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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더 더워지고 습해진다

뉴욕시가 앞으로 더 더워지고 습해질 전망이다.   뉴욕시기후변화패널(NPCC)이 최근 발표한 네 번째 기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시는 극심한 폭염으로 인해 앞으로 기온이 더 올라갈 예정이며 폭우와 홍수 위험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해수면 상승으로 뉴욕시가 고온을 유지하는 날의 수와 폭염의 빈도 및 지속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이를 통해 노인 및 저소득층, 유색인종 등 취약계층의 건강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며, 인종 및 사회적 불평등, 취약계층의 사회적 고립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수량도 늘어날 전망이다. 보고서는 ‘클라우드버스트(Cloudbursts·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현상)’라고 알려진 극심한 강우 현상의 횟수가 늘어나고 심각성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세기말까지 뉴욕시의 연간 강수량은 현재보다 30%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수량이 증가함에 따라 홍수 위험 역시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보고서는 “지형, 그동안의 폭풍우 흐름 경로 등을 살펴봤을 때 ▶남동부 및 중부 퀸즈 ▶남동부 브롱스 ▶스태튼아일랜드 노스 쇼어 지역이 홍수에 가장 취약한 지역”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시는 ▶강수량 ▶하천 범람 ▶해안 범람 ▶지하수 범람 등 네 가지 유형의 홍수 위험에 직면해 있다.     뉴욕의 대부분 지역은 지하수층(대수층·지하수를 저장하고 보존하는 역할)이 매우 얕아 이미 지하수 범람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지하수 수위가 낮았던 과거에 도시의 상·하수도 개발이 진행됐고,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지하수위(지표면에서 지하수면까지의 깊이)가 상승해 상·하수관 및 지하 공간으로 지하수가 유입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표 하천 수로가 남아 있는 브롱스와 스태튼아일랜드의 경우 하천 범람 위험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고서는 해안 홍수 위험은 ▶높은 폭풍 해일 ▶해수면 상승 ▶갯벌 상승 ▶갯벌 습지 및 해안 인근 지역 매립지 개발로 인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윤지혜 기자 yoon.jihye@koreadailyny.com뉴욕 보고서 지하수 범람 지하수 수위 해안 범람

2024-04-30

봄철 홍수로 미시시피강 범람

미국 내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미시시피강 상류 일부 구간이 범람해 지역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고 일부 구간 주민들은 피해에 대비, 강가에 모래주머니 쌓는 등 비상 대응에 나섰다.     27일 지역 언론 등에 따르면 금주 초 시작된 이번 홍수는 미시시피강의 발원지인 미네소타주 북부에 겨우내 쌓인 거대한 눈더미들이 봄 날씨에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지금까지 위스콘신, 아이오와, 일리노이 주에 피해를 안겼다.   기상 당국은 지난 겨울 미네소타주 일부 지역 강설량이 30년래 최고치인 348cm에 달한 사실을 상기하며, 봄철 미시시피강 범람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번 홍수는 기록적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예보했다.   미네소타와 위스콘신 주경계의 미시시피강변 주택가 주민들은 강 수위가 계속 높아짐에 따라 대피한 상태이고, 2019년 막대한 홍수 피해를 당한 아이오와주 버팔로와 일리노이주 몰린 등의 주민들은 오는 주말 또는 다음주 초 고조에 이를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네소타 주경계 인근의 위스콘신주 섬 마을 캠벨 소방당국은 "일부 주민들은 카누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며 "침수에 대비, 전기와 가스 공급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미네소타주에는 4월 들어서도 많은 눈이 내린 데다 지난 12일에는 주도 세인트폴의 낮 최고기온이 31℃까지 오르는 등 수은주가 나흘 연속 27℃ 이상 올라갔다. 이 영향으로 미시시피강 수위가 지속적으로 상승, 27일 최고조를 보였다.   이 같은 상황은 차츰 남하해 오는 29일 라크로스에서 남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아이오와주 다븐포트의 미시시피강 수위는 역대 3번째 높은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라크로스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위스콘신주 강변마을 프레리 듀 지엔의 미시시피강 수위는 오는 29일 7m에 달해 1965년 4월 기록된 7.7m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기상 당국은 전했다.     아이오와주의 대표적 강변 도시 더뷰크, 다븐포트, 벌링턴 관리들은 "개선된 침수 방지용 홍수벽과 긴급 조치들이 대규모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강 상태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뷰크 시 당국은 전날 밤 시내 17개 수문 가운데 13개를 폐쇄하고 영구 펌프장 4곳과 임시 펌프 3개를 가동해 홍수벽 위로 차오르는 물을 빼내고 있다면서 "앞으로 3~4일간 비가 예보돼있으나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뷰크 남쪽의 다븐포트와 베튼도프 행정 당국은 "미시시피강 인근 도로를 폐쇄하고 시내 중심가 보호를 위해 모래주머니 벽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2019년 홍수 당시 모래주머니 벽이 무너져 시내 일부에까지 강물이 범람했으나 이번에는 장벽을 더 깊고 높게 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기자미시시피강 봄철 봄철 미시시피강 미시시피강변 주택가 미시시피강 수위

2023-04-28

[노트북을 열며] 분노 포르노

직업 특성상 댓글을 많이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 악플에 무뎌진 편이다. 논리도 없이 욕설을 배설하는 수준의 댓글을 보면 화가 나기보다 측은했다. 댓글을 다는 약간의 노력으로 타인의 분노를 유발함으로써 싸구려 쾌감을 맛보려 하는, 그래놓고 막상 고소를 당하면 선처를 요구하기 급급한 ‘루저’쯤으로 여겼다. 맹목적인 비난의 대상이 기자 본인이든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든, 내가 휘둘리지만 않으면 괜찮다며 넘겨왔다.   하지만 유독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성폭력 등 각종 사건·사고에서 명백한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가해자로 둔갑시키려 할 때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의 뉴스 댓글창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로 추정되는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팩트 외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는 상황에서도 악플러들은 관련 기사가 쏟아져나올 때마다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사람 많은 곳 놀러 가서 죽은 걸 어쩌라는 거냐”며 피해자들을 탓하고 모욕했다.   여러 번의 압사 위험 신고가 있었고 경찰의 지휘 체계가 부실했다는 점 등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허위 주장은 힘을 잃어갔다. 하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겐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을 터다. 어쩌면 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헤맬 때 무차별적인 언어폭력까지 당했으니 말이다. 악플러들에게 마치 멍석을 깔아 주는 것 같아 기사를 쓰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는 ‘분노 포르노(outrage porn)’에 무방비로 노출된 삶을 살고 있다. 음란물과 마찬가지로 분노 포르노는 철저히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다. 분노 수위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때로는 무고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악플러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음란물을 유포하듯 분노 포르노를 전파하고 중독시키는 유해 물질이나 다름없다.   가장 우려되는 건 본의 아니게 분노 포르노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진짜 분노해야 할 문제마저 외면하게 되는 일이다. 시 티 응우옌(C. Thi Nguyen) 미 유타밸리대 철학과 교수는 2019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진정한 분노는 우리가 행동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며 “분노 포르노는 이런 분노의 순기능을 약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골칫거리”라고 분석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비속어와 차별적 언어를 총동원해 분노 포르노를 양산해내고 있다. 그 피해자는 악플의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다.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이유로 악플에 둔감해지기엔 사회적 폐해가 너무 크다. 김경희 / 한국 EYE팀 기자노트북을 열며 포르노 분노 분노 포르노 분노 수위 뉴스 댓글창

2022-11-25

해외 현금자산이 재정보조에 미치는 영향 [ASK미국 교육/재정 - 리차드 명 재정보조 전문가]

요즈음 재정보조 신청이 한창이다. 그러나, 재정보조 신청 결과가 성공과 실패로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마다 지닌 재정보조 문제점보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처방안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 하겠다. 재정보조 신청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점들은 사전에 대비만 했다면 대부분 풀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대입 원서 제출과 함께 재정보조 신청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는 정도 밖에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재정보조 수위는 대학에서 지원자를 얼마나 선호하는지에 따른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가정의 수입과 자산을 기준해 가정 분담금(EFC)을 평가하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문제점이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한 이해 없이 문제 해결을 할 수 없기에 이러한 기본부터 먼저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첫째, 재정보조 신청서에 입력되는 적용 시점이 언제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수입에 대한 신청서 입력 내용은 자녀가 대학을 등록하는 해보다 2년 전의 내용이며 만약 세금보고 내용에 대학에서 자산을 추산해 볼 수 있는 이자수입, 배당금 혹은 양도소득 등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가정 분담금의 증가를 막으려면 2년 전 시점보다 이전에 미리 사전 준비를 마쳐야 했을 사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면 재정보조 신청서에 기재하는 자산 시점이 신청서의 프로세스 되는 시점과 다를 수 있어 이러한 상황 변화에 따른 대학의 설명 요청에 대해 반드시 납득 갈 수 있는 상황 설명과 자료 등을 사전에 반드시 준비해 놓고 신청과 진행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요즈음 해외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보고 내용으로 대학에서 큰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많아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2년간 미국과 한국 등 해외의 부동산 경기 과열로 이 기간 중에 해외 부동산에 많은 투자를 하였지만, 요즈음 인플레이션에 따른 모기지 이자율 상승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 직면에 서둘러 부동자산의 시세차액을 노려 매수하거나 양도한 가정들이 많다. 또한, 취득한 부동산에 전세를 놓고 이러한 전세자금이 한국 계좌에 남아 있을 경우 재정보조에 매우 어려운 상황도 직면하게 된다. 문제는 처음 재정보조 신청을 하는 경우에 이러한 금융자산 신고가 세금 보고서에 고스란히 최고 액수로 기록되고 그러한 금융자산이 설사 전세자금이라 해도 학부모 수중에 현금이 들어와 있어 재정보조 신청서에는 반드시 현금자산으로 기록해야 한다. 재학생들 중에는 작년에 해외부동산 신고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재정보조를 잘 받을 목적으로 FAFSA나 C.S.S. Proifile 신청서에 고의로 누락시켰는데 대학에서 재정보조 신청서 내용 검증 과정에서 금융자산 신고를 보고 혹은 부동산을 양도하거나 매수한 경우 크게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신중한 주의가 요구된다.   문제는 고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에, 재정보조 신청서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그 현금자산을 한 구좌에서 다른 은행구좌로 몇 번 옮겼다면 각각의 은행마다 최고잔액을 모두 합산해서 실질적인 현금자산보다 배로 늘어난 금액을 모두 세금보고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학으로는 현재 금융자산 수입이 많아져 그 현금이 발생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작년의 재정보조 신청서에 해외 투자 부동자산을 고의로 기재하지 않았다고 대학이 판단할 경우에 그동안 재정보조금 지불의 초과분에 대한 회수작업도 문제이나 이는 연방법을 어긴 중대 사안이라 최악의 경우에 미 교육부 검사실로 송치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 이는 민사가 아닌 형사 사안으로 자칫 징역형으로 확대될 수 있고 영주권 자격도 동시에 결격사유가 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러한 상황은 부동자산을 해외자산으로 세금보고 시 국세청에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추가적인 국세청 문제로 확대될 수가 있다는 점이다. 한번쯤 그냥 재정보조를 받지 않으면 되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본인 생각과는 달리 대학에서는 이를 크게 문제삼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철저한 사전준비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제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책마련의 부재가 재정보조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의: (301)213-3719 / remyung@agminstitute.org미국 재정보조 재정보조 신청서 재정보조 문제점 재정보조 수위

2022-10-31

[시론] 수위 높아지는 북의 핵공격 위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밤 북한군 창설 90주년 열병식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며 핵 보유 의사를 분명히 했다.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보증 선 지난 5년간 북한은 집중적으로 핵무기를 고도화했다. 북한 핵무기의 위력과 숫자가 늘어난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이 핵무력 사용 범위를 크게 넓혔다는 점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열병식에 김정은은 원수계급장을 어깨에 붙인 군복을 입고 나타나 연설했다. 최근 연이은 성명을 통해 기존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공세적 핵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18년 4월 20일 북한은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 선제 불사용의 입장을 공언했다.     하지만 2022년 4월 25일 김정은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며 핵무기 선제사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게 김정은의 속 마음이다.     핵보유국 중 가장 공세적이고 위협적인 북한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전에는 핵 개발 목적을 미국으로 지목했지만 김여정은 2022년 4월 4일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 국민을 겨냥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식 쇼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병력 2만 명을 동원한 최대 규모의 열병식은 그야말로 광란의 행진이었다. 인민은 허기로 굶어 죽든 말든 전쟁을 향한 집착이 절정에 이른 것 같다.     때마침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 및 발사 후 비행궤적을 추적하는 미국 공군의 코브라볼(RC-135S) 정찰기가 동해로 전개돼 북한의 도발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미 코브라볼 정찰기가 엿새째 동해에 출격해 북에 ‘선 넘지 말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정치권에서 법치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검수완박으로 여야 정당이 소모적인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전쟁 억지의 수단인 핵무기를 언제든지 사용하겠다는 협박으로 대외 위협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선제타격까지 경고한 새 한국 정부를 향한 대결 선언이 심상치 않다.     새 정부는 국가안보에 최우선 정책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시론 핵공격 수위 핵공격 위협 핵무기 선제사용 핵무기 사용

2022-05-11

[열린 광장] 위험 수위 넘어선 ‘언어 오염’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부모 세대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 시절이 지나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일상에서 일본어가 하나둘 사라지고, 오봉·벤또 같은 어휘들이 쟁반·도시락이라는 우리말로 돌아왔다. 물론 우와기는 윗도리, 쓰봉은 바지로.     〔〈【이렇게 우리 삶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일본어의 잔재나 어쭙잖은 일본식 영어 발음의 쓰봉·도란스·바께쓰 같은 괴상한 단어를 생각하다, 상처에 바르던 옥도정기가 아까징끼였다가 ‘빨간약’으로 불리던 대목에서는 슬그머니 웃음이 배어난다.   】〉〕1980~90년대를 아우르면서 왜색 흔적을 지우고, 우리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학가에서는 ‘국풍’에 이어 ‘신토불이’의 신바람과 함께 우리 전통의 풍물패 장단이 큰 물결을 이루었다. ‘우리 것’ 혹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선언문과 함께 우리 문화의 숨결을 담은 활동이 학교 안팎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한류의 이름으로 K팝을 비롯한 】〉〕다양한 K문화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런 열풍은 80~90년대를 이어 다시금 ‘우리 것’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지구 곳곳을 들썩이게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말이 또다시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영어 같기도 하고, 일본어 같기도 하고, 낯선 외국어 같기도 하고, 또 우리말 같기도 하고. 영 종잡을 수 없는 혼종 표현들이 넘쳐난다. ‘멘붕’처럼 절반은 영어에 절반을 한자어로 섞어 놓은 것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생각도 못 할 초두음만으로 된 연속체도 등장했다. ‘자(동)판(매)기’나 ‘야(간)자(율학습)’처럼 음절 단위의 줄임만은 있어도 초두음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말 어법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온라인 메신저의 등장과 더불어 ‘ㅅㄹㅎ(사랑해)’ 같은 표현을 지나, ‘ㅇㅋ(OK)’ 혹은 ‘ㄹㅇ(real)’처럼 영어의 한국어 표기를 따온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 난무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한 상투어가 되어버린 ‘ㅎㅎ’ ‘ㅋㅋㅋ’ 등은 대화 상대를 잘 가려서 써야 한다는 주의도 듣는다. 상대방에 따라서는 비아냥으로 들릴 수도 있다기에.   언어도 유행을 타듯 사라지는 것도 있고, 또 새로운 표현이 생겨나 우리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우리말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또 하나의 현상은 말장난 같은 사자성어가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나 ‘폼생폼사(form生form死)’ 같은 국적 모를 네 글자 조합이 창의적 기발함을 업고 천연덕스럽게 활개를 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대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나 ‘감탄고토(甘呑苦吐)’를 몰라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익숙한데, 요사이 유행에 빗대면 ‘고끝낙온’이나 ‘달삼쓰뱉’이 시대에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국적도 정체성도 가늠되지 않는 마구잡이 조합이다.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디지털 문명 안에서, 수천 년을 거스르는 동서양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인문학으로 소환되어 가르침의 소재가 된다. 반면 로봇과 인공지능에 지배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온통 영어로 채색된 것 같은 낯선 단어들을 체화해야 한다.     고전과 미래를 오가는 사이 말이 곧 ‘얼’이라는데, 흔들리는 우리의 정신은 어디에 닻을 내리고 살아야 할까. 최명원 /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열린 광장 수위 언어 우리말 어법 우리말 같기 혼종 표현들

2022-03-28

[열린 광장] 위험 수위 넘어선 ‘언어 오염’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부모 세대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 심부름을 다닐 때면 몇몇 일본어를 곧잘 우리말인 양 알아듣곤 했었다. 그 시절이 지나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일상에서 일본어가 하나둘 사라지고, 오봉·벤또 같은 어휘들이 쟁반·도시락이라는 우리말로 돌아왔다. 물론 우와기는 윗도리, 쓰봉은 바지로.     이렇게 우리 삶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일본어의 잔재나 어쭙잖은 일본식 영어 발음의 쓰봉·도란스·바께쓰 같은 괴상한 단어를 생각하다, 상처에 바르던 옥도정기가 아까징끼였다가 ‘빨간약’으로 불리던 대목에서는 슬그머니 웃음이 배어난다.   1980~90년대를 아우르면서 왜색 흔적을 지우고, 우리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학가에서는 ‘국풍’에 이어 ‘신토불이’의 신바람과 함께 우리 전통의 풍물패 장단이 큰 물결을 이루었다. ‘우리 것’ 혹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선언문과 함께 우리 문화의 숨결을 담은 활동이 학교 안팎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교내 어디서나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들리고, 널찍한 공간만 있으면 상고를 쓰고 북과 징을 두드리는 동아리 구성원들의 춤사위가 판을 이루었다.   최근에는 한류의 이름으로 K팝을 비롯한 다양한 K문화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런 열풍은 80~90년대를 이어 다시금 ‘우리 것’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지구 곳곳을 들썩이게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말이 또다시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영어 같기도 하고, 일본어 같기도 하고, 낯선 외국어 같기도 하고, 또 우리말 같기도 하고. 영 종잡을 수 없는 혼종 표현들이 넘쳐난다. ‘멘붕’처럼 절반은 영어에 절반을 한자어로 섞어 놓은 것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생각도 못 할 초두음만으로 된 연속체도 등장했다. ‘자(동)판(매)기’나 ‘야(간)자(율학습)’처럼 음절 단위의 줄임만은 있어도 초두음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말 어법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온라인 메신저의 등장과 더불어 ‘ㅅㄹㅎ(사랑해)’ 같은 표현을 지나, ‘ㅇㅋ(OK)’ 혹은 ‘ㄹㅇ(real)’처럼 영어의 한국어 표기를 따온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 난무한다. 이제는 너무나 흔한 상투어가 되어버린 ‘ㅎㅎ’ ‘ㅋㅋㅋ’ 등은 대화 상대를 잘 가려서 써야 한다는 주의도 듣는다. 상대방에 따라서는 비아냥으로 들릴 수도 있다기에.   언어도 유행을 타듯 사라지는 것도 있고, 또 새로운 표현이 생겨나 우리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우리말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또 하나의 현상은 말장난 같은 사자성어가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나 ‘폼생폼사(form生form死)’ 같은 국적 모를 네 글자 조합이 창의적 기발함을 업고 천연덕스럽게 활개를 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대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나 ‘감탄고토(甘呑苦吐)’를 몰라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익숙한데, 요사이 유행에 빗대면 ‘고끝낙온’이나 ‘달삼쓰뱉’이 시대에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국적도 정체성도 가늠되지 않는 마구잡이 조합이다. 이렇게 뒤엉킨 창조적 발상은 말에 깃들인 생각의 틀마저 뒤틀어 놓는다.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디지털 문명 안에서, 수천 년을 거스르는 동서양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인문학으로 소환되어 가르침의 소재가 된다. 반면 로봇과 인공지능에 지배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온통 영어로 채색된 것 같은 낯선 단어들을 체화해야 한다.     고전과 미래를 오가는 사이 말이 곧 ‘얼’이라는데, 흔들리는 우리의 정신은 어디에 닻을 내리고 살아야 할까. 최명원 /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열린 광장 수위 언어 우리말 어법 우리말 같기 혼종 표현들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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