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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12시간의 딸꾹질

새벽 5시다.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 나지 않게 살살 남편이 잠든 건넌방으로 갔다. 평상시에는 항상 열려 있는 방문이 닫혀있다.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따알꾹”     ‘딸꾹’이 아닌 바람 빠지는 ‘따알꾹’이다   소리가 멈췄나 하고 기다리면 또 한다. 조용히 문 열고 들어가 남편 가까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움직거린다.     “아직도 하네. 일어나요. 안 되겠어. 이러다 사람 잡겠어.”     어제 남편은 저녁을 먹고 난 후 딸꾹질을 시작했다. 잠들기 전, 멈출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남편에게 다른 방법을 다시 해 보자고 재촉했다. 브라운 봉투를 두 손으로 입 가장자리에 틀어막고 숨 쉬라고 했다. 효과가 없다. 허리를 90도 숙이고 차가운 물이 든 종이컵에 입을 박으면 컵 바깥쪽으로 물을 마시게 된다. 내가 먼저 종이컵에 주둥이 처박고 물 마시는 시범을 보였다. 잘 안된다며 물을 서너 번 엎지르더니 남편은 내가 했던 대로 따라 했다. 딸꾹질이 멈췄다.     “드디어 멈췄다! 얼굴이 핼쑥하네. 그럼 푹 자요.”   등을 두들겨 주고 나도 잠에 빠졌다.     어제저녁 먹고 딸꾹질하기 시작해서 거의 12시간 만에 멈췄다. 헛구역질하고, 숨을 쉬지 않고, 찬물 마시고, 놀래주고, 콧속을 간지럽히고, 설탕을 한 수저 먹고, 바나나를 먹어도 멈추지 않던 것이 드디어 멈췄다. 구글에 있는 딸꾹질 해소 방법은 죄다 했다. 구글이 있는 세상이 고맙다.     아침 먹는 남편의 커다란 얼굴이 작아 보인다. 그 사이에 사람이 훅 갔다.   ‘딸꾸욱’   “아이고 깜짝이야! 또 해. 질기네. 다시 하자.”   남편은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물이 든 종이컵에 입을 처박고 컵 바깥쪽으로 물을 마셨다. 그런데 종이컵 안에 처박힌 입이 빠지지 않았다. 오리 주둥이로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나는 종이컵을 냅다 잡아당겼다. 남편의 주둥이가 빠지며 뒤로 자빠질 뻔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다시 ‘딸꾹’ 소리가 날 것 같아 불안했다. 귀를 기울이며 나는 생각했다. 맞는 설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한다는데. 특히나 양심에 반하는 큰 거짓말을 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는데. 남편이 나에게 뭔가 잘못한 일로 찔리는 것이 있나?’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딸꾹질 딸꾹질 해소 어제 남편 오리 주둥이

2024-03-08

[시조가 있는 아침]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인들

  ━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인들     이원익(1547∼1634)   녹양이 천만사인들 가는 춘풍(春風) 잡아매며   탐화봉접(探花蜂蝶)인들 지는 꽃을 어이하리   아무리 사랑이 중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   위대한 반대     푸른 버들이 천만 올 실이라 해도 가는 봄바람을 매어둘 수 있겠는가? 꽃을 탐하는 벌과 나비라 해도 지는 꽃을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깊다고 해도 가는 님을 잡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흐르는 시간은 간절한 손길들이 아무리 많아도 막지 못하며, 벌과 나비가 아무리 원해도 지는 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의 사랑도 그와 같아서 돌아선 님의 마음은 잡을 길 없다.   1597년 2월, 이순신이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장군을 죽이려 하는 선조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때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이가 영의정 겸 도체찰사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다.     전쟁을 총지휘하는 도체찰사가 “전하께서 신(臣)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폐하지 못하옵니다”라고 간한 것이다. 이틀의 국문 끝에 장군은 목숨을 건지고 백의종군케 되었으니 청백리 오리 대감의 위대한 반대가 장군을 살리고 나라를 살린 것이다.   이 같은 일은 현대라 해도 다르지 않다. 때로 위대한 반대가 개인과 나라를 살리고, 비겁한 동조가 개인과 나라를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천만사 청백리 오리 동조가 개인 그때 정면

2023-07-06

‘레이커스 타운’ 행사서 벽화 공개…LA레이커스·비비고 공동 주최

LA레이커스와 한식 브랜드 ‘비비고 푸드’가 5일 LA한인타운에서 ‘레이커스 타운’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레이커스 청소년재단(LYF)과 비비고 푸드는 한인타운 지역 학생들과 구성원들을 위해 매달 푸드뱅크를 지원하는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과 올라(HOLA·Heart of LA)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고 청소년 스포츠에 지원을 약속했다.     또 레이커스 청소년재단과 비비고 푸드는 KYCC에서 운영하는 ‘멘로패밀리 센터’의 주방 확장에 자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사에 참여한 홀리 미첼 LA카운티 수퍼바이저는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한인타운에 벽화를 그림으로써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를 완성했다”며 “올라를 방문했을 때 한인, 라틴계, 흑인 청소년들이 서로의 언어와 문화, 음식을 배우는 것을 직접 봤다. 이번 커뮤니티 행사를 바탕으로 문화 간의 화합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비고 푸드가 인수한 슈완스의 마크 골드만 부회장은 “비비고는 레이커스 타운을 통해 한인타운이 더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이 한국의 맛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비비고 푸드트럭, 농구게임, 지역 청소년을 위한 건강 및 웰빙 클리닉 등이 마련됐으며 LA레이커스의 레전드 선수인 카림 압둘 자바, AC 그린, 로버트 오리, 제임스 워디도 동참해 의미를 더했다.   한편 LA레이커스와 비비고 푸드는 2021년부터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을 맺고 선수들은 비비고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김예진 기자 [email protected]레이커스 la레이커스 선수들 레이커스 타운대형 로버트 오리

2023-06-05

[이 아침에] 금성에서 온 그녀

나이가 드니 아침에 일찍 눈을 뜬다.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않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잠시 침대에 누워 인터넷으로 신문을 본다. 며칠 전 아침의 일이다. 아내가 동화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아느냐고 묻는다. 순간, “무슨 의도로 그걸 묻지?”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 의심과 편견을 가지고 시작한 대화가 아내의 의도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결국 아내는 나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도 웰다잉(well dying)을 놓고 시작한 대화가 삼천포로 빠져 어색한 아침을 맞은 적이 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나는 늘 누구나 공감할만한 옳은 말을 하지만 대화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답이 필요한 사람은 전문가를 찾아가지 대화 상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그냥 자기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말 상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무언가 목적이 있을 때 나누는 것이 대화가 아니던가. 기승전결이 있어 대화를 나누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고 결과가 있어야지. 목적 없는 대화는 시간낭비가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대화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머리로는 벌써 답을 찾고 목적 없는 대화라면 끝낼 대목을 생각한다. 나는 매사를 말로 풀기보다는 생각으로 푸는 편이다. 웬만큼 힘든 일도 하룻밤 자고 나면 대충 정리가 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붙들고 매달려 결론을 내고,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고 만다. 남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해 본들, 도움보다는 그저 남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설명이다.)   나의 대화법에 대한 아내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펜데믹 시작부터가 아닌가 싶다. 회사로 출퇴근을 할 때는 아내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다. 서로 해야 할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며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매일 같은 세상을 보고 사니 딱히 해야 할 말은 도리어 줄어들었다. 산소 다음으로는 밥보다 말이 있어야 살아가는 금성에서 온 아내의 눈에 내가 대화의 상대로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양한 화두로 대화를 시도한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쩌란 말인가.     아내에게는 나 말고도 함께 금성에서 이주한 동료들이 많이 있다. 운동을 가면 만나고, 성당에서 만나고, 카페에서도 만난다. 부디 대화는 그들과 나누고, 내게는 사랑만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펜데믹 이후, 아내가 나보다 자주 외출을 한다. 운동도 가고, 장도 보러 가고, 가끔은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도 한다. 아내가 외출을 한다고 하면 나는 문 앞까지 나가 웃으며 배웅을 한다. 이건 아내가 알면 안 되는 비밀인데, 나는 그녀가 잠시 집을 비우면 매우 즐겁다. 대화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이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금성 대화 상대 이후 아내 오리 새끼

2022-08-14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원앙의 깃털처럼 따스한

오리 두 마리가 한가롭게 헤엄친다. 뒷마당 작은 연못에도 봄이 왔다. 나무 숲만 줄지어 서 있는 풍경 속에 어디서 혹한을 피해 몸을 추스렸을까. 중서부 겨울은 모질게 춥다. 생명 있는 것들은 껴안고 있어도 겨울을 살아남기 힘들다.   우리집 오리는 붙어 다닌다. 혼자 헤엄치는 걸 본 적 없다. 앞서 가려고 다투지 않고 빙그르르 타원 그리며 물러나고 앞서간다. 부리 마주대고 속삭이지 않고 멀뚱하게 앞만 보고 물장구친다. 가끔은 퍼덕거리며 날갯짓으로 안부를 묻는다. 껴안고 입맞추지 않아도 살아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동반자의 숨결인가.   ‘翩翩黃鳥(펄펄 나는 저 꾀꼬리) / 雌雄相依(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외로울 사 이내 몸은) / 誰其與歸(뉘와 함께 돌아갈꼬.)’   고구려 제2대 유리왕(瑠璃王)은 왕비 송 씨가 죽은 뒤 두명의 후실, 화희와 치희를 두었는데 서로 화목하지 못해 동궁과 서궁을 짓고 떨어져 살게 한다. 왕이 사냥간 동안 두 여자는 크게 싸워 치희가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주체할 수 없는 실연의 아픔을 꾀꼬리에 의탁해 우의적으로 표현했는데 현전하는 최고의 서정시로 꼽힌다. 짝 잃은 외로움을 주관적인 서정에 담아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단계의 가요로 문학상의 의미가 크다.   오리 깃털의 색깔은 암컷보다 수컷이 더 아름답다. 뚱뚱하고 편평한 달걀 모양의 온 몸에 솜 같은 깃털이 빽빽이 자라나 있어 깃털에 물이 스며들지 않기 때문에 차가운 물에서도 몸을 보호할 수 있다. 꼬리 부근에 있는 분비선에서 나오는 기름을 부리로 깃털에 바른다. 기름이 묻은 깃털 아래에는 솜깃털이라고 하는 보풀보풀한 깃털층이 겉깃털과의 사이에 공기를 가두어 몸을 따뜻하게 한다   원앙(Mandarin Duck)은 약 2,5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처음 기르기 시작하다가 약 2,000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원앙은 암수의 깃털이 워낙 차이가 나서 고대 중국에서는 서로 다른 새인 줄 알고 수컷은 ‘원’, 암컷을 ‘앙’으로 따로 이름을 붙였는데 같은 종임을 알고 원과 앙을 합쳐 ‘원앙’이라고 명명하게 된다.   원앙은 한 쌍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예부터 원앙은 부부간의 애정을 표현하는 동물로 신혼부부들이 가장 바라는 금슬 좋은 부부의 상징이다. 원앙은 짝을 지어 항상 같이 다니기 때문에 부부 간의 금실이 좋은 새로 인식되었다. 결혼할 때 원앙을 수놓은 이부자리나 원앙 한 쌍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원앙은 부부금실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일반적으로 겨울철 월동지에서 수컷이 암컷에 구애를 하고 암컷이 마음에 드는 수컷을 짝으로 결정하면 부부가 된다. 이러한 번식활동을 해마다 반복해서 매년 짝이 바뀌게 된다. 원앙 수컷은 둥지가 정해지고 알을 까면 새끼 양육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번식초기에 짝을 이루어 살다가 암컷이 알을 낳고 품기 시작하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또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난다. 수컷이 화려해 적의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떠난다는 의견이 있기는 하다.   나이 들수록 함께 지내는 말동무가 곁에 있는 것은 행운이다. 칠흙 같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축복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고 억만금의 세월이 지나도 사랑이 있었기에 원앙의 깃털처럼 따스하고 행복했다. 함께 나누는 사랑은 영원한 생명을 잉태한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원앙 깃털 원앙 수컷 오리 깃털 부리로 깃털

2022-04-05

[문예마당] 어느 새끼 오리의 죽음 / 하동 저수지

  ━   어느 새끼 오리의 죽음      강창오     어느 한적한 오후, 오랜만에 고개 내민 햇살을 즐기려고 옆 동네 공원을 찾았다. 주말이고 화창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인원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일부러 조용하고 꾸불꾸불한 구석길을 따라 공원의 정점인 연못가를 찾았다. 각종 오리 떼들이 산만하게 움직이며 산책 나온 사람들을 맞아주었고 꽥꽥하는 합창 소리는 더욱 정취를 풍겨주었다.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려고 근처의 벤치에 앉아있는데 맞은쪽 연못 끝자락에 초등학교 학생 아이들이 우르르 좌르르 움직이는 작은 소동이 눈에 띄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의아스런 광경이라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갓난 오리 한 마리가 물에서 땅으로 올라오려고 안쓰럽게 발버둥 거리는 모습이 얼른 눈에 잡혔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아이들이 작은 가지로 막으며 애걸하다시피 “엄마한테 가 가” 하며 소리쳤다. 오리가 계속 자리를 옮기며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자 아이들도 따라다니면서 한사코 물 안쪽으로 밀었다.       오리 새끼 한 마리가 왜 혼자 구석에 남아 곤경을 겪는지 궁금해서 연못 안을 여기저기 살폈다. 놀랍게도 이 한 마리 외에 다른 새끼들도 두 마리 세 마리씩 짝을 지어 안타깝게 삐악거리며 여기저기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어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새끼들을 돌봐야 할 어미가 없어져 방황하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짠해 왔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고 곁에서 지켜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았으리라!   많은 오리가 주위에 군집해 있었지만 어느 오리도 여기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끔 암놈 하나가 다가올 때마다 다 같이 “야 엄마다”하고 소리쳤지만 오히려 새끼들을 쪼며 못살게 구는 것을 보아 금방 어미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냉정한 동물의 세계, 즉 그것은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영역임을 절실히 느꼈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땅으로 올라오려는 새끼오리와 막는 아이들의 실랑이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저러다가 곧 지쳐 오래 버티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저 오리가 너무 지친 것 같다. 잠시라도 땅에 올라와 좀 쉬게 하렴”하고 넌지시 아이들에게 말을 던졌다. 그랬더니 정말 아이들이 손에 들었던 나뭇가지들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서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라온 오리는 앉아서 쉬기보다는 급하게 숲속으로 향했다. 숲이 있는 곳에는 돌아다니는 고양이나 개 그리고 까치 까마귀 같은 거친 새들이 많아서 더 위험했다.   이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어느 아이 엄마가 “거긴 안돼” 하면서 느닷없이 오리를 덥석 집어 들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노인들이 왜 오리를 잡고 있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엄마는 처음에 “오리 어미가 나타날 때 까지 보호할거예요” 하며 한참을 서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포기하더니 다른 오리들이 많이 붐비는 쪽에다 놓아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반신반의 했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곧이어 흩어져 버렸다.     나도 다시 산책길에 올랐다. 조금 더 돌다가 집에갈 생각으로 아까 소동이 있었던 그 연못자락을 도는 중이었다. 아뿔사! 새끼오리가 내 앞쪽으로 다시 헤엄쳐 오고 있지 않는가?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하면서 자세히 보니 오리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다가오던 동작이 점점 느려지더니 숨을 힘겹게 쉬며 허우적거렸다. 급기야 눈 깜짝할 사이에 아등바등하던 동작마저 멈추고는 훌러덩 뒤집어졌다.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전에는 사람의 죽음도 봤지만 이런 작은 미물의 죽음을 앞에 놓고 은근히 밀려오는 죄아닌 죄책감으로 마음이 저렸다. 아울러 혼자만의 목격으로 후회 아닌 후회가 앞서 바삐 주변을 살폈다. 저만치에 서있는 아까 그 아이들이 금방 눈에 잡혔다. 아이들을 향해 “이 오리가 이상하다” 하고 소리치자 모두 쪼르르 몰려왔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렬로 서서 동작 없이 떠 있는 오리를 보며 “어떻게 어떻게”를 연발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이나 서운한 표정들로 움직일줄 몰랐다. 그렇게 엄마 곁으로 가라고 애태우며 도와주려 했던 아이들인데……   작은 일이긴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서운한 새끼오리의 최후였다. 그래서 내 아이폰에 담아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한결같이 서운해하는 답장을 보내왔다. 이렇게 새끼오리의 죽음을 본 사람들의 마음이 너나 나나 다 같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비디오에 비친 오리의 주검 옆에 잔잔한 물결의 흔적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모나리자 형태의 우아한 여인이 애절한 모습으로 죽은 새끼오리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어미를 애타게 찾다 저 세상으로 홀로 떠나는 오리를 품에 안고 동행하고자 내려온 가디언인 양!    당선소감 - 강창오   당선 소식을 듣자 불현듯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 생각났다.    하루는 국어선생님이 2학년 전체 학생에게 선생님 자신에 대해서 작문을 해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욕을 써 넣어도 좋으니 있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기를 내어 욕도 좀 섞어서 나름대로 작문을 제출했다.    며칠 후 종례시간에 느닷없이 우리 담임 선생님이 내 작품을 받아 가지고 들어와서 낭독하시는 것이 아닌가? 왜 담임 선생님에게 까지 내 작품이 전달됐는지 의아해하던 차에, 장래의 유명한 작가가 될것 이라며 반 전체에게 선포(?) 아닌 선포를 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로 작가 되기를 지향 하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될때마다 나름대로 시와 수필을 써서 여기저기 작은 단체에 기고하곤 했다. 은퇴후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면서 좀 더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나아가 몇몇 문학회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몇년 전 어느날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는 세상의 현실에 싫증을 느껴 문학적 표현들 자체가 사치하다는 생각이 들며 글쓰는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글쓰기의 멈춤은 오래가지 않았고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이 계속 손을 간지럽히자 급기야 다시 펜을 들어 긁적이기 시작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제 6회 아틀란타 신인 문학상 당선 소식을 접하고 보니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유명한 작가 선포의 말씀이 떠올랐고 늦게나마 그 선생님의 예고를 실현(?) 한것 같아 기쁜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때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그것으로 인한 작은 열매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    나의 작은 관찰과 소고를 읽어주시고 좋게 평가해주신 심사위원들과 신인상 공모를 준비하신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애틀란타 문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   하동 저수지      이종길      메주콩 한 자루 마늘 한 접 등짐 매고   오일장 보러 가신 아버지   여름 보낼 란닝구와 학용품 서너 가지   왕소금 듬성하게 박힌 고등어 두어 마리   누런 신문지에 둘둘 말아 망태에 넣고   늦은 점심 곁들인 막걸리 몇 잔에   기분 좋은 비틀걸음   둑길로 올라선   하동 저수지   복사꽃 붉은 가지 일렁이는 물그림자에   거꾸로 선 두 다리가   갈대처럼 흔들리는   하동 저수지       매고 온 망태 벗어주며   멋쩍게 웃으시던 아버지   혼자 국밥에 곁들인 막걸리가   그렇게도 미안하셨나요   노을 함께 붉어가는   하동 저수지     당선소감 - 이종길   글을 읽거나 쓰는것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 오고는 있지만 이런 큰 상이 내게 주어 지다니 그저 과분 하다는 생각 뿐이다.    작품 중에 거꾸로 매달려 갈대처럼 흔들리는 아버지의 야윈 다리가 나온다. 일제의 폭정, 6·25, 폐허를 헤쳐온 고통과 가난, 그 역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의 다리는 항상 거기 있었다.  그는 그때 어떤 꿈을 갖었으며 또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이 물음이 원래는 이 작품을 구상 하게된 동기였다.     아버지는 오직 한길 외롭고 고달픈 길을 주저없이 택하셨다. ‘사람같은 사람’으로 자식을 키우는 일, ’사람같은 사람’으로 모인 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제 몫을 감당할수 있는 책임있는 인간이 되게 하는 것. 그 분은 바로 이런 홍익 인간의 철학과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는 일에 모든것을 걸었셨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세기적 번영을 기적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실은 우리의 성취는 홍익 인간으로의 전 인류적 보편가치가 도약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 한류의 물결도 이러한 정신적 바탕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한류는 절대로 한순간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사발 막걸리와 국밥의 호사를 혼자 누린게 미안해서 멋적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소박하고 겸손한 모습에서 사랑에 더하여 잔잔한 연민의 정도 느끼게 된다.    노을빛, 술기운 ,미안한 마음 ,이 모든 것들로 하여 하동 저수지는 붉어 가고 있다. 오늘날의 이 풍요로움을 한가지도 누려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모든 어버이들께 이 헌시로나마 위로를 드리려는게 작시의 동기였음을 거듭 밝히며 포상으로 응답해 주신 심사 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문예마당 저수지 새끼 새끼 오리 하동 저수지 오리도 여기

202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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