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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한인은행 산증인의 쓸쓸한 퇴장

LA 한인사회의 여장부로 불리던 조앤 김 전 CBB 행장이 이달 중순 은퇴했다. 박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쓸쓸한 은퇴라는 점에서 한인 은행권에 아쉬움이 남는다.     김 전 행장은 한인은행 역사의 산증인이라고도 할 만큼 44년 동안 한인은행과 함께 성장한 인물이다. 그는 1978년 가주외환은행에 입사하면서 한인은행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한미은행 등을 거쳐 1999년 윌셔은행으로 복귀한 후 최고대출책임자(CLO)를 거쳐 2008년 행장에 취임했다. 이듬해에는 금융위기로 인해 한인은행으로는 처음 연방예금보험공사에 의해 폐쇄된 미래은행을 인수하며 그의 진가를 보였다. 그는 2011년 3월 윌셔은행에서 사임하고 CBB의 행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전 행장은 CBB에서만 11년 동안 행장직을 수행하면서 당시 1분기 자산 규모가 4억 달러에 불과했던 은행을 11년 동안 4.5배 늘어난 18억 달러 규모로 성장시켰다. 지난해에는 2700만 달러의 최대 실적을 세웠고 은행 설립 16년 만에 현금배당도 했다. 더욱이 작년에는 하와이 오하나퍼시픽뱅크 인수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재계약에 대한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둔 3월말 이사회에서까지 그의 연임 소식이 들리지 않자 불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그가 CBB 2대 행장으로 취임하기 전 CBB에서 벌어졌던 매우 유사한 상황이 스쳐갔다. 당시 CBB 이사회는 1대 행장이자 최고경영자(CEO)와의 재계약을 당일 불가 처리하면서 잡음이 일었다. 김 전 행장의 재계약 불발도 18일 당일 전해졌다. 이사회는 안정보다 변화를 선택했다는 입장이다.   CBB는 ‘최고경영진(C-suite)의 무덤’이라는 말이 은행권에서 떠돈다. 지난 7년간 CBB를 떠난 전무급 인사가 알려진 것만 해도 8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고려하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 시작은 김 전 행장과 이사회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김 행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제이 최 최고관리책임자(CAO)가 퇴사한 데 이어 11월에는 9년 동안 은행 살림을 챙겼던 케이 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떠났다. 이후 한 달 만에 자리를 박차고 떠난 크리스틴 최 전무를 포함해 CFO만 7년 새 4명이 그만뒀다. 그 와중에 한인 전무 1명이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됐다가 2년도 안 돼 돌연 사퇴했고 한인 최고대출책임자(CLO)도 CBB와의 연을 끊었다.     은행 직원들은 이런 과정을 보며 이사회가 직원을 경시하는 경향이 짙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직 CBB 행원도 “최고경영진도 가볍게 여기는데 일개 직원에 대한 이사회의 인식은 어떻겠냐”며 “이사회가 직원을 은행을 이끌어가는 소중한 구성원이 아닌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인 은행권에서는 “1~2년도 아니고 11년 동안 일했던 행장에 대한 예우가 형편 없다”며 “최소 은퇴 발표 당일엔 그의 환송회를 열어서 그간의 노고와 헌신에 대한 감사를 표했어야 조직원들도 이사회가 사람을 중시한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과 이사회의 공식 환송회가 없자 일부 중간 관리들이 돈을 모아 환송회를 조촐하게 열었다. 눈치가 보였는지 이사회는 공식 환송회를 열겠다고 한다.     조직은 유기체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직원 경시 풍토는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준다. 이런 환경에서 인재들은 조직을 이탈하게 되고 그에 따라 조직의 안정성은 무너질 수 있다.     한 한인은행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자신의 돈이 걸려 있으니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챙긴다”며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향후 은행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칠 이사회와 경영진 간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행장이 11년 동안 CBB를 경영하면서 공도 있고 과도 있을 것이다. 과보다는 공이 많았기에 지금의 CBB가 되었으리라 생각이 드는 건 기자 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예우를 갖추는 게 맞다.   진성철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한인은행 산증인 한인은행 관계자 한인은행 역사 동안 한인은행

2022-04-24

위대한 역사적 사건 '흥남 철수'의 산증인을 기억하다

 '그 날 아침의 배는 6시 15분에 닿았다. 눈바람을 무릅쓰고 얼음판 위에서 밤을 새운 군중들은 배가 부두에 와닿는 것을 보자 갑자기 이성을 잃은 것처럼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곤두박질을 하듯이 부두 위로 쏟아져 나갔다. (중략)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김동리의 소설 〈흥남 철수〉 중에서)' 흥남 철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북진통일의 꿈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깨어지고 UN군은 패퇴를 거듭했다. 포위된 미10군단은 괴멸 직전이었다. 12월9일 흥남 철수 명령이 하달됐다. UN군과 함께 피난 가고자 하는 북한 동포들이 넘쳐났다. "피난민을 버리고 가느니 차라리 우리가 걸어서 후퇴하겠다"며 1군단장 김백일 장군 등 현장 지휘관들이 미군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12월19일부터 24일까지 10만의 피란민들이 군인들과 함께 철수했다. 마지막인 23일 출항한 배는 건조된 지 5년 정도 된 7600톤 급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배에는 1만4000여명의 피란민들이 가득찼다. 피란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빅토리호는 25만톤의 군수물자를 미련없이 바다에 던졌다.   지난 10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로버트 러니 전 제독은 빅토리 호의 1등항해사였다. 7년 전인 2015년, 흥남 철수를 소재로 한 영화 '국제시장'이 크게 흥행했다. 워싱턴 중앙일보는 CJ엔터테인먼트 등과 그해 6월 워싱턴 의회에서 특별 영화 상영회를 공동 주최했다. 한미 참전용사 50여명을 비롯, 의회 괸계자, 주미 한국 대사관, 동포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러니 전 제독도 그 중 하나였다. 러니 당시 변호사는 흥남 철수를 떠올리며 “진정한 영웅들은 자유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탈출한 피란민”이라고 말했다. 또한 “당시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화물칸을 사람으로 채웠다”면서 “그래서 (한국말인) ‘빨리빨리’를 알게 됐다”고 기억했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생전에 언제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진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2008년에는 건국 60주년 호국 유공 외국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난 러니 전 제독은 17세이던 1945년 해군에 투신했다. 세계2차대전과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휴전 후 1954년코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5년간 연방검사로 활약했고 이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뉴욕주 해군 방위군으로 복무하며 한국에도 여러차례 방문한 지한파 인사였다. 그는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역사적 아이콘이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들은 행사에 러니 전 제독을 빠짐없이 초청했다. 2015년 워싱턴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서 그를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러니 제독에게 영어로 "You are the true hero(당신이 바로 진정한 영웅입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러니 전 제독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건네받은 뒤 "Countless Koreans are alive today thanks to you(수많은 한국사람들이 당신 덕분에 오늘날 살아있다)"고 거듭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2017년 방미한 문재인 대통령과도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서 만났다. 그들은 뉴저지 흥남 철수의 주인공인 빅토리호의 라루 선장 추모 기념식수 행사에도 동행했다. 이런 인연으로, 러니 전 제독의 별세소식을 들은 문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자신의 SNS로 애도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부모가 흥남철수 피란민이기도 했던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 보내주신 경애심을 깊이 간직하고, 제독의 이름을 국민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이자 세계사적으로 드물었던 민간인 구조작전이었던 '흥남철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수백만 피란민들의 처우가 세계적 관심사가 된 오늘날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다. 인류애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깊게 경험한 한국인들이 세계 속 강대국 국민의 지위에 오른 이 시대, 러니 전 제독과 수많은 참전용사의 용기와 헌신에 보답할 가치있는 기회를 찾아야 할 때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산증인 역사 철수 명령 역사적 아이콘이기도 한미 참전용사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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