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하루를 열며] 이렇게 좋은 날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들판이며 나무들이 보드라운 바람에 흔들거린다.   파아란 하늘에서는 햇볕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발밑에는 얼마든지 있는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보랏빛 제비꽃, 노란 민들레, 이름도 알 수 없는 배꽃을 닮은 흰색의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날, 누가 슬프다더냐. 누가 얼굴에 근심을 담을 수 있다더냐. 하늘은 모두에게 공평한 은혜를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도 배고프지 않고, 아무도 고독하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행복한 기분 좋은 날이 될 것이다. 빈 가지에  뾰족뾰족 아기 손가락 같은 잎을 열어 성글었던 가지를 초록으로 채워가고 있는 나무들은 점점 배태(胚胎)한 여인을 닮아간다.     청둥오리 한 쌍, 잔잔한 강물 위에 부채 물살을 그리며 나간다. 비단결 같은 머리를 곱게 빗어 내린 숫오리의 머리털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담청색으로 보였다가 담녹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강가의 풀들은 더 신이 난 듯 내려 비추는 햇살을 향해 큰 웃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공원 펜스의 철망을 들락이며 놀고 있는, 참새보다도 몸집이 작은 가슴에 노오란 털을 가진 새가 얼마나 예쁜지 얼른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쪽쪽거리는 그의 지저귐 소리도 곱고 귀엽다. 어쩌면 세상은 이리도 아름다울까? 이 기묘한 자연을 어찌 다 알겠는가. 봄을 수 십번을 지나왔는데도 나는 아직 신기하고 놀라운 자연의 경이로운  섭리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아이, 젊은이, 노인들 모두 생명력 가득한 들로 나가자. 찬 겨울 어두움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나는 봄의 정기를 몸속 가득히 불어넣자. 그동안 집에 갇혀 움츠렸던 뼈마디 쭉 펴보고 휘휘 팔도 저어보자. 초록 바람 핑계 대고 뺨을 후려치고 달아나는 머리카락이 장난을 건다. 온통 새것들의 비릿한 풀향기에 취해서 저 푸른 하늘 흰 구름 한 점 걷어다 덮고 들잠을 청해볼까?     이제 응달의 선뜻함이 가신 완연한 봄이다. 아침 일찍부터 햇살이 포근하게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공원으로 달려나가려던 참인데 마침 친구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이렇게 좋은 날엔 뭘 해야 할까요, 앉아있기도, 서 있기도 아까운 날이네요.” 오늘을 그렇게 표현한 그녀는 어쩌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주 행정명령이 시행된 지얼마 되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균이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공격해올지 모르는 두려운 시간이 먼 외계의 이야기처럼 까맣게 지나갔다. 목까지 조여드는 두려움을 느끼며 숨 한 번 크게 쉴 수 없었던 이 황당한 세월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끝날 수 있을까 하던 불안을 다행히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어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고통받았는지… 주변의 많은 사람의 억울할 만큼 슬픈 이야기들에 산 자들은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하늘은 인류의 그 아픔을 위로하듯 더없이 아름다운 봄을 열어주고 있다. 여기저기 봄나물도 눈에 띈다. 통통하게 살 오른 쑥 한 줌 뜯어다가 저녁에 쑥국을 끓여볼까? 오늘은 쑥국을 먹어야 내 몸이 몽땅 봄으로 채워질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날엔 봄 이야기 왁자한 들판으로 나가보자.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공원 펜스 보랏빛 제비꽃 카톡 메시지

2022-05-16

[살며 배우며] 제비꽃

  내 방 남향창문 앞 책상 위 제비꽃 화분에는 진보라 제비꽃들이 피어있다. 원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솟아오른 가느다란 꽃줄기 끝에 진보라 꽃이 피었다. 여러 장의 진보라 꽃들 한가운데 노란 꽃술이 있다. 진보라 제비꽃들을 가운데 두고 검푸른 잎사귀들이 아기 얼굴 받혀주는 여러 손바닥처럼 꽃을 받들고 있다. 뿌리에서 솟아오른 잎줄기 달린 타원형의 잎사귀들이 가운데 꽃들을 받들고 있다.        제비꽃은 몇 년째 같은 화분에서 살며, 제비꽃이 지고 나면 조금 후에 다시 꽃이 피고, 다시 꽃이 피어, 일 년에도 몇 번씩 계속 핀다. 아마도 방안의 온도가 일 년 내내 거의 일정한대다가 이곳 조지아의 겨울이 춥지도 않아 겨울에도 남향창문을 통해서 햇빛을 받는 시간이 길어서인 것 같다.      충청도 산골에서 중학교까지 살며 이른 봄 들과 산 양지바른 구석에서 제비꽃과 친했다. 철새인 제비가 봄이 되어 돌아올 때쯤이면 빈 들에도 봄을 알리는 첫 소식으로 제비꽃이 웃었다. 땅에서 솟은 이빨 쑤시게 같이 가느다란 줄기 끝에 자주색 꽃 한 송이가 고개를 옆으로 들고 나를 보면 웃었고, 그런 꽃송이들이 한 포기에 여러 개가 고개를 들고 옆을 바라보는 제비꽃, 그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소식이었고, 새싹들이 돋아나는 들판에서 눈길을 끄는 삼빡한 귀여운 인사였고, 죽었던 들판이 다시 살아나는 희망이었다.      난리 직후 고등학생 때 서울에 와서 대현동에서 사촌들과 바로 이웃이 되어 살며, 우리는 사촌 형제로서의 친근한 경험을 난생처음으로 만들어 갈 때, 사촌 동생과이른 봄에 와우산과 인왕산을 쏘다니며 제비꽃을 보고 귀여운 사촌 누이동생금순이 같다며 반가워했던 추억이 있다.     제비가 돌아오는 이른 봄에 피는 꽃이라 제비꽃이라고도 불리고, 옛날 춘궁기면 중국 오랑캐들이 침범해서 양식을 약탈하는 계절에 핀다고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 꽃, 나 같은 촌 아이가 좋아했던 작은 풀꽃이, 알고 보니, 세계 각국에도 다양하게 퍼져있고 제비꽃에 대한 신화와 시와 노래도 많음을 늦게야 알았다.     제비꽃에 대한 많은 시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해인 시인의 ‘제비꽃 연가’를 소개한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 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 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 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 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제비꽃에 얽힌 많은 신화 중에 그리스 신화 하나를 소개한다. ‘이아’라는 이름의 예쁜 소녀와 ‘아티스’라는 양치기 목동은 사랑에 빠졌다. 양치기 목동을 귀여워한 미의 여신 비너스가 아들 큐피드에게 화살을 쏘게 했다. 소녀에겐 사랑의 화살을, 목동에게 사랑을 잊는 납 화살을 쏘게 했다. 소녀는 목동을 찾아가도 또 찾아가도 목동은 납처럼 냉담했다. 목동만을 사랑하며 괴로워하던 소녀는 그리움만 가슴에 안고 죽었다. 비너스는 소녀를 제비꽃으로 만들었다. 소녀 이름을 딴 꽃 이름 ‘이오’ 가 그리스어로는 비올라, 유럽에서는 바이올렛으로 불린다.      내방의 제비꽃 분은 몇 년 사이에 없던 줄기가 손톱만큼 생기고 줄기 곁에서 새로 꽃줄기와 잎줄기가 생겨, 그것들을 잘라 다른 화분에 심었더니, 독립된 제비꽃으로 잘 자랐다. 줄기 달린 잎을 잘라 젖은 화분 흙에 꽂아두거나 물컵에 넣어 한두 달 두면 뿌리가 나서 새 식물이 된다고 한다. 배양토를 사다가 써서 그런지 거름이나 비료는 전혀 쓰지 않아도 물만 주면 제비꽃은 잘 자란다.      겸손과 성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진보라 제비꽃을 기르며 매일 가까이서 보니, 방 안 공기 중에 산소와 습도도 공급하고, 이해인의 시처럼, 헤프지 않은 웃음도 주고, 감추어진 향기도 나며, 작은 꽃이지만 큰 기쁨도 주며, 비 오는 날에는 신비한 삶의 찬가를 들려준다.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살며 배우며 제비꽃 오하이오 제비꽃 화분 제비꽃 연가 제비꽃 그것

2021-10-22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