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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신록 예찬

6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누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5월이 꽃들의 잔치와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라면 6월은 차분하고 곱게 익어가는 신록의 달이다. 5월이 사춘기의 소녀라면 6월은 열여덟 살의 꽃봉오리다. 날마다 하루가 다르게 녹즙이 짙어간다.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대학 일 학년 신입생 때의 일이다. 연대 뒷산 쪽으로 걸어가면 청송대(소나무 소리가 들리는 곳)를 만난다. 6월의 청송대에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그 황홀경에 난 그만 휘청대며 비틀거렸다. 키 큰 소나무 사이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청잣빛 하늘과 햇빛을 머금은 연두 잎들이 영롱하게 빛 방울을 튕기고 있었다. 눈이 시리고 가슴이 시려 몸을 겨우 벤치에 눕혔다. 신선한 기운을 흠뻑 받아 눈을 씻고 머리와 가슴까지 씻어낸 후 눈을 감는다. 귀를 열어 소나무 소리를 듣는다. 소나무들의 행복한 재잘거림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내 몸도 마음도 연두에서 녹색으로 번져간다.     봄이 여름에 바통을 넘겨주는 소리가 귓불을 스친다. 풋풋하고 싱그럽다. 신록의 향기를 전해주는 신선한 바람, 세상은 온통 푸르게 변하고 새들도 흥에 겨워 초록을 노래한다. 초록에 묻혀있던 야생화도 환하게 웃는다. 투명과 해맑음! 누가 세상을 이토록 초록으로 도배했을까. 초록에 눈이 멀어 시선 둘 곳을 잃는다. 초록의 그림자를 마시고 이 숲에서 태어난 바람이 달콤하다. 그렇게 몇 시간 연두에 취해 초록 세례를 받고 집에 돌아와 ‘신록 예찬’이라는 수필을 ‘연세 춘추’, 연대 대학신문에 기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얼마 후 휴학하고 군대에 간 많은 동문으로부터 격려의 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 한 십 년 동안은 5~6월이면 먼 여행을 다녀오고는 해서 정신없이 6월을 보냈다. 6월을 즐기기에 너무 바빴던 탓도 있다. 올 6월은 오랜만에 주방을 새로 단장한 후 의자의 위치를 바꾸어보았다. 전에는 남편과 마주 보고 앉았는데 이번에는 뒷마당을 즐기기 위해 의자를 나란히 배치했다. 남편이 “올해는 유난히 나무가 풍성하고 녹음 지네” 하길래 “그동안 당신은 항상 뒷마당을 등지고 앉아서 그래” 하면서 웃었다.     초록은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선물을 준다. 우선 초록은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공해와 매연에 지친 눈을 들어 가끔 초록을 올려보거나 하늘을 바라보면 눈과 가슴이 편해짐을 느낄 수 있다. 건강해지고 싶다면 숲을 찾으라는 조언도 있다. 심신의 건강을 숲에서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숲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은 위대하다.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나는 특유의 상쾌한 향은 피톤치드(Phytoncide: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 발산하는 휘발성 물질)라 하는데 이의 방출량이 가장 많은 6월에 산림욕은 크게 권장된다. 이는 크게 항균 효과와 면역력 증강 효과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피톤치드 효과는 또한 심장병이나 대사 증후군 원인인 혈압과 혈당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또한 우울증, 비만,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떨어뜨린다. 아토피성 피부염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어있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산림욕은 가을보다 봄, 여름 숲이 내보내는 양이 최대치에 달한다.     피톤치드는 green doctor라고도 한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몸이 피곤할 때 몸에서 양이온이 발생한다, 이런 때 음이온이 풍부한 숲에 가면 몸이 가뿐해진다. 이밖에 음이온이 많은 공기는 두통을 없애주고 피를 맑게 해주며 피로를 풀어주고 식욕을 증진하며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어떤 상품보다 초록은 우리를 젊고 건강하게 해준다. 오늘도 풋풋한 피톤치드에 물들어 온몸이 파랗게 멍들도록 한껏 마셔보자. 우리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신록 예찬 신록 예찬 소나무 소리 소나무 사이사이로

2023-06-30

[삶의 뜨락에서] 코스모스를 심읍시다

우리 집 앞 좁은 화단에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있다. 아내가 2~3년 전 씨를 뿌렸더니 여름내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코스모스는 화초보다는 손이 덜 가는 꽃이긴 하지만 바람에 넘어질 뻔하면 세워주고 가끔 잎사귀를 정리해 주어야 한다. 9월 초 활짝 피었다가 이제 허리가 굽어지고 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 이 꽃을 재배하는 집은 우리와 독일-오스트리아 부부인 것 같다. 나는 아무런 도움을 못 주고 쳐다보기만 하는데 색상이 순수하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미국에서는 흔한 꽃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꽃이다.     코스모스는 전파력이 강해 바람에 홀씨가 날아가 들녘에 피고 색깔도 하양, 핑크, 노랑, 빨강 등 다양하다. 대학 시절, 대학생 방송작품 경연대회에서 ‘코스모스를 심읍시다’라는 작품으로 겨우 장려상을 받았다. 주제는 봄에 코스모스를 방방곡곡에 심어 가을에 국토를 아름답게 하자는 것. 어설프지만 노랫말을 만들어 음악대학 4학년생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아름다운 우리 마을, 코스모스 동산/ 지나가는 나그네들, 마음 달래주고/ 청순하고 그윽한, 그 모습 보고 파서/ 봄에 심는 코스모스, 가을 기쁨 준다네.” 이 작품이 인연이 되었던가. 졸업을 앞두고 입사시험을 거쳐 그 방송국 프로듀서가 되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착상은 좋은데 멜로디가 동요 같고, 경쾌하지 않아 더 나은 상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 이곳으로 이민 왔고 코스모스는 잊힌 꽃이 되었는데 우리 집 뜰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내 눈에 자연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시를 만나고  반은퇴 한 후부터였다. 그 전에는 돈을 생각했다. 어려웠던 시절, 자립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아이들 공부시켜야 하고, 집도 마련해야 했다. 5월 신록, 가을 단풍, 첫 눈 내리는 날에도 별다른 감동을 하지 못했다.     은퇴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체코를 여행하고 오스트리아로 입국하면서 주머니에 얼마 되지 않은 체코 돈이 있었다. (체코는 NATO 회원국이지만 EU가 아니어서 유로화를 받지 않는다) 공항 면세점에서는 자국 화폐를 받지 않아 버릴까 하다가 작은 과자를 샀다. 이때 종이돈은 휴지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플레이션이 연 몇백 퍼센트에 달했던 나라에서는 실제로 종이돈은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충격적이었다.     현업에서 손을 놓고 여행을 즐기고, 산책하고, 산행을 시작하면서 자연의 신비를 목격했다. 채소와 과실수를 재배하고 뒷마당에 사슴, 야생 터키가 찾아오는 집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우습게 여겼던 공원 관리인이 큰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 시의 반 이상은 산책길에서 주운 것이다. 집에서 나와 로잘린만을 따라 걷는 100분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도 가끔 천둥·번개(영감)가 쳤고, 나는 발상을 가장 쉬운 말로 시로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간밤에 바람이 불었고, 아침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코스모스는 기운이 없어 쓰러질 것 같고, 나도 머지않아 저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꽃을 닮아가고, 꽃은 나와 가까워지고 있다. 코스모스는 긍정적인 의미의 유니버스를 뜻하기도 한다. 수줍은 듯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이 꽃에서 잊었던 과거를 다시 찾는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코스모스 코스모스 가을 방송작품 경연대회 신록 가을

20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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