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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78세 트럼프의 팟캐스트 활용법

지난주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대선에서 압승을 거머쥔 도널드 트럼프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였다. 광활한 미 대륙을 돌면서 유권자들을 향해 특유의 스타일로 지지를 호소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고 외쳤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분초를 아껴 쓸 선거운동 막바지에 트럼프는 상당 시간을 팟캐스트 출연에 할애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생소해져 버린 팟캐스트 방송에 6월부터 총 14번, 그것도 선거가 임박한 10월에만 8번이나 출연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대선 승리에 적중한 전략이었다.   투표를 11일 앞둔 10월 25일. 트럼프는 유세현장을 잠시 떠나 팟캐스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The Joe Rogan Experience)’에 출연하기 위해 텍사스 주 오스틴으로 날아갔다. 3시간 분량으로 녹화된 그 날 인터뷰는 유튜브에서 순식간에 3800만 번 넘게 재생됐다. 지난 10년 동안의 팟캐스트 최다 시청기록을 경신한 수치였다. 3000만 명 넘는 유튜브 및 스포티파이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진행자조차 놀란 기록이었다.   편집 없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진행자 로건과 대화하며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자신이 불복한 2020년 대선, 관세 및 이민자 문제, 이종격투기,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UFO 등 여러 다양한 주제를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끌어 나갔다. 물론 비속어도 섞어가며 말이다. 해당 팟캐스트의 주 청취자인 젊은 남성 유권자들과 공감대를 이루는 대목이었다. 특히 로건의 전문 분야인 이종격투기 주제를 다룰 때는 평소의 트럼프와는 달리 진행자의 말을 경청하며 로건의 업적을 치하하기도 했다. 트럼프로서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팟캐스트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데 18살인 막내 아들 배런이 출연을 설득했다고 소개했다. 아들 말을 잘 듣는 자상한 아버지상까지 내세운 셈인데 이번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가 만난 유명 인플루언서들과의 소통 모습도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는 후문이다.   물론 기존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이 자신의 발언을 팩트 체크하고 오류를 지적하는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려고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우호적인 팟캐스트에 집중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의 쟁점이었던 ‘고령’ 78세 보수 공화당 후보가 ‘열린’ 자세를 보여준 데는 트럼프 특유의 대중 심리를 간파하는 능력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 및 감각이 작동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안착히 / 한국중앙일보 글로벌협력팀장글로벌 아이 트럼프 활용법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특유 선거운동 막바지

2024-11-13

비전케어, 연례 사랑의 무료 개안수술 실시

실명을 막는 국제구호기구로 2002년에 한국에서 설립돼 현재 미국과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39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전케어 USA(Vision Care USA: 이하 비전케어)가 오는 16일(토) 뉴욕시 퀸즈 베이사이드에 있는 뉴욕한인봉사센터(KCS)에서 ‘제8회 사랑의 무료 개안수술 로컬 아이 캠프(Local Eye Camp)’를 개최한다.     비전케어는 “비영리단체 KCS를 통해 미리 예약을 하신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이날 무료 진료를 실시한다”며 “진료한 환자들 중 경제적으로 어렵고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추려 무료 백내장수술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8번째 개최되는 로컬 아이 캠프 행사는 뉴욕 지역의 안과 치료(Vision Care) 전문의들 중에서 경험 많고 헌신적인 안과의사들이 참여한다.   특히 로컬 아이 캠프 행사에 앞장서고 있는 다니엘 김 안과 전문의는 NYU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뉴욕·뉴저지에서 성모안과병원 대표의사로 재직하면서 한인사회를 위한 무료 백내장 수술과 해외 의료봉사활동 등 다양한 의료적 헌신을 하고 있다.   이번 로컬 아이 캠프에는 김 원장과 함께 한인의과대학생협회와 뱅크오브호프 직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또 전체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뱅크오브호프와 함께 뉴욕한인의사협회, 주디스 엄 재단, 재외동포재단, ASCRS 재단(American Society of Cataract and Refractive Surgery Foundation), 조 재단(Joh Foundation) 등 각계 단체들이 후원한다.     2002년 서울에 있는 명동성모안과 안과의사들과 간호사, 그리고 검안사들로 구성된 자원봉사팀이 파키스탄에서 일회성 사역 ‘비전케어 아이 캠프(Vision Care Eye Camp)’를 펼치며 시작한 비전케어는 지난 20여 년 동안 370여 회의 무료 아이캠프를 통해 19만2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검사·진료하고, 3만580회가 넘는 백내장 수술을 실시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43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명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중 80%가 치료할 수 있거나 예방할 수 있는 실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비전케어 관련 문의는 e메일(amyahn@vcs2020.org) 또는 전화(917-583-4205).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비전케어 비전케어 USA 다니엘 김 원장 성모안과병원 비전케어 무료 백내장 수술 로컬 아이 캠프

2024-11-06

[글로벌 아이] 북·중·러 애증의 삼각관계

“문화대혁명 기간 북한은 화교학교를 폐쇄하고 전체 화교 1만 명을 추방했다. 중·북은 서로 대사를 4년간 소환했다. 베이징의 홍위병은 김일성을 ‘수정주의 앞잡이(走狗)’라고 욕하는 대자보를 걸었다. 북한 관리는 중원왕조의 한반도 침략 역사를 끊임없이 선전했다.”   올해 6월 20일 왕밍위안(王明遠) 베이징시 개혁·발전연구회 연구원이 SNS에 올린 과거의 북·중 일화다.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호 군사원조 조항을 담은 양자 조약을 체결한 다음 날이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소련)가 북한에 접근할 때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 충격을 줬다. 러시아가 동방에서 미국 진영과 경쟁에 집중할 때마다 한반도 정세가 긴장되고 심지어 동북아에 새로운 군비 경쟁 혹은 충돌을 야기했다. 그래서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 모두와 좋은 친구이지만 러·북 양자 관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왕 연구원은 러시아의 동진을 보는 중국의 불편한 심리를 숨기지 않았다. 검열 당국도 방관하며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이어 홍콩 중문대학의 유명 학술저널 ‘이십일세기’는 8월호에 ‘동북아 안보구조’를 다뤘다.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종신교수는 북·중·러 애증의 삼각관계를 “취약한 연맹”으로 표현했다. 중국 개혁개방 직후 북한의 불만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소련 군함의 북한 입항을 허용하고, 소련 항공기에 영공을 열어줌으로써 사실상 중국 안보에 위협을 가했다”고 회고했다.   선 교수는 결론에서 “중·소·북 3국의 내부 관계는 전면적인 화해를 이루기 어렵고 비록 공동의 적을 상대해도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르고, 누가 우두머리가 되느냐 문제가 있었다”라며 “만일 중국이 러·북 동맹에 참여한다면 중국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주변의 안정과 평화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표 및 전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러·북과 거리두기를 촉구한 것이다.   이제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으로 북·중·러 삼국지에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13세기 칭기스칸과 우구데이의 몽골군 이후 8세기 만에 아시아 군대의 유럽 등장이다. 유럽인들은 당시를 떠올리지 않을까.   중국에는 당장 북·중 친선의 해베이징 폐막식이 숙제다. 수교 75주년 기념일(10월 6일)은 지났다. 11월 미국 대선과 다자외교 시즌 이후로 예상된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위원장과 김덕훈 총리가 북 대표단 단장 물망에 오른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과 외교 실력이 시험대에 섰다. 신경진 / 한국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글로벌 아이 삼각관계 애증 블라디미르 러시아 발전연구회 연구원 동북아 안보구조

2024-11-03

[글로벌 아이] 매력과 권력

기자 생활의 상당 기간을 정치부에서 취재하고 보도했다. 그런 이력에도 최근의 미국 대선은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 많다.   이를테면 TV토론에서 압승하고도 해리스는 트럼프를 따돌리지 못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포르노 배우와 얽힌 뒷거래를 비롯해 온갖 비도덕적 추문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그런 트럼프의 지지세는 꺾이기는커녕 일부 경합주에선 해리스를 앞지르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최근 애리조나와 조지아, 위스콘신주의 바닥 민심을 직접 취재하면서 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배경을 넌지시 짚어볼 수 있게 됐다. 바로 트럼프가 끝없이 빚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미국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저서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우리를 만지작거리고 주물럭거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마음을 빚어낸다.” 나는 여러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재집권이 아른거리는 현 상황을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이야기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해보려 했다.   그 어떤 가치적 판단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트럼프는 해리스에 비해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트럼프와 해리스, 두 후보의 무수한 연설과 인터뷰, 토론 등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다. 장르로 따지자면 트럼프는 픽션, 해리스는 논픽션 쪽이다.   말하자면 트럼프는 지지자들이 듣기 원하는 이야기를 허구를 동원해서라도 지어낸다. 트럼프는 자신을 악인과 맞선 영웅으로 서사화하면서 대선 캠페인을 드라마처럼 끌고 가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악인(불법 이민자)이 등장하고 갈등(일자리와 치안 위기)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영웅(트럼프)이 기본 구조를 이루는 식인데, 듣는 이를 현실과 무관한 판타지로 데려가는 효과를 낸다.   반면 해리스는 현실에 기반한 사실을 서술하는 논픽션 강연자 유형이다. 그는 판타지를 지어내는 대신 현실(트럼프의 민주주의 위협)을 자세히 설파하는데, 이는 도덕적으로 온당할지 몰라도 잘 짜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호모 픽투스’ 관점에선 그리 매력적인 설득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결국 이야기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 매력에 관여하는 요소다. 권력이 타인의 복종을 강제하는 힘이라면, 매력은 옳든 그르든 타인이 스스로 다가오게끔 하는 힘이다. 이번 미국 대선은 그 매력의 경중에 따라 초박빙 승부가 결정될지도 모른다. 권력이 매력을 강제할 순 없지만, 매력은 종종 권력 창출의 중요한 발판이다. 정강현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권력 픽션 해리스 반면 해리스 논픽션 강연자

2024-10-30

[글로벌 아이] 전통을 지킨다는 것

정좌한 이의 쉼 없는 붓질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숨마저 죽이게 된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목기를 한손에 들고, 갓난아이 얼굴을 쓸어내리듯 넙적붓으로 느리고 부드럽게 옻칠을 해나간다. 칠기 하나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2개월. 작은 나무 책상 앞에 앉아 옻칠을 반복하는 사이토 시호를 지난 11일 이와테현 하치만타이시 앗비(安比) 칠기공방에서 만났다.   올해 나이 서른셋. 처음부터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여느 젊은이들이 그렇듯, 도회지로 떠나 취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깜짝 놀랐다. “고향이 칠기로 유명한 곳 아냐?” 이와테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옻과 칠기의 산지. 칠기에 무심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고향의 유명세가 놀랍기도 했다. 고향엔 숙식만 해결하면 무료로 칠기 기술을 전수해주는 센터도 있었다. 고향의 전통을 지켜보자는 생각에 고민 끝에 짐을 쌌다. 당시 나이 29살. 2년간 공부를 한 뒤, 칠장이가 됐다.   최근 일본 전통 산업 현장에선 사이토와 같은 젊은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사이토가 칠기를 배운 센터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10대부터 20대 청년이 수두룩하다. 옻 생산 현장도 마찬가지다. 이와테현 니노헤시의 한 옻나무밭. 옻 채취 작업을 하는 5명 모두 20~30대. 이들은 허리춤에 곰을 쫓는 방울을 달고, 무선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일한다. 한 청년은 “후계자가 부족하단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는데, 이 기술을 다음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에 있는 철기공방 타야마스튜디오도 그렇다. 고령의 주철 장인들이 땀 흘려 일하던 공방에서 이젠 20대 청년들이 숯불을 피워 옛 방식대로 철기 주전자를 만든다. 이와테의 명물 ‘남부 철기’다.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이곳으로 옮겨와 올해로 7년째 철주전자를 만들고 있는 나가사카 하이토는 “전보다 스스로 노련해졌다고 느낄 때가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고령화를 맞이한 일본이 전통 산업 계승자를 그냥 찾아낸 건 아니다. 패전 후 사라지다시피 했던 옻나무를 심고, 생산부터 복원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이뤄진 국가 지원책, 장인으로부터 2년간 무료로 전수할 수 있도록 한 지방 도시의 촘촘한 교육지원 등이 맞물려 마중물 노릇을 했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김현예 / 한국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글로벌 아이 전통 전통 산업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최근 전통

2024-09-29

[글로벌 아이] 미 대선 흔드는 ‘거짓말’의 정치학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결국 물러난 이유는 불법 도청이 아니라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거짓말 때문이었다. 닉슨에 이어 두 번째로 탄핵 대상이 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비슷했다. 성 추문이 아니라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거짓말이 사유가 됐다. 미국 최고 권력자에게 거짓말이 어떻게 치명상을 안기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선거판에서 상대 후보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는 논점을 흐려 피해 가는 대표적인 기술이 ‘거짓말쟁이’ 낙인찍기다. ‘세기의 대결’로 불린 10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TV 토론. 눈길을 끈 건 두 후보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는 장면이었다.   뜨거운 이슈인 낙태권 문제가 불을 댕겼다. 트럼프는 먼저 “해리스가 택한 부통령 후보는 임신 9개월 낙태도 괜찮고, 출생 후 죽임(execution after birth)도 괜찮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해리스는 “처음부터 말씀드렸듯 오늘 거짓말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맞받으며 “트럼프가 재선하면 전국적인 낙태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역공을 폈다. 트럼프 역시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응수했다.   트럼프는 정부 기관을 향해서도 ‘거짓말’ 공격을 퍼부었다. 이민자 폭증의 심각성을 거론하며 “그들이 주민의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주장을 내놨다가 진행자가 “FBI는 범죄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고 짚자 “FBI의 사기”라고 했다. 구체적인 근거는 대지 않았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잘 알려진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저서 ‘리더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에서 위정자가 ‘공포 조장’이나 ‘전략적 은폐’ 같은 유형의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나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맞을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대선 TV 토론은 후보의 자질과 품성, 능력을 검증하는 무대다.   미 국민 6700만여 명이 시청한 TV토론에서 명확한 논거 없이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거짓말로 몰거나 사실관계를 비트는 허위 주장을 늘어놓는다면 책임 있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권위 있는 매체가 TV 토론에서 발언 하나하나를 팩트체크하는 것은 그래서다. NYT가 트럼프 발언 33건을 팩트체크한 결과 16건이 ‘거짓’으로 판단됐다. 해리스는 조사 대상 발언 8건 중 2건이 ‘거짓’으로 판정받았다. 이런 팩트체크 결과와 11월 5일 대선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김형구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총국장글로벌 아이 거짓말 정치학 오늘 거짓말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트럼프 발언

2024-09-15

[글로벌 아이] 유력 차기 일본 총리 후보의 ‘결착’과 ‘감사’

“당신이 일본 총리가 돼 G7 정상회담에 나갔다간 ‘지적 수준이 낮아서 망신당할 것’이란 걱정이 많다.” 지난 9월 6일 일본의 새로운 총리에 출사표를 내던진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43) 전 환경상의 출마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밝힌 한 일본 기자가 던진 말이다. ‘매듭’이나 ‘해결’을 뜻하는 ‘결착(決着)’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비장한 표정으로 연설을 이어가다 저 말을 듣곤 입술을 살짝 깨무는 모습도 중계 화면에 잡혔다.   5년 전 환경상 재직 당시 기후변화 대책을 묻는 질문에 “재미있고, 쿨하고, 섹시하게”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이후 그 장면은 온라인에 박제됐고, ‘멍청하다’는 이미지가 쫓아다녔다. 질문을 가장한 ‘막말’이라 느꼈을 법도 한데, “과거 발언을 반성하고 있다”며 “총리직을 내려놓을 때쯤이면 그래도 ‘괜찮은 녀석이었다’는 평을 받겠다”며 대처했다.   앞으로 연달아 이어질 TV토론을 앞두고 자민당 내에선 “밑천 드러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나온다곤 하지만, 현재까진 고이즈미 후보가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일본 총리가 되는 미래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되고 미디어에 노출이 된다. 출마 발표 직후인 7일 주말, 도쿄 긴자(銀座) 가두연설에 나서 “기득권이 인정하는 개혁밖엔 추진하지 못 하는 당을 개혁하겠다”고 소리 높였다. 고이즈미 후보 측은 이날 가두연설에 5000명 이상 모였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밝혔는데, 기자가 실제 현장에서 보기에는 외국인 관광객 등 유동인구를 제외하면 1000여 명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가 총리가 된다면 신경 쓰이는 것은 한·일 관계 등 외교 문제다. 부친 고이즈미 준이치로(82) 역시 총리 재임 기간(2001~2006)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해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샀다. 고이즈미 후보 역시 올해 8월 15일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기 때문에 총리가 돼서도 참배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앞으로 적절히 판단하겠다”면서도 지금껏 참배한 이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 대한 감사·존숭(尊崇)을 표하고, 이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그로서는 애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겠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과오를 ‘감사’란 단어로 포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결착’에 한·일 양국이 풀지 못한 난제는 포함되지 않은 듯했다. 실제로 그의 출마 발표에 ‘한국’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정원석 / 한국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글로벌 아이 일본 유력 고이즈미 후보 유력 차기 총리 재임

2024-09-11

[글로벌 아이] 고시엔의 진짜 피날레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최고의 응원이 가능했습니다. 감사만으론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후배들에게 뜨거운 추억, 부탁합니다!”   지난달 23일 일본 효고현 ‘고교야구 성지’로 불리는 고시엔 구장. 일본 전국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 한국계인 교토국제고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응원 북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던 야마모토 신노스케(3학년) 응원단장이 모자를 벗어들고 손을 모았다. 우렁찬 인사가 향한 건 교토산업대부속고 관악부(管樂部) 학생들. 중·고교 도합, 학생이 180여 명에 불과한 교토국제고엔 응원가를 연주해줄 관악부가 없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지역 타학교 학생들이 불볕더위에도 무거운 악기를 들고 와 매 경기 옆자리에서 ‘우정 응원’을 해준 것인데, 이에 대한 감사를 표한 것이었다.   야마모토는 야구 선수를 꿈꿨다. “여기라면 나도 성장할 수 있겠다”는 꿈을 품고 교토국제고에 입학했다. 선수복을 입고, 맹훈련했지만 출전 선수 명단에 들 순 없었다. 건강이 좋지 못했던 탓이다. 고교 3학년의 마지막 여름. 일본의 여느 고교 3학년생이 대입 시험에 몰두할 때, 그는 응원단장이 돼 고시엔에 섰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시상식 피날레까지 끝까지 지켜본 뒤 그가 교토산업대부속고 관악부에 정중히 ‘뜨거운 추억’을 ‘앞으로도’ 부탁한 건, 그날이 고교 야구선수로서의 마지막 날이었던 탓이다. 야마모토의 인사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번엔 교토산업대부속고 관악부 리더인 고바야시 스키(3학년)양이 나섰다. “오늘 응원 정말 즐거웠습니다. 일본 제일, 정말 멋집니다. 응원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학생들은 서로를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주고받고, 박수를 보냈다. 교토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기 전, 두 학교 학생들은 “일본 제일, 해냈다”를 외치며 환한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시엔 경기가 막을 내린 지 일주일이 흘렀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보다, 장관의 축하 인사보다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건 고시엔 조연이지만 주연 같았던 10대 응원단장과 관악부 대표의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의연함과 자신감이 이들의 말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이 한국서도 화제다. 106회나 열릴 정도로 고시엔이 사랑받는 데엔 입시 지옥, 학원 뺑뺑이가 아닌, 이런 10대들의 성장 드라마가 있다는 걸 한국의 어른들이 한 번쯤돌아봐 주면 어떨까. 김현예 한국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글로벌 아이 고시엔 피날레 교토산업대부속고 관악부 전국 고교야구대회 시상식 피날레

2024-09-02

[글로벌 아이] 해리스의 필승 전략은 시간 보내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부통령을 지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 사퇴 전까지 존재감이 거의 없던 인물이다. 지난주 전당대회 연설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다.   전당대회가 열린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셸 오바마, 빌 클린턴 등 ‘연설의 신(神)’급 인사의 연설이 이어졌다. 무명에 가깝던 팀 월즈 부통령 후보 지명자의 15분짜리 미식축구 ‘작전지시’ 방식의 연설도 스타 탄생을 알린 계기로 평가됐다.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마지막 무대에 오른 해리스는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느껴진 환호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해리스는 38분의 연설 중 초반 13분을 어머니와 자신의 유년시절을 설명했다. 숨 쉴 틈 없는 환호가 나왔던 이전 연사들 때와는 달리 어색한 고요함이 반복됐다. 그리고 나머지 25분간 트럼프를 15번 언급했다.   단순화하면 집권 여당이 선거를 70여일을 남기고 당원들에게 대선 후보를 처음 소개했고, 소개를 받은 후보는 자신의 미래 비전 대신 상대방에게 반대한다는 비전을 천명했다는 의미가 된다. 미국 정치사를 연구해온 로버트 슈멀 노터데임대 교수는 “해리스는 과거 성장기가 아니라 미래 리더십을 보였어야 했다”며 “왜 최고사령관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출신이다. 상원의원 4년 만에 부통령으로 발탁돼 정치경력이 짧다. 부통령 때는 외교, 안보, 경제 분야에서의 경험 부족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갤럽이 최근 발표한 그의 호감도는 47%까지 올랐다.   이는 정치인 해리스에 대한 평가와는 다르다. 지난해 6월 NBC방송의 조사에서 ‘부통령 해리스’에 대한 호감도는 32%로, 스스로 ‘돌아가선 안 될 과거’로 규정한 트럼프의 호감도 41%보다 낮았다.   전당대회 현장에서 만난 민주당의 한 대의원은 “해리스가 스스로 증명해야 할 과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시간은 해리스의 편”이라고 했다. “TV토론 직후인 10월 초면 이미 사전투표 국면이라 실수나 잘못이 나와도 투표에 반영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의 말은 현실적이다. 트럼프가 연일 “해리스는 언론 인터뷰도 안 한다”며 빠른 검증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미국 정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에선 경험해본 트럼프의 ‘2기’ 또는 검증되지 않은 ‘해리스 1기’ 중 어떤 결론이 날지 끝까지 마음 졸이며 지켜봐야 할 처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강태화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해리스 필승 해리스 부통령 부통령 해리스 정치인 해리스

2024-08-28

[글로벌 아이] 공장에서 가정으로 향하는 중국 휴머노이드

“왠지 커피 맛이 더 좋은 것 같은데요. 하하하”   22일 중국 베이징시 이좡개발구에서 열린 2024 세계로봇박람회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국 로봇업체 칭바오의 휴머노이드가 건넨 커피잔을 받은 남성의 한 마디에 주변 사람들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박람회엔 중국의 로봇산업을 주도하는 업체 169곳이 참가했다. 600여 종의 로봇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27종의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에 관심이 집중됐다. 칭바오 역시 인공피부를 이식해 인간과 흡사한 모습으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휴머노이드를 출품했다.   베이징 쥐선즈넝 로봇혁신센터가 개발한 ‘톈궁(天工)’은 전시관을 돌아다니면서 관람객을 만났다. 톈궁 주변을 둘러싼 아이들이 신기한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키 163㎝에 무게 43㎝인 톈궁은 최대 시속 6㎞ 속도로 달리고 장애물을 피하거나 계단을 오를 수도 있다.   로봇 개발사 유니트리 전시관도 인기였다. 이번에 공개된 휴머노이드 G1은 수십 개의 관절 모터로 점프와 회전 등 비교적 고난도 동작도 구현이 가능하다. 공장용을 넘어 일반 가정에도 판매된다. 휴머노이드는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을 대신하는 ‘동료’에서 인간의 삶에 스며드는 ‘반려’의 지위까지 거머쥔 것이다.   최첨단 로봇보다 더 눈에 띄었던 건 바로 아이들이다. 갓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다양했다. 10살 아들을 데리고 온 둥춘청은 “로봇 연구자를 꿈꾸는 아들과 함께 매년 방문한다”면서 “최신 로봇 발전 상황을 직접 느끼면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과학자로 크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의 로봇 산업은 정부가 다진 땅에서 기업들이 씨를 뿌리며 열매를 맺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과 발전에 관한 지도 의견’을 통해 내년까지 대량 생산 체계를 마련해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AI 로봇 시장은 2030년 1848억 달러까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가 보장된 로봇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현대차그룹이 2020년 미국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삼성전자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설립한 레인보우 로보틱스에 투자한 것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움직임도 없다. 그 사이 중국의 과학 꿈나무들은 최신 로봇을 눈과 손으로 직접 체험하며 로봇 기술자를 꿈꾼다. 이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도성 / 한국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글로벌 아이 중국 휴머노이드 인간형 휴머노이드 휴머노이드 혁신 휴머노이드 g1

2024-08-26

[글로벌 아이] 멀린다 게이츠의 독립선언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이자 자선사업가인 멀린다 게이츠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독립선언을 한 날이 되었다. 1964년 8월 15일에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6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인생에 다가온 변화와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3년 전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가 무너졌다는 이유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의 27년 결혼생활을 청산한 뒤, 올해 빌 게이츠와 2000년에 함께 설립한 자선재단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재단에서도 손을 뗐다. 무려 1600명의 직원이 기부금 750억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선재단임에도 말이다. 대신 여성 중심 자선사업과 투자를 위해 2015년 자신이 세운 피보탈벤처스(Pivotal Ventures)라는 회사에 온갖 열정을 쏟고 있다. 이름도 결혼 전 성을 포함한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Melinda French Gates)’로 바꿔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있다.   이뿐 아니다. 프렌치 게이츠는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방송인’으로 깜짝 변신하며 ‘우리를 만드는 순간들(Moments That Make Us)’이라는 유튜브 인터뷰 시리즈를 공개했다. 프렌치 게이츠는 편안하고 진솔한 진행으로 자녀교육, 우정, 커리어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게스트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60~70년대 테니스 레전드 빌리 진 킹 등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인 여성들이다. 프렌치 게이츠가 그녀들에게 던진 질문 중 핵심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어떻게 돌파했는지였다. 사심 가득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반응이 뜨겁다.   오프라 윈프리는 인생 선배로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50대가 당신이 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처리하는 나이라면 60대는 ‘나’라는 집으로 돌아와 안착하는 시기다. 60대는 당신이 어느 시기보다 더 힘 있고, 더 향상되고, 더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이다.” 동갑내기인 미셸 오바마는 “나이가 들어도 두려움 없이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한다. 물론 백악관을 떠난 뒤 치즈 토스트를 직접 만드는 즐거움 등 소소한 일상도 함께 소개한다.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가 자신의 환갑 프로젝트로 세상과 공유한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를 들으면서 이는 여성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내용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한국 여성들이 만드는 진솔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진다. 안착히 / 한국 글로벌협력팀장글로벌 아이 독립선언 멀린다 멀린다 게이츠 프렌치 게이츠 멀린다 프렌치

2024-08-21

[글로벌 아이] 일본 엘리트 체육이 성공하는 이유

금메달 20개를 목표로 나선 일본 대표팀은 ‘개최국 이점 없이’ 이번에도 종합 3위의 성과를 올렸다. 한국도 당초 금메달 5개란 목표를 배 이상 초과 달성했다. 두 나라 모두 신통한 성적 탓에 긍정적인 분위기 일색이지만, 양상은 조금 다르다.   먼저 메달의 쏠림 현상이다. 한국은 32개의 메달을 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와 동률인 역대 2위 성적을 냈지만, 메달은 11종목에 쏠렸다. 이른바 ‘총·칼·활’ 3종목에서 전체 메달의 절반을 획득했고, 금메달 80%가 몰렸다. 종합 10위 안에 드는 나라 중 가장 종목 집중도가 컸다. 일본은 16개 종목에서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며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구기 종목과 육상 종목에서 일본은 확실한 우위를 점해나가고 있다. 한국은 농구와 축구, 배구에서 출전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이번 올림픽 남자 농구에서 유일한 아시아팀은 일본이었는데, 예선에선 은메달의 주인공인 프랑스를 꺾을 뻔했다. 4쿼터 종료 16초를 남기고 4점 차로 리드하다 동점을 허용하고 연장 끝에 패배했다. ‘오심’ 논란만 아니었다면 이겼을지도 모르는 경기였다. 남자배구도 8강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다잡은 경기를 역전패했지만, 세계 무대에서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음을 증명했다. 육상 트랙 종목에서도 일본 선수들이 결승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은 결코 보기 드문 장면이 아니었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앞둔 지난 2015년 스포츠청을 신설하며 엘리트 체육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전엔 선수 경기력 향상을 종목별 협회가 책임졌다면, 국가가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튼 것이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사업 예산은 현재 연간 100억엔(930억원)에 달한다. 2014년엔 50억엔을 밑돌았지만, 2019년 100억엔을 넘은 뒤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은 꾸준히 해외 경기와 합숙에 참여하고, 기술분석팀이나 우수 코치진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는 넓은 생활 체육 저변 하에서 시너지를 일으켰다. 일본에선 학교 내 부 활동을 ‘부카츠’(部活)라고 하는데, 학창시절 부 활동에 전념을 다 해보는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특히 1987년 이후 교과 내용과 교육시간이 대폭 줄어들자 이후 태어난 세대는 체육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다 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비인기종목이라고 해도 체험해보고 도전해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넓은 저변의 존재는 벌이와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이 돼 주고 있다. 전환점을 맞은 한국의 엘리트 체육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정원석 / 한국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글로벌 아이 일본 엘리트 엘리트 체육 생활 체육 종목별 협회

2024-08-14

충돌 차량에서 튕겨져 나온 기저귀 찬 아이 2명 '무사' 기적

텍사스 I-10 프리웨이에서 기저귀 찬 어린아이 두 명이 차량 충돌사고로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으나 기적적으로 도로 위에 무사히 앉아 있는 영상이 공개돼 놀라움을 주고 있다. 해리스 카운티 셰리프국에 따르면, 교통사고에서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치지 않은 1세와 4세 유아 2명은 현재 병원에 입원중이다. 지난 11일 두 아이는 아버지가 운전하던 지프 차량에 탑승 중이었는데, 다른 차량과 충돌하면서 지프 차량은 전복되었고, 아이들은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사고 직후의 영상을 보면, 기저귀만 입고 있는 두 아이가 고속도로 한가운데 앉아 있고, 아버지와 다른 남성이 그들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빅터 코르도바는 집으로 가던 중 이 모든 것을 목격했다. 처음에 그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다. 코르도바는 "아이들이 사망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죽은 줄 알았어요"라고 휴스턴의 KTRK-TV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다른 차량에 치이지 않았다. 셰리프국은 아직 조사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25세인 아이들의 아버지가 안전띠를 채우지 않은 것에 대해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코르도바는 자신도 아버지로서 이 사건을 목격한 후,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다른 부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들께, 그리고 모든 분들께, 거리와 상관없이 자녀를 안전하게 고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기 위해 이 영상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 뉴스팀기저귀 충돌 지프 아이 프리웨이

2024-08-14

[글로벌 아이] ‘뒷모습’의 정치인

뒷모습은 한 사람의, 그러니까 한 인생의 요약본이다. 마치 난해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생애 한 챕터에서 물러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차마 다 해석할 수 없는 진실 한 토막을 남긴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바로 다음 날, 어떤 뒷모습과 마주쳤다. 사퇴 압력을 받던 바이든 대통령이 끝내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는 이야기. 분명 정치적인 판단이었겠지만, 그 이면에서 분투했을 그의 인간적 고뇌 쪽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사퇴 연설을 하는 오벌 오피스에는 가족사진이 즐비했다. 사퇴를 만류했다는 가족들. 그래서 후보직에서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선 노회한 정치인의 단호함과 할아버지이자 아버지, 남편으로서의 미안함이 두루 읽혔다.   그의 뒷모습이 남긴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바이든의 뒷모습은 해리스의 앞모습이었다. 단단했던 ‘트럼프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정치인이 스스로 돌아서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바이든의 단호한 뒷모습은 치열하고 내밀한 인간적 고뇌가 정치인으로서의 욕망을 가까스로 눌러낸 결과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바이든이 후보직에서 돌아서기로 한 바로 그 날, 국내에선 가수 김민기의 부고가 전해졌다. 스스로를 ‘뒷것’으로 부르며 일평생 뒷모습으로 남고자 했던 아티스트. 그가 남긴 ‘봉우리’라는 노래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높은 봉우리에서 스스로 내려가기로 결단한 바이든의 뒷모습은 미국 정치에 보기 드문 활력을 불어넣었다. 소속 정당이 위기에 빠지자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고 스스로 돌아선 뒷모습의 정치인. 정치 이념을 떠나서 바이든은 이런 사실만으로도 훗날 꽤 넉넉한 평가를 받는 정치인으로 남을 것이다.   여든두 살 미국 정치인의 단호한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올라가려는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떠올라 문득 쓸쓸해졌다. 지금 여야는 ‘친윤 공방’과 ‘일극 체제’ 논란 속에 당 대표를 선출했거나 뽑을 예정이다. 정치 전면에 나서는 ‘앞모습’보다 때를 기다리는 ‘뒷모습’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기어이 당권 장악에 나선 이들이다.   그러나 어떤 나라의 명운은 물러설 때를 정확히 아는 뒷모습의 정치인들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뒷모습은 제 생애를 요약할 뿐이지만, 한 정치인의 뒷모습은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정강현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뒷모습 정치인 노회한 정치인 일평생 뒷모습 한국 정치

2024-08-07

[글로벌 아이] 밴스 지명은 ‘MAGA당’ 변신 위한 12년 프로젝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러닝메이트로 39세의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발탁한 이유에 대해 현지 소식통은 “공화당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마가)당’으로 바꾸기 위한 최소 12년짜리 프로젝트”라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밴스 의원의 발탁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 ‘고령의 백인 재벌 트럼프’를 ‘러스트벨트 출신의 젊은 흙수저 밴스’로 보완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많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노림수는 오는 11월 대선 승리 전략에만 머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아직 공화당의 주류가 아니다. 2016년만 해도 그는 ‘버리는 카드’였고, 지금도 공화당 주류는 그를 ‘당의 후보’로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8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조지 W 부시, 딕 체니, 밋 롬니 등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로 이어진 공화당 주류의 핵심들은 트럼프의 대관식을 끝내 외면했다.   밴스 지명은 공화당 주류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트럼프의 ‘독립 선언’이었을 수 있다. 부통령 후보 수락 행사에서 나왔던 밴스 소갯말은? “트럼프는 그를 러닝메이트나 부통령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 공화당의 미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운동의 미래를 택한 것”이었다.   미국 소식통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그보다 더 강한 ‘MAGA 주의’로 무장한 젊은 밴스는 차기 대선 후보로 8년을 집권할 수 있게 된다”며 “최소 12년의 트럼프 정권을 거친 뒤엔 지금의 공화당이 ‘마가당’으로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세계주의를 내세우고 ‘세계 경찰’을 자처해왔던 기존 공화당 노선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 자리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신(新)고립주의로 대체한다는 뜻이다. 당내에선 “밴스의 발탁은 마지막 주류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대사의 정치적 사망 선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밴스는 부통령 후보 지명 두 주일 만에 과거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을 “국가의 미래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자식이 없는 캣 레이디들(childless cat ladies)’”이라고 비난한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과거 발언들은 민주당이 발굴한 공격 소재지만, 이를 확대·재생산한 주체는 공화당 주류다. 이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2주 전으로 돌아간다면 밴스를 발탁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밴스 발탁은 트럼프의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라며 트럼프를 공격한다. 당내 주류세력의 노골적 흔들기에도 트럼프는 “밴스는 정말 잘하고 있다”고 일축한다. 강태화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프로젝트 지명 공화당 주류 미래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2024-07-31

[우리말 바루기] ‘외동딸’과 ‘외둥이’

맞벌이 등으로 아이 양육과 교육이 더욱 힘들어짐으로써 자녀를 하나만 낳는 가정이 적지 않다. 주변에 아들이나 딸 하나만 달랑 있는 가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녀가 혼자인 경우 보통 외동아들·외동딸이라 부른다. 각각 외아들·외딸을 귀엽게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동’은 귀여운 어감을 살리기 위해 들어간 낱말이다.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을 아들·딸 구분하지 않고 부를 때는 ‘외둥이’라고 한다. 외동아들·외동딸처럼 ‘외동이’이라 부르지 않고 ‘외둥이’이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둥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성질이 있거나 그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외동아들·외동딸처럼 ‘-동이(童이)’가 본딧말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둥이’로 바뀐 것이다.   ‘귀염둥이’ ‘해방둥이’ ‘바람둥이’ 등과 같이 ‘-동이’ 형태는 모두 ‘-둥이’로 바뀌었다. ‘-둥이’가 본딧말인 ‘-동이’를 제치고 표준어가 됐다. 늦동이·쌍동이·팔삭동이·막동이 등도 늦둥이·쌍둥이·팔삭둥이·막둥이로 고쳐 써야 한다.   낱말 뒤에 ‘-둥이’가 붙을 때는 본딧말인 ‘-동이’를 살려 쓰지 않는다고 기억하면 된다. 그렇다면 ‘쌍둥밤’은 어떻게 될까. ‘쌍둥이’의 ‘쌍둥-’을 떠올리고 ‘쌍둥밤’으로 표기하기 십상이나 이 역시 ‘-둥이’가 들어간 말이 아니므로 ‘쌍동밤’으로 해야 한다. ‘쌍둥아들’ ‘쌍둥딸’도 ‘쌍동아들’ ‘쌍동딸’로 고쳐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외동딸 보통 외동아들 일부 명사 아이 양육

2024-07-30

[글로벌 아이] 미지의 달에 새겨진 중국의 ‘과학 굴기’

“단순히 자원을 뽑아내거나 기지를 건설하는 수준이 아니라 달의 역사와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는 통찰력을 줄 것이다.”   중국 연구진이 인류 최초로 발견한 달 토양의 물 분자와 관련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내린 평가다. 지난 16일 국제 과학 저널 ‘네이처 천문학(Nature Astronomy)’에 중국과학원과 다른 중국 연구 기관이 합동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연구팀은 2020년 발사된 창어5호가 달에서 가져온 토양 샘플에서 분자 수가 풍부한 미네랄을 발견했다. 1000개가 넘는 광물을 분리했는데, 그중에 물 분자를 지닌 판 모양의 투명한 결정을 찾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달 광물(ULM-1)’이라고 명명했다.   ‘달에서 물 찾기’는 우주 탐사에 나선 과학계의 오랜 목표 중 하나다. 여러 가설이 존재하는 달의 기원과 역사의 비밀을 풀어줄 실마리가 될 뿐만 아니라 달 탐사 기지 건설의 성패를 좌우할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달 표면에는 물이 없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1960년대 인류 최초로 달을 정복한 미국 아폴로호가 가져온 달 토양 샘플에선 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9년 인도 우주선과 2020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원격 조사를 통해 물의 흔적을 탐지하면서 ‘달에는 물이 없다’는 주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연구 결과를 두고 “달 표면에서 물 분자를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물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로켓배기가스 등에 의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지난달 25일 창어 6호가 들고 귀환한 약 2㎏ 분량의 달 토양 샘플에 관한 연구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은 달나라에 오성홍기를 꽂는 ‘우주 굴기’를 향해 전진 중이다. 2035년 달 기지 건설을 내세우고 2년 뒤, 4년 뒤에도 달을 향해 로켓을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등 경쟁국을 제치고 달 뒷면에 닿은 중국은 이미 ‘가운데 중(中)’자를 달 표면에 새겨넣었다.   지난해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세계에서 7번째로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한국도 우주 강국을 꿈꾼다. 지난 5월엔 우주 개발 정책을 책임질 우주항공청이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기술 격차는 이미 10년 넘게 벌어졌고, 한국인 우주인은 16년째 명맥이 끊겼다. 지난해 우주개발 예산은 일본의 15% 수준, 미국에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너른 우주에 태극기가 휘날릴 그날을 기다려본다. 이도성 / 한국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글로벌 아이 중국 미지 우주발사체 기술 한국인 우주인 나선 과학계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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