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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무너지는 도덕성 재건하자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도덕이란 사회적인 행위의 규준으로 자기의 행동이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고 타인의 입장에서 용납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고 정의했다. 도덕은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률과는 다르다.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 작용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의 양심이나 사회적 관습에 비추어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의범절, 바른 행동,덕과 악덕을 분간하는 것을 초등학교 때 부터 배우지 않았는가.   최근 한국의 어느 고속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20대 여성 승객이 좌석 등받이를 지나치게 뒤로 젖혀 뒷좌석의 시니어 승객이 “불편하니 조금만 등받이를 바로 세워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여성은 “내 돈 내고 내 마음대로 편하게 가려고 하는데 무슨 참견이냐”며 불편하면 자가용 타고 가면 될 거 아니냐며 오히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시니어 승객이 “이봐요, 내가 좀 불편해서 그래요. 너는 부모도 없냐”고 말을 하니 20대 여성은 “너도 부모가 없냐”고 반말을 하며 막무가내로 화를 냈다고 한다.   보다 못한 버스 기사가 와서 그 20대 여성에게 정중하게 등받이를 조금만 세워 줄 수 없겠냐고 부탁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운전기사는 시니어 승객을 다른 좌석으로 안내하는 것으로 소동은 일단락이 됐다고 한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유가 보장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 권리가 중요하면 남의 권리도 존중 할 줄 알아야 한다. 도대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자유가 지나치면 방종이 된다. 자유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쟁취할 수 있는 귀한 것이다.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우선 도덕이 앞서야 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 하는 태도로는 절대 자유를 누릴 수 없고 무너져가는 도덕을 재건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좋은 변화야 바람직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회는 복잡해지고 정치·경제·문화·언론 등 각 분야에 거짓·위선·부정·침묵·조작, 악과의 타협이 판을 치고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특히 정치인은 돈으로 권력을 사는 것이 아니다. 높은 도덕성을 갖추고 봉사하는 자세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하지 않았던가. 갈수록 무너져 가는 도덕을 어디서부터 재건할 것인가.   사회 지도층은 물론 일반 시민도 실종된 도덕성을 하루빨리 되찾아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백인호 / 송강문화선양회 미주회장열린광장 도덕성 재건 시니어 승객 여성 승객 사회 지도층

2023-10-24

[발언대] 영감님들의 말싸움

‘영감님’은 남성 시니어에 대한 존칭어다. ‘영감’이란 말은 조선시대에는 종2품과 정3품 사이의 고위직을 칭하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차관급의 고위직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법관, 고위 공무원 등 직위가 높은 사람을 칭하는 말로도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국회의원들도 당연히 ‘영감님’ 소리를 들을만 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젊었을 때 경찰들이 젊은 검사를 “영감님, 영감님”하며 불렀던 기억이 난다.   국회의원 중에는 나이가 많은 분도 있지만 거의 젊은 영감님들이다. 이 영감님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데 언론 매체나 유튜브 등에 소개되는 그들의 활동 모습을 보면  허구한 날 말싸움이다. 질문하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 얼굴에 미소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미움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도전적인  말투로 대화가 오고 간다. 저래서 어떻게 정답을 찾을 수가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그러다가 때로는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국민을 위한 정답이 아니고 서로 이기려고만 할 뿐 양보하는 모습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급급하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내 의견을 살펴보지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을 높여 주는 자세는 커녕 깎아내리려고만 한다. 품격 있는 토론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자기 의견을 관철하려는 의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모든 정책의 결론은 국민을 위한 관점에서 찾아야 하는데 편견과 선입견, 주관적인 판단으로 예단하며, 감정적인 자기주장이 강하다 보니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열린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 판단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안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논리적 과정을 통해 정책을 결정한다면 영감님들의 말싸움을 누가 탓하겠는가.   1965년 6월 한일협정이 체결됐다. 청구권 자금으로 1970년 포항종합제철이 착공되었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어 5년 후엔 현대의 포니가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지 않았던가.   오늘의 한국은 많은 의견과 반대를 통해 정답을 찾으면서 이뤄졌다. 말싸움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위정자들은 미래를 보고 판단하고 가야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자. 말싸움으로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진실이 아니다. 지도층 영감님들은 웃는 모습으로 질문하고 오가는 대화에서 진실을 찾고 허위와 부정을 가려내야 한다. 편안한 정치를 통해 국민에게 편안한 삶의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백인호 / 송강문화선양회 미주회장발언대 말싸움 영감 지도층 영감님들 영감님 영감님 한국 국회의원들

2023-09-13

[김형석의 100년 산책] 정치인들의 저급 발언, 우리에게 과연 지도층은 있나

최근의 일이다. 내 제자인 고려대 정치학과 한배호 교수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20세기 초반에 미국은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국가와 정신의 놀라운 발전을 성취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럽에서 많은 인재가 망명 또는 이주해 온 것이 원인이라는 설명이었다. 독일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해 온 정신계의 지도자들, 소련의 공산정권을 수용할 수 없어 아메리카로 국적을 옳긴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미국을 일으킨 유럽의 석학들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초반에 미국에 갔을 때도 그랬다.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대학들은 유럽의 교수들을 받아들였고, 과학계·종교계의 지도자들도 다수 이주해 왔다. 시카고대 M 엘리아데 교수를 따라 유럽에서 유학 온 대학원생도 있었다. 하버드대 P 틸리히 교수도 내가 직접 수강한 석학이다. 또 프린스턴에는 아인슈타인이 있었다. 그들이 아메리카의 지성인과 협력해 키워 준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나는 규모는 작고 성격은 차이 있을지 모르나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해방과 더불어 북한이 공산 치하가 되면서 북한의 지성인과 지도층 인사가 대부분 탈출 남하했다. 종교계 지도자들, 기업인과 부유층 사람들, 자유를 지키려는 교육자, 반공세력 인사로 낙인 찍힌 사람들 모두 남하했다. 6·25를 치르면서 더 많은 탈북자가 대한민국의 품 안으로 피신해 왔다. 대한민국은 그들을 환대했다. 그들과 힘을 합쳐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그와 반대로 사회주의 정권을 지지해 북으로 갔던 좌파 지식인 대부분은 북에서 버림을 받았거나 정치적 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나 같은 세대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수없이 체험했고, 또 보아왔다. 현재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남북 간의 격차가 여실히 보여준다. 창조적 지성인의 역할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증거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나라마다 인재 양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후진국일수록 더욱 그렇다. 한때 인도의 중산층 이상 자제들은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내가 20대 초반에 일본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 당시 우리는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사람이 미국 유학을 갔는데, 일본의 많은 젊은이는 유럽과 미국에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중국도 인재 육성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많은 학생을 보냈다.   유럽이 미국을 추월 못 하는 까닭   최근에는 국내 대학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글로벌 대학 경쟁에서 앞서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세계 100대 대학, 국내 대학의 순위를 선정·발표하는 것도 같은 목적에서다. 일본은 이미 성공한 편이다. 중국도 국가적인 노력을 쏟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노무현 정부 때 교육자문을 맡았던 한 원로교수의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실망한 적이 있다. “중고교 평준화는 성공한 셈이다. 남은 과제는 국립대 평준화이고 사립대 평준화까지 성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교육계의 후진성이 경제나 정치보다 심각해 보였다.   그런 교육정책을 가진 일부 좌파계열이 교육계에 아직 남아 있다. 여건이 된다면 그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 문제를 국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소주성’ 정책과 병행하는 가치관이다. 후배 교수들로부터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150년 전에만 해도 미국문화가 유럽 정신계를 따라갈 수 없다고 인정했는데, 지금은 100년이 걸려도 영국·독일·프랑스가 미국을 넘어서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유럽 국가들이 대학 경쟁에서 미국에 뒤졌다는 사실을 보고 느낀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학정책은 어떻게 되고 있으며 대학들은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경쟁에서 뒤지는 나라는 국가적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소중한 과제가 있다. 한 사회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적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인구 비례에 걸맞은 지도층이 있어야 하고, 국민의 60% 정도는 중산층 내지 정신적 중견층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내가 지도층에 진입하거나 그 자격을 갖는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지도층이 아직 형성되지 못했다. 미국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수, 의사, 판검사와 변호사, 군의 대령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 등이 지도급에 속하며 또 될 수 있다고 자타가 인정한다.   사회윤리 함양과 선진국 질서   세계적으로 군 출신이 국민의 편견 없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령에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방대학원 과정에는 군사 문제보다 사회윤리와 민주주의, 지도자의 자질 등이 중요 부분을 차지한다. 또 내가 지도자 계층에 속한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법적 규정보다 선진국의 윤리관과 질서의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자적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지도층의 정신과 가치관, 사회적 자질과 의무는 생각지 않는다. 정부 차관이 낮에 음주운전을 하고 기사를 폭행했다면 법보다도 질서 범죄로 사회가 용납할 수 없다. 공직자들이 거짓과 허위에 죄책감 없이 동참한다. 원전사태와 4대강 보 철거 문제에서 드러난 현상을 보면서 장관이나 국영기업체 책임자들까지도 지도자의 품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의 수준 이하의 발언이나 정책과 무관한 저급 발언에 접할 때는 상식도 갖추지 못하고 질서의식도 부족한 처사의 주인공 같아 보인다.   지도자 의식과 품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일류대를 나온 것과 상관이 없다. 국가고시가 그것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지도자의 자질과 인격을 갖추었다고 믿을 수 있는 지도층이 시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도자다운 인격과 자질·유능성을 겸비하는 지도층 형성이 아쉬운 현실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지도층 정치인 지도층 인사 종교계 지도자들 지도자들 소련

2022-12-16

[열린 광장] 팔로워십

‘리더(지도자)’라는 말은 자주 접하게 되는데 비해 그에 대척되는 전통적인 의미의  ‘팔로워(follower)’라는 말은 비교적 낯선 편이다. 팔로워를 ‘추종자’라고 옮겨 보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팔로워라고 하겠다. 굳이 풀이하자면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의 자세(태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팔로워십은 인간의 대뇌에 내장돼 있다는 것이 실험 결과 밝혀졌다. 일단의 사람들에게 어떤 과제를 제시하면, 그들은 우선 팀을 이끌 리더부터 찾는다는 것이다. 나보다 유능한 사람의 판단에 따르려는 팔로워십은 생존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강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수직적 지도자상이 떠올랐지만, 오늘날에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뀌었다. 카리스마보다는 협동심이 강조되는 것이다.       팔로워 없는 리더란 존재할 수 없다. 팔로워와 리더의 관계는 서로 의존하는 상응 관계에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지휘자 사이에 상호 신뢰와 협조가 필요하듯이 팔로워와 리더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조직의 업무 수행에 협력하고 고도의 협동 정신으로 조직 내의 결속을 이룩한다는 점에서는 리더와 팔로워의 목표가 일치한다.     무조건적인 복종만이 강요되는 독재체재(Despotism)하에서의 그것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민주 사회에서 리더라는 위치는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건설적인 비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꾸기보다는 상대방을 바꾸고자 한다. 훌륭한 리더 뒤에는 언제나 유능하고 효율적인 팔로워가 있다.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성숙한 시민 정신은, 리더나 팔로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겠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이에 충실한가를 보면 그 사회의 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개인의 영달을 뒤로하고 솔선수범할 줄 아는 리더를 사람들은 따르게 마련이다. 큰 지도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도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급조되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나 다 리더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조선시대에는 고고한 학자풍의 면모를 귀히 여겨 지도층의 청렴과 지조를 중시한 나머지 편협하고 융통성이 결여된 선비들의 아집이 당파 싸움과 어울려 나라의 앞날을 어지럽힌 아픈 역사를 남겨 놓았다. 오늘의 민주 사회는 비전과 능력에 더하여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정직하고 겸손한 덕목을 갖춘 리더를 필요로 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한 조직의 구성원이다. 지도층 아니면 팔로워 중의 하나 일 수 밖에 없다. 조직의 성공을 위한 리더 한 사람의 기여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팔로워십의 힘(The Power of Followership)의 저자인 카네기 멜론 대학의 로버트 켈리에 의하면, 팔로워는 조직체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80%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팔로워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대적인 이유이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 광장 팔로워십 토요일 수평적 리더십 수직적 지도자상 사회 지도층

2022-10-26

[열린 광장] 팔로워십

‘리더(지도자)’라는 말은 자주 접하게 되는데 비해 그에 대척되는 전통적인 의미의  ‘팔로워(follower)’라는 말은 비교적 낯선 편이다. 팔로워를 ‘추종자’라고 옮겨 보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팔로워라고 하겠다. 굳이 풀이하자면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의 자세(태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팔로워십은 인간의 대뇌에 내장돼 있다는 것이 실험 결과 밝혀졌다. 일단의 사람들에게 어떤 과제를 제시하면, 그들은 우선 팀을 이끌 리더부터 찾는다는 것이다. 나보다 유능한 사람의 판단에 따르려는 팔로워십은 생존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강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수직적 지도자상이 떠올랐지만, 오늘날에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뀌었다. 카리스마보다는 협동심이 강조되는 것이다.       팔로워 없는 리더란 존재할 수 없다. 팔로워와 리더의 관계는 서로 의존하는 상응 관계에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지휘자 사이에 상호 신뢰와 협조가 필요하듯이 팔로워와 리더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조직의 업무 수행에 협력하고 고도의 협동 정신으로 조직 내의 결속을 이룩한다는 점에서는 리더와 팔로워의 목표가 일치한다.     무조건적인 복종만이 강요되는 독재체재(Despotism)하에서의 그것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민주 사회에서 리더라는 위치는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건설적인 비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꾸기보다는 상대방을 바꾸고자 한다. 훌륭한 리더 뒤에는 언제나 유능하고 효율적인 팔로워가 있다.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성숙한 시민 정신은, 리더나 팔로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노블레스.오블리즈(Noblesse Oblige)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겠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이에 충실한가를 보면 그 사회의 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개인의 영달을 뒤로하고 솔선수범할 줄 아는 리더를 사람들은 따르게 마련이다. 큰 지도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도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급조되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나 다 리더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조선시대에는 고고한 학자풍의 면모를 귀히 여겨 지도층의 청렴과 지조를 중시한 나머지 편협하고 융통성이 결여된 선비들의 아집이 당파 싸움과 어울려 나라의 앞날을 어지럽힌 아픈 역사를 남겨 놓았다. 오늘의 민주 사회는 비전과 능력에 더하여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정직하고 겸손한 덕목을 갖춘 리더를 필요로 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한 조직의 구성원이다. 지도층 아니면 팔로워 중의 하나 일 수 밖에 없다. 조직의 성공을 위한 리더 한 사람의 기여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팔로워십의 힘(The Power of Followership)의 저자인 카네기 멜론 대학의 로버트 켈리에 의하면, 팔로워는 조직체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80%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팔로워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대적인 이유이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 광장 팔로워십 수평적 리더십 사회 지도층 수직적 지도자상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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