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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연꽃 나들이

잔디밭 풀을 뽑고 있는데 앞집 할머니가 휠체어를 끌고 나와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년에 넘어져 허리 수술을 받고 걷지 못한다. 은퇴 경찰 남편과 살았는데 남편이 세상을 등졌다. 그 뒤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던 선생 딸과 이혼하고 개와 함께 어머니 집으로 들어온 늙은 아들과 같이 산다. 할머니 나이가 94세 넘어지기 전에는 눈도 치우고 정원도 가꾸었다.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서 생활한다. 할머니는 나를 알지만 나는 할머니를 모른다. 그냥 앞집 사는 할머니다. 내가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고 휠체어를 밀면서 연꽃 구경을 가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고등학교가 있다. 학교 파킹장 뒤로 조그마한 연못이 숲속에 있다. 운동하면서 숲속을 헤매다 연못을 발견했고 그 조그마한 연못에 연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좋아할지 모르지만 집안에서 있다가 밖에 나와 자연환경을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숲속 연못은 연잎 천지였다. 수많은 연잎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빼곡히 연못을 메우고 있었다. 그 빈틈을 비집고 여기저기 얼굴을 뾰족이 내민 연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한 공간에 있는 연꽃들이건만 어떤 것은 이제 막 봉우리를 맺었고 어떤 것은 속까지 활짝 만개하였고 어떤 것은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 뒤였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는 연꽃을 타고 인간 세상에 올라와 황후가 되었다. 연꽃은 죽음으로부터 재생과 부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연꽃은 청결하고 고귀한 이미지 때문에 극락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연꽃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꽃은 개화 1일, 만개 2일, 낙화 1일로 보통 나흘 동안만 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름다움의 절정을 향한 시간치고는 참으로 짧고 허무하지 않은가. 반면 투박하고 커다란 연잎은 햇빛에 마르고 바람에 흔들리고 빗물을 받아 내면서도 한여름을 무던히 버텨낸다. 연잎에서는 싱싱한 생기와 푸르른 강인함이 샘솟는다. 사람들이 연꽃을 보고 호들갑스럽게 탄복할 때 나는 조용히 연잎에 감동한다. 나흘 만에 지고 마는 연잎을 안쓰럽게 쓰다듬어 주는 다정한 손. 온몸으로 빗물을 받아내는 오래된 우물 같은 단단한 배. 물 한 방울을 탐내지 않고 소중히 모으다 어느 날 어느 순간 한꺼번에 쏟아 버리고 홀연히 빈손으로 돌아가는 무욕. 빼곡히 자라나 한 치의 틈도 없이 연못을 뒤덮어 버리는 가멸참. 연꽃의 화려한 잔치 뒤에서 소리 없이 제 일만 하는 수더분함. 연잎의 삶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처럼 수수하고 강인하되 정겹다.   할머니의 삶에서 꽃의 시간은 오래전에 끝났다. 반백 년을 넘어 산 나의 꽃도 이미 낙화한 지 오래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대부분의 시간은 잎의 시간이었고 남은 삶도 그러할 것이다. 땡볕에 살이 타고 매서운 바람에 휘청거리고 빗물에 흠뻑 젖으면서도 하루하루를 그저 담담하게 살아가는 잎 말이다. 생의 절정을 탐하며 화려한 꽃으로 피고 지려고 하기보다는 수많은 평범한 아무개가 되어 이파리로 나고 소박하게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연꽃의 화려한 개화에 감탄하고 허무한 낙화에 한숨 짓느라 푸르디푸른 연잎들을 미쳐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빛에서 연잎의 기운을 읽었다. 생의 마지막을 강인하게 견뎌낼 인내와 연잎 같은 삶에 자족하며 생을 내려놓을 용기가 번뜩이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나들이 연꽃 연꽃 나들이 연꽃 구경 앞집 할머니

2024-06-26

[삶의 뜨락에서] 곽애리 / 시인

흐르는 시! 몸으로 쓰는 시(詩) 몸시(詩)라고 해야 할까? 모션포에트리요가스튜디오(Motion Poetry Yoga Studio)라고 이름을 만들어 작은 클래스의 수업을 진행한 지 일 년이 넘었다. 평소 SNS 같은 사회적 통로의 교감을 안 하는 나이기에 친구와 친구의 소개로 모인 소규모의 모임이라 더욱 애틋하다.   통통 튀는 발랄함, 이슬처럼 신선한, 사슴의 눈처럼 선한, 학생들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기쁨은 정말 크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질책처럼 일주일에 한 번을 뭐 하려 하느냐고 해서 웃기도 했지만 일 년 가운데 52회의 만남이 주는 우리의 교감은 끈적끈적하고 몸으로 정신으로 세우는 우리의 몸시는 튼실한 삶의 근육이 되어 생의 활기를 불러온다.     수업이 시작되면 매번 나는 한 편의 시를 선정하여 읽어주는데 2023년 새해 첫 수업에 어떤 시를 읽어줄까? 고심하다 요가 수업의 첫 명상 자세, 연꽃잎이 떠올랐고 꽃이 피려면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당도하자 아하! 쾌재를 불렀다.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난 우리는 분주했던 일상, 산란한 마음을 호흡으로 정돈하고 줄기처럼 척추를 곧게 펴고 마룻바닥에 앉아 명상으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3’을 낭송해 주는 나의 목소리가 학생들에게 촉촉하게 내리는 단비가 되기를 소망했다. 진흙에 뿌리를 내리어 피는 꽃, 어둠과 고통을 뚫고 태양에 고개를 내밀어 정수리에 꽃을 피워 고귀한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 요가 수행자에게는 연꽃은 씨앗에 담긴 인내와 존재의 가능성, 실현의 상징을 의미한다.     나는 요가의 아름다운 철학은 삶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임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몸과 마음에 단단하고 유연한 연꽃 씨앗 한 알 심어 꽃 피우기를 소망하였다.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풀밭 길을 걸어가다 길가에 아름답게 핀 꽃을 쥐어보는 길”이라고 시적인 표현을 해 주신 삼석(三石) 지창보 작가님의 한 줄의 글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씨앗의 세월없이 피워낸 꽃이 어디 있으랴. 천둥과 비바람, 벼락이 통과하는 인내의 시간을 견디어 내지 않고 피워낸 꽃이 어디 있으랴. 새해를 맞이하며 정갈하게 심는 마음에 씨앗은 얼마나 신선한 자극인가. 아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 마음의 꽃 씨앗을 심기는 하지만 물을 주는 것을 게을리하는 건 아닌지?     우리들의 요가 수업은 잠시 가다듬은 호흡으로 내면을 충전하여 시들어가는 몸과 마음에 물을 주는 생명의 몸짓이다. 그날 수업의 정점은 나무 자세. 옥 같은 꽃에 난초의 향기가 피어오른다는 옥란(玉蘭), 나무에 피는 연꽃, 목련을 떠올리며 땅에 깊게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한발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선다. 위로 곧게 뻗어 올라가는 손끝에 유연함과 강인한 새 씨앗을 가슴에 심는 학생들의 두 다리는 튼실하고 눈빛은 강렬하게 불타고 있었다. 물처럼 흐르는 음악 소리에 수업은 끝나고 환한 웃음으로 일주일 후 만남을 기대하며 학생들은 각자의 길로 총총걸음 헤어졌다.     그날 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꽃 피워 봐/ 참 좋아.” 각자 심은 씨앗에 물을 주기를 당부하며 감사 기도하는 잎 속에 수런거리며 피어오르는 저마다 눈부신 연꽃을 나는 보았다. 곽애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인 연꽃 씨앗 요가 수업 나태주 시인

2023-01-25

[삶의 뜨락에서] 새 마음 새 씨앗

흐르는 시! 몸으로 쓰는 시(詩) 몸시(詩)라고 해야 할까? 모션포에트리요가스튜디오(Motion Poetry Yoga Studio)라고 이름을 만들어 작은 클래스의 수업을 진행한 지 일 년이 넘었다. 평소 SNS 같은 사회적 통로의 교감을 안 하는 나이기에 친구와 친구의 소개로 모인 소규모의 모임이라 더욱 애틋하다.   통통 튀는 발랄함, 이슬처럼 신선한, 사슴의 눈처럼 선한, 학생들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기쁨은 정말 크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질책처럼 일주일에 한 번을 뭐 하려 하느냐고 해서 웃기도 했지만 일 년 가운데 52회의 만남이 주는 우리의 교감은 끈적끈적하고 몸으로 정신으로 세우는 우리의 몸시는 튼실한 삶의 근육이 되어 생의 활기를 불러온다.     수업이 시작되면 매번 나는 한 편의 시를 선정하여 읽어주는데 2023년 새해 첫 수업에 어떤 시를 읽어줄까? 고심하다 요가 수업의 첫 명상 자세, 연꽃잎이 떠올랐고 꽃이 피려면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당도하자 아하! 쾌재를 불렀다.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난 우리는 분주했던 일상, 산란한 마음을 호흡으로 정돈하고 줄기처럼 척추를 곧게 펴고 마룻바닥에 앉아 명상으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3’을 낭송해 주는 나의 목소리가 학생들에게 촉촉하게 내리는 단비가 되기를 소망했다. 진흙에 뿌리를 내리어 피는 꽃, 어둠과 고통을 뚫고 태양에 고개를 내밀어 정수리에 꽃을 피워 고귀한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 요가 수행자에게는 연꽃은 씨앗에 담긴 인내와 존재의 가능성, 실현의 상징을 의미한다.     나는 요가의 아름다운 철학은 삶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임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몸과 마음에 단단하고 유연한 연꽃 씨앗 한 알 심어 꽃 피우기를 소망하였다.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풀밭 길을 걸어가다 길가에 아름답게 핀 꽃을 쥐어보는 길”이라고 시적인 표현을 해 주신 삼석(三石) 지창보 작가님의 한 줄의 글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씨앗의 세월없이 피워낸 꽃이 어디 있으랴. 천둥과 비바람, 벼락이 통과하는 인내의 시간을 견디어 내지 않고 피워낸 꽃이 어디 있으랴. 새해를 맞이하며 정갈하게 심는 마음에 씨앗은 얼마나 신선한 자극인가. 아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 마음의 꽃 씨앗을 심기는 하지만 물을 주는 것을 게을리하는 건 아닌지?     우리들의 요가 수업은 잠시 가다듬은 호흡으로 내면을 충전하여 시들어가는 몸과 마음에 물을 주는 생명의 몸짓이다. 그날 수업의 정점은 나무 자세. 옥 같은 꽃에 난초의 향기가 피어오른다는 옥란(玉蘭), 나무에 피는 연꽃, 목련을 떠올리며 땅에 깊게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한발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선다. 위로 곧게 뻗어 올라가는 손끝에 유연함과 강인한 새 씨앗을 가슴에 심는 학생들의 두 다리는 튼실하고 눈빛은 강렬하게 불타고 있었다. 물처럼 흐르는 음악 소리에 수업은 끝나고 환한 웃음으로 일주일 후 만남을 기대하며 학생들은 각자의 길로 총총걸음 헤어졌다.     그날 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꽃 피워 봐/ 참 좋아.” 각자 심은 씨앗에 물을 주기를 당부하며 감사 기도하는 잎 속에 수런거리며 피어오르는 저마다 눈부신 연꽃을 나는 보았다. 곽애리 / 시인삶의 뜨락에서 마음 씨앗 연꽃 씨앗 요가 수업 연꽃 요가

2023-01-24

[열린광장] 사랑과 구원의 밧줄

일본의 천재 작가 아꾸다가와 류노스께가 쓴 소설 ‘구모노 이도(거미줄)’ 는 인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매우 맑고 조용한 어느 날,  옥황상제가 극락의 연못가를 거닐고 있었다.  옥황상제가 걸음을 멈춘 다음, 연못을 가득 채운 구슬같이 아름다운 연꽃 사이로 문득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이 극락의 아래는 바로 지옥이었는데, 거기엔 간따다란 죄인이 옥황상제의 눈에 띄었다. 이 간따다는 살인까지 저지른 흉악범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날 깊은 숲속을 거닐다가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보고 밟아 죽이려다 “거미의 목숨도 목숨인데...”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거미를 살려준 일이다.     옥황상제는 연꽃 위에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은빛 거미줄을 걸고 있는 것을 보고 간따다를 살려줄 생각으로 은빛 거미줄을 잡아 아득히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내려보냈다. 이때 지옥의 웅덩이에서 무심코 위를 쳐다본 간따다는 극락세계로부터 어둠을 뚫고 은빛 거미줄  한 가닥이 자기 머리 위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 거미줄에 매달려 올라가면 지옥에서 빠져나와 극락세계까지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간따다는 재빨리 이 거미줄을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 올라가다 아래를 내려다 보고 깜짝 놀란 간따다!  자기가 매달린 줄에 거미떼처럼 다른 죄인들이 매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 이놈들아!  이 거미줄은 내꺼야!  모두 썩 내려가지 못할까!” 이렇게 소리 지르는 순간,  붇잡고 있던 거미줄이 딱 끊어지면서 간따다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흉악범이지만 거미 한 마리를 살려 준 사랑의 마음씨도 지닌 간따다를 살려주려 했었지만, 끝내 미움의 포로가 되고만 간따다는 옥황상제가 내려준 ‘구원의 밧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이 옥황상제의 ‘구원의 밧줄’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과 미움이 대위법처럼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에게 이로울 때는 천사가 되기도 하고 해롭다고 생각할 때는 미움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도 미움도  마음 속에 지닌 채,  그냥 체념하고 살아가기 마련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 고 성서는 말한다.  제 자식일지라도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미워하게 되는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한단 말인가! 이건 시쳇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이 성서 구절은 매우 깊은 뜻을 말해주고 있다. 곧, 부모가 자식을 미워할 때,  그것은 정말로 자식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미워한다고 할 때, 이것은 정말로 자식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식이 하는 말과 행동이 미운 것이다. 이 말과 행동이 바뀌게 될 때 자식에 대한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   많은 사람은 간따다처럼 실제로 살인죄는 저지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살인을 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 사는 삶이 ‘사랑의 천사’ 쪽인지 아니면  ‘미움의 노예’ 쪽인지를  살피면서 사는 것이 슬기로운 일일 것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열린광장 사랑 구원 은빛 거미줄 이때 지옥 연꽃 사이

202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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