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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시대 백인의 탐욕·죄악 탐구, 2023년 최대 걸작…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 있는 인디언 오세이지 부족 소유지에서 석유가 발견된 후 60명이 넘는 오세이지족들이 연이어 살해된다. FBI는 이 지역에 수사관을 파견한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초연됐고 2024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남우주연상(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남우조연상(로버트 드니로), 여우조연상(릴리 글래드스톤) 등 다수 부문에 후보를 낼 것이 확실시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은 ‘잃어버린 도시 Z(Lost City, 2016)'의 원작자 데이비드 그랜의 동명 논픽션이 원작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또 하나의 매스터피스이며 2023년도 최대 걸작이다.     미국의 건국 이야기는 유럽의 후손들인 백인들이 대서양을 건너와 대륙을 가로질러 가는 곳마다 인디언들을 죽이고 추방하는 일로 시작된다. 백인들을 문명의 선봉자로 묘사한 할리우드 카우보이 영화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들은 적대적이고 조악한 인디언들에 맞서 거침없이 전진하며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다.     인디언 커뮤니티는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부정적 이미지에 항의해 왔지만 아직도 미국 대중의 의식 속에는 백인은 선하고 인디언은 악하다는 고정 관념이 뿌리 박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잘못된 고정 관념은, 오세이지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의 서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원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던 스코세이지 감독의 지난 작품들의 완결판이라 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의 경지가 압도적이다.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은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사건을 면밀하게 극화한, 미국 흑역사의 치부를 해부하는 영화이며 백인들의 팽창주의와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영화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자신의 관객들이 오세이지족이 겪었던 비극적 사건을 인디언이 등장하는 이전 서부 영화의 한 형대로 소비하게 될 것을 예상한다. 그리고 감히 관객들을 고정 관념의 주체로 대상화하면서 드라마로서의 카타르시스를 애초에 제거해 버린다. 대신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백인들을 탐욕에 찬 극도의 악인들로 표현한다.     1920년대 기회의 땅 오클라호마로 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른 주의 비옥한 땅에 거주하다 쫓겨난 오세이지 부족도 오클라호마의 황량한 지역에 정착한다. 얼마 후 오세이지 부족이 연방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땅에서 미국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지가 발견된다. 그들에게 엄청난 부가 배당된다.     오세이지 부족은 목장주이며 석유상의 위치에서 백인 하인과 운전사를 고용하고 귀족처럼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긴다. 이제까지 영화를 통해 접했던 미국의 개척사에서 보지 못한 장면들이다. 영화 속 인디언들의 기이한 일상은 오늘의 미국인들에게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텍사스 주 출신의 백인 윌리엄 킹 해일(로버트 드니로)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오세이지 부족의 석유를 탈취하기 위해 청부 살인을 자행한다. 60명 이상의 오세이지 부족 인디언들이 총기난사, 약물중독, 폭탄 테러 등의 방법으로 살해당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1대 페르소나 로버트 드니로와 2대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감독의 과거 영화들에서처럼 영웅도, 의인도 아니다. 그들은 감독이 원하는 만큼의 혐오와 증오의 대상들이며 분노 유발자들이다. 이 위대한 두 배우가 왜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 배우로 수십 년을 함께 해왔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디카프리오는 하찮고 품위 없는 인간 어니스트를 연기한다. 역대 최고의 연기라는 평가와 함께 2016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오스카상 수상을 점쳐본다. 드니로는 겉으로는 주변의 존경을 받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탐욕의 화신이며 이중적이고 사악한 노인 윌리엄 킹 해일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스코세이지 감독과의 10번째 협업.     삼촌 해일이 나무판자로 어니스트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리는 장면이 있다. 보험사기를 저지르다 걸린 조카에게 벌을 주는 이 코믹한 장면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어니스트에게도 모욕적인 순간이지만 해일 자신은 보다 더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자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탐욕에 대한 자각의 표현일까.     영화는 오세이지족이 백인들에게 희생당한 영혼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백인들의 욕망, 살인과 약탈, 배신에도 불구하고 오세이지 부족은 여전히 오늘을 살고 있다.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자본주의는 이 땅에 패악을 불러왔지만 오세이지 부족의 선조들은 독립과 저항 정신을 물려주었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미국 소시민들의 자본주의(petite bourgeoisie)는 과연 탐욕과 배신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고통스럽게 지루하다. 3시간 30분의 긴 러닝타임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오늘이 저들의 고통 위에 있음이 내내 우리의 양심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정 영화평론가개척시대 플라워 오세이지족 연쇄살인사건 인디언 오세이지 스코세이지 감독

2024-01-05

스코세이지·드 니로의 전설이 시작된 갱 영화 시조

“가장 개인적이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은, 봉준호 감독이 2019년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그가 존경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인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1973년 발표한 ‘비열한 거리(Mean Streets)’는 스코세이지 감독 자신이 어릴 적 경험한 뉴욕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다. 스코세이지는 마피아 범죄가 우글거리는 게토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로버트 드 니로 역시 이 동네 출신으로 ‘비열한 거리’는 스코세이지와 드 니로를 동시에 세상에 알린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찰리 역의 하비 카이텔은 ‘누가 내 문을 두드리나’, ‘앨리스는 여기 살지 않는다’ 등 스코세이지의 초기 영화들에 출연한 1대 페르소나였다. 카이텔이스코세이지 본인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 놓은 페르소나라면 드 니로는 스코세이지가 구상하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2대 페르소나이다. 그는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카지노’ 등의 영화를 스코세이지와 함께 작업했다. 2000년부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의 영화들에 출연하며 스코세이지의 3대 페르소나로 대체됐다. 이들 외에 스코세이지와 깊은 인연이 있는 배우로 조 페시가 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도 데뷔 이후 80이 넘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동안 개인적인 비전과 그만의 창의성을 작품에 담아왔다. 그는 할리우드의 자본주의적 성향을 이겨내고 그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뉴욕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그리고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감독으로서 봉준호, 왕자웨이, 마이클 치미노, 폴 토마스 앤더슨과 같은 후세대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열한 거리’는 스코세이지 감독이 추후 그의 영원한 동지가 될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최초로 작업한, 영화사의 일대 사건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해 전국영화비평가협회와 뉴욕영화비평가협회는 드 니로를 최우수 남우조연으로 선정했다. ‘비열한 거리’는 1997년 연방의회 도서관에 의해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지닌 영화로 인정돼 보존 대상으로 등재됐다. 2011년 엠파이어 지는 ‘미국독립영화 50편’ 목록에서 1위로 선정했고 2022년 버라이어티는 ‘역대 최고의 영화 100편’에 포함시켰다.     뉴욕 리틀 이탈리아의 술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건달들의 이야기 ‘비열한 거리’는 거리에서 지은 죄는 거리에서 씻어버려야 한다는 찰리(하비 카이텔)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늘 자신이 저질러 온 죄를 회개하려는 ‘양심’의 소유자 찰리는 삼촌이며 동네 마피아 두목인 지오바니의 후계자로 나름 성공적인 건달이다.     찰리의 절친인 자니 보이(로버트 드 니로)는 거친 성격에 소란만 일으키고 다니는 반항아며 문제아다. 그는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서 꽤 큰 빚을 지고 있다. 지오바니는 자니의 존재를 성가시게 여기며 찰리에게 자니와 자니의 사촌 여동생 테레사(에이미 로빈슨)를 멀리하라고 명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는 삼촌의 눈을 피해 자니를 조건 없이 돌봐준다. 자니를 도와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구실로 삼는다. 선의와 이기심이 동시에 그의 심리에서 작용한다. 애인 테레사가 삼촌 몰래 게토를 떠나 다른 동네로 가자고 조르지만 동네를 떠나면 자신의 승계 자리가 위협될까 두려워 약속을 계속 미루고 있는 그다.   철없는 자니는 계속 사고를 치고 빚쟁이 마이클이 그를 죽이겠다고 벼른다. 찰리는 보복을 피하기 위해 테레사와 자니를 동네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온 마이클이 자니를 총으로 쏴 죽이고 찰리의 차가 전복되고 만다.   예정된 비극. 소화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찰리의 손에 묻은 피를 씻어 내린다. 거리에서 지은 죄는 거리에서 씻어야 한다는 그의 첫 대사를 구현하는 듯한 이 장면은 끊임없이 죄를 회개하려는 동시에 정작 이기심은 내려놓지 않는 찰리의 이중적 위선과 등치된다.     영화에 묘사된 리틀 이탈리아는갱 두목과 신부가 동시에 존경받는 동네다. 정당한 노동보다는 폭력을 휘두르는 갱들이 돈을 쉽게 벌고 동네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는다. 찰리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구 속에서 갱 두목과 신부라는 상반된 가치관을 놓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의 선행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좇는 비열함의 다른 모습이다.   영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명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와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영화사에 신고식을 올린 작품 ‘비열한 거리’는 향후 미국 영화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잡게 될 ‘갱 영화’의 시조가 된다. 김정 영화평론가스코세이지 전설 스코세이지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그해 전국영화비평가협회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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