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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제 머리 제가 깎는 버릇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내 머리 모양이 어때요?” 한 장로님이 말 했다. 그의 머리 모양은 스포티한 스타일에 정갈하게 잘 다듬어 졌고 염색도 되었다. 어는 이발관에 다니냐고 물었다. “내 전속 이발관” 하고 장로님이 말했다. 전속 이발관이 어디냐고 물으니, 집이라고, 부인이 자기 전속 이발사라고 했다.   
 
월요 등산 팀 멤버들이 등산을 마치고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늙어 가면서 머리 빠지는 이야기, 머리 깎는 이야기, 어느 이발관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 나는 내 머리를 내가 깎는데.” 내가 말 했다. “중도 제 머리 못 깎는다는데, 어떻게 자기머리를 자기가 깎아요?” “머리 깎는 비용이 얼마나 든다고 궁상맞게 이발관에 안가고 혼자 깎아요?” 의외 라는 반응, 측은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내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30대의 버릇도 여든까지 가네요.” 내가 변명했다.  
 
나는 수시로 필요하면 머리를 내가 깎는다. 아침 세수할 때 거울에 비친 내 머리가 좀 길다 싶으면 가위로 긴 부분을 자르고, 필요하면 이발기를 꺼내 높이 조종하는 틀을 씌워 옆머리를 밀고, 뒷머리는 왼 손으로 긴 머리털을 잡아 오른손으로 가위질을 해서 자른다. 50년 동안 계속하니 익숙하다.
 


1971년, 미국 올 때 바리깡이라고 부르던 이발기와 이발 가위를 여행 가방 속에 넣어서 가져왔다. 가난뱅이가 미국 유학 올 때, 미국은 이발 값이 비싸니 자신의 머리를 자신이 깎으면 돈을 절약한다고 해서 준비해왔다. 궁하니 통했다. 자신의 머리를 깎았더니,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리 깎는 일에 익숙해졌다. 머리에 멋을 내는 유행이 아니라, 그저 짧고 간편한 머리스타일이었다. 아내의 뒷머리 자르는 것도 가끔은 도왔다. 아이들이 집에서 자랄 동안 머리는 물론 내가 깎았다. 머리를 깎을수록 기술도 연마되었다. 한국에서 사온 바리깡은 전동 자동 이발기로 바뀌고, 머리 길이를 조종하는 틀이 있어 머리 높이를 편하게 조정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내 머리가 병원에선 언제나 제일 깔끔해요. 내 전속 이발사인 마누라 덕분입니다.” 오하이오 살 때도 직업이 의사인 한 친구가 말했다. 그는 1960년대에 미국 이민 올 때 이발기를 가지고 왔고 부인이 전속 미용사라 했다. 머리 깎을 때면, 그가 벗고 욕탕에 들어가 앉아있으면 부인이 큰 대접을 머리에 덮고 대접 밖으로 나온 머리를 이발기로 깎은 후에 대접에 덮였던 부분은 가위로 잘라준다고 했다. 머리 깎은 후 청소 편하고 샤워하기 쉬워 욕탕에서 머리 깎는다고 했다.  
 
“뒷머리 좀 잘라줘!” 아내는 뒷머리가 자라면 수시로 나에게 잘라 달라고 한다. 앞 부분과 옆머리는 자신이 다듬을 수 있지만 뒷머리는 가위로 자를 수 없어 나에게 부탁한다. 여러 여성들의 뒷머리가 보이는 뒤에서 보면, 아내의 머리가 늘 단정하게 보였고, 물론 아내도 미용원에 가지만 필요할 때 수시로 내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30대에 시작된 가난한 유학생활 할 때 이발비용을 줄이려고 시작한 내 머리 내가 깎는 버릇이 여든 넘어 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발사들의 따끈따끈한 동네 소식과 시원하게 머리를 감겨주는 이발관의 서비스, 아쉽지 않아?” 물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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