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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제비꽃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제비꽃

제비꽃

 
내 방 남향창문 앞 책상 위 제비꽃 화분에는 진보라 제비꽃들이 피어있다. 원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솟아오른 가느다란 꽃줄기 끝에 진보라 꽃이 피었다. 여러 장의 진보라 꽃들 한가운데 노란 꽃술이 있다. 진보라 제비꽃들을 가운데 두고 검푸른 잎사귀들이 아기 얼굴 받혀주는 여러 손바닥처럼 꽃을 받들고 있다. 뿌리에서 솟아오른 잎줄기 달린 타원형의 잎사귀들이 가운데 꽃들을 받들고 있다.     
 
제비꽃은 몇 년째 같은 화분에서 살며, 제비꽃이 지고 나면 조금 후에 다시 꽃이 피고, 다시 꽃이 피어, 일 년에도 몇 번씩 계속 핀다. 아마도 방안의 온도가 일 년 내내 거의 일정한대다가 이곳 조지아의 겨울이 춥지도 않아 겨울에도 남향창문을 통해서 햇빛을 받는 시간이 길어서인 것 같다.   
 
충청도 산골에서 중학교까지 살며 이른 봄 들과 산 양지바른 구석에서 제비꽃과 친했다. 철새인 제비가 봄이 되어 돌아올 때쯤이면 빈 들에도 봄을 알리는 첫 소식으로 제비꽃이 웃었다. 땅에서 솟은 이빨 쑤시게 같이 가느다란 줄기 끝에 자주색 꽃 한 송이가 고개를 옆으로 들고 나를 보면 웃었고, 그런 꽃송이들이 한 포기에 여러 개가 고개를 들고 옆을 바라보는 제비꽃, 그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소식이었고, 새싹들이 돋아나는 들판에서 눈길을 끄는 삼빡한 귀여운 인사였고, 죽었던 들판이 다시 살아나는 희망이었다.   
 
난리 직후 고등학생 때 서울에 와서 대현동에서 사촌들과 바로 이웃이 되어 살며, 우리는 사촌 형제로서의 친근한 경험을 난생처음으로 만들어 갈 때, 사촌 동생과이른 봄에 와우산과 인왕산을 쏘다니며 제비꽃을 보고 귀여운 사촌 누이동생금순이 같다며 반가워했던 추억이 있다.  


 
제비가 돌아오는 이른 봄에 피는 꽃이라 제비꽃이라고도 불리고, 옛날 춘궁기면 중국 오랑캐들이 침범해서 양식을 약탈하는 계절에 핀다고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 꽃, 나 같은 촌 아이가 좋아했던 작은 풀꽃이, 알고 보니, 세계 각국에도 다양하게 퍼져있고 제비꽃에 대한 신화와 시와 노래도 많음을 늦게야 알았다.  
 
제비꽃에 대한 많은 시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해인 시인의 ‘제비꽃 연가’를 소개한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 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 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 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 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제비꽃에 얽힌 많은 신화 중에 그리스 신화 하나를 소개한다. ‘이아’라는 이름의 예쁜 소녀와 ‘아티스’라는 양치기 목동은 사랑에 빠졌다. 양치기 목동을 귀여워한 미의 여신 비너스가 아들 큐피드에게 화살을 쏘게 했다. 소녀에겐 사랑의 화살을, 목동에게 사랑을 잊는 납 화살을 쏘게 했다. 소녀는 목동을 찾아가도 또 찾아가도 목동은 납처럼 냉담했다. 목동만을 사랑하며 괴로워하던 소녀는 그리움만 가슴에 안고 죽었다. 비너스는 소녀를 제비꽃으로 만들었다. 소녀 이름을 딴 꽃 이름 ‘이오’ 가 그리스어로는 비올라, 유럽에서는 바이올렛으로 불린다.   
 
내방의 제비꽃 분은 몇 년 사이에 없던 줄기가 손톱만큼 생기고 줄기 곁에서 새로 꽃줄기와 잎줄기가 생겨, 그것들을 잘라 다른 화분에 심었더니, 독립된 제비꽃으로 잘 자랐다. 줄기 달린 잎을 잘라 젖은 화분 흙에 꽂아두거나 물컵에 넣어 한두 달 두면 뿌리가 나서 새 식물이 된다고 한다. 배양토를 사다가 써서 그런지 거름이나 비료는 전혀 쓰지 않아도 물만 주면 제비꽃은 잘 자란다.   
 
겸손과 성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진보라 제비꽃을 기르며 매일 가까이서 보니, 방 안 공기 중에 산소와 습도도 공급하고, 이해인의 시처럼, 헤프지 않은 웃음도 주고, 감추어진 향기도 나며, 작은 꽃이지만 큰 기쁨도 주며, 비 오는 날에는 신비한 삶의 찬가를 들려준다.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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