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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코스모스를 심읍시다

우리 집 앞 좁은 화단에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있다. 아내가 2~3년 전 씨를 뿌렸더니 여름내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코스모스는 화초보다는 손이 덜 가는 꽃이긴 하지만 바람에 넘어질 뻔하면 세워주고 가끔 잎사귀를 정리해 주어야 한다. 9월 초 활짝 피었다가 이제 허리가 굽어지고 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 이 꽃을 재배하는 집은 우리와 독일-오스트리아 부부인 것 같다. 나는 아무런 도움을 못 주고 쳐다보기만 하는데 색상이 순수하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미국에서는 흔한 꽃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꽃이다.  
 
코스모스는 전파력이 강해 바람에 홀씨가 날아가 들녘에 피고 색깔도 하양, 핑크, 노랑, 빨강 등 다양하다. 대학 시절, 대학생 방송작품 경연대회에서 ‘코스모스를 심읍시다’라는 작품으로 겨우 장려상을 받았다. 주제는 봄에 코스모스를 방방곡곡에 심어 가을에 국토를 아름답게 하자는 것. 어설프지만 노랫말을 만들어 음악대학 4학년생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아름다운 우리 마을, 코스모스 동산/ 지나가는 나그네들, 마음 달래주고/ 청순하고 그윽한, 그 모습 보고 파서/ 봄에 심는 코스모스, 가을 기쁨 준다네.” 이 작품이 인연이 되었던가. 졸업을 앞두고 입사시험을 거쳐 그 방송국 프로듀서가 되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착상은 좋은데 멜로디가 동요 같고, 경쾌하지 않아 더 나은 상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 이곳으로 이민 왔고 코스모스는 잊힌 꽃이 되었는데 우리 집 뜰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내 눈에 자연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시를 만나고  반은퇴 한 후부터였다. 그 전에는 돈을 생각했다. 어려웠던 시절, 자립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아이들 공부시켜야 하고, 집도 마련해야 했다. 5월 신록, 가을 단풍, 첫 눈 내리는 날에도 별다른 감동을 하지 못했다.  
 
은퇴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체코를 여행하고 오스트리아로 입국하면서 주머니에 얼마 되지 않은 체코 돈이 있었다. (체코는 NATO 회원국이지만 EU가 아니어서 유로화를 받지 않는다) 공항 면세점에서는 자국 화폐를 받지 않아 버릴까 하다가 작은 과자를 샀다. 이때 종이돈은 휴지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플레이션이 연 몇백 퍼센트에 달했던 나라에서는 실제로 종이돈은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충격적이었다.  
 


현업에서 손을 놓고 여행을 즐기고, 산책하고, 산행을 시작하면서 자연의 신비를 목격했다. 채소와 과실수를 재배하고 뒷마당에 사슴, 야생 터키가 찾아오는 집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우습게 여겼던 공원 관리인이 큰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 시의 반 이상은 산책길에서 주운 것이다. 집에서 나와 로잘린만을 따라 걷는 100분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도 가끔 천둥·번개(영감)가 쳤고, 나는 발상을 가장 쉬운 말로 시로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간밤에 바람이 불었고, 아침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코스모스는 기운이 없어 쓰러질 것 같고, 나도 머지않아 저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꽃을 닮아가고, 꽃은 나와 가까워지고 있다. 코스모스는 긍정적인 의미의 유니버스를 뜻하기도 한다. 수줍은 듯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이 꽃에서 잊었던 과거를 다시 찾는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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