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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왕비의 작은 놀이터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의 도시인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덕분에 음악에 대한 소양이 남달랐다. 특히 오페라를 좋아했는데, 당대에 유행하는 오페라는 거의 꿰뚫고 있었다. 프랑스로 시집을 온 이후에도 요즘 젊은이들이 유행가를 따라 부르듯이 늘 오페라 아리아를 흥얼거렸으며, 틈만 나면 베르사유에서 파리까지 오페라를 보러 가곤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궁정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음악만이 유일한 해방구였는데, 그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그녀는 베르사유 궁의 후미진 곳에 자신만의 도피처를 만들었다. 트리아농 근처에 오페라나 음악회를 열 수 있는 자신만의 작은 극장을 지은 것이다. 극장이 완성된 후, 그녀는 수시로 왕족이나 귀족들을 불러서 함께 놀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객석에 앉아 구경하는 것보다 직접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궁전의 과도한 호사스러움에 권태를 느낀 것일까? 무대 위에서는 허름한 옷을 입고 양치기 처녀나 하녀, 농촌 처녀를 연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녀뿐만 아니라 왕의 동생인 프로방스 백작도, 절친한 친구인 폴리냑 백작 부인도 모두 배우나 가수가 되어 무대에 섰다.   그렇다면 객석에는 누가 앉아 있었을까? 바로 하인들이었다. 하인들이 객석에 앉아 무대에서 자기들을 ‘연기하는’ 높으신 분들의 하인 놀이에 박수를 보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객석에 앉아있던 하인들은 하녀로 분장한 왕비가 무대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지금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왕비가 궁정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방식 그 자체가 허구이자 유희일 뿐이라는 것을.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놀이터 왕비 오페라 아리아 프랑스 궁정 하인 놀이

2024-12-16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타지마할, 영원한 사랑의 징표…인도

인구 14억의 거대한 나라 인도 하면 흔히들 요가, 명상, 힌두교, 카스트제도를 떠올리지만 이것들이 인도의 전부는 아니다. 아그라에는 수백 년간 아름다움을 간직해온 타지마할이 있다.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너무나도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하자 이를 추모해 궁전 형식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건축했다.   타지마할은 단순히 죽은 아내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만든 무덤이라기엔 지상 최고의 완벽미를 갖추고 있다. '이슬람 예술의 보석' '시공간을 초월한 완벽한 아름다움'이라 찬사 받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은 물론 외국의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전문 기술자들을 불러오고 무려 2만 명의 노동력을 동원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국고를 손실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어두운 면은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지만 타지마할이 전 세계 사람들이 손꼽는 꼭 한 번쯤 보고 싶은 랜드마크임엔 틀림없다.   심지어 샤 자한은 후세에 더 이상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중요 건축공과 기능공의 손목을 절단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이후 그 자신도 국고를 탕진했다는 이유로 둘째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아그라 성의 감옥에 유배됐다. 그 감옥은 타지마할과 지척에 위치해 있는데 샤 자한은 8년간 아내의 묘만 바라보며 살다가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 시대에도 역사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한 획을 그은 타지마할은 후세에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 1983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07년에는 세계의 경이적인 문화유산 7곳(피라미드, 만리장성, 콜로세움, 파르테논 신전, 에펠탑, 타지마할) 중 하나로 선정됐다.   타지마할은 양파 돔과 4개의 첨탑, 아치형 벽감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으며 흰 대리석 벽엔 마노, 홍옥, 백옥, 터키석 같은 아름다운 보석들이 장식돼 있다. 타지마할은 어느 방향에서 나누어도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네 개의 첨탑과 거대한 정사각 정원이 수로를 따라 또 네 개로 분리되고 수로 중심에는 물이 솟아나는 인공 연못이 조성돼 있다. 또한 타지마할은 일출과 일몰, 달이 뜨는 보름 등 시간에 따라 빛깔과 자태가 변한다. 이는 주요 자재로 사용된 대리석이 빛을 투과시키거나 굴절시키는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포인트는 1992년 영국 다이애나 왕비가 앉았던 '다이애나 의자'다.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 타지마할의 정원과 분수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기 가장 좋은 장소다. 타지마할에는 두 개의 관이 있는데, 가운데 뭄타즈 마할의 관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샤 자한의 관이 더 크게 안치되어 있다. 360도 돌면서 무덤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지마할의 외관보다도 그 속에 숨겨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더 관심을 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은 아내를 향한 샤 자한의 눈물겨운 세레나데야말로 타지마할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타지마할 영원 사랑 이야기 나라 인도 다이애나 왕비

2024-03-28

[열린광장] 11월에 생각나는 인물들

2023년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저 먼 곳에서는 오늘도 전쟁으로 하루에도 수 백명씩 목숨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     역사적으로 11월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프랑스의 유명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일이 11월 2일이다. 이 미모의 왕비는 경솔한 언행과 음모로 인해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앙투아네트는 왕세자와 결혼하고 이 왕세자가 국왕 루이 16세가 되자 곧바로 국정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왕비가 된 이후  두 번이나 혁명이 일어났고 왕비 자리에서 물러날 뻔한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국왕은 1793년 1월 21일에, 그리고 앙투아네트 왕비는 같은 해 10월16일 각각 처형되고 말았다.        반면 앙투아네트와 생일이 같은 미국의 제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는 지금도 존경받는 인물이다. 포크는 뛰어난 정치로 미국의 번영을 가져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제외하고 계획했던 모든 일을 가장 충실히 이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1796년 출생한 포크는 1825년 하원의원, 1835년엔 하원 의장에, 1839년엔 테네시 주지사,  그리고 184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선 5년 후인 1849년 세상을 떠났다.    11월에 생각나는 많은 프랑스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다. 그는 군인이요 정치가로서 프랑스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1890년 11월22일 태어났다. 드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네 차례나 다쳤고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본 방드루란 여성과 1921년에 결혼했다. 드골은 1958년에 시민전쟁이 일어날 뻔한 시기에 당시 대통령 르네 코티의 요청으로 새 정부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제5 공화국’이다.  드골은 1958년 12월에 새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1969년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1970년 11월 9일 영면했다.     참 세월은 얄궂기도 하다. 드골의 생일날이 미국의 유명 정치인이 세상을 떠난 날이니 말이다. 바로 미국의 제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1963년 11월22일 괴한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훌륭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인 43세에 당선된 인물이었다.     1917년 5월29일 뉴욕의 브클린에서 출생한 그는 1940년 하버드대를 졸업했으며, 해군 복무 후 연방하원의원, 연방상원의원을 거쳐 196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라.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인물 프랑스 인물 케네디 대통령 앙투아네트 왕비

2023-11-06

‘왕비(WANGBI)’, 한식의 새로운 기준점을 내놓다

뉴욕시 맨해튼의 ‘먹자골목’이라고 할 수 있는 미드타운 32스트리트.   그 거리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3층짜리 한식당으로, 수년째 미국 본토에서 한국의 맛을 제일 잘 재현한 식사류와 바비큐 구이 메뉴를 선보이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안토야 모던 코리안 BBQ(Antoya Modern Korean BBQ·이하 안토야)’.   유명 미디어인 ‘시크릿 NYC(Secret NYC, https://secretnyc.co/)’는 지난달 15일 ‘뉴욕시 일원 최고의 한국 BBQ 식당 10곳’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안토야를 가장 먼저 소개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슐랭 가이드 ‘빕 그루망’에도 선정된 안토야는 매일 새롭게 나오는 4가지 반찬과 젓갈 그리고 스페셜 요리까지, 가득 준비된 런치 한상 세트를 22~35달러의 파격적인 가격에 선보이며 또 한번 뉴요커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기세에 힘입어 안토야의 오너인 토니 박 대표는 한국의 전통을 더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셰프 카운터 레스토랑 ‘왕비(Wangbi.王妃)’를 안토야 식당 2층에 야심차게 새로 오픈한다.     모던함과 전통이 겸비된 인테리어에서부터 최상의 식재료까지, 12석이 준비된 왕비는 조선시대 수라상 음식을 모티브로 하여 7코스 요리를 138달러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왕비는 셰프들이 직접 담근 밑반찬 겉절이부터 메인 요리로 나오는 들깨사골수제비, 최고급 고기 구이류, 솥밥, 된장찌개 그리고 디저트까지, 모든 음식의 과정들이 손님 앞에서 이루어진다.   셰프 카운터를 맡는 셰프들의 리더인 김태우 수석(이그제큐티브) 셰프는 서울·호주·미국의 유명 식당에서 한국 음식에 관한 전문적인 경험을 쌓았는데, 뛰어난 리더십과 요리 개발, 메뉴 계획 등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음식 경험을 제공할 것을 자신하고 있다.   또한 왕비는 기존의 와인 페어링 대신, 한국음식에 좀 더 적합한 전통소주 페어링을 제공함으로써, 손님들에게 한국의 미(美)와 미(味)를 동시에 선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아름다움과 맛을 선사하는 왕비의 주류 프로그램 리더는 김경문 매스터 소믈리에(최고 주류 서비스 전문가로 전세계 247명 중 한 명)로, 김 소믈리에는 한국과 뉴욕의 ‘정식’ 레스토랑 등에서 최고 수준의 대 고객 주류 서비스를 제공해 온 경험을 갖고 있다.   왕비는 이러한 음식과 주류 분야의 최고 수준에 걸맞게 ▶셰프 카운터 옆에 소형 경복궁 모형(목조) 설치와 눈에 반사되지 않는 우아한 ‘알토(ALTO)’ 조명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식품명가 ‘안동제비원’의 간장과 된장 등 각종 장류 ▶한국 도자기의 고장 이천의 명가인 ‘토토공방’의 각종 도자기 용기 ▶한국 금속공예의 뛰어난 미와 실용성을 상징하는 방짜(유기) 그릇들을 사용하는 것도 각별하다.   왕비는 이를 통해 면면한 세월을 이어 온 한국의 정신, 왕가의 성찬, 그리고 뉴욕 식탁의 품격 상승까지, 귀한 손님들께 한국의 미(美)와 미(味)를 동시에 선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왕비 관련 정보는 웹사이트(wangbinyc.com) 참조.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왕비 안토야 레스토랑 2층 맨해튼 한식당 김태우 김경문 소믈리에

2023-09-14

[신 영웅전] 의연하게 죽은 마리 앙투아네트

남자가 몰락하는 길이 있듯이 여인에게도 몰락하는 길이 있다는데, 사치와 교만과 천박함이다. 천박함은 무시를 겪지만 책 좀 읽으면 극복되고, 교만은 따돌림을 받지만 종교나 수양을 쌓으면 탈색되지만, 사치는 참으로 벗기 어려운 비난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인류 역사에서 가장 과도하게 사치했다고 비난받는 여성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왕비의 16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나 프랑스 왕비가 됐으니 검소했더라도 사치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당시 농노들은 밭두렁에서 짐승처럼 뒹굴며 살 때 프랑스 귀족들은 산해진미를 즐기다가 중간에 토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다시 먹었으니,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앙투아네트 왕비가 34만8000프랑짜리 다이아몬드 귀고리를 샀는데, 그 값은 그 시절 파리 중산층 5000가구의 1년 생활비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음해한 귀족의 말을 스위스 출신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가 혁명을 합리화하려고 그대로 『고백록』에 기록한 것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독설을 퍼부었다는 말도 혁명파가 지어낸 낭설이다. 앙투아네트 왕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궁궐 안에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다친 농부를 치료해 주고, 빵공장을 세워줬다. 그런데도 프랑스혁명 와중에 국고 낭비, 부패, 오스트리아와의 결탁, 왕을 타락시킨 혐의, 백성 기만, 프랑스 멸망 시도, 전쟁 유발 등으로 기소됐다. 혁명에는 늘 누명이 필요했다. 프랑스인은 그를 ‘오스트리아 계집’이라 부르며 단두대에 세웠지만, 그는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앙투아네트 왕비는 단두대 계단을 올라가다가 형리의 발등을 밟자 정중하게 사과했다. 사제가 고해성사를 말하자 왕비는 “지은 죄가 없으니 고백할 것이 없다”고 대답하고 파리광장에서 의연히 죽었다. 왕비답게….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앙투아네트 의연 앙투아네트 왕비 프랑스혁명 와중 프랑스 왕비

2023-09-04

"나는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의 아들이다"

   최근 왕위에 오른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커밀라 파커 볼스 왕비가 자신의 친부모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나타났다.   영국과 호주의 일부 언론에 따르면 호주에 거주하는 올해 56세의 사이먼 도란트-데이(Simon Dorante-Day)라는 남성은 자신이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호주의 한 가정에 입양돼 성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란트-데이는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찰스 국왕과 커밀라 왕비는 일반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1965년에 처음으로 사귀었으며 이때 커밀라 왕비가 임신해 이듬해인 1966년에 자신이 출생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왕실의 지원과 보호로 생후 8개월까지 커밀라 왕비가 자신을 양육하지만 더 이상 키우기 힘든 상황을 맞으며 호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을 보냈다는 것이다.   입양된 가정의 부모는 캐런과 데이비드 데이 부부로서 이들의 부모이자 도란트-데이의 양조부모인 위니프레드와 어네스트 보울든은 두 사람 모두 영국 왕실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그의 부군인 필립 공을 위해 살림을 돌보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어네스트 보울든은 왕실봉사상을 받은 경력이 있을 정도로 충직한 신하였다. 왕실에서 이들 부부에게 도란트-데이의 입양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양조모가 그의 딸에게 부탁해 입양이 성사됐다는 것이다.   도란트-데이는 최근 찰스 국왕과 자신의 55세 때 사진을 비교할 수 있도록 언론과 SNS에 함께 공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영국 왕실 문제에 관심 있는 호사가들 중에는 두 사람이 상당히 닮았다는 의견이 많다. SNS 방문자들은 사진을 확인한 뒤 “당신의 아버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반응을 나타냈다.   도란트-데이 역시 스스로 이런 사진들이 자신과 찰스 3세 국왕과의 부자 관계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사진을 나에게 보내는 다수의 지지자와 팔로워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면서 “이들은 끊임 없이 나를 놀라게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검사, 즉 DNA 검사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DNA 검사에 앞서 이런 사진이 사람들에게 유전적 유사성을 구별하게 하는 한 중요한 방법이다”라면서 “명백히 나는 찰스∙커밀라 부부와 함께 DNA 검사를 받기 원하고 이를 위해 싸울 것이지만 법정에서 이를 확인하기까지는 기나긴 과정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도란트-데이는 자신이 찰스와 커밀라 부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단지 사진 비교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는 또 “나는 분별력 있고, 지성적이고 아주 존경받는 사람으로서 사랑스러운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이며 남편”이라고 말하고 “내 이야기가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말한 어떤 것도 확인 가능하다.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그들이 나의 가족임을 믿기 때문에 그들과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고 강조해 영국 왕실에 입성할 뜻을 강력히 내비치고 있다.   도란트-데이는 커밀라가 1965년 자신을 임신했을 당시 출산 때까지 약 9개월 동안 영국 사교계에서 사라져 있었고 찰스는 호주로 가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한 역사가는 도란트-데이의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병원을 조사했으나 그 병원에서는 도란트-데이 출생연도 기준 10년 동안 한 명의 아기도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서류에 적혀 있는 그의 부모 이름도 가명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란트-데이는 뿐만 아니라 자신의 퍼스트 네임과 미들 네임인 '사이먼 찰스(Simon Charles)'가 생물학적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라면서 그 배경으로 자신의 양어머니가 입양 조건 가운데 하나가 아이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었다고 말해줬으며 자신이 태어날 당시 찰스와 커밀라에게는 사이먼이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란트-데이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의견과 외모적으로 닮은 것이나 양조부모의 왕실 근무 경력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찰스와 커밀라의 숨겨진 아들 이야기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영국 왕실에 왕자의 난을 몰고 올 수 있는 엄청난 태풍으로 성장할 지 지켜볼 일이다.      김병일 기자찰스 국왕 커밀라 왕비 아들 도란트-데이 입양 왕실 출생증명서 양부모 양조부모

2022-09-22

구름이 무심탄 말이 -이존오(1341~1371)

구름이 무심(無心)탄 말이   아마도 허랑(虛浪)하다 중천(中天)에 떠 있어   임의(任意)로 다니면서 구태어 광명한 날빛을   따라가며 덮나니   -병와가곡집   햇빛을 가리는 구름   구름이 마음이 없다는 말은 아마도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다. 하늘에 높이 떠서 마음대로 다니면서 구태여 밝은 햇빛을 따라가며 덮지 않느냐?   때는 고려 공민왕. 사랑하던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왕은 정사에 뜻을 잃었다. 나랏일을 승려 신돈에게 맡기다시피 했다. 진평후라는 높은 벼슬에 올라 국정을 좌우하던 신돈을 정언(正言) 이존오가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오히려 왕의 미움을 사 투옥됐다.     이 시조는 그 무렵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구름’은 신돈, ‘햇빛’은 공민왕을 가리키며, 노래 전체는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이색 등 대신들의 변론으로 간신히 극형을 면한 이존오는 낙향해 은둔생활을 하며 울분 속에서 지내다가 31세 나이로 죽었다. 신돈은 요승으로 폄하되지만 왕이 권문세가들을 억누르는 개혁을 위해 아무런 배경이 없는 승려를 이용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 그는 토지를 농민에게 보급하고 양인이 노비가 된 자를 석방했다. 그러나 반대파의 공격과 개혁정책에 염증을 느낀 공민왕에게 제거됐다.     이 시조는 시대를 넘어 교훈을 준다. 오늘은 햇빛을 가리는 구름이 없는 것인가?   유자효 / 시인구름 승려 신돈 고려 공민왕 왕비 노국공주

2022-03-30

[열린 광장] 진실을 비추는 거울

거울은 거짓이 없다. 거울은 일년, 열두 달 거짓말 없이 살아간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 비춘다.     백설공주 동화에는 거울이 등장한다. 계모 왕비가 거울을 보고 “이 나라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었다. 거울은 한결같이 “그야 왕비님이죠”라고 대답한다. 그런 어느 날 거울의 대답이 바뀐다. “백설공주가 제일 예쁩니다”라고 대답하자 이 말이 화근이 돼  공주의 시련이 시작된다. 거울은 이야기의 흐름을 한 순간에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시련은 거짓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성경에 의하면 태초의 인간도 사탄의 거짓에 속았기에 시련을 자초했다.   거울은 언제나 진실하다.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비쳐준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 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닮은 것은 물론이고 부모의 모든 행동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그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또한 하나님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율법을 통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비춰주기에 율법의 거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거울을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누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실되고 정직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설사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닦고 또 닦아 해맑은 거울을 만들다 보면 자신의 마음과 영혼은 깨끗이 씻겨져 내려 맑은 시냇물과도 같을 것이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속에 있는 영혼은 말이 없다. 상대가 말을 해도 듣고만 있다.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묵묵히 듣는다.     행복을 비추면 행복을, 고통을 비추면 고통을 보여주는 거울에게 나는 종종 미소를 달라고 애원을 한다. 거울은 좀처럼 나에게 미소를 주지 않는다. 소리 없는 영혼의 음성은 유머를 좀 더 연구하라는 소리만 울린다. 거울을 보면서 찡그린 얼굴을 펴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기도 한다. 거울 앞에서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종종 화장실에 다녀온다. 생리적인 해결도 보아야 하지만 피곤한 나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서 보기 위함이다.   어린 시절에는 종종 어떤 영웅의 이름을 거론하며 나는 아무개를 거울 삼아 세상을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거울에 비춰지는 모든 것이 거짓투성이 뿐이다. 사회의 변천인가 나이 탓일가 요즘 세상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다. 거울을 보고 이 모습 저 모습으로  미소도 지어보고 찡그려 보기도 하지만 영웅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분명히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텐데….   팬데믹이 속히 사라지고 거울 속에 진실된 세상이 비춰지기를 바랄 뿐이다.  백인호 / 송강문화선양회 미주회장열린 광장 진실 비추 백설공주 동화 계모 왕비 나이 탓일가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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