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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향만리] 其爭也君子 <기쟁야군자>

잘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며 역사와 문화발전의 필수동력이기도 하다. 경쟁은 본래 나쁜 게 아니었다. 좋은 쪽, 잘하는 쪽을 가리는 아름다운 선택의 과정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경쟁이 시기와 질투, 모함과 배신으로 변질되고 방법마저 나빠지면서 ‘사회악’의 하나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즉에 이런 변질을 염려한 공자는 “군자는 다툴 일이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다툰다”라며 활쏘기를 사례로 예(禮)를 갖춘 군자의 아름다운 경쟁에 대해 설명하였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나라를 구할 만한 인재가 없기 때문이고, 인재가 없게 된 이유는 과거시험과 같은 인재선발제도가 화석화(化石化)한 경쟁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남 잡아 나 살기’라는 악성 경쟁은 교육을 망치고, 망가진 교육으로는 절대 인재다운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결국 나라가 위기에 처해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망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경쟁 마당인 대학입시가 군자다운 경쟁의 장이 되어 진정한 인재를 선발하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한다. 아름다운 경쟁이 나라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악성 경쟁 우리나라 최고 질투 모함

2023-07-23

[삶과 믿음] 노예생활과 주권 회복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스케이트를 타러 집 근처에 있는 아이스링크에 갔습니다.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데 친구들이 “야! 성낙수다”다 하며 어떤 건장한 청년에게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낙수가 누구냐고 친구에게 물어보았고, 그는 “성낙수는 아주 유명한 야구선수다” 말하며 그 친구는 황급히 그쪽으로 스케이트를 타고 갔습니다. 저도 왠지 그 유명 선수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케이트를 잘 못 타는 필자가 그 청년에게 가까이 갈 때는 이미 많은 어린이, 학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다들 유명 야구선수를 갑자기 본지라 사람들이 종이를 가지고 있었을리 없었고 친구들은 손바닥에 그의 사인을 받고 있었습니다. 필자도 손바닥에 사인을 받았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괜히 귀한 것을 받은 것 같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이 “이 사인은 아주 귀한 것이라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지워져서는 안 돼” 말했습니다. 필자도 그 사인이 지워질까 두려워 그 날 세수하기를 삼가며 다음날 그 유명 야구선수의 사인을 반 친구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실지 필자는 야구에 아무 관심도 없었고, 친구들의 반응도 하루가 지나자 신통치 않았고 이틀간 손을 씻지 않으니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필자의 유년시절 이야기지만 우리의 많은 삶의 모습이 이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나에게 있다기보다 주변 환경과 주위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주권’을 잃어버린 상태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선택하는 전공과 직장, 배우자 등을 보면 실지 내가 참으로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가치 있는것이라기보다, 우리의 판단과 선택 기준이 물질적 경쟁사회에서 이미 형성된 세속적 가치관에 바탕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뚜렷한 주관 없이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과 주변 환경에 의해 영향 또는 지배받으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노예생활’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소태산께서는 원불교를 열게 된 개교 동기를 다음으로 말씀하십니다.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오.”   노예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使役)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법적으로는 자유주의 국가에 살고 있지만, 우리 마음과 인생은 노예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휴가 가서도 일 걱정을 하며, 아이가 공부 못하면 더 잘하기를 원하며 염려하고, 공부 잘하면 더 잘해서 명문대에 가기를 바라고, 먹고 사는 것은 염려가 없는데 주변 인간관계로 괴로워하는 등 우리 마음은 이미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밧줄에 묶여있습니다- 과거 노예가 사슬로 묶여 있었던 것처럼. 내가 명예의 노예, 돈의 노예, 일확천금의 노예, 분노의 노예, 질투의 노예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거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 놓여 있을 때 주권을 찾는 일은 소수 독립운동가의 노력에 의존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 삶에서의 노예생활의 해방은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남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자기 스스로 ‘정신의 세력을 확장’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노예생활을 벗어나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 하라고 그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노예생활 주권 노예 생활 노예 일확천금 노예 질투

2022-09-22

[이 아침에] ‘질투는 나의 힘’

오래전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질투는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주인공이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다시 읽으며 이 영화가 기형도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가 기형도의 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검색해 보았다. 문학청년인 주인공은 사랑을 찾아, 사랑 없는 얼굴로 헤매고 있는 시속의 기형도 이미지로 가득했다. 여러 가지 결핍으로부터 생겨난 욕망에 허덕이는 서글픈 영상이 남아서인지, 기형도의 질투뿐이었다는 그의 희망의 내용과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마지막 구절이 새삼 먹먹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질투는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좋은 상황에 있을 때 미워하는 것을 뜻한다. 개인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나 두려움, 불안으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질투가 삶의 동력이나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는 정신건강 의학상의 의견도 있었는데, 종합해보니 적절한 감정 조절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의 감정에 휘둘리면 마음의 평안함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는 것과 마음의 평안 없는 행복이 드물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단어 질투, 그 반대말이 무얼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부러움, 선망, 동경, 아량, 존경, 무관심, 멸시, 무시 등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축하, 칭찬, 찬사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스스로 타인과의 비교에서 점점 멀어지고 내가 내 삶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더라’는 글이 마음에 진하게 와 닿았다.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질투의 반대말은 ‘컴패션(compassion):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하는 마음’이라는 구절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최근 내 친구들의 소박한 행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기쁨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따끈한 커피 한잔을 들고 뒷마당에 나갔는데 햇살이 어찌나 좋던지, 커피잔을 꼬옥 쥐며 자신도 모르게 ‘아 행복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종종 커피잔을 들고 나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며 행복감에 젖는다.     큰 사업가였던 두 번째 친구는 암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지속적인 항암 치료와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 오고 있다. 운동으로 골프를 시작했는데 그린 잔디 위에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아, 나 살아있구나’ 하는 감격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전율이 이는 듯 행복하다.     그다음 친구는 자기 자녀가 없는 대신에 이웃 친구 아이들을 챙기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는데 친구 아이들 가방 사주고 싶다며 이것저것 고를 때 신나 하는 표정이 오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친구들의 크고 작은 삶의 애로가 온전히 내 것이 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될 수 있는 오랜 인연에 감사하다. 컴패션, 그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있겠지만 행복의 길을 제시해 준 것은 확실하다. 평생 경쟁 속에서 질투하며 살아가는 관계는 드물다. 인연의 시야를 조금 넓혀 감정 조절에 애쓰면 그만한 가치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연희 / 시인이 아침에 질투 단어 질투 이웃 친구 최근 기형도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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