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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임기응변이 문제

합리주의 철학자인 스피노자는 “인간에게 혀를 다스리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는 말을 통해 의식적으로 말이 헛나오지 않게, 말과 욕망을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흔히들 앞에 닥친 일에 깊은 생각 없이 임기응변으로 막 쏟아낸 말이 메아리로 공허하게 되돌아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비수가 되어 자해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하면 인생에 큰 흔적으로 오점을 남기게 된다.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윤리학의 최고 원리로 정의와 인간애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미덕을 놓고 “누구도 해치지 마라. 오히려 네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이를 도와라”고 했다. 인간이 갖출 윤리를 욕망이란 이기심으로 도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나훈아의 ‘테스형!’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작가가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을 보며, 오죽했으면 소크라테스까지 소환했을까.   지난 21일 한국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총 295표 중 찬성 149표, 반대 136표로 가결됐다. 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에 설마 제1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될까 싶었지만 현실로 나타났다.   그보다 22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이 대표가 표결 하루 전인 21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회자하고 있다. 내용인 즉 “올가미가 잘못된 것이라면 피할 것이 아니라 부숴야 합니다”라며 “검찰의 영장청구가 정당하지 않다면 삼권분립의 헌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국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검찰 독재의 폭주 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 대표가 직접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달라는 메시지까지 보낸 것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168석으로 과반이 넘는 의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부결보다 찬성표가 많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 대표의 언행 심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19일 이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이재명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갈등과 분열을 노리고 있다. 그 빌미마저 주지 않겠다. 저들의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다. 불체포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스스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이 언행이 이번 표결에 혼돈을 줄까 봐서일까.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대표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스스로 한 대국민 약속까지 파기하며 ‘방탄’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역풍을 맞았다. 이를 두고 수도권 재선 의원은 “본인 살자고 당을 수렁에 몰아넣은 이 대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어떤 선택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지 각자 고민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이중 잣대의 모습을 보고 가결 표를 던진 의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실 이 대표는 임기응변의 달인이다. 임기응변이 문제 해결의 열쇠도 될 수 있지만, 독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스피노자의 말이 새삼 깊이 명상 되는 이유다. 특히 정치인이라면 의식적으로 말과 욕망을 조절해야 한다. 거기에 쇼펜하우어의 정의와 인간애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미덕을 갖추어야 함이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대표의 임기응변으로 야당이 요동치고 있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임기응변 문제 야당 대표 이재명 체포동의안 이재명 대표

2023-09-24

[기고] 언제까지 ‘굴욕외교’ 인가

2017년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 행사에서 대통령을 수행하던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이 한중 우호증진을 위해 문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놓고, 수행 기자 폭행뿐만 아니라 8끼나 혼자 밥을 먹게 하는 외교적 결례까지 범했다.   지난 8일에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해 놓고, 노골적으로 우리 정부의 외교 기조를 비판했다. 싱 대사는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는데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한미 외교관계를 위협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시진핑 주석 지도하의 위대한 중국몽’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도가 넘는 외교 결례가 유튜브 생방송까지 됐다. 싱 대사가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비판하는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은 한국을 마치 속국 정도로 여기는 중국의 속내를 보여준 것이다.   1961년 4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채택된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41조에 따르면 외교관은 주재국의 법령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다. 시진핑이 국빈으로 초청한 문 대통령을 홀대한 처사나 싱 대사가 야당 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베팅’ ‘후회할 것’ 등의 도발적 언행을 한 것은 외교의 틀을 벗어난 매우 부적절한 행태다. 또 국가 간 관계는 상호 존중이 기본이 되어야한다는 ‘비엔나 협약’을 위반한 것이다.   더 한심한 것은 한국의 제일 야당 대표가 보인 자세다. 이 대표는 싱 대사가 15분 가량 발언하는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경청만 하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굴욕 외교를 했다 해도 이 대표까지 싱 대사의 내정 간섭적인 도발적 언행에 한마디 말도 못한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야당 대표라도 국익 앞에선 싱 대사의 언동에 엄중히 경고했어야 했다.     이 대표는 “마땅치 않아도 협조하는 게 외교”라는 억지 논란으로 이번 일을 덮으려 했다. 무엇보다 제일 야당의 대표가 특정국 대사에게 그런 자리를 깔아 준 것 자체가 잘못됐다. 이 대표 한 사람이 국민의 자존심마저 뭉개버린 것이다.   이 대표의 헛발질은 위태위태한 한중 관계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대표는 툭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를 ‘굴욕외교’라고 운운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이 대표가 ‘굴욕외교’의 진수를 보여준 셈이다.   이 대표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논의하려 했으면 일본대사를 만났어야 했다. 중국은 일본의 오염수 문제를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중국은 후쿠시마의 30배가 넘는 삼중수소를 배출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왜 중국대사에게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가.   이 대표는 이번 사태를 놓고 “야당 대표로서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중국과의 경제협력 활성화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야당 대표의 노력에 대해 폄훼를 하고 비난을 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태도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갈등의 근원이 한국을 얕잡아보는 중국 측의 오만하고 고압적인 행태에 있는데도 중국을 감싸는 태도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주변 4국과의 당당한 협력 외교를 내세웠지만 일본에만 당당하고 북한 중국에는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제 야당도 전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서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굴욕외교’는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굴욕외교 한미 외교관계 야당 대표 외교안보 정책

2023-06-18

[기고] 야당과 양치기 소년

이솝 우화에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있다. 이 소년은 양을 치다가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모였다가 속은 것을 알았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러니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짜 늑대가 나타나자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마을 사람들은 또 소년이 거짓말하는 줄 알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양 떼와 양치기 소년은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다.   지난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에 대한 조사에 합의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 전문가 21명으로 꾸려진 시찰단이 23, 24일 이틀 동안 후쿠시마 제1 원전을 찾아 점검했다. 지난 21일 시찰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일본의 계획이 적정한지 전체적인 검토 과정 중 하나로 현장에서 확인할 부분을 확인하고 점검하고 오겠다”고 밝혔다. 특히 시찰단은 오염수 저장 탱크와 오염수 처리 시설인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과한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 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원본 자료를 일본 측에 요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시찰단 출국 전날 시민단체가 개최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 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을 내다 버리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식수로 먹어도 괜찮다는 사람을 불러다가 헛소리 잔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어 “일본은 전 세계 바다가 오염되든 말든 갖다 버리면 능사겠지만, 대통령이나 정부가 거기에 동조할 이유는 없지 않으냐”고도 했다.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은 “시찰단은 국민 신뢰를 잃었다.” ‘견학단’, ‘관광단’, ‘유람단’이란 말이 괜히 나오겠느냐”며 비판 공세를 이어갔다.   이에 국민의힘은 “국면 전환용 반일 선동집회”라고 반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수산물과 직결되어 있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지난 정권에서는 왜 방치했는가. 한·일 간 합의로 정부 차원의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는가. 반일감정만 앞세워 국민의 식생활을 위한 조치보다는 반일선동에만 올인하지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 문제와 관련해 정부·여당에 맹공을 퍼붓고 있지만, 야권에서도 이 같은 대응이 지나치게 선동적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 22일 페이스북에서 야당의 주장에 대해 “당장 저 같은 사람조차 그다지 설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야당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며 수산물 문제를 부각하는 것과 관련 “수산물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은 자칫 수산업 종사자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민주당이 이런 주장을 하려면 과학적 논거가 훨씬 더 단단해야 한다.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야당이 일부 전문가 의견만을 선택적으로 인용해 주장을 앞세우는 행태를 꼬집었다.   시찰단의 조사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양치는 소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박철웅/ 일사회 회장기고 양치기 야당 양치기 소년 해양 방류가 오염수 해양

2023-05-29

[J네트워크] 비토크라시

비토크라시(vetocracy)는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2013년 한 기고문을 통해 알린 용어다. 민주주의(democracy)에서 대중을 뜻하는 데모(demo) 대신 거부를 뜻하는 비토(veto)를 넣어 만든 말이다. ‘거부민주주의’로 요약된다. 상대 당의 정책과 주장이라면 일단 거부하고 보는 극단적 파당 정치를 뜻한다.   “비토크라시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는 후쿠야마의 메시지는 2013년 당시 공화당을 겨냥했다.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대립이 가장 극심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은 통과됐지만, 후임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케어 무력화에 나서는 등 정치적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한국 정치에서도 비토크라시는 ‘야당의 발목잡기’를 비유할 때 종종 언급된다. 2020년 11월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 구성을 두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태클을 걸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4개월 넘게 설득했는데 비토크라시만 보였다”(김태년 당시 원내대표)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결국 야당의 공수처장 추천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겠다며 만든 야당 비토권이 힘으로 무력화되면서, 양당의 불신은 더 깊어졌다.   문제는 당장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역시 “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네거티브 서사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이 40%에 달하지만, 동시에 정권교체론 역시 절반을 넘어서는 ‘모 아니면 도’ 여론이 반영된 풍경이다. 시민들을 향해 ‘비토 후보’가 누군지 묻는 여론조사 업체도 나타났다. 집권당도 야당도 비토크라시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구조다.   극심한 여론 양극화 풍조에 누구보다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는 지난 5년간 국정을 이끌어온 청와대다. 하지만 문 대통령 주변에선 높은 임기 말 지지율에 대해 “선거 국면에서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탁현민 의전비서관)이란 자화자찬이 나올 뿐, 반성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새해 종교 지도자들을 만난 문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서 남은 마지막 과제가 국민 사이의 지나친 적대와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과 화합의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한 말도, 그래서 공허하게 느껴진다. 한영익 / 한국 중앙일보 정치에디터J네트워크 야당 비토권 정치학자 프랜시스 공수처장 후보

20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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