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연꽃 나들이
숲속 연못은 연잎 천지였다. 수많은 연잎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빼곡히 연못을 메우고 있었다. 그 빈틈을 비집고 여기저기 얼굴을 뾰족이 내민 연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한 공간에 있는 연꽃들이건만 어떤 것은 이제 막 봉우리를 맺었고 어떤 것은 속까지 활짝 만개하였고 어떤 것은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 뒤였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는 연꽃을 타고 인간 세상에 올라와 황후가 되었다. 연꽃은 죽음으로부터 재생과 부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연꽃은 청결하고 고귀한 이미지 때문에 극락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연꽃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꽃은 개화 1일, 만개 2일, 낙화 1일로 보통 나흘 동안만 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름다움의 절정을 향한 시간치고는 참으로 짧고 허무하지 않은가. 반면 투박하고 커다란 연잎은 햇빛에 마르고 바람에 흔들리고 빗물을 받아 내면서도 한여름을 무던히 버텨낸다. 연잎에서는 싱싱한 생기와 푸르른 강인함이 샘솟는다. 사람들이 연꽃을 보고 호들갑스럽게 탄복할 때 나는 조용히 연잎에 감동한다. 나흘 만에 지고 마는 연잎을 안쓰럽게 쓰다듬어 주는 다정한 손. 온몸으로 빗물을 받아내는 오래된 우물 같은 단단한 배. 물 한 방울을 탐내지 않고 소중히 모으다 어느 날 어느 순간 한꺼번에 쏟아 버리고 홀연히 빈손으로 돌아가는 무욕. 빼곡히 자라나 한 치의 틈도 없이 연못을 뒤덮어 버리는 가멸참. 연꽃의 화려한 잔치 뒤에서 소리 없이 제 일만 하는 수더분함. 연잎의 삶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처럼 수수하고 강인하되 정겹다.
할머니의 삶에서 꽃의 시간은 오래전에 끝났다. 반백 년을 넘어 산 나의 꽃도 이미 낙화한 지 오래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대부분의 시간은 잎의 시간이었고 남은 삶도 그러할 것이다. 땡볕에 살이 타고 매서운 바람에 휘청거리고 빗물에 흠뻑 젖으면서도 하루하루를 그저 담담하게 살아가는 잎 말이다. 생의 절정을 탐하며 화려한 꽃으로 피고 지려고 하기보다는 수많은 평범한 아무개가 되어 이파리로 나고 소박하게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연꽃의 화려한 개화에 감탄하고 허무한 낙화에 한숨 짓느라 푸르디푸른 연잎들을 미쳐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빛에서 연잎의 기운을 읽었다. 생의 마지막을 강인하게 견뎌낼 인내와 연잎 같은 삶에 자족하며 생을 내려놓을 용기가 번뜩이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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