멈출 줄 안다'는 뜻의 ‘지지(知止)’다. 그는 한고조 유방(劉邦)의 책사였는데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자 스스로 뒤로 물러나 정치의 제물이 되는 것을 피했다.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얻었을 때, 수하의 문신과 무장은 부지기수였다. 그 중에 소하, 장량, 한신의 공이 가장 컸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들을 ‘한초삼걸’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군신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였다. 그는 술잔을 높이 들고 군신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천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며, 항우가 천하를 잃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지 그대들은 숨김없이 말해 보라.”왕릉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거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기고 항우는 인자하여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성을 공략하여 승리한 뒤에는 그 공적이 있는 자에게 나누어주어 천하와 더불어 그 이로움을 같이하셨습니다. 항우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어진 자와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의심하며 공이 있는 사람에게 차마 땅을 나누어주지 못하고 그 공을 모두 자기의 것으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천하를 잃은 까닭이라 생각하옵니다.” 유방은 술을 한잔 쭉 마시고 나서 말했다. “그대는 아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군. 군진의 장막 속에서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의 승패를 산가지 하나로 판가름 짓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들을 위무하며 보급을 원활히 하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고, 백만 대군을 거느려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략하면 반드시 빼앗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이야. 나는 이들 인걸을 잘 썼기 때문에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고, 항우에게는 홀로 범증 한 사람뿐이었는데 이 사람마저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천하를 잃게 된 걸세.” 유방이 ‘인걸’이라고 평했던 세 사람은 모두 공로가 하늘을 덮었지만, 이후 유방이 이들을 대한 방식은 전혀 달랐다. 삼걸 중에서 유방은 한신에 대해서는 어떡하든 전혀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소하에 대하여도 약간은 의심을 하였다. 그러나 장량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한신은 손에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나라를 공격한 후에 스스로 제왕에 봉해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제왕의 금기를 범했었으므로 유방이 그에 대하여 의심을 가진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소하는 유방과 같은 고향 사람이고, 관중에 자기의 세력이 있었으며, 민심을 깊이 얻고 있었으므로 유방이 그에 대해 마음을 놓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장량은 유방의 신변에 있었고, 명리에 담백하였으므로 유방이 그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장량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었으므로 소하처럼 측근 중에서 뿌리가 깊지 못했다. 이것이 아마도 이후 유방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삼걸을 처리한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장량의 처세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바로 한의 개국공신 서열이다. 수십 년간 한 고조 유방을 도와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공을 세운 부하들은 수백 명이 넘었다. 유방은 개국공신 서열 1위에 소하를, 2위에는 조참을 지명했다. 막강한 무공으로 항우와의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한신은 21위였다. 그렇다면 유방의 일등 책사로 유비에게는 제갈공명, 조조에게는 순욱, 항우에게는 범증과 같은 위치였던 장량의 서열은 몇 위였을까. 답은 62위다. 이 순위는 가히 장량의 처세술이 보통의 경지를 넘어 달인에 이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처치 곤란한 상태가 된다. 특히 뛰어난 솜씨를 보인 사냥개의 전투 습성을 주인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토사구팽의 주인공인 한신이다. 유방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후방의 모든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자금을 마련했던 소하 역시 개국공신 서열 1위에 올랐지만, 유방이 고조로 등극한 이후 많은 고초를 겪었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자주 궁을 비웠던 유방은 후방에 남아있는 소하마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하는 백성의 재물을 탐내 원성을 사기도 했고 사소한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유방으로 하여금 야심 없고 알량한 욕심이나 부리는 늙은이 소리를 일부러 들었다. 죽음에 임박한 고조가 국사를 담당할 대신들의 이름을 댈 때 장량은 제외되었다. 장량은 일찍이 고조가 천하를 평정하고 낙양에서 잠시 머물다가 장안으로 도읍을 옮겨지자 고조를 따라 관중으로 들어온 후부터 신선이 되기를 원하여 곡식을 끊고 있었다. 천하가 평정되어 조국 한나라에 대한 원수를 갚았으니 이제 물러나고 싶어했다. “원컨대 인간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놀려고 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듯이 그는 인간사에 미련이 없었다. 사실 고조는 천하를 차지한 뒤에도 장도 한신 한왕 신, 팽월 경포, 그리고 예외라고 인정했던 죽마지우 노관까지도 숙청했다. 심지어는 토벌군의 총사령관인 번쾌까지도 참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여황후의 오빠였다. 지모가 뛰어난 장량은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짐작하고 고조와 여후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논공행상이 있을 때 고조는 장량의 수훈을 인정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마음대로 제나라 땅에서 3만 호를 골라 가지라.” 그러자 장량은 “신이 하비에서 처음 일어나 폐하와 만났으니 이것은 하늘이 신을 폐하에게 주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신의 계책을 채용하시어 다행히 시운이 맞아 천하를 얻으신 것입니다. 신은 원컨대 유 땅에 봉해지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3만 호라는 말씀은 가당치도 않습니다.”라고 하여 인간 세상의 부귀와 공명에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장량은 “신은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일축하여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량은 숙청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왕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공신과 역적이 나누어지고 공신들조차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장량만은 무사했다. 장량 처세술의 기본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유방에게는 이른바 ‘패 마피아’가 있었다. 소하, 조참, 주발 등 유방의 이른바 고향 친구이자 동생들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한 집단들이었다. 이들과 적이 된다는 것은 바로 유방에게 찍히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이들 마피아의 힘은 대단했다. 한신과 팽월 등 모든 장수들이 이들과 갈등을 일으켰지만 ,장량은 단 한 번도 이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장량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모든 인간관계나 처세의 기본은 바로 방원(方圓)이다. 즉 모나지만 결코 모나지 않게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모가 있는 사각 모양의 테를 수십 개를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덧 그것의 전체 모양이 둥글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을 사는 이치인 것이다.”장량의 사당 한쪽 바위에는 ‘성공불거(成功不居·성공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와 ‘지지(知止·자기의 본분을 알고 멈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경계하는 말로 우리에게 멈춤과 물러남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벼랑 끝에 섰다. 이 대표는 대장동 사태를 검찰의 정치공작이라고 강변하지만, 각종 인적 물적 증거는 이 대표를 가리킨다. 이 대표는 대장동 범죄로 서민 재산을 약탈해 사욕을 채웠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각종 범죄 의혹으로 전천후 압박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100일 메시지로 “가장 이재명다운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공식 기자회견은 취소한 채 내놓은 메시지치고는 생뚱맞기 그지없다. 이재명다움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이재명 삶에서 자기를 희생해 남을 위한 행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시킨 행적은 수두룩하다. 이재명다움은 몰라도 ‘이재명스럽다’는 말은 회자된 지 오래다. 의롭지 못한 채 부귀를 누림은 뜬구름 같다고 했다. 노자는 난세를 살아가는 인간의 처신을 이렇게 가르쳤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 채움과 멈춤을 알면 욕됨과 위태로움을 피한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끝이 불행하다. 김지민 기자한고조 유방 고조가 천하 이후 유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