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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해양장 아니면 수목장?

고모가 돌아가셨다. 향년 96세. 이 년 전 이맘때 노환으로 집에서 편히 가셨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겪으며 그 어려웠던 시절을 꿋꿋이 사신 분이셨다.     2021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세력을 떨칠 때였다. 거의 100명 중 1명이 넘게 감염된 상황이라 많은 사람이 숨졌다. 그 당시 장례식을 치르려면 장례식장의 스케줄에 맞춰서 장례 일정을 잡아야 했다. 사촌 동생이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다행히 돌아가신 지 일주일 안에 LA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를 수가 있었다. 그나마 규제가 풀려 오십여 명까지 장례식장에 모일 수 있다고 해서 가족과 친지만 모여 치른 장례식은 간단하고 짧았다. 그것도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체로. 장례식에 참석해 관에 누워있는 고모를 봤다. 평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생전에 고모는 비석이 있는 묘지 안장 대신 화장을 원하셨다. 또 유골을 유골함에 담는 봉안당 대신 뼛가루를 바다에 산골 하는 해양장을 원했다. 말로만 듣던 해양장이 생소해서 리서치를 해봤다. 혹시 지구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조사 결과 유골은 폐기물로 볼 수 없고,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극히 낮은 것으로 나와서 안심했다.   해양장에 관한 규정이나 비용을 잘 알지 못하는 언니와 형부가 롱비치에 있는 해양장 전문 회사를 찾아가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장례 절차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날을 잡아 가족과 친지가 전문 회사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어느 지점에 멈춘 배에서 간단한 장례식을 마친 후 준비한 유골을 바다에 내렸다.     엄마도 해양장을 원했다. 죽어서 꼼짝할 수 없는 땅속에 갇혀 있는 것보다 맑은 바다에서 예쁜 고기와 같이 헤엄치고 싶다며. 그 반면에 엄마 친구는 화장한 유골을 나무 주변에 뿌리거나 묻는 방식인 수목장을 선호했다. 공기 좋은 산골에 있는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인구는 계속 늘어날 터이고, 살아있는 사람 거주할 공간도 부족한데 활용할 수 있는 토지가 한정된 지구에서 현재 묘지로 쓰이거나 앞으로 쓰일 땅 면적도 상당하겠다 싶었다. 내 묘지를 딸이야 찾아오겠지만 그다음 세대에는 과연 몇 명이나 찾아올까.     딸에게 나도 해양장이 좋다고 하자, “엄마 보고 싶으면 찾아갈 산소도 없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살다가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속상해서 눈물 나는 일이 있으면 바다로 오렴. 네 발가락을 간질이는 파도가 되어 만나마. 네가 왔는데 내가 모르겠니.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해양장 수목장 해양장 전문 당시 장례식 친지가 전문

2023-03-12

[이 아침에] 해양장 아니면 수목장?

고모가 돌아가셨다. 향년 96세. 이 년 전 이맘때 노환으로 집에서 편히 가셨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겪으며 그 어려웠던 시절을 꿋꿋이 사신 분이셨다.     2021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세력을 떨칠 때였다. 거의 100명 중 1명이 넘게 감염된 상황이라 많은 사람이 숨졌다. 그 당시 장례식을 치르려면 장례식장의 스케줄에 맞춰서 장례 일정을 잡아야 했다. 사촌 동생이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다행히 돌아가신 지 일주일 안에 LA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를 수가 있었다. 그나마 규제가 풀려 오십여 명까지 장례식장에 모일 수 있다고 해서 가족과 친지만 모여 치른 장례식은 간단하고 짧았다. 그것도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체로. 장례식에 참석해 관에 누워있는 고모를 봤다. 평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생전에 고모는 비석이 있는 묘지 안장 대신 화장을 원하셨다. 또 유골을 유골함에 담는 봉안당 대신 뼛가루를 바다에 산골 하는 해양장을 원했다. 말로만 듣던 해양장이 생소해서 리서치를 해봤다. 혹시 지구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조사 결과 유골은 폐기물로 볼 수 없고,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극히 낮은 것으로 나와서 안심했다.   해양장에 관한 규정이나 비용을 잘 알지 못하는 언니와 형부가 롱비치에 있는 해양장 전문 회사를 찾아가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장례 절차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날을 잡아 가족과 친지가 전문 회사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어느 지점에 멈춘 배에서 간단한 장례식을 마친 후 준비한 유골을 바다에 내렸다.     엄마도 해양장을 원했다. 죽어서 꼼짝할 수 없는 땅속에 갇혀 있는 것보다 맑은 바다에서 예쁜 고기와 같이 헤엄치고 싶다며. 그 반면에 엄마 친구는 화장한 유골을 나무 주변에 뿌리거나 묻는 방식인 수목장을 선호했다. 공기 좋은 산골에 있는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인구는 계속 늘어날 터이고, 살아있는 사람 거주할 공간도 부족한데 활용할 수 있는 토지가 한정된 지구에서 현재 묘지로 쓰이거나 앞으로 쓰일 땅 면적도 상당하겠다 싶었다. 내 묘지를 딸이야 찾아오겠지만 그다음 세대에는 과연 몇 명이나 찾아올까.     딸에게 나도 해양장이 좋다고 하자, “엄마 보고 싶으면 찾아갈 산소도 없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살다가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속상해서 눈물 나는 일이 있으면 바다로 오렴. 네 발가락을 간질이는 파도가 되어 만나마. 네가 왔는데 내가 모르겠니.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해양장 수목장 해양장 전문 당시 장례식 친지가 전문

2023-03-07

[한국 화장 장례문화 유감] 한국의 수목장

어느 곳이나 장례문화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여행을 갔을 때 길거리를 배회하는 큰 개들이 많았다. 설명을 들으니 사우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즉시 시막의 모래 속에 묻었고 나중에 이 개들이 시신을 처리한다고 했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 갔을 때는 시신을 집 마당에 묻는다고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기 때문에 산에다 묘를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얼마 전 한국에 갔다 장례식에 참석했다. 조문객은 버스 위에 타고 관은 아래 칸에 싣고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건물 내부에는 검은 옷을 입고 완장을 찬 청년들이 많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진 관은 긴 운반용 수레로 옮겨졌다. 이 수레를 완장을 찬 젊은이들이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유족들에게 한 명의 안내원이 배치됐다. 이 안내원은 우리를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관이 도착했다.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유족 대기실로 안내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연고자 없는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었다.     고인의 유골을 받는 방의 유리창 너머로 유골을 봉투에 담고 그것을 다시 박스로 옮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주가 그 박스를 받았다.     유족은 고인을 납골당에 모시는 대신 수목장을 하기로 했다. 승화원 바로 옆에 수목장하는 동산이 있었다. 이 동산의 계단을 한참 올라간 후 건물 안으로 안내됐다. 건물 안에 있던 직원은 한 구명을 가리키며 그곳에 유골을 넣으라고 했다.     나중에 이유를 들었다. 이전엔 수목장을 하면 재를 나무 밑에 묻었으나 나무가 죽는 일이 생겼다. 재를 묻은 땅이 산성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구멍으로 많은 유골을 넣으면 혹시 섞이지는 않을까? 그리고 나중에 처리 방법은? 서효원 / LA한국 화장 장례문화 유감 수목장 한국 대신 수목장 유족 대기실 고인과 마지막

202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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