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역사적 사건 '흥남 철수'의 산증인을 기억하다
워싱턴 중앙일보 주최 '국제시장' 특별상영회서 눈시울
워싱턴 방문 한국 대통령들이 사랑한 '한미동맹'의 아이콘
흥남 철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북진통일의 꿈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깨어지고 UN군은 패퇴를 거듭했다. 포위된 미10군단은 괴멸 직전이었다. 12월9일 흥남 철수 명령이 하달됐다. UN군과 함께 피난 가고자 하는 북한 동포들이 넘쳐났다. "피난민을 버리고 가느니 차라리 우리가 걸어서 후퇴하겠다"며 1군단장 김백일 장군 등 현장 지휘관들이 미군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12월19일부터 24일까지 10만의 피란민들이 군인들과 함께 철수했다. 마지막인 23일 출항한 배는 건조된 지 5년 정도 된 7600톤 급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배에는 1만4000여명의 피란민들이 가득찼다. 피란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빅토리호는 25만톤의 군수물자를 미련없이 바다에 던졌다.
지난 10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로버트 러니 전 제독은 빅토리 호의 1등항해사였다. 7년 전인 2015년, 흥남 철수를 소재로 한 영화 '국제시장'이 크게 흥행했다. 워싱턴 중앙일보는 CJ엔터테인먼트 등과 그해 6월 워싱턴 의회에서 특별 영화 상영회를 공동 주최했다. 한미 참전용사 50여명을 비롯, 의회 괸계자, 주미 한국 대사관, 동포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러니 전 제독도 그 중 하나였다. 러니 당시 변호사는 흥남 철수를 떠올리며 “진정한 영웅들은 자유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탈출한 피란민”이라고 말했다. 또한 “당시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화물칸을 사람으로 채웠다”면서 “그래서 (한국말인) ‘빨리빨리’를 알게 됐다”고 기억했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생전에 언제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진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2008년에는 건국 60주년 호국 유공 외국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난 러니 전 제독은 17세이던 1945년 해군에 투신했다. 세계2차대전과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휴전 후 1954년코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5년간 연방검사로 활약했고 이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뉴욕주 해군 방위군으로 복무하며 한국에도 여러차례 방문한 지한파 인사였다.
그는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역사적 아이콘이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들은 행사에 러니 전 제독을 빠짐없이 초청했다. 2015년 워싱턴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서 그를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러니 제독에게 영어로 "You are the true hero(당신이 바로 진정한 영웅입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러니 전 제독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건네받은 뒤 "Countless Koreans are alive today thanks to you(수많은 한국사람들이 당신 덕분에 오늘날 살아있다)"고 거듭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2017년 방미한 문재인 대통령과도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서 만났다. 그들은 뉴저지 흥남 철수의 주인공인 빅토리호의 라루 선장 추모 기념식수 행사에도 동행했다. 이런 인연으로, 러니 전 제독의 별세소식을 들은 문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자신의 SNS로 애도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부모가 흥남철수 피란민이기도 했던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 보내주신 경애심을 깊이 간직하고, 제독의 이름을 국민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이자 세계사적으로 드물었던 민간인 구조작전이었던 '흥남철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수백만 피란민들의 처우가 세계적 관심사가 된 오늘날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다. 인류애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깊게 경험한 한국인들이 세계 속 강대국 국민의 지위에 오른 이 시대, 러니 전 제독과 수많은 참전용사의 용기와 헌신에 보답할 가치있는 기회를 찾아야 할 때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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