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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명품의 애환

어떤 여배우가 큼지막한 가방을 둘러매고 비행기에서 내린다. 그 가방이 많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리라는 것은 가방의 주인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리라. 영락없이 기저귀 가방 같은 볼품없는 것이 명품으로 신분상승을 타게 됐으나, 섣불리 구매할 수 없는 가격임을 알게 된 것은 친지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화였다.   “형수님도 명품가방 갖고 다니세요?” 다짜고짜로 문의하는 그의 음성이 부드럽지 않았다. “그런 거 사본 적 없는데…. 뭔일이예요? 하고 물었다.” "그렇지요? 형수님, 그놈의 가방 때문에 말이죠. 애 엄마가 5000달러가 넘는 가방을 사겠다고 저러니 기가 막히네요."   듣고 있는 나도 기가 막혔고 그때야 명품 가방이라는 게 수천 달러에서 수 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하소연 전화까지 했을까 하는 심정,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쩌랴, 남의 부부싸움에 공평처사 밖에 더 좋은 게 있을지.     "요즈음 명품이 대세라고 하니 너무 나무라지 말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 참 형수님도 가방쪼가리 같은 걸 사려고 한 달 생활비를 쓰라고요? 나 그렇게 못합니다. 빠듯하게 사는 주제에 5000달러짜리 가방이라니요. 턱도 없이 허영에 날뛰는 거지요.”   “방도가 있긴 한데요. 공휴일에 파트타임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사라고 하면 될 텐데….” 격앙되었던 그의 음성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대책이 돼줄 소지를 짐작했는지 그는 잘 주무시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부디 좋게 타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생각지 못한 돈 액수가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말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여성들의 눈에 콩깍지를 씌운 여배우의 가방을 원망해야 할지, 어쨌든 명품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불화를 일으킨다면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싸움을 하고 분노까지 치솟게 만드는 이유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들 사이에 욕망의 불을 지펴놓고 그 아우성을 지켜보며 회심의 미소를 흘리고 있는 그 존재는 무엇일까? 친지의 말마따나 턱도 없이 날뛰는 허영이라는 무질서다.  개인적 욕망의 단가가 높아지다 보니 명품을 탐하는 욕망이 대세처럼 굳혀지는 것이지 원래 명품이라는 물질은 없었던 걸로 인식하는 것이 무질서의 반대말인 질서다. 허영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소박함이 아니던가?   무질서는 고통을 야기한다. 우리 삶의 터전이 점점 더 해체되어 가는 것도 그만큼 무질서가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나의 문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온갖 부정의 기운이 침입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허락 없이는 마음 안에 가정 안에 희생 제물을 만들지 않는 인간 관계가 지켜져야 한다. 5000달러짜리 가방도 그렇고 가족과의 상의 없이한 성형수술로 낯선 모습에 적응하지 못해 갈등하던 가정의 비극도 보았다.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불운이 선택의 결과가 되어준 셈이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놀이판으로 뛰어들든가 아니든가는 순전히 선택이다.   질서의 열매가 조화일진데 풍요로운 삶을 지속시키려면 무질서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를 알아차려야 한다. 이런 문제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모두가 또한 알고 있다. 자연과 우주 만물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역시 소비주의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환경파괴에 가담하기까지 우리는 무질서의 노예적 근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을 사들이는 것이 자유인의 행동으로 보이지만 소유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자유다.   간디는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당신 자신이 평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면 우리도 말할 수 있겠다.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바로 당신이라고. 최경애 / 수필가수필 명품 애환 명품 때문 5000달러짜리 가방 기저귀 가방

2024-01-11

조성내 시인, 첫 시집 ‘바위의 언어’ 출간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성내 시인이 첫 시집 ‘바위의 언어(사진)’를 출간했다. 조 시인은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중도’라는 이름으로 시를 게재하고 있다.   조 시인은 “마음 깊숙이 숨어 있었던, 예전에는 몰랐던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씩 손으로 잡아다 펼쳐놓았다”고 시집 출간 소감을 밝혔다.     책을 소개한 김정기 시인은 “조 시인은 이국땅의 흙을 밟은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늦지 않다는 열정으로 첫 시집을 상재하게 됐다”며 “피땀어린 노력으로 정신과 의사로 성공하고, 지금은 은퇴 후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 시인은 작품 ‘바위의 언어’에서 이민의 삶과 애환, 언어 소통의 어려움 등을 담았다. 그는 “지난 50여년 기죽은 채로 살아오면서 하고싶은 말 참으며 바위의 언어를 속 깊이 되뇌어 왔지만, 아직도 바위는 못 되었다”며 이민 생활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시에 함축적으로 담기도 했다.   조 시인은 전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67년부터 뉴욕에 거주해 왔다. 아동발달학교 라이프라인센터 의료과장,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임상조교수 등을 거쳤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시인 시집 시집 바위 김정기 시인 애환 언어

2022-11-21

"LA 한인 리커 꿈과 애환 담아"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는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뉴욕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리커스토어 드림스(Liquor Store Dreams)’는 뉴욕에서 열리는 2022 트라이베카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12일(일)까지 월드 프리미어 행사를 갖는다.   한인 엄소연씨가 각본·감독·제작을 맡은 ‘리커스토어 드림스’는 LA에서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는 부모들과 2세 자녀들의 이야기다.   지난 2019년 5분짜리 단편영화로 제작된 이 영화는 아시안퍼시픽페스티벌 및 각종 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되는 등 주목을 받으면서 이번에 확장판으로 제작됐다.     확장판의 총괄제작자인 다이앤 콴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해 화제가 된 영화 ‘마인딩 더 갭’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유명 제작자다.     엄소연 감독은 “훌륭한 작품들이 첫선을 보이는 트라이베카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프리미어 행사를 가질 수 있어 영광이다”라며 “무엇보다 이런 국제 행사에서 LA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리커스토어 드림스는 엄 감독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LA한인타운으로 이민 온 엄 감독의 아버지 엄해섭씨는 지난 2000년 흑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잉글우드 지역에 리커스토어를 열었다.   아버지를 도와 어린 시절부터 리커스토어에서 일해온 엄 감독은 영화감독을 꿈꾸면서 아버지와 마찰을 빚었다.     반면, 엄 감독의 친구이자 또 다른 한인 이민자 대니 박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렵게 입사했던 주류 기업 ‘나이키(NIKE)’를 퇴사하고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던 어머니를 도왔다.     그는 흑인과 한인 사회를 통합하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현실을 보며 아버지가 지녔던 영세업자로서의 무게를 깨닫는다.     엄 감독은 “리커스토어를 통해 한인 이민자들의 애환과 비즈니스를 물려받거나 다른 꿈을 찾는, 두 가지 인생을 사는 자녀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영화는 4·29 폭동을 조명하며 일생을 바쳐 일궈온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무너진 한인들의 입장과 시각을 담았다”며 “두순자 사건을 부각하며 한인사회에 화살을 돌렸던 주류사회를 향해 한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 시절을 지내신 아버지가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한편,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2001년 ‘9·11 사태’가 후 영화 제작자 제인 로즌솔과 배우 로버트 드니로 등이 뉴욕의 재건과 회복을 기원하며 만든 영화제로, 현재는 뉴욕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세계적 행사다.     ▶eams@gmail.com, www.liquorstoredreams.com 장수아 기자한인 애환 뉴욕 국제영화제 한인 이민자들 한인 사회

2022-06-10

[글마당] 지붕 속의 애환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 잠에서 깬 듯은 한데 기척이 없다.   “추운 날 따뜻한 지붕 아래 누워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아? 커피 마시고 싶네요.”   “네 사모님 알겠습니다.”   남편이 커피를 끓이러 간 사이 나는 추운 날 지붕 속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플로렌스에서 공부했던 아들을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 베니스 여행을 끝내고 플로렌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기말고사로 바쁘다며 “엄마 내가 필요하면 이메일 해요. 차오” 인사하더니 바삐 학교로 가 버렸다. 그리고는 여행 중 아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들의 차가움이 절절히 느껴졌다. 호텔이 낯선 창고인 양 그 안에 갇힌 듯 답답하고 다리에 힘이 죽 빠졌다. 창밖 사그라지는 황혼이 감싸는 하늘 아래 다닥다닥 붙은 주홍색 지붕들이 물결치듯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끝 간데없는 지붕 속에서 삶의 비애가 속삭이며 나를 위로했다.     ‘너만 슬픈 것이 아니야. 우리도 힘들어.’   집마다 지붕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암암리 꿈틀대는 애환이 많다.     우리 친정 옆집에 남편이 죽자 딸 아이 둘을 데리고 갓 난 남자아이 하나 있는 영감에게 재가한 아줌마가 살았다.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가 산다는 것이 이상했다.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영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다행히 가게 터와 살림집을 영감이 남겨서 본처에서 난 사내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웠다.     아줌마의 둘째 딸은 디즈니 만화 영화에 나오는 포카혼타스처럼 생겼다. 나는 매력적인 그 언니를 따라다녔다. 친절한 그 언니는 국군 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인 내 숙제를 대필해주곤 했다. 결국엔 휴가 나온 군인 아저씨들이 그 언니를 만나보고 싶다고 학교로 나를 찾아오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글을 곧잘 썼던 그 언니는 펜팔로 미국에 사는 남자와 사귀다 결혼해 한국을 떠났다.     본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귀던 여자와 가정을 꾸렸다. 평화로웠던 집안이 며느리가 남편에게 ‘친엄마도 아닌데’라며 꾀어 재산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딸을 출가시키고 아들만을 믿고 살던 아줌마는 당황하여 우리 부모님에게 하소연했다. 그 아줌마가 불쌍했다. 위로한답시고 아줌마가 다니던 영락교회에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4층에 살던 나는 창밖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지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애환이 꿈틀댈까? 생각하며 창가에서 서성이다가 오지랖이 발동하곤 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지붕 애환 주홍색 지붕들 지붕 뚜껑 지붕 아래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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