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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가 살아왔나? 버틀러의 빙의 연기

1950년대 멤피스 거리를 방황하던 청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의 제왕이 되기까지를 대단히 독특한 시각으로 묘사한 전기영화. ‘로미오+줄리엣’, ‘물랭 루주’, ‘위대한 개츠비’ 등의 대작들은 연출했던 배즈 루어먼 감독의 9년 만의 컴백작. 제95회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남우주연상을 비롯, 8개 부문에서 후보지명을 받았다.     춤과 음악으로 채워진 화려하고 현란한 장면들이 멈춤 없이 지속되는 이 영화는, 매니저 톰 파커(톰 행크스)가 엘비스(오스틴 버틀러)의 뒤편에서 그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내레이터며빌런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인물인 파커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엘비스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정열에 감동하면서 한편,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이미지와는 달리 엘비스라는 인간이 지닌 모호성에도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동네 무대에서 무명의 젊은 청년 엘비스를 처음 보는 순간, 파커는 장차 그가 로큰롤의 제왕의 자리에 오를 것을 확신하고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건다. 이후 파커는 세상에 엘비스를 준 사람이 자신이라고 당당히 말하는데, 자신이 흑인의 전유물이던 로큰롤 무대에 잘생긴 백인 청년이 뛰어오르는 음악사 최대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신나는 음악에 춤이 동원되는 50년대 로크롤의 리더는 처크배리였다. 그러나 흑인의 감성을 지닌 백인 청년 엘비스가 나타나면서 대중음악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더구나 그의 춤에 담긴 섹스어필에 여성 팬들이 입고 있던 팬티를 무대로 던지는 진풍경이 연출되면서 엘비스는 독보적 킹으로 군림한다.     2022년 영화가 최대의 사건은 오스틴 버틀러의 재발견이다. 그가 엘비스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해도 엘비스와 전혀 닮지 않은 외모 때문에 ‘미스 캐스팅’이란 반응이 많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어펀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살인마 텍스 왓슨 역 정도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면 ‘엘비스’는 버틀러의 폭발적인 일취월장을 실감하게 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32세의 캘리포니아 출신인 버틀러는 노래, 감정, 표정, 목소리, 몸짓 등에서 마치 그가 다시 세상에 살아 돌아온 듯한 느낌으로 완벽한 모사 연기를 펼친다. 버틀러는 보컬 트레이닝은 물론 엘비스에 관한 거의 모든 서적과 영상을 연구하며 역에 몰두했다. 버틀러는 엘비스를 활기차고 매력적인 가수, 고뇌에 찬 남자, 연민을 느끼게 하는 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김정 영화평론가엘비스 버틀러 청년 엘비스 오스틴 버틀러 빙의 연기

2023-03-03

[수필] 엘비스 프레슬리를 그리며

며칠 전에 ‘엘비스’란 영화를 참 감명 깊게 봤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렬한 팬이었다. 프레슬리가 42세의 나이에 죽었을 때도 매우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노래도 좋아했고 풍기는 외모도 한 몫을 더 했다. 작년에 그의 전기를 읽고 그가 살았던 집 그레이스랜드(Graceland)가 참 인상 깊게 남아있다.   더욱이 그는 가스펠 송을 많이 불렀는데 ‘How Great Thou Art’를 불렀을 때 마음에 울림이 많았다. 그는 교회에서 성가를 많이 불렀다. 바쁜 일정 때문에 얼마나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는 마음이 참 선량했다. 노래를 불러 돈을 많이 벌어도 구두쇠처럼 인색하지 않았다. 하와이 공연 갔을 때도 펄 하버 박물관(Pearl Harbor Museum)에 거금을 희사했고 여러 자선단체에도 많은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는 1935년 1월 8일 미시시피주 투펠로라는 곳에서 아버지 버논과 어머니 글래디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동생은 숨진 채 태어났다. 그래서 외동아들로 자랐다. 철이 들면서 동생을 생각하며 무덤에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를 무척 사랑하고 좋아했다. 그가 군에 입대하여 서독에 복무하러 떠나기 전 어머니가 숨져 참 슬퍼했고 마음이 울적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혼을 했다. 엘비스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1954년부터 가수로서 정식으로 선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55년 후반에 RCA 빅터 회사에 계약이 넘겨져 1956년 부터 국제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음반이 팔렸다. 콘서트도 많이 열고 라스베이거스 무대에서도 명성을 떨치면서 많은 공연을 했고  프랑크 시나트라와  TV에도 출연했고, ‘에드 설리번 쇼’에도 등장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몸을 너무 흔드는 바람에 외설적이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곧 가라앉았다. 33개의 영화에도 출연하고 해서 엄청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음악상도 무척 많이 받았다. 그중에 그래미상(Grammy Awards)을 3개 받았고 14번이나 지명되기도 했다. 36세에 그래미 평생 성취 상( Grammy Lifetime Achievement Award)도 받았다.     1958년에 군에 입대하여 1960년 까지 독일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복무 기간 동안 1959년 9월 13일 항공병(Airman)의 딸 프리실라를 소개받았다. 그녀는 14세였다. 엘비스는 첫눈에 반해 서로 사랑을 하며 구애를 해서 7년 반 후인  1967년 5월 1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6년 후 1973년 이혼을 하고 만다.     이혼으로 마음이 울적한 데다 엘비스는 과도한 연출 스케줄로 피로가 쌓이고 잠이 부족해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 돌아온 후 매니저가 모든 재정과 연출 스케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라스베이거스의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636개의 레지던시 쇼를 하게 했고 일주일 내내 공연 중 밤 콘서트를 두 번이나 하도록 했다. 엘비스는 너무 지쳐 있었고 과로를 하게 되었다.   매니저 톰 파커는 엘비스가 번 돈 절반 이상을 착취했고 엘비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악덕 업자였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을 닮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엘비스는 아버지에게도 돈을 많이 보내 주었는데 어디에다 돈을 다 썼는지 돈이 없다고 항상 돈을 더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짧은 생애 동안 부와 명성을 많이 얻었지만, 사람 복은 없는 사람이었다. 첫째 가장 믿었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계모와 살면서 돈을 모두 탕진해 버렸고 항상 붙어 다니던 매니저는 자기 주머니에 돈 착복하는 것에 여념이 없었고 사랑하던 아내와는 결혼 6년 만에 이혼하게 되었다. 엘비스는 이혼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아내가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혼하게 되었다. 그 후 늘 마음이 공허했던 그는 아내가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 노래를 많이 불렀으나 아내는 결코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죽기 2달 전에 부른 노래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구구절절 담겨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같은 날 부른 “아유 론섬 투나있(Are you lonesome tonight)”도 가슴을 쥐어짠다. 옛날 모습은 간곳없고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고 노래 부르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가 죽은 후 3명의 의사가 부검했다고 한다. 약물 중독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이 너무 많이 쪘고 당뇨병에다 혈압이 높아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가 가수가 되고 부자가 된 후 마련한 그레이스랜드에 있는 자택은 지금도 관광객에게 오픈하고 있다. 그가 출연한 영화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는 아내를 두고 형과 삼각관계가 벌어져 결국 형에게 총을 쏘자 형의 동료가 동생에게 총상을 입혀 결국 죽게 한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한 ‘Love Me Tender’도 참 감미로운 노래라 잊을 수가 없다.   그가  20세기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중문화예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한다. 그 당시 비틀스(Beatles)가 세계를 휩쓸고 미국에 와서 공연을 수없이 많이 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의 죽음을 또 한 번 아쉬워하면서…. 김수영 / 수필가수필 프레슬리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 어머니 글래디스 grammy awards

2022-09-15

[그 영화 이 장면] 엘비스

바즈 루어만은 스크린이 있는 영화관과 무대가 있는 공연장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장편 데뷔작인 ‘댄싱 히어로’(1992)부터 ‘로미오+줄리엣’(1996)  ‘물랑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까지 일정한 계보를 쌓아왔으며, 신작 ‘엘비스’는 그 정점이다.   매니저 톰 파커(톰 행크스)가 회고하는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엘비스 프레슬리(오스틴 버틀러)의 삶과 사랑과 음악과 죽음의 드라마이며, 그 모든 것은 무대라는 공간과 그 위에서 엘비스가 펼치는 퍼포먼스로 압축된다.     이 영화는 끝없는 무대의 연속이며, 그것이 바로 프레슬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1956년 멤피스 공연 장면이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 엘비스는 ‘외설적 존재’였는데, 그는 저항적 톤의 ‘트러블(Trouble)’을 부르며 한층 더 격렬하게 하체를 흔들며 광란의 무대를 연출한다. 루어만 감독은 이 장면을 다양한 카메라에 담는다. 무대를 찍는 스틸 카메라, 공연을 기록하는 무비 카메라, 개인들이 기록하는 8㎜ 카메라 그리고 루어만 감독의 카메라. 네 종류의 카메라에서 찍힌 서로 다른 질감이 교차하며 이 장면을 만드는 셈인데, 분위기를 가장 잘 전달하는 건 8㎜ 필름 이미지다.   ‘촤르륵’ 소리와 약간의 스크래치와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의 화면이 결합한, 말 그대로 ‘라이브’의 느낌이다. 정말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 스틸 카메라 무비 카메라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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