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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태어난 날에

몇 년쯤 되었다. 매년 12월이 되면, 나와 남편에게 자그마한 꽃다발이 배송되곤 한다. 짧은 노트와 함께… ‘사랑, 삶, 그리고 세상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엄마(umma), 아빠(appa)’. 어제도 예년처럼 꽃다발을 받았다.   둘째 딸은 제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매년, 자기 생일에 꽃을 보내온다. 제가 태어난 날을 기념일이라 여기고, 부모인 우리가 제 출생의 일부라고 여기는 것 같다. 딸의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의예과 시절에 생명이 창조되는 도중에 멈추어져서 실험실에 도달한 생명 없는 생명들을 보았고 그들을 갖고 실험했다.     각각 다른 창조 시기에 있던 그들은 의과대학생들이 현미경을 이용해서 공부하도록 굳혀진 후, 마이크론 두께로 잘리고, 염색 과정을 거쳐 슬라이드에 부착된 상태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포르말린 병에 갇혀 둥둥 떠 있었다. 창조되었던 생명이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과학도들에게 묵묵히 제 몸을 내어놓고 있었다. 종교적 차원과 철학적 견해를 떠나, 과학을 하는 사람이 ‘생명 옹호’ 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보호받은 애초의 생명은 엄마의 자궁 안에서 약 280일 동안 자라고 때가 되면, 엄마의 몸에서 분리되어 세상에 나와야 한다. 그때 빛을 보고, 공기를 들여 마시는 순간이 있던 날을 우리는 생일로 기념한다.     말 그대로 생일이지, 생년월일은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생일’, 즉 ‘만들어진 날’이란 처음 창조되어 엄마의 자궁 안에 정착한 때를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보까지 알 수 없는 우리네 형편이다. 그래도 법적으로 나이 계산에 대한 새로운 규칙이 생기기 전에 한국인들이 쓰던 나이 계산법, 즉 태어날 때 한 살인 것은 꽤 과학적이다.   생일(birthday)과 출생일(birthdate)은 한 사람의 출생에 관련된 날을 표시하는 두 종류의 방법이다. 생일은 태어난 연도, 시간과 상관없이 날짜만을 뜻하고, 양력이나 음력을 따르는 나라, 고장, 가정이 있다. 출생일은 태어난 해, 달 그리고 날을 함께 명시하는 경우이다. 한국에서는 출생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대신 생년월일이라고 표한다. 생일은 사람뿐 아니라, 회사, 학교 같은 기관도 창립일로 기념하고 축하한다.   출생일 또는 생일은 개인이 갖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정보로 어른과 아이를 구분한다. 우리들의 권리나 의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성장 중인 아이는 어른의 보호가 필요하고 결정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아이를 보호하는 보호자가 담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성인이 되면,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으면 내 맘대로 퇴학해도 된다. 의무교육이 적용되지 않는 나이이다. 또 성교나 결혼할 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 술, 담배, 로토 살 권리가 있다. 투표권과 공직에 출마할 권리도 있고, 운전면허도 받을 수 있다.   책임이 주어지는 법적 의무는 어른이 되면 그 효력을 발생한다. 그 예가 한국에 있는 병역의 의무이다. 의무를 회피하고 이탈하게 되면, 범죄자가 되므로 구속되고, 벌금형을 받거나, 영창 생활을 하는 일도 있다. 미국은 병역의 의무 즉 징병제가 1973년에 폐지되어, 군대 지원을 원하면 나이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른은 몇 살부터인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르다. 12살에서 21세 사이에 성인으로 입성한다.   미국의 경우는 주(州)마다 다르다. 보통은 18세부터 성인으로 취급하지만, 앨러배마, 콜로라도, 메릴랜드, 네브래스카주는 19세부터 성인이고, 워싱턴 DC, 인디애나, 뉴욕은 21세부터 성인으로 취급한다니, 놀랍다.   어떻든, 생일이 관련된 문화 행사도 꽤 있다. 예수의 생일로 서방 국가들이 정한 12월25일,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가 축하한다. 한국은 만 한 살 될 때 ‘돌’ 잔치, 60살 때 환갑을 축하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은 딸이 16세가 될 때 ‘스위트 열여섯 살’ 파티를 하여 준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15세에, 필리핀의 경우는 딸은 18세 때, 아들은 21살 때, ‘데뷔’ 파티를 연다. 유태인은 12살 때 여아(女兒) 바트 미츠바, 13살 때 남아(男兒) 바 미츠바 성인식을 결혼식 버금가게 종교와 민족 의례를 합쳐서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른다.   제 생일날, 꽃다발을 보내 준 딸은 남편과 내가 뉴욕주립대학 시러큐스 캠퍼스에서 혹독한(!) 수련 의사 과정을 거치고 있던 때, 편안하고 즐거운 태교(胎敎)를 받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나와 함께 받으면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최 북쪽, 중강진과 같은 위도에 있는 시러큐스는 강추위에, 스노 벨트 중심지에 있어서 흐린 날이 많고, 눈도 많이 내렸다. 그 애가 태어나던 새벽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밤새 함박눈이 사뿐히 내려와서 세상의 더러움이나 어려움을 모두 덮어 주던 그날, 막 모습을 드러내며 밝아오던 여명에 세상은 창백하게 눈부시었다.     아이는 자라면서, 자기를 환영해 주었던 함박눈에 덮이어 티 없이 완벽했던 세상이 그렇지 못한 세상과 함께함을 배웠다.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하루를 살아가는 초.중.고교 학생들을 학생 실습에서 보기도 했다.     만화소설 ‘파우어 온!’은 그래서 탄생했다. 그래도 그 애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처음 보았던 그날을 기념하면서, 제 부모에게 꽃다발을 보내 주었다. 모니카 류 / 수필가문예마당 수필 나이 계산법 생일날 꽃다발 생일로 서방

2024-12-26

[중국읽기] ‘중국 제조 2025’가 만든 균열

8개월여 남았다. ‘중국 제조 2025’의 목표 연도 말이다. 86%의 성공률이란다(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분석). 이 신문은 ‘2018년 본격화된 미국의 대(對) 중국 경제 압박 속에서 거둔 성과라 더 의미가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 산업을 어떻게 바꿨을까?   샤오미 설립자 레이쥔이 스마트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건 3년 전이다. 정말이지 ‘뚝딱’ 만들었다. 지난 3월 스마트 전기차 ‘SU7’ 시판에 들어갔다.   중국의 전반적인 제조 역량이 있기에 가능했다. 중국은 운동화에서 자동차, 이쑤시개에서 로켓까지 만든다. 기술도 있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스마트 운용 기술도 뒤지지 않는다. 시장이 받쳐준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최대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레이쥔은 판매 걱정 없이 SU7을 내놓을 수 있었다. 품질을 두고 말이 많지만 어쨌든 샤오미는 그들의 생태계에 자동차를 추가했다.   ‘제조 역량, 기술, 시장.’ 산업 발전에 필요한 3요소다. 중국은 그걸 다 갖춘 나라가 됐다. 그게 ‘중국 제조 2025’가 만든 변화다.   세계화 시대에는 제조와 기술, 시장이 따로 움직여도 됐다. 독일에서 개발한 기술로, 중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공급망 분절(分節)의 시대다. 전 과정을 모두 자국에서 처리할 수 있는 나라가 우위에 선다. ‘중국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서방 산업계는 중국의 하이테크 제품 공습에 떨고 있다. 유럽 태양광 업계는 이미 초토화됐다. 각국은 중국의 ‘디플레 수출’을 막기 위해 보호 장벽을 높게 쌓아가고 있다.   우리 일이기도 하다. 요즘 알리익스프레스·테무의 공세로 국내 유통 업계가 떨고 있다. 같은 논리다.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제조 역량이 있고, 국내 경쟁을 통해 축적한 전자상거래 기술이 있다. 방대한 시장이 주는 ‘규모의 경제’는 초저가 상품을 만들었다. 역시 ‘제조·기술·시장’의 조화다.   ‘중국 제조 2025’는 내년 퇴장한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다.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하이테크 육성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AI, 상용 우주항공, 바이오 등 범위는 더 넓어지고 있다. 서방은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제조 2025’는 곧 끝나지만, 글로벌 경제에는 또 다른 균열이 시작될 참이다. 한우덕 / 한국 차이나랩 선임기자중국읽기 중국 제조 제조 역량 기술 시장 서방 산업계

2024-05-13

[프리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가 23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3일 이전만 해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놓고 일반적인 관측과 연방 정부의 관측이 엇갈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행보에 지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 상황에서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을 일종의 협상용 카드로 봤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은 이런 시각을 잘 보여줬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핵무기나 중화력 군사무기의 폴란드 배치를 절대 반대한다는 안전보장 요구를 서방 국가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협상용 카드라는 것이다.   반면, 백악관은 일관되게 러시아가 군사 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군이 일부 복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도 며칠 내로 침공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침공 전날엔 전면전이 가능할 정도로 군사력이 증강됐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백악관이 맞았다.   러시아와 미국·서방,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분명하다. 나폴레옹부터 나치까지 서유럽에 들어선 맹주는 늘 러시아로 몰려갔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그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맹주고 나토는 그 토대다. 폴란드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면 문 앞에 맹주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옛 소련이 쿠바에 핵을 배치하려 했을 때의 미국과 비슷한 심정일 수 있다. 더군다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연방 해체로 종이호랑이가 된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는 이미지다.     미국과 서방은 경제 영토를 넓히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다는 면에서는 러시아와 협력하지만, 푸틴의 영향력 확장은 현상을 유지하며 제어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다.   소련 연방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존재 자체가 위협인 러시아의 힘을 나토 가입으로 누르려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결론도 나지 않은 일, 이를테면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하고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논의했다” 같은 것도 트위터에 올렸다. 나토 가입은 서방보다는 우크라이나가 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해 중국 목죄기에 나선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많은 나라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러시아는 20일 만에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처럼 속전속결 뒤 협상을 모색하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게릴라전을 택하면 문제는 복잡하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게릴라전의 깊은 수렁을 경험했다. 미국은 중국 제어에도 힘이 부치는 상황이어서 2개의 전선을 만들고 싶지 않겠지만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러시아의 기세를 방치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벌써 신냉전 얘기가 나오지만 세상은 변했다. 미국도 나토도 경제 제재만 외칠 뿐 군사적 대응에는 멈칫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코로나19 대응에 푼 거대한 유동성 대처에도 벅차다. 다시 막대한 전비를 쓸 여력이 없다. 더구나 미국은 몇 달 전에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다. 예전의 냉전처럼 스크럼을 짜기에는 내 코가 석 자여서 전쟁에 발을 담그고 싶은 나라는 없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먼 땅의 이야기가 아니다. 냉전 해체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인 탓에 자원 부국인 우크라이나가 공급하던 네온, 철광석, 티타늄 등의 공급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가는 벌써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 상승은 물가 인상으로 직결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인플레이션이 10%에 이를 것이라는 CNN의 보도는 결과적으로 푸틴이 노린 약한 고리일지도 모르겠다.  안유회 / 사회부장·국장프리즘 푸틴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침공 서방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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