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산파
어머니의 장독대는 배불뚝이 항아리들의 집성촌 만삭의 임산부들 뚱뚱한 배 내놓고 옹기종기 일광욕하고 있네 여기저기 장 익어가는 소리 가만히 들리는 그런 오후 때맞춰 허리 굽은 산파 납신다 몇몇 옹기는 출산 멀었다 하고 패스! 패스! 지쳐 보이는 어떤 독 앞에서 걸음 멈추신 어머니 흙으로 빚은 자궁 열고 숙성된 냄새부터 간을 보신다 -잘 익었네 -익히느라 애썼구나 된장독 둥근 허리 윤이 나도록 닦고 계셨다 동그랗게 몸을 말아 품은 자식들 잘 익어라 술을 빚듯 잘 숙성시켜 맛난 사람으로익어라 하셨지 술 익는 냄새에 취했던 것도 같은 내 유년 저녁 답 밥 익는 냄새, 뒤 곁 감나무 투둑 감 익히는 소리, 자욱한 연기처럼 익어 간다는 일 그보다 더 푸근한 충만이 있을까 그럼에도 아무 서러운 일 없는데 울음이 나는 것은 잘 익은 막걸리 쭈욱 들이키시며 두런두런 밤을 익혔던 옛사람이 눈물 나게 보고 싶어서일게다 변정숙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산파 배불뚝이 항아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