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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에 ‘정치영화’ 열풍…이념 따라 선호 갈려

  남가주 지역 한인 극장가에 한국 역사와 관련한 정치 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열풍 이면에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보이지 않던 갈등도 드러나고 있다. CGV LA, 부에나파크 지점 등에는 최근 ‘건국전쟁’, ‘길 위에 김대중’, ‘서울의 봄’ 등 한국 근대사를 그려낸 정치 영화가 잇따라 개봉했다. 정치 관련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스크린에 걸린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먼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CGV에 따르면 지난 16일 남가주 지역에서 정식 개봉한 건국전쟁은 상영관마다 전석 매진되고 있다. 국가원로회의 서부지부(상임의장 김향로)의 경우 지난 20일 CGV LA에서 각계 원로 80명을 초청, 건국전쟁을 단체로 관람했다.   이 단체 최만규 사무처장은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부분이 많았다”며 “영화가 끝나고 대부분의 관객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본지가 21일 CGV LA 측에 문의한 결과 이날 영화 티켓 역시 모두 매진됐다. 이날 극장 앞에는 평일임에도 표를 구하지 못한 한인 수십명이 아쉬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정균(59·LA)씨는 “온라인에서 표를 구할 수 없어 혹시나 하고 극장에 직접 왔는데 역시 매진이었다”며 “다른 정치 영화들은 표가 많이 남아있는데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현재 소셜미디어(SNS)에는 인증 사진, 후기 등을 적은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영화를 관람했다는 인증 차원을 넘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일종의 ‘커밍아웃’과 같다.   진영훈(37·어바인)씨는 “SNS에 건국전쟁 티켓 사진을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를 끊어버리거나 시비를 거는 이들도 있더라”며 “그들도 다른 정치 성향의 영화를 보고 인증샷을 올리면서 왜 남이 올린 걸 보고 불편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들은 정치적 색채가 짙어 이념적으로 관람객 성향이 확연하게 갈린다. 쉽게 말해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각기 선호하는 영화가 다르다.   12·12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 김대중의 일대기를 기록한 ‘길 위에 김대중’은 대체로 보수 성향을 가진 건국전쟁 관객층과 겹칠 일은 거의 없다. 이미 지난해 12월 LA에서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의 경우 한동안 만석을 이뤘다.   재정 전문가이자 문화 평론가로 활동 중인 문선영(와이즈캘리포니아 대표)씨는 네 번에 걸쳐 CGV LA에서 서울의 봄 상영회를 진행했었다. 당시 600명 이상의 한인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문 대표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성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건국전쟁은 안 봤다”며 “지금은 사실상 ‘이념 전쟁’으로 봐야 하는데 그만큼 사회가 불안정한 것이 영화를 통해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해석도 분분하다. 그만큼 첨예한 이념적 갈등을 보여준다.   일사회 박철웅 회장은 “영화 건국전쟁은 잘못된 한국사를 정립하는 이정표”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UCLA 옥성득 교수(한국기독교학)는 SNS에 ‘이승만 미화 지나치면 독’이라는 글을 게재하며 “이승만 신화 작업이 지나치다”라고 지적했다.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김성원 대표(그라운드 C)는 서울의 봄에 대해 “허구가 많은데 사람들은 거기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한 정치 선동 영화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영화 건국전쟁의 누적 관객 수가 79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유명 가수 나얼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건국전쟁 포스터를 게재했다가 악성 댓글 등 비난에 시달리면서 결국 댓글 창을 폐쇄하기도 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건국전쟁 서울의봄 길위에김대중 보수 진보 CGV 장열 미주중앙일보 로스앤젤레스 LA 이승만 전두환 좌파 우파

2024-02-21

[김형석의 100년 산책] 절대 ‘꼰대 할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꼰대’라는 말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예전에 나이 든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E군의 조부 얘기를 소개했을 때였다. 강연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손자 결혼에 반대한 할아버지   E군은 대학을 끝내고 군에 입대하면서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약속했다. 자기가 군에서 제대하고 여친도 대학을 졸업하면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고 결혼하기로 했다. 그 뜻이 이루어져 두 젊은이는 인생의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 남은 문제는 E군 할아버지의 허락이었다. 할아버지는 E군이 장손이고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여서 두 가지 문제만 없으면 결혼하라고 했다. 우선 사주가 좋아야 하고, 또 우리 가문을 위해서라도 상대방이 천민 직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조건이었다.   다행히 사주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상대방 집안도 명문가인데 양가 선조들이 한양에 살았을 때 서로 원수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놈의 집안과는 혼인을 맺을 수 없다. E군 증조할아버지가 유언까지 남겼다는 것이다. 그런 사태에 직면한 E군 부친은 고민에 빠졌다. 생각 끝에 E군 여친 아버지를 찾아가 양해를 얻었다. 할아버지 연세가 높으시니까 아들·딸들의 장래를 위해 좀 기다리기로 하자는 합의였다.   극단적 이념대립의 부작용   이런 얘기를 끝냈는데 내 강연을 들은 몇 사람이 ‘그런 꼰대 할아버지’가 아직도 있을까, 라면서 웃음 반, 걱정 반이었다. 나는 속으로 가정을 위해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꼰대 기성세대’가 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부터 한동안은 ‘꼰대’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이 유행했다. 꼰대 상사를 모시고 일하는 부하들, 생각과 사고방식에 융통성 없는 지도자들, 뜻밖에도 꼰대가 없는 사회를 책임져야 할 일부 종교계 지도자들까지도 정신적 꼰대를 면치 못하는 사례가 떠올랐다.     종교 국가라고 볼 수 있는 인도나 중동지역에 가면 그런 현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치적 꼰대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극단적인 보수 진영이나 좌파 정치인들 대부분이 그렇다.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극렬한 정치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그 꼰대 정신을 정치적 수단이나 상품화하기도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일관계도 그렇다. 두 민족이 불행했던 과거의 원한과 적개심을 다 해결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우호 관계나 친일외교를 할 수 있느냐고 국민을 선동한다. 개인 간에서도 원수는 끝까지 갚아야 하고,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편 가르기를 하는 사고방식을 극복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와 젊은 세대 장래를 누가 책임지겠는가.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21세기   나같이 일제강점기를 산 사람은 ‘꼰대 관념’을 벗어나기 힘들어도 해방 이후에 태어난 세대부터는 국민 장래를 위해서라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세대도 아니고, 공산주의 사회라면 몰라도 21세기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세계사의 희망을 위해서라도 반(反)사회, 반(反)역사적인 꼰대 정신은 극복해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이 일본의 아베 정권과 우리 문재인 정부 때를 연장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이유이다.   그런데 예상 못 했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꼰대라는 말은 줄어들고 있는데 새로운 꼰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한때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인 ‘노사모’가 생겼고, ‘박사모’가 박근혜를 지지하기도 했다. 좋은 일은 아니나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문빠’가 등장하고 ‘개딸’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새로운 ‘젊은 꼰대’가 사회의 혼란과 폐습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국민 다수가 ‘내로남불’이 되니까 무감각한 사회병이 되었는데, 지금은 꼰대 정신이 더 넓게 번지는 것 같다. 공산사회에서 흔히 보던 현상이고 독재정권이 조작해 정치 수단으로 삼았던 나라병을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꼰대 할아버지’는 자연히 사라지겠지만 꼰대 정치 세력은 앞으로도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걱정하는 젊은 세대의 꼰대들은 관념의 한계를 넘어 행동화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꼰대가 깡패 행태까지 겸하게 되면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조성한다. 정치 지도자들까지 그런 꼰대 정신, 폭력 의지를 수용하면 국가적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히틀러가 그랬고 마오쩌둥(毛澤東)도 같은 길을 따르지 않았는가.   폐쇄적 사회는 오래가지 못해   우리가 지향하는 21세기는 두 가지 주어진 목표가 있다. 자유를 각자가 누리면서도 윤리적 가치가 유지되는 사회, 인간적 가치가 인간애의 정신으로 공존이 존중시되는 세계 역사의 길이다. 고정관념이나 집단적 이기적 절대가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꼰대 정신이 지배하는 국가와 사회는 그 폐쇄적 사고와 가치관 때문에 스스로 종말을 자초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애국심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선한 가치와 질서를 창조 육성하며, 휴머니즘을 존중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책임이다. 보편적 가치를 역행하는 노동운동, 역사적 진실을 왜곡시키는 정치적 목적의식, 인간의 가치와 생명력을 훼손하는 허위와 위선 모두가 꼰대 정신과 연결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죄악을 범해서는 안 된다. 진실·자유·인간애는 자유민주 정신의 근원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할아버지 사회 e군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연세 좌파 정치인들

2023-06-23

[시론] 진영 싸움에 빠진 ‘리튼하우스 재판’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에게 총을 쏴 2명을 숨지게 한 카일 리튼하우스가 무죄 평결을 받았다. 평결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한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무죄가 되면 시위 때마다 총기를 든 남성이 자경단이란 이름으로 설치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고 유죄이면 그를 순교자로 내세워 연방정부에 대한 저항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의 활성화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뭉치고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가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극심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백신접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진영 싸움 속에 리튼하우스 평결이 양진영 간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시위대에 맞서 자경단으로 참가한 당시 17세 소년 카일 리튼하우스는 총기로 두 명을 죽이고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사건 전말과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 분명 그에게는 정당방위로 총을 쐈다는 방어논리가 탄탄하게 있다. 단순히 진보적인 주류언론의 보도만 보면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난사한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한 범죄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리튼하우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의 당시 의중이나 동기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 그의 당일 행동은 정당방위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크다. 그가 백인이고 총기소지를 했다는 것외에는 백인우월주의 단체에 연결됐거나 백인우월주의라는 어떤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다.       법정에서 판사는 검찰 측에 피해자란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 배심원이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한 적당한 지시였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판사의 편향성이 드러난 대표적인 예라며 판사를 비난했다.     배심원 재판에서는 법 논리도 중요하지만 흔히 배심원에게 동정심을 더 받는 쪽이 승소한다고 한다. 양복 차림으로 출두한 리튼하우스는 이웃집 착한 소년 인상이었다. 그의 증언은 앞뒤가 일관됐던 반면 그의 총기에 피해를 입은 측은 리튼하우스만큼 동정을 받기가 어려워보였다.     첫번째 인물은 전과와 정신병 전력도 있었고 사건 당일 정신병원에서 나온 상태로 시위현장에 간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는 리튼하우스를 향해 검은색 비닐봉지를 집어던지고 도망가는 리튼하우스를 향해 쫓아가다가 총을 수발 맞았다.     두번째 인물은 리튼하우스를 향해 갖고 있던 스캐이트보드를 던졌고 리튼하우스의 총기를 뺏으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이때 리튼하우스가 쏜 총으로 사망한다.     세번째 인물은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리튼하우스를 향해 총을 겨눴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다. 리튼하우스는 그를 향해 총을 쏘았고 팔에 중상을 입혔다.     배심원은 리튼하우스의 정당방위를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이 같은 객관적 진실은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좌파 진영에게 리튼하우스는 정당방위와 상관없이 이미 처음부터 유죄였다. 사망자 모두가 백인이라 재판 결과 불복이 심하지 않을 것으로는 예상된다.     리튼하우스를 영웅시하는 보수우파의 움직임도 문제가 있다. 연방의원 인턴자리까지 제안했다. 선거 출마도 부추긴다.  리튼하우스는 온라인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단지 자기 생명과 안전을 위해 총을 사용했을 뿐이다.     리튼하우스 재판의 정치적 해석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17세 소년이 반자동소총인 AR-15을 들고 거리를 활보할 때 치안당국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윤상 / 변호사시론 진영 재판 배심원 재판 재판 과정 좌파 진영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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