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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안 치우는 자연사박물관의 황당한 해명

뉴욕자연사박물관이 '욱일기'(일본 전범기)와 일본해 표기 관련 "당시 상황을 드러내며 표준을 따른 것"이라며 시정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2022년 흑인 인권 운동의 여파로 루스벨트 대통령, 인디언, 흑인의 대형 기마상을 철거하는 등 변화하는 시류에 맞추겠다고 밝힌 입장과 사뭇 다른 태도다. 〈본지 4월 24일자 A-1면〉   관련기사 이번엔 일본해…자연사박물관, 욱일기 이어 ‘또’ 켄드라 스나이더 박물관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지난달 본지에 "회신이 너무 늦어 미안하다. 박물관 측의 공식 답변을 전한다"며 연락을 취해왔다. 지난 4월 본지가 제기한 문제의 장소는 ▶2층 메인 로비 티켓부스 왼쪽 벽화의 욱일기·일본해 표기 ▶'Asian People' 역사관 안내판의 일본해 표기 등 세 곳이다.   먼저 벽화에 대해 박물관은 뉴욕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기념하며 그린 기념물이며 뉴욕시 랜드마크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벽화를 그린 시기는 1935년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2012년 보수 작업 당시에도 이를 그대로 재현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당초 한인사회에선 보수 작업을 하면서도 욱일기를 다시 그렸는지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지만, 박물관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박물관은 본지에 "랜드마크로 지정됐다는 건 건축·역사문화적으로 보존해야 할 중요성이 크다는 뜻"이라며 "어떠한 현대적 고려도 없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05년 일본과 조약을 맺는 걸 그린 것으로, 그의 공적 삶에서 중요한 장면을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일본해 표기에는 "알려줘서 고맙다"면서도 "이 표기를 쓸 때 우리는 미디어와 국제 조직에서 널리 쓰이는 표준을 따랐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주장한 표준 관련한 추가 질의에는 3일 현재까지 답하지 않고 있다.   박물관은 강령을 통해 "다양성·평등성·포용성을 강조한다"며 "서구적 시각에서 표현한 박물관의 전시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 전세계 박물관의 문화적 맥락에 반하는 것, 인종차별 및 민족중심적 관행에 대한 비판 등도 검토하며,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 관점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 같은 가치들은 더 이상 오늘날의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커뮤니티와 이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며 "그 예시로 루스벨트 대통령 동상에 대한 여러 관점을 담은 기획물을 개발하는 것 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을 갖는 도시에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강령은 지난 2019년 6월 이사회에서 채택됐다.   최윤희 한인학부모협회 회장은 "저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그들의 대응이 맞지 않는다"며 "본인들이 그렇게 밝힌 가치가 있으면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고 비판했다. 강민혜 기자 kang.minhye@koreadailyny.com일본 자연사박물관 루스벨트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국주의 관점

2024-10-03

[열린광장] 10월을 노래한다

나팔꽃처럼 아름다운 9월이 지나가고 관상용 급송화가 피는 10월이 찾아왔다. 10월을 뜻하는 영어 ‘옥토버(October)’는 라틴어로 여덟 번째를 의미한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가 10개월로 나눴던 1년을 12개월로 바꾸면서 8번째 달이었던 옥토버가 열 번째 달이 된 것이다. 이는 수학에서 8각형을 옥타콘(octagon), 음악의 8도 음정을 옥타브(octave)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0월은 매우 특이한 달이다. 10월엔 미국 대통령이 6명이나 태어났고, 백악관의 초석이 놓인 달이며, 미국을 발견한 콜럼버스 기념일도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의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가 1924년 10월 첫날에 태어났다. 이에 앞서 1735년 10월 30일에는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1822년 10월 2일에는 19대 루터퍼드헤이스, 1829년 10월 5일엔 21대 체스터 아터, 1858년 10월 27일에는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태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90년 10월14일은제 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들이 출생한 날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과 관련 10월은 비극적인 달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의 총탄에 숨진 10·26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 하나는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을 대표하는 백악관의 초석이 1792년 10월 13일 놓였다는 것이다. 초석의 길이는 175피트, 높이는 85피트에 달한다. 그리고 탐험가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에  도착한 것이 1492년 10월12일이다.     10월은 한국에도 기쁜 날이 많다. 1일은 국군의 날이고, 3일은 개천절, 그리고 9일은 한글날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10월에는 세계적으로 많은 유명인이 출생하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 달이다. 1813년 10월 10일에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쥬세퍼 배르디가 태어났고, 1859년 10월 20일엔 미국의 철학자 존 드위가 출생했다. 또 1881년 10월 25일엔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1885년 10월11일엔 프랑스의 노밸상 수상자 프랑수아 모리악이, 1888년 10월16일은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유진 오닐이 태어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10월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1867년 10월18일은 알래스카에서 미국 국기가 공식으로 게양된 날이다.  둘째, 1879년 10월19일엔 토머스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전구 실험에 성공했다. 셋째, 1886년 10월 28일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설치됐다.     1517년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의 정문에 그 유명한 95개 조의 격문을 붙인 날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노래 대통령 시어도어 박정희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

2023-10-01

[한홍기의 시카고 이야기]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제26대(1901~1909) 대통령이다. 당시 초고속으로 성장한 19세기 말 미국 경제는 정부의 관리 감독이 비교적 약하였다. 바로 그 시기에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는데 무질서한 경쟁, 독점 그리고 사기, 부패 등이었다. 이 현상이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취임 후 직면한 위기였다. 대기업은 대량의 경제 자원을 집결시켰고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했다. 노동자들의 이익과 사회 평등을 파괴했고 중소기업의 성장을 방해했다. 수 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그늘 속에 파산했다.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록펠러는 미국의 100여개 기업을 삼켜 버렸다. 이때까지 정부는 대기업에 대해 눈을 감아 주었다. 기업이 커져가는 것이 국가에도 유리하고 기업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하였다. 미국은 건국 후 100여년 간 영국으로 이어 받은 자유 경쟁 체제를 하여 왔다. 강한 자가 살아 남고, 약한 자는 도태되는 원리에 입각해 정부는 시장 경제를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에서 많은 국민들이 어떻게 이익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 일부 중산층을 중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독점, 부패, 위조 등의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는 글들이 언론을 통해 흘러 나왔다. 20세기 초, 뜨거운 사회 운동의 열기가 일어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1920년 때까지 계속 지속되어온 이 운동을 진보 운동이라고 불렀다.   이 시기에 어려서부터 펜실베니아 석유 생산 지역에서 자란 유명한 여기자 ‘아이다 타벨’이 록펠러가 경쟁사인 그의 아버지와 다른 석유 생산 업자들을 공격할 때 어떻게 비참하게 몰락시켰는지 목격하고 대기업 뒤에 숨겨진 비리를 철저히 조사하여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2년 동안 장편 시리즈로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잔인한 방법을 동원한 부의 축척과 독립제국을 어떻게 세웠는지에 대해 책을 썼는데 바로 베스트 셀러가 되어 버렸다     타벨은 막강한 석유제국에 도전장을 냈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수 많은 진보 인사들이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미국 정부 사회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어도어는 경제 분야로 시작된 첨예한 갈등과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질문에 깊은 고뇌에 빠졌으며, 그는 사회의 강력한 압력 속에 어쩔 수 없이 진보 운동 쪽에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제 정리에 들어 갔으며 이를 위해 다른 대기업의 본보기로 스탠다드 석유회사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선포했다. 1911년 미국 최고 법원은 이 회사가 셔먼의 반 트러스트 법을 위반했고 자유 경쟁을 방해 했다고 판결했다. 스탠다드는 여러 개의 작은 회사로 강제 해체되었고 요즘의 겨우 남은 ‘모빌’사가 그 중의 하나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당초 이 현상에 의아해 하였으며 록펠러 자신도 더욱 왜 이런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 자수 성가해 어렵게 키워낸 자신의 제국이 미국 사회에 가져다 준 상처를 그는 모르고 있었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기회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효율을 희생 시키더라도 평등을 중요시 하였기 때문이다. 시어도어는 재임기간 동안 40여개의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쇠고기, 석유, 담배 회사가 사법부의 결정 아래 강제 해체 되었고 헌법을 통해 정부의 안이 수립 되었다. 그 후 시어도어는 노사갈등 문제의 해결에도 착수하였다.   그는 노사 대표들을 직접 백악관에 초청하기도 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지론은 자본주의가 도를 넘어 거대 기업의 횡포조차 감시, 관리하지 못하면 미국에도 사회주위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는 러일 전쟁을 종식 시킨 공로로 미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하였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이야기 roosevelt 시어도어 시어도어 루즈벨트 스탠다드 석유회사 정부 사회

2022-04-14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2명의 루즈벨트 대통령

미국에는 2명의 위대한 루즈벨트 대통령이 있는데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와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대기업들을 전부 해체하고 진보주의에 손을 들어 주어 유명했던 인물이라면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만큼 고육지책을 택해서라도 양극화 현상을 없애 경제를 다시 살려내고 미국에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가 뿌리 내리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1901년부터 재선에 당선될 만큼 인기가 많았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다.   또 한 분의 유명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4번이나 대통령에 당선 되었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다. 시어도어와 프랭클린 대통령은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작은 아버지와 조카 사이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정치 성향이 서로 달랐다. 그럼에도 미국 역사에 걸친 두 번의 최대 경제 공황을 이 두 대통령은 슬기롭게 잘 넘기었다. 두 대통령의 업적은 오늘날 세계 각국, 특히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한국이 과거 IMF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과감한 구조조정과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본보기로 그 어려운 고비를 넘겼듯,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정책도 한국에서는 이제부터 검토를 하여야 할 단계에 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은 이에 대한 연구를 더욱 함으로써 꾸준히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즘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화된다는 여론이 비등할 때 미리 스스로 정화하지 않으면 한국도 언젠가 현재의 물러터진 공정거래법을 넘어선 강력한 반 트러스트법으로 기업을 강제 분할하는 법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한국은 대기업이라는 수준을 넘어 온 가족과 친척이 앉아 대물림 하는 문어발식 ‘재벌’(Chebul)이라는 것이 더욱 문제다. 세계에 유례 없는 재벌가 기업은 아무리 일류 대학을 나온 수재라도 재벌 기업에서 일을 해봤자 그 집안 사돈의 팔촌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금수저’ 문제는 사회적 갈등이 점점 뿌리 내려 가는 징조다. 거기에다 수 많은 공공 기업까지 천문학적인 만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모두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으로 둔갑하여 공공 부문까지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지경까지 왔다.   더욱이 이를 제재하여야 할 정부의 세대도 베이비 붐으로 태어나 재벌체제에 만성이 되어 무감각해진 것이 더욱 문제다. 언론 역시 광고에 무너져 기레기라는 소리마저 들어도 태연할 뿐이다.   수구 꼴통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처음에 그 자신이 대기업을 해체한다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록펠러나 카네기 또한 국가에 부를 계속 가져다주는데 왜 자신들이 당해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 경제를 위해서는 대승적인 차원과 함께 사회적 갈등이 해소 되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은 그 동안 진보 정부가 지향하였던 낮은 단계의 통일에 더욱 시달릴 것이다. 이번에 정말 간발의 차이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에서 재벌이 미국처럼 전문화가 아닌 문어발 체제가 계속 진행된다면 공산화 논의는 끝없이 계속 진행 될 것이며, 점점 국민의 성화에 결국은 남북 합작의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도 감당하기 힘든 북한의 ICBM 성공으로 한국은 그야 말로 자기네 진짜 주체 경제 사상을 세우지 못한다면 북한의 주체 사상에 먹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금전 만능 사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정부는 철저히 배워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다룰 다음의 두 이야기는 중국의 ‘대륙굴기’를 일부 참조하였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루즈벨트 대통령 루즈벨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프랭클린 루즈벨트

2022-04-07

美당국, 52년전 21만달러 훔쳐 달아났던 은행직원 찾아내

美당국, 52년전 21만달러 훔쳐 달아났던 은행직원 찾아내 범인, 가명으로 살아오다 지난 5월 폐암으로 숨져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미국 수사당국이 1969년 자신이 근무하던 은행에서 21만여달러를 훔쳐 달아난 뒤 행방이 묘연했던 남성을 52년 만에 찾아냈다. 14일(현지시간) 미 방송 CNN과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법무부 산하 연방보안관실(USMS)은 52년 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발생한 은행 절도 사건의 범인을 찾아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범인의 실명은 시어도어 콘래드. 클리블랜드의 한 은행에서 창구 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교대근무를 마치면서 종이봉투에 21만5천달러를 훔친 뒤 종적을 감췄다. 이 돈의 현재 가치는 170만달러, 약 20억원에 달한다. 사건은 금요일에 발생했지만, 은행은 월요일에 그가 출근하지 않을 때까지 피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은 미국 내 방송에서 '미해결 미스터리', '미국의 가장 악명높은 지명수배자' 등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가 달아난 뒤 좀처럼 행방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 텍사스 등 각지로 그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십년간 지지부진했던 수사는 올해 5월 토머스 랜들이란 남성이 폐암으로 숨졌다는 소식이 계기가 됐다. USMS는 이 남성의 부고를 토대로 몇가지 단서를 확인, 과거 수집된 정보들을 다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 남성의 진짜 생일은 1949년 7월 10일인데, 부고에선 1947년 7월 10일로 돼 있어 비슷했다. 부모님 이름도 실제와 똑같았다. 실제 모교인 뉴잉글랜드대와 출생지인 덴버도 포함돼 있었다. 또 그의 대학 지원서에 있는 서명이 토머스 랜들이 2014년 보스턴 연방법원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했다고 NYT는 전했다. 1970년부터 보스턴에서 토머스 랜들이라는 가명으로 살아온 것이었다. 당시 22살이던 청년은 70대가 되어 이미 숨진 뒤였다. 그가 보스턴에서 살았던 집은 공교롭게도 범행의 발단이 된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촬영지와도 가까웠다고 한다. 영화는 백만장자 기업인이 무료함을 이기 위해 은행을 턴다는 줄거리다. 당시 콘래드는 영화를 보고 친구들에게 은행에서 돈을 훔치는 게 얼마나 쉬운지 허풍을 떨었다고 한다. 사건 종결에 일등공신은 USMS 직원 엘리엇 부자였다. 1969년부터 1990년까지 클리블랜드 USMS에서 일한 존 K.엘리엇은 콘래드를 추적하면서 증거들을 수집했다. 그의 아들 피터 J.엘리엇도 USMS의 직원이 돼 이번 사건을 조사했다. 특히 신원 확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콘래드의 서명이 담긴 대학 지원서 등의 서류도 존 K.엘리엇이 모아놓은 것이었다. 아들 엘리엇은 "아버지는 콘래드 추적을 멈추지 않았고, 지난해 숨질 때까지도 사건 종결을 원했다"며 "그의 조사가 수십 년간의 미스터리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을 아시고 좀 더 편히 잠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이 남성은 자신이 죽기 직전 가족들에게 52년전 범행을 실토했다. noma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은행직원 미당국 미당국 52년전 직원 엘리엇 시어도어 콘래드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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