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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따사로운 어느 봄날

‘사람은 사계절은 만나봐야 좀 안다.’고 한다. 사계절 이상을 알고 지낸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다가 타인이 된다. 줌으로 진행하는 북클럽을 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새 회원은 잘 모른다. 구 회원들도 가물가물하다. 우리는 의기투합하기 위해 사계절마다 소풍 간다. 맨해튼에 사는 회원들은 조지 워싱턴 다리만 건너가면 뉴저지에 사는 회원의 차로 이동한다. 나는 소풍만은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차 창밖을 내다봤다. ‘겨울이 정말 간 것일까?’ 겁먹은 듯 의심하는 몸짓으로 살짝 삐져나온 새순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무성한 시골길을 죽 올라갔다가 한참을 내려갔다. 멀리 좁아져 사라지는 길을 보며 아득한 애잔함에 빠졌다. 아카시아 냄새 맡으며 시골길을 걷던 어린 시절, 시골집 개울가에서 놀다가 젖은 옷을 말리던 커다란 바위의 따사로움이 떠올랐다. 차가 멈추자 다시 뉴욕의 건물 안에 갇힌 잔인한 암울함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듯 기억의 필름이 끊겼다.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톨맨 마운틴 주립공원(Tallman Mountain State Park)에 차를 주차했다. 한국 사람 이름이 새겨진 벤치가 서너 개 있었다. 고인이 평소에 즐겨 찾던 곳에 기부한 것이다. 구글링했다. 센트럴 파크 벤치는 1만 달러 기부로 채택될 수 있다. 리버사이드 공원은 7천500달러다. 기부한 의자에 앉아 절벽 아래 강을 내려다보다가 “우리 햇볕 받아 따뜻해진 의자에 등을 기댈 수 있는 봄이 오면 만나자.”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못된 버릇이 있다.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평생 함께한 버릇이다. 친구, 자매, 아이들 남편에게까지 아주 급하지 않으면 전화하지 않는 버릇이다. 전화가 걸려 오면 상냥하게는 받는다. ‘왜 내가 이렇게 반가운 사람을 잊고 살았지?’ 깨닫고 만나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 내 불통화 버릇 때문에 사람들에게 핀잔받는다. ‘연락하지 않는 게 자랑이냐? 잘 놀다가도 헤어지면 감감무소식이냐?’ 자주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부정적 특징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내며 섭섭하다고들 한다.     칼바람을 휘두르며 협박하듯 뺨을 치던 겨울이 힘에 겨웠는지 따사로움에 외투를 벗어 던지고 가버렸다. 봄이 약속처럼 찾아왔다. 큰맘 먹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그녀가 감질나는 말, ‘따뜻해진 벤치에 등을 기대고’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만나자고 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버사이드 공원, ‘매기 스미스’(Maggie Smith)라고, 쓰인 벤치에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그녀를 기다렸다. 따스하다. 어릴 적 엄마 침대에 들어가 엄마 냄새를 맡으며 느꼈던 그 따뜻함이다.     “잘 지냈어? 네 얼굴 한번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어? 집안에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생전 전화 한번 하지 않는 네 전화 받고 놀랐잖아.”   “햇빛 받아 따뜻해진 벤치에 등을 기댈 수는 봄날에는 만나자. 고 네가 한 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 이수임 화가·맨해튼글마당 봄날 생전 전화 리버사이드 공원 불통화 버릇

2024-04-19

[살며 배우며] 제 머리 제가 깎는 버릇

“내 머리 모양이 어때요?” 한 장로님이 말 했다. 그의 머리 모양은 스포티한 스타일에 정갈하게 잘 다듬어 졌고 염색도 되었다. 어는 이발관에 다니냐고 물었다. “내 전속 이발관” 하고 장로님이 말했다. 전속 이발관이 어디냐고 물으니, 집이라고, 부인이 자기 전속 이발사라고 했다.      월요 등산 팀 멤버들이 등산을 마치고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늙어 가면서 머리 빠지는 이야기, 머리 깎는 이야기, 어느 이발관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 나는 내 머리를 내가 깎는데.” 내가 말 했다. “중도 제 머리 못 깎는다는데, 어떻게 자기머리를 자기가 깎아요?” “머리 깎는 비용이 얼마나 든다고 궁상맞게 이발관에 안가고 혼자 깎아요?” 의외 라는 반응, 측은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내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30대의 버릇도 여든까지 가네요.” 내가 변명했다.     나는 수시로 필요하면 머리를 내가 깎는다. 아침 세수할 때 거울에 비친 내 머리가 좀 길다 싶으면 가위로 긴 부분을 자르고, 필요하면 이발기를 꺼내 높이 조종하는 틀을 씌워 옆머리를 밀고, 뒷머리는 왼 손으로 긴 머리털을 잡아 오른손으로 가위질을 해서 자른다. 50년 동안 계속하니 익숙하다.   1971년, 미국 올 때 바리깡이라고 부르던 이발기와 이발 가위를 여행 가방 속에 넣어서 가져왔다. 가난뱅이가 미국 유학 올 때, 미국은 이발 값이 비싸니 자신의 머리를 자신이 깎으면 돈을 절약한다고 해서 준비해왔다. 궁하니 통했다. 자신의 머리를 깎았더니,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리 깎는 일에 익숙해졌다. 머리에 멋을 내는 유행이 아니라, 그저 짧고 간편한 머리스타일이었다. 아내의 뒷머리 자르는 것도 가끔은 도왔다. 아이들이 집에서 자랄 동안 머리는 물론 내가 깎았다. 머리를 깎을수록 기술도 연마되었다. 한국에서 사온 바리깡은 전동 자동 이발기로 바뀌고, 머리 길이를 조종하는 틀이 있어 머리 높이를 편하게 조정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내 머리가 병원에선 언제나 제일 깔끔해요. 내 전속 이발사인 마누라 덕분입니다.” 오하이오 살 때도 직업이 의사인 한 친구가 말했다. 그는 1960년대에 미국 이민 올 때 이발기를 가지고 왔고 부인이 전속 미용사라 했다. 머리 깎을 때면, 그가 벗고 욕탕에 들어가 앉아있으면 부인이 큰 대접을 머리에 덮고 대접 밖으로 나온 머리를 이발기로 깎은 후에 대접에 덮였던 부분은 가위로 잘라준다고 했다. 머리 깎은 후 청소 편하고 샤워하기 쉬워 욕탕에서 머리 깎는다고 했다.     “뒷머리 좀 잘라줘!” 아내는 뒷머리가 자라면 수시로 나에게 잘라 달라고 한다. 앞 부분과 옆머리는 자신이 다듬을 수 있지만 뒷머리는 가위로 자를 수 없어 나에게 부탁한다. 여러 여성들의 뒷머리가 보이는 뒤에서 보면, 아내의 머리가 늘 단정하게 보였고, 물론 아내도 미용원에 가지만 필요할 때 수시로 내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30대에 시작된 가난한 유학생활 할 때 이발비용을 줄이려고 시작한 내 머리 내가 깎는 버릇이 여든 넘어 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발사들의 따끈따끈한 동네 소식과 시원하게 머리를 감겨주는 이발관의 서비스, 아쉽지 않아?” 물론 아쉽다.       살며 배우며 버릇 오하이오 전속 이발관 전속 이발사인 30대의 버릇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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